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의 이상을 가꾸다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 플로리안 리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5월 23일 9:00 오전

FOCUS

콩쿠르의 이상을 가꾸다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 플로리안 리임

인재는 공정하고 잘 조직된 환경에서 나온다는 그의 콩쿠르 운영법

플로리안 리임

1890년, 최초의 국제 콩쿠르가 등장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프란츠 리스트에 비견된 안톤 루빈시테인이 5년 주기, 피아노와 작곡 부문으로 경연을 조직했다. 콩쿠르 규정에는 처음으로 “국적·종교·출신 학교 등과 상관없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개최지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해 베를린·빈·파리를 순회했다. 세계화에 대한 열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셈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유럽에 국제 콩쿠르 붐이 일었다. 쇼팽 콩쿠르(1927),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 제네바 콩쿠르(1939) 등이 이어 출범했다.

그러나 국제 콩쿠르의 포부는 이따금 민족주의와 이념 갈등으로 탈선했다. 문화 사회학자 리사 맥코믹은 저서 ‘인간성을 연주하기: 클래식 음악 국제 콩쿠르에 관하여’에서 그 이면을 들춰낸다. 루빈스타인 콩쿠르를 주관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당시 “제국 전역에 문화를 주입하기 위한 현역 연주자 양성소”라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제1회 콩쿠르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루빈스타인은 러시아 음악가의 약세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맥코믹은 이러한 흐름에서 1957년 국제콩쿠르세계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이하 연맹)의 탄생에 주목했다. 공정하고 전문적인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콩쿠르가 문화 관용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개혁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최근 발발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러한 연맹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올해 개최 예정인 몇몇 콩쿠르가 러시아·벨라루스 음악가의 참가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맹은 이번 침공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입장을 확실히 했다. “모든 음악가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며, 러시아 음악가가 정부 이념을 대변하는 국가 후원 음악가로 낙인찍히는 차별이 야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다.

연맹에서의 대화를 거쳐, 제재를 철회하는 단체들이 나왔다. 2020년 4월, 연맹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플로리안 리임은 “우리가 연합함으로써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의의를 밝혔다.

세계 콩쿠르 연맹의 역할

리임은 “가장 공정하고 잘 조직된 환경에서 인재가 제 기량을 발한다”고 강조한다. 연맹이 세계 각지 콩쿠르가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 예술적 우수성, 청렴성, 공정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이유다. 유네스코 산하기관이기도 한 연맹은 스위스 제네바에 거점을 두고, 현재 110여 회원과 콩쿠르의 이상을 가꾸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제주국제관악콩쿠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세 곳이 함께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공식 포럼에서 회원들 간 교류가 이뤄진다. 특히 신생 콩쿠르는 오랜 역사의 단체로부터 참고할 점이 많다. 또, 콩쿠르의 활동과 결정이 연맹 차원에서 검토됨으로써 신뢰도를 얻을 수 있다. 이외에도 어느 콩쿠르의 심사 과정에 관해 문제가 제기되면, 연맹은 상황을 파악하고 해당 콩쿠르와 해결책을 모색한다. 단, 회원에게 무엇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연맹의 문은 열려 있지만, 회원이 되기 위해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가 기준과 권고사항들은 문서화 되어 있다. 평균 참가자와 심사위원 수, 이들의 국적 다양성, 성별 비율 등이 평가되고, 악기 부문과 그에 따른 레퍼토리, 마스터클래스·워크숍·세미나 등 교육 프로그램 여부도 검토된다. 예선 진행 시간을 최소 20분으로 권고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가입을 결정짓는 회의는 1년에 단 한 번 열린다.

깐깐한 기준은 장벽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연맹은 변화하는 시대를 유연하게 반영한다. 최근 새로 회원이 된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가 그 예다.

“사실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는 연맹의 여러 기준에 맞지 않았다. 예컨대 나이 제한이 없다. 레퍼토리 제한도 없어 재즈나 대중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다. 독주악기는 오케스트라 협연을 선보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어긋났다. 그러나 전통 콩쿠르와 다른 신선함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여성 지휘자에 대한 기회의 문을 넓히고자 2020년 발족한 프랑스 라 마에스트라 콩쿠르도 가입에 대한 뜻을 밝혀왔었다. 그런데 참가자 성별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연맹 기준에 대해 고심하곤 가입 희망을 철회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최근 연맹의 가장 큰 안건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개최되는 호로비츠 콩쿠르(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Young Pianists in Memory of Vladimir Horowitz)가 안전한 국가에서 임시 개최될 수 있도록 지원 방법을 물색 중이다. 한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심사위원장으로 있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제명했다. 지난 19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와 함께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선전 도구로 전락한 콩쿠르과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 러시아·벨라루스 출신 음악가에 대한 제재가 쇄도하는 가운데 또 다른 차별과 피해가 야기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젊은 음악가, 지속가능성의 열쇠

많은 콩쿠르가 코로나 팬데믹에 적응하기까지도 연맹은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특히 온라인 콩쿠르가 자리 잡는 데 공을 들였다. 초반의 기술적 결함, 이로 인한 심사의 불공정성 등 여러 시행착오를 포럼에서 논의해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플로리안 리임은 온라인 콩쿠르의 여러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 배출 감소나 콩쿠르의 온라인 티켓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도 그중 하나다. 특히 강조한 것은 온라인 경연을 통해 젊은 연주자가 관계 맺을 수 있는 청중의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오늘날 음악가에게는 온라인 관객과 후원자가 중요하다. 지난해 열린 쇼팽 콩쿠르는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유튜브, 몇몇 국가의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 생중계됐고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우승하지 못했더라도, 팬층을 확보할 기회인 셈이다.”

연맹의 관심은 늘 젊은 음악가에 쏠려 있다. 이들의 꾸준한 성장이 곧 클래식 음악계 지속가능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사위원과의 피드백 세션, 콩쿠르 현지 커뮤니티에서의 공연 기회 등은 연맹 권고사항에 포함돼 있다. 특히 제네바 콩쿠르는 고무적인 사례다. 입상자들은 콩쿠르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음악코치, 강사, 교수 등과 2년간 꾸준한 워크숍을 갖는다. 리임은 이를 통해 커리어를 이어가는 경우를 흥미롭게 지켜봤다고 덧붙였다. 연맹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 매니지먼트, 음반 녹음 기회 등을 중개하고, 오늘날 음악가들이 함양해야 하는 ‘셀프 마케팅’ 전략도 교육한다.

“콩쿠르가 단순히 입상자를 생산해내는 플랫폼이 되어선 안 된다. 연맹은 세계 각국의 콩쿠르가 클래식 음악계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국제콩쿠르세계연맹

플로리안 리임(1968~) 크레메라타 발티카, 가나자와 앙상블, 콘스탄츠 남서독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표, 2013~2020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아시아태평양 아트센터 연합회(Association of Asia-Pacific Performing Arts Centres),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등을 이끌었고, 현재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과 통영국제음악재단 국제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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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콩쿠르세계연맹이 주목하는 하반기 세계 콩쿠르 일정

반 클라이번 콩쿠르 (c) Ralph Lauer

음악 애호가들이 고대하는 굵직한 콩쿠르들이 하반기를 수놓는다.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진 5년 주기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올해 가장 큰 관심이 쏠려 있다. 프라하 봄 콩쿠르는 올해 바순·클라리넷 부문으로 열린다. 한국의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특히 강세를 보인 콩쿠르이니 기대를 걸어볼 것. 최근 한국 현악 4중주단의 국제적 활약이 이어지고 있어 캐나다 밴프 현악 4중주 콩쿠르도 주목할 만하다.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는 국제콩쿠르세계연맹이 주목하는 ‘뉴페이스’다. 장르와 편성 제한 없는 경연을 통해 개성 강한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시벨리우스 콩쿠르, 몬트리올 콩쿠르, 제네바 콩쿠르 등이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가꿀 음악인들을 소개한다.

5월
콩쿠르명 국가명 악기/장르 부문 일정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 네덜란드 하프 5.7·8
프라하 봄 콩쿠르 체코 바순·클라리넷 5.7~15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벨기에 첼로 5.9~6.4
더블린 피아노 콩쿠르 아일랜드 피아노 5.17~24
시벨리우스 콩쿠르 핀란드 바이올린 5.18~29
센다이 콩쿠르 일본 바이올린·피아노 5.21~6.26
몬트리올 콩쿠르 캐나다 성악 5.31~6.9
6월
반 클라이번 콩쿠르 미국 피아노 6.2~18
아람 하차투리안 콩쿠르 아르메니아 지휘 6.6~13
빌헬름 스텐함마르 콩쿠르 스웨덴 성악 6.9~17
7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콩쿠르 독일 바이올린·피아노·하프시코드 7.12~23
하얼빈 쇤펠트 현악 콩쿠르 중국 바이올린·첼로·실내악 7.15~30
룩셈부르크 타악 콩쿠르 룩셈부르크 타악 7.16~24
프란츠 슈베르트 현대음악 실내악 콩쿠르 오스트리아 성악 듀오·피아노 트리오 7.20~24
8월
제주 관악 콩쿠르 한국 유포니움·베이스트럼본·튜바·타악 8.9~15
스웨덴 듀오 콩쿠르 스웨덴 실내악 8.19~21
그리그 피아노 콩쿠르 노르웨이 피아노 8.26~9.3
밴프 현악 4중주 콩쿠르 캐나다 현악 4중주 8.29~9.4
ARD 콩쿠르 독일 트롬폰·피아노·플루트·현악 4중주 8.29~9.15
9월
에네스쿠 콩쿠르 루마니아 바이올린·첼로·피아노·작곡 9.4~18
인디애나폴리스 바이올린 콩쿠르 미국 바이올린 9.9~25
위트헤르트 리스트 콩쿠르 네덜란드 피아노 9.22~29
10월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폴란드 바이올린 10.7~21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한국 바이올린 10.24·25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한국 첼로 10.30~11.5
제네바 콩쿠르 스위스 피아노·작곡 10.26~11.3
11월
롱티보 콩쿠르 프랑스 바이올린·피아노 11.7~13
부소니 콩쿠르 이탈리아 피아노 11.7~16
트롬프 타악 콩쿠르 네덜란드 타악 11.10~20
12월
싱가포르 바이올린 콩쿠르 싱가포르 바이올린 12.1~14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c) Queen Elisab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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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클라이번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Queen Elisabeth

싱가포르 바이올린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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