[2월]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 박재홍 피아노 독주회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3월 2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EDITOR’S Note

뜨거운 음악의 온기

박재홍 피아노 독주회

2월 10일 금호아트홀 연세

 

 

“안녕하세요. 피아노 치는 박재홍입니다.” 그는 공연에 앞서 녹화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피아니스트가 아닌 피아노 치는 사람. 피아니스트인 것을 즐기기보다 피아노 치는 것을 더 즐기는 연주자. 그는 그런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2021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선보인 레퍼토리에 잘 드러나 있다. 4개의 특별상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는 그의 소식은 2015년 문지영의 우승에 이어 6년 만에 이룬 쾌거였기에 음악계는 들썩였다. 박재홍(1999~)은 당시에도 ‘치고 싶은’ ‘나누고 싶은’ 작품들을 연주했다. 그가 선택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이버’는 긴 연주시간으로 악명 높은 3악장 때문에 콩쿠르 무대에 잘 오르지 않지만, 그는 그 곡을 청중과 나누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그 진심이 1위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기교로 무장한 작품들로 스스로 빛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작곡가가 들리는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1부에서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소나타 1번 ‘대소나타’를 배열하고, 2부에서는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과 프랑크의 피아노를 위한 전주 코랄과 푸가 FWV21을 무대에 올리며 낭만의 색채를 그렸다.

2월 10일, 서울의 밤. 그는 망설임으로 ‘아라베스크’를 시작했다(그 망설임은 아마도 잘 연주하기보다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다). 박재홍은 섬세한 감정 표현 대신 투박한 사랑 방식을 택했다. 말하지 않아도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에서 느껴지는 사랑처럼 건반을 빌어 한음 한음 그만의 사랑을 담아냈다. 아라베스크에서 슈만이 ‘사랑’이었다면 소나타 1번에서 박재홍이 독대한 슈만의 자아는 온유함과 분노이다. 슈만이 젊었을 때 느꼈을 뜨거운 감정이 녹아든 곡이다. 그리고 박재홍의 연주에서도 그 뜨거운 감정이 솟아났다. 그는 크게 화낼 줄도, 왈칵 눈물을 쏟을 줄도 알았다. 자칫 지루할 수 부분에서는 극적인 악상의 변화를 더욱 과장하였고, 그 과장은 그러해야 했던 것처럼 논리적으로 설득되었다.

슈만의 요동치는 감정은 2부의 스크랴빈과 프랑크의 주제로 이어졌다. 그는 기교 대신 선율이 이야기하는 서사에 몰입했다. 몰입이 만들어낸 피아노의 울림이 객석을 진동했다. 그 진동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마음에 “웅웅” 울렸다. 다만 감정이 앞서 화성 속 섬세한 내성의 움직임이나 소리의 불균형은 그가 다듬어야 할 부분으로 느껴졌다. 그는 앙코르로 멘델스존의 무언가 ‘봄의 노래’와 알렉산드르 실로티가 편곡한 바흐의 전주곡, 포레의 무언가 중 ‘로망스’를 연주하며 마지막까지 한 아름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의 마음이 향하는 음악을 헤아려보았고, 그가 왜 피아니스트가 아닌 ‘피아노 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음악이 향하는 곳이란 그를 빛내줄 무대가 아닌 오늘의 음악을 듣고 떠나는 관객의 반짝이는 두 눈을 향하기에 그는 피아노 치는 사람인 것이다. 이토록 피아니스트의 사랑이 담긴 음악을 참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연극 ‘탈피’

 

당연한 무례에 대한 경계

연극 ‘탈피’

1월 28일~2월 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 중앙, 유리관 안 뱀을 형상화한 배우가 뒤틀려있다. 이 뱀의 이름은 무엇일까. 뱀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여성은 극 초반 ‘수진’으로 불리지만, 그건 그녀의 이름이 아니다.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실내 동물원에서 뱀은 탈피 중이다. 탈피 중인 뱀은 죽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얼핏 ‘징그럽다’. 여성은 뱀을 지극 정성으로 살핀다. 마치 그 뱀이 자신인 것처럼. 동물원 우리 속 모든 동물은 그녀와 동일시되어 보인다. 있는 힘을 다해 탈피해보았자, 갑갑한 유리 전시관 속 자신의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곧 문을 닫을 이곳에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만이 다가올 뿐이다.

여성과 뱀을 둘러싼 모든 상황은 무례하다. 함부로 만지고, 자기 입장에서 편한 대로 해석하고 이해한다. 이 둘을 둘러싸고 누군가는 무례에 맞서고, 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교차하는 인물들은 서로 대화하지만, 소통하고 있지 않다. 페미니즘의 일반적 문장과 반박의 주장만이 계속 나열된다.

극 중 인물 간의 유일한 교류는 여성과 뱀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대화가 아닌 몸짓이다. 유리관 속에서 두 인물은 서로 뒤엉킨다. 뱀의 탈피가 인물을 싸고 있던 막도 함께 벗겨낸다. 인물은 침묵에서 벗어나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례한 이의 과오를 폭로한다. 여성은 뱀이 갇혀 있는 유리관마저 뒤엎는다. 밖으로 나온 뱀은 일상화된 무례 속에 젖어 있는 남성의 몸을 휘감는다. 남성은 쓰러지고 여성은 말한다. “가. 가서 살았다고 얘기해.” 그리고 뱀의 유일한 대사. “살아남았다고 얘기해, 소진아”

신효진(작)/강윤지(연출)/강서희(소진 역)/하영미(뱀 역) 외

공연은 11일과 12일, 배리어 프리로 진행했다. 자막을 제공했지만, 해당 일자는 극단 측의 의도에 따라 프레스 관람으로 확인할 순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극의 중심이 되는 소진과 뱀의 연대가 몸짓에 의해 표현되며 해당 방식의 공연으로서도 강렬함을 전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연극 ‘탈피’의 의도는 서로 다른 존재의 연대와 이를 통한 서로의 진정한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그 의도와는 달리 하나의 질문이 연극 끝에 남는다. 연극 내도록 이어지는 억압에 우리는 더 무시무시한 무례와 폭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가. 옳은 일을 위해선 도덕적 책임을 면피해도 괜찮은가. 극의 대부분이 ‘연대의 과정’보다는 ‘연대의 결과’에 대한 변명으로 느껴진다면, 누가 이 연대에 동의를 할 수 있을까.(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글 허서현 기자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여울(작·연출)/조한민(연희감독·배우)/김나니·김정욱·이정동(배우)/목기린(피리·사운드)/박지현(가야금)/김채령(기타) 외

 

 

 

 

 

 

 

 

 

차가운 이야기, 뜨거운 연희

연희앙상블 비단 ‘TIMER’

2월 11·1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전통연희를 오늘날의 공연예술 레퍼토리로 만들려는 젊은 연희꾼들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연희앙상블 비단(대표 조한민)도 그중 하나. ‘음악’과 ‘연희적인 퍼포먼스’의 앙상블을 추구하는 팀으로,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동문이 모여 결성했다.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전통예술 부문(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오른 가장 젊은 팀이기도 하다.

신작 ‘TIMER’는 어느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연희극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신의 수명을 알게 된 인간들은 분초를 아끼며 살아간다. 가장 효율적인 행동 패턴을 설계해주는 ‘플래너’라는 직업이 각광받는 세상. 플래너로 일하는 주인공 ‘한시’는 자신의 임종식(臨終式)을 설계해달라는 ‘102번 고객’을 만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임종식을 주문한 고객. 완벽한 듯 보였던 한시의 계획은, 임종식 당일 고객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흐트러진다.

가야금과 전자 사운드가 결합한 독특한 음악도, 타악 연주와 상모돌리기 등 연희적인 요소도,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녹인 서사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이 극 안에서 제때, 잘 쓰였는지는 의문이다. 극 초반, 낯선 세계관을 설명하는 성격의 대사는 거센 타악기 소리에 묻혔고, 농악수의 어색한 감정 연기는 때때로 몰입을 방해했다. 사건이 반전되며 긴장감이 고조될 때 갑작스레 끼어든 사물놀이 연주와 상모돌리기는 ‘미래 세계’에 나타난 ‘전통예술’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뿐, 어떤 서사적 연관성까지 연출해내지는 못했다.

극의 결말은 이러하다. 잠적한 고객은 사실 자신의 집에 있었다. 효율성을 위해 살아온 그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해보고 싶었다”며 기다리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그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한시. 이렇듯 조금은 허무하게 극은 막을 내린다. 감정적으로 차가운 이야기를 하기엔, 세상 모든 것을 한바탕 놀이로 풀어내는 연희가 너무 뜨거운 예술일지 모른다. 그 온도 차가 이번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 아쉽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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