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화제의 신보
봄의 낭만
탈베르크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외
무릇 계절에 맞는 음악이 있다. 봄은 겨우내 딱딱했던 마음에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봄의 서정적인 감성을 잘 담은 두 개의 앨범이 발매됐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알레산드로 코멜라토는 1843년 에라르 피아노로 낭만시대 유명 선율을 연주한다. 스위스의 작곡가 지기스몬트 탈베르크(1812~1871)는 19세기 중반 리스트의 유일한 경쟁자로 꼽히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우아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피아노 음악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탈베르크의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는 당대의 노래 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모은 것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로시니의 ‘첼미라’, 베버의 ‘마탄의 사수’ 등 오페라 선율과 베토벤의 ‘아델라이데’, 슈베르트의 ‘물레방앗간과 시냇물’ 등 아름다운 가곡을 한데 담았다. 코멜라토는 기교적으로 압도하기보다는 풍부한 음향으로 단아한 봄기운을 느끼도록 한다.
노르웨이의 떠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소노코 미리암 벨데(1996~)가 신선한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브루흐와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을 연주했다. ‘그라모폰’에서 이 연주를 두고 “은빛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사운드”라고 평했을 만큼, 벨데의 바이올린 선율은 달콤한 기운을 선사한다. 섬세하고도 사색적인 톤의 보잉은 첫 곡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벨벳처럼 부드럽게 떨어지는 저음역의 감칠맛은 특히 빼어나다.
장혜선
발굴과 발견
이자벨 파우스트 2010년 프랑스 리사이틀
전병훈의 경기잡가 전집
지휘자 첼리비다케는 레코드를 ‘깡통 음악’이라며 혐오했다. 살아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레코드에 ‘보존된 음악’은 우리를 먼 시대, 어느 다른 공간으로 데려간다.
일본 레이블 스펙트럼사운드는 아시아 최초로 유럽 최대 공영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프랑스와 공연 실황 아카이브 발굴 계약을 맺었다. 라디오 프랑스 음향팀의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 거장들이 남긴 공연 실황이 빛을 보게 됐다. 2010년 프랑스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레 파우스트(1972~)의 리사이틀도 그중 하나. 1CD에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의 백미였던 5번 ‘봄’, 9번 ‘크로이처’ 등이, 2CD에는 바흐 무반주 소나타 BWV1004와 1005 등이 수록됐다.
소리꾼 전병훈은 국악음반 연구가 정창관과 함께 경기잡가를 집대성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경기음악연구회의 기획으로 이뤄졌다. 현재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긴잡가(12잡가)와 여러 휘몰이잡가를 포함해 총 40곡이 수록됐다. 신보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이삼경에 났던 님이’(휘몰이잡가), ‘경기 성주풀이’(경기잡가)도 포함된다. 옛 문헌 속 음악에 현재의 소리꾼 전병훈이 상상력을 더해 직접 작사·작창했다. (사)경기음악연구회 산하 연주단체인 경음악회가 반주를 맡았다. 한국음반아카이브 연구소 배연형 소장은 이 음반을 “경·서도 소리의 자산으로 두루 활용될 옛 소리의 재현”이라고 평했다.
박서정
우리 시대 영화음악의 가능성
존 윌리엄스 베를린 콘서트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 모음집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무대 진출이 활발하다. 국내에서만도 히사이시 조·한스 치머가 심심찮게 공연장에 이름을 건다. 오늘 소개할 노 거장들의 음반은 단순히 무대 진출을 넘어 하나의 오케스트라 장르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영화음악’은 21세기 현대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일까.
2020년, 존 윌리엄스(1932~) 지휘의 빈 필 실황 음반은 큰 화제였다. 상어 없는 ‘죠스’, 한솔로 없는 ‘스타워즈’였지만, 바이올리니스트 무터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성공적이었다. DG의 로고를 금색으로 발매한 한정반의 품절을 기억하는지, 2021년 베를린 필과의 실황을 담은 이번 음반도 금색의 한정반이 발매됐다. 전반부는 영화 ‘해리 포터’ ‘슈퍼맨’ ‘인디아나 존스’의 OST가, 후반부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장대한 음악이 이어진다. 이로써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레이블 및 두 오케스트라에서 모두 인정받았다.
2020년 타계한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러브 어페어’ 등 잊지 못할 멜로디를 남긴 그가 타계 직전 남긴 작품들이 최초로 녹음됐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영화음악 모음곡들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미션’ 등의 대표작이 담겨 있다. 지휘는 아들인 안드레아 모리코네가 맡았다.
허서현
피아니‘스타’
베토벤·부소니·바흐/부소니 피아노 작품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외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는 콩쿠르를 통해 혜성같이 나타난다. 여러 콩쿠르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은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신보 소식을 전했다. 별빛은 꺼지지 않는다.
지난해 부소니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박재홍은 최고해석상, 실내악 특별상을 포함해 4개의 특별상을 함께 껴안았다. 2015년 문지영의 우승에 이어 6년 만에 이루어낸 쾌거로 국내 음악계는 떠들썩했다. 그의 신보로 당시 뜨거웠던 콩쿠르 현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결선에서 선보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포함해 부소니의 ‘쇼팽 프렐류드에 의한 10개의 변주’ 등을 담았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을 사사하고 있다.
그보다 앞서 임동혁은 음악의 길을 빛낸 원조 클래식 스타이다. 7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1996년 쇼팽 청소년 콩쿠르 2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린 그는 2001년 롱티보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석권하고, 17세 최연소로 EMI(현 Warner Classics)와의 계약을 이루어냈다. 이후 2005년 쇼팽 콩쿠르 공동 3위,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4위 등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발돋움했다. 데뷔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한 올해, 슈베르트의 말년에 작곡된 세 개의 소나타 중 마지막 2곡(D959·D960)을 신보에 담았다.
임원빈
조르다노 ‘시베리아’
‘안드레아 셰니에’로 유명한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14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특히 애착을 보인 작품이 바로 ‘시베리아’(1903). 차르 아들의 숨겨놓은 연인이었던 스테파나는 젊은 장교 바실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시베리아 수용소에 끌려간 연인을 쫓아갔다가 비열한 첫 애인 글레비의 간계로 목숨을 잃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래도록 잊혔다가 영상으로는 첫 발매되었다. 좀처럼 공연되지 않던 오페라임에도 출연진이 일급이다. 자난드레아 노세다는 2007~2018년까지 토리노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끈 지휘자이며, 소냐 욘체바(스테파나)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불가리아의 디바이다. 조지아의 젊은 테너 조르지 스투루아(바실리), 루마니아의 중견 바리톤 게오르게 페테안(글레비)도 어렵기로 소문난 묵직한 노래들을 충분히 소화했다. 2021년 이탈리아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실황.
베르디 ‘운명의 힘’
전통과 혁신이 제대로 만난 실황이다. 베르디 오페라 중에서 가장 무거운 분위기인 ‘운명의 힘’은 러시아 황실 위촉으로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됐다. 잉카 제국의 후손인 알바로와 스페인 귀족의 딸 레오노라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기계장치와 현란한 첨단기술을 애용하는 카를루스 파드리사가 연출을 맡아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일찍부터 이 오페라의 최고 해석자였던 주빈 메타가 탄탄한 지휘를 펼치기 때문이다. 메타가 젊은 시절 LA 필과 녹음한 ‘운명의 힘’ 서곡은 대단한 명연이었다. DVD와 블루레이 시대에 접어들자 메타는 피렌체와 빈의 실황 영상에서 지휘를 맡았다. 출연자 중 로베르토 아로니카(알바로)는 베르디와 푸치니 오페라에 잔뼈가 굵은 이탈리아 테너다. 2021년 이탈리아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실황.
모차르트 ‘돈 조반니’
덴마크 왕립 오페라·영국 로열 오페라 감독을 역임한 연출가 카스페르 홀텐. 바그너의 ‘반지’,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등으로도 인정받은 그가 ‘돈 조반니’에 대해 가진 애정은 각별하다. 2009년, 홀텐이 직접 영화로 만든 ‘돈 조반니’는 현대 헝가리를 배경으로 적나라한 남녀 관계가 펼쳐진다. 영화와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간 오페라 버전은 2014년 로열 오페라 시절 코번트 가든 실황으로 남겼다. 홀텐의 연출에서는 돈나 안나가 처음부터 돈 조반니의 정체를 알고, 그 구애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처리한 것도 설득력을 가진다. 무대를 가득 채운 세트와 정교한 프로젝션 영상 영출이 돋보인다. 이번에 출시된 2019년 실황 영상(로열 오페라)에서는 2014년과 출연 성악가들이 모두 바뀌었다는 비교점이 있다.
모차르트 ‘이도메네오’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신동 모차르트가 25세 원숙기에 이르러 ‘위대한 오페라’ 반열에 오를 출발점에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와 프랑스 궁정 오페라가 혼재된 이 작품을 덴마크 출신 연출가 카스페르 홀텐이 맡았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독특한 시도보다는 트로이 전쟁의 후일담에서 비롯된 복잡한 인물 구도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관객은 오페라 줄거리를 모르더라도 쉽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의 주역으로 데뷔한 테너 베르나르트 리히테르가 이도메네오 역을 맡고 메조소프라노 라헬 프렌켈이 이다만테 역을 맡았다. 2019년 빈 슈타츠오퍼 실황.
헨델 아리아집
프랑스의 소프라노 상드린 피오(1965~)는 본래 하프를 전공했다. 타고난 목소리로 인해 성악으로 전향하며 바로크 음악의 스페셜리스트인 윌리엄 크리스티에게 중용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르네 야콥스, 마르크 민코프스키, 필립 헤레베헤 등 유럽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과 협업하며 바로크 음악에 일가를 이뤘다. 제롬 코레아스가 이끄는 레 팔라댕은 바로크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독특한 해석으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앙상블이다. 이들은 호소력 짙은 보컬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헨델의 아리아를 선사한다.
탈리발디스 케닌스
교향곡 5·8번 외
탈리발디스 케닌스(1919~2008)는 라트비아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고국을 떠나 1951년에 캐나다에 정착했다. 캐나다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그의 음악은 고전 양식을 존중하면서 낭만적인 서사로 풀어간다. 포가/라트비아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케닌스 교향곡 5번은 강력한 에너지와 생동감 있는 리듬이 인상적이며, 8번은 오르가니스트 압칼나가 함께하여 관현악의 언어를 더욱 확장한다. ‘현을 위한 아리아’의 환상적인 사운드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모차르트 현악 4중주 4·6·7·19번
아르미다 콰르텟은 2006년 창단, 2012년 ARD 콩쿠르 1위 이후 독일의 젊은 현악 4중주단 중 선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버르토크·리게티·쿠르탁의 작품을 녹음한 데뷔 음반으로 독일 음반 비평가상을 수상한 이들은 2015년,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번 음반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다. ‘BBC 뮤직’에서 “음악적, 기교적 양면의 승리”로 평 받은 3집에 이어, 이번 4집은 피치카토 슈퍼 소닉과 BBC 뮤직 매거진에서 만점을 받았다.
필립 글래스 현악 4중주 8·9번
필립 글래스의 신작을 타나 콰르텟이 담았다. 타나 콰르텟은 그간 필립 글래스의 현악 4중주를 모두 녹음해 발매해왔다. 특별히, 이번에 초연된 현악 4중주 9번은 필립 글래스의 초기 작품을 새롭게 작곡한 것이다. 당시 이 음악은 샘 골드가 연출한 ‘리어 왕’에 사용됐다.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음악을 쌓아가는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함께 연주된 현악 4중주 8번은 2018년 작곡됐다. 이 음반을 통해 고전적이면서도 내면적인 접근을 새로운 작곡 양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필립 글래스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2권
트레버 피노크(1946~)는 1972년 당대연주를 선보이는 잉글리시 콘서트를 설립하며 헤르베헤와 아르농쿠르와 함께 당대연주 붐을 일으킨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2020년 발매한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에 이어 2권을 담은 음반을 발매했다. 70대에 접어든 그이지만 여전히 음악 속에는 활력이 돋는다. 그는 이번 신보에 대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평생의 책무로 거대한 산과 같았다”라며 “남은 생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언스포큰 5 : 말하지 않는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은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즉흥음악을 음반에 담았다. 약 25분간 진행되는 무아지경의 음악에 그의 자아가 담겨 있다. 그는 “나에게 공간이란 마치 음악의 리드미컬한 어느 부분을 형상화한 오브제와 같다. 오브제와 즉흥이 맞아떨어질 때 음악은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음반에는 타이틀곡인 25현가야금 독주곡 ‘언스포큰 5 : 말하지 않는’을 포함해 전자음악, 무용과 어우러진 ‘3’이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