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Beat
두드려라!
새로운 음악이 열릴 것이다
퍼커셔니스트 박윤·심선민·김미연·박혜지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선율을 따라 걷는다면, 퍼커셔니스트는 심장 박동을 쫓는다.
그 속에서 시원(始原)의 리듬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악기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악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악기 외에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타악기의 수는 끝이 없다.
새로운 문명의 발견이 곧 새로운 악기의 발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퍼커셔니스트의 여정은 끝이 없다.
새로운 소리와 과거의 소리가 만나는 타악기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퍼커셔니스트 네 명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강태욱(Workroom K)
PART1 퍼커셔니스트의 역할, 활동에 관한 대담
악기의 심장 박동을 쫓아
새로운 소리를 위한 여정
촬영을 앞두고 그들은 서로의 근황을 나누느라 바쁘다. 이렇게 네 명이 한자리에 모일 일이 없기에 밀린 대화가 많다고. 박윤(1976~)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느라, 심선민(1977~)은 강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바빴다. 김미연(1980~)은 서울시향 단원으로 매달 연주를 준비하고, 박혜지(1991~)는 긴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막 귀국했다. 다른 장르보다 전공자 수가 적어 타악기 장르는 한 다리 굳이 건너지 않아도 같은 학교, 같은 교수님 밑에서 자라 유대감이 다른 악기와 남다르다고 한다.
이어 “네 분을 기사에 멋지게 담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박윤은 “그럼 화장을 통일하면 좋겠다. 그라데이션을 더 주자. 들어와 봐.” 박윤의 진두지휘 아래 세 명의 연주자는 대기실에서 또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층 날카로워진 눈매와 단호한 입을 가진 네 명의 연주자가 당당한 걸음으로 포토존에 선다.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촬영장에 묘한 긴장감과 벅참이 느껴진다.
퍼커셔니스트의 첫 시작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전, 학생 시절에 타악기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미연 어릴 때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자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레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듣게 된 마림바의 음색에 매료되어서 정말 바로 “이 악기다!”하고 결정했던 것 같아요.
박혜지 피아노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만 3세 때 피아노로 음악을 접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열심히 배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타악기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피아노 반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간 타악기 연습실에서 “한번 쳐볼래?”라고 하시는 선생님을 통해 갑자기 받게 된 짧은 드럼 수업으로 제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음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어 그냥 무조건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윤 1세대 퍼커셔니스트이신 아버지(박동욱)와 작곡가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악기들을 가까이 접하며 자랐습니다. 어머니 덕에 현대음악도 아주 이른 나이에 접했습니다. 작곡을 공부하다 타악기를 전공하게 된 과정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심선민 중학교 재학 당시 목소리로 감정을 전달하는 성악가의 모습에 반해 성악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성대가 약해서 선생님께서 반대하셨습니다. 어떤 악기가 나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고, 어머니의 권유로 타악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너무 재미있어서 신나게 연습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타악기는 다른 악기에 비해 처음 시작하는 나이가 늦은 편입니다. 타악기를 시작하기에 적합한 나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박윤 독립된 악기로, 또 전공으로서 한국에 소개된 지 이제 40여 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보다 짧으니 어린 학생들에게 소개되는 기회가 적은 것은 당연합니다. 적합한 나이가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시작하는 나이가 비교적 늦은 이유는 악기나 말렛(고무·실리콘으로 만든 타악기 채의 헤드를 실로 감싼 것)이 어린이용 사이즈로 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신장이 자라고 손과 팔의 근육도 발달하여야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박혜지 요즘은 타악기를 알게 된 많은 어린이들이 일찍부터 타악기를 전공으로 시작해서, 수준 높은 곡을 연주하는 초·중학생이 많기는 하더라고요. 시작하는 나이보다, 오랜 시간 꾸준하게 바른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선민 맞아요. 타악기는 오히려 소리 내는 법이 다른 악기에 비해 쉽기 때문에 일찍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시적 리듬의 회귀
서양음악의 발달은 리듬을 포기해 가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타악기 음악이 전환점을 맞은 시점을 언제로 꼽을 수 있을까요?
박혜지 벨라 버르토크(1881~1945)는 당시 오케스트라 반주를 맡던 타악기를 위해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함으로써, 타악기 독주의 매력을 선보였습니다. 그 이후로 타악기가 솔로 악기로서도 점점 발전해서, 지금 저처럼 독주자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답니다.
박윤 클래식 음악은 리듬이 정형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면서 현대음악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선두에 있었던 악기가 타악기이고, 타악기에 이전에 없던 역할을 부여한 작곡가들이 그 과정을 앞당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과 버르토크도 중요하지만, 우연성과 실험성, 반복되는 리듬 패턴으로 타악기가 주된 퍼포먼스 분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존 케이지(1912~1992)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미연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 드뷔시 역시 타악기를 매우 다채롭고 화려하게 썼던 작곡가들이죠. 라벨(1875~1937)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에는 팀파니, 글로켄슈필, 실로폰, 스네어 드럼, 필드 드럼, 캐스터네츠, 크로탈, 탬버린 그리고 윈드머신까지 매우 풍부하게 타악기가 동원됩니다.
심선민 방금 언급한 작곡가가 레퍼토리의 확장을 가져왔다면 퍼커셔니스트 게이코 아베(1937~)는 1970년대에 기존의 4옥타브를 5옥타브로 늘린 마림바를 제작해 악기의 확장을 가져온 연주자입니다. 후에 타악기 역사책에 수록이 되어야 하는 분이에요.
작품에 쓰는 타악기의 종류는 다채로운데요. 민속악기를 사용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러한 악기를 익히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박윤 여러 나라의 민속악기 중에 타악기가 많은 이유는 인류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악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확한 연주법을 익혀야 좋은 소리가 나오는 만큼 많은 전통 기법들을 참고하여 준비하는 편입니다.
김미연 멕시코 출신 작곡가 하비에르 알바레스(1956~)의 ‘테마칼(Temazcal)’을 연주했을 때 칠레 출신의 동료가 있어서 많이 물어보며 배웠고, 유튜브도 적극 활용 했습니다.
박혜지 저도 유학시절에 알베레즈의 작품을 연주해 보고 싶어서 작품에 쓰이는 마라카스를 구입한 적이 있어요. 연주 방법을 알 수가 없어 베네수엘라 출신 친구에게 연주를 부탁했더니 수준급으로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그날부터 그에게 두 달간 매주 마라카스 수업을 받았고, 지금은 무대에서 자신 있게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심선민 독일 유학 시절, 주변 여러 나라에서 민속악기를 배운 적도 있습니다. 한 예로 잼베이를 사용하는 곡이었는데, 폴란드로 가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니피 노야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배웠죠. 또한 핸드 캐스터네츠를 배우려고 스페인의 플라멩코 예술가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연주자 몸집의 두세 배가 넘는 큰 악기를 옮기고 연주해야하고, 포르티시시모를 연주하기 위해 심벌즈나 베이스드럼을 온 힘을 다해 연주해야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아요.
김미연 2015년 발매된 정명훈/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5번 음반(DG)을 녹음할 때 심벌즈를 맡았어요. 실제로 악기 패킹이나 연주법에 있어 체력이 매우 필요한 파트이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하려고 하고 체력관리를 신경 쓰고 있어요.
박윤 맞아요. 자기 악기 한 개만 가볍게 들고 다니고 연습 장소도 작은 방 하나면 충분한 다른 연주자들이 부러운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언제나 서로 도우며 일하기에 퍼커셔니스트들은 직접 선후배가 아니더라도 끈끈한 동료애가 있습니다.
박혜지 오랜 기간 악기를 많이 옮겨 본 경험과 요령이 있어서 지금은 웬만한 성인 남자들이 들 정도의 악기들은 저도 번쩍번쩍 들어요. 저는 타악기 연주자 중에서도 키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해외 콩쿠르에서는 악기와 높이가 맞지 않아 발판을 깔고 한 적도 있답니다.
심선민 타악 연주자 치고는 팔이 좀 더 짧은 편이기에 몇몇 곡들은 제가 소화해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유학 시절에 마림바의 앞·뒷면의 모서리 부분을 쳐야 하는 조셉 슈원트너(1943~)의 ‘속도(Velocities)’를 연주할 때 남들보다 어깨 근육을 더 늘려 연주하다 담이 결린 것이 생각이 나네요.
최근에는 성차별 문제가 음악계 내에서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과거에는 타악기 특성상 여성이기 때문에 편성에서 배제되거나 활동에 제한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심선민 대학에 다닐 무렵에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면, 심벌즈는 남자가 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심벌즈를 너무 치고 싶은데, 못하게 해서 화를 내며 매일매일 심벌즈 연습을 손이 까질 때까지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남성 팀파니스트, 퍼커셔니스트를 선호하는 지휘자들과 부딪힐 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이 선입견도 머지않아 깨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박혜지 여자가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에 200퍼센트 동의합니다. 저도 여학생들이 타악기를 전공하고 싶다고 하면 우선 만류하고, 어떤 일들까지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곤 합니다.
김미연 그런데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봐요. 오히려 국제적으로 여성 퍼커셔니스트가 활발히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이만 봐도요!(웃음)
그럼에도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에릭 사뭇이나 LA 필 수석 조셉 퍼레라 등 팀파니·타악기 수석을 남성이 주를 이루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김미연 의외로 수석을 여성 연주자가 맡고 있는 곳도 꽤 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의 수석 신시야 같은 경우를 포함해 국내에서도 부천필, 강남심포니 등도 여성 수석이고요.
퍼커셔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다양한 악기를 수집하고,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말렛을 개조하는 등의 노력은 모두 퍼커셔니스트 개인의 몫입니다. 새로운 악기를 찾거나 말렛을 구하기 위해 “나는 이런 것까지 해봤다!”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미연 음높이가 다른 브레이크 드럼이 필요해서 장한평의 자동차 중고매장에 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각 매장을 들어가 자동차 브레이크 드럼을 악기로 찾고 있다고 하니, 사장님들이 신기하시며 이것저것 내어주셨어요. 퍼커셔니스트에게 악기를 찾으러 다니는 것은 일상이지만, 너무 추웠던 크리스마스이브여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박혜지 2021년 4월 오스모 벤스케/서울시향과 협연했던 페테르 외트뵈시(1944~)의 ‘스피킹 드럼’이라는 곡에는 연주자의 선택으로 일상생활 용품을 악기로 쓰는 즉흥연주 부분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맞는 악기를 찾기 위해 부엌 용품점에 가서 모든 냄비를 젓가락으로 두드려보기도 했어요. 그러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살짝 부끄럽긴 하네요.(웃음)
박윤 새로운 소리와 독특한 효과를 찾아 고민하고 기존의 말렛이나 악기를 개조하는 과정은 퍼커셔니스트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지난 6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연주에서 사용한 베이스드럼 브러쉬는 대나무를 사용했는데, 사실 중국의 요리 팬을 닦는 대나무 묶음을 펴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멀티 퍼커션 세팅에 주로 사용하는 탬버린은 가죽 위에 쿠션을 제작해 달고 아래편에 보조 징글을 덧대어 스틱으로 쳐도 부딪히는 소리 없이 징글만 울리는 효과를 낼 수 있게 했어요.
심선민 독일에서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연주로 데이비드 프리드만(1938~2008)의 ‘King of Denmark’라는 곡을 준비했는데요, 이 곡은 악기의 사운드만 정해주고, 어떤 악기를 선택할지는 연주자에게 맡기는 작품입니다. “동서양의 음색이 함께 어우러진 미국 작품을 연주하자!”라는 결론에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원하는 소리의 악기를 찾기 위해 인사동을 샅샅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타악기는 한 작품에 사용되는 악기의 가지 수도 많고, 연주자의 동선과 악기 배치로 인한 무대 팀과 면밀한 협업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박윤 이제는 인식도 많이 바뀌고 스태프들도 최선을 다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줍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오케스트라 속 팀파니의 울림을 강화하기 위해 단을 한 단만 설치해달라는 부탁조차 하기 어려웠고, ‘대충하지 뭘 그러느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악기 운반 시간을 따로 배정받지 못해 리허설의 절반을 세팅에 쓰느라 제대로 쳐보지도 못하고 쫓기듯 오른 무대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예의를 갖춰 설득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접 보여드리고, 그 일들이 오랜 시간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어느 상황이든 노련해지게 되었습니다.
김미연 서울시향의 악기 담당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과 타악기군은 늘 회식합니다. 타악기들을 패킹하고 세팅하고 다시 패킹하고, 이동하고, 세팅하는 건 매우 많은 수고가 따르는 일이라 감독님들과 퍼커셔니스트들을 서로 격려하고자 가지는 회식이지요. 그래서 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좋아요.
박혜지 무대에 오르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무대 스태프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생각지도 않은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다행히 제가 이제껏 함께 협업 했던 감독님들과 팀원들이 좋은 분들이셨나 봐요. 특히 저는 무대 조명이나, 음향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조명감독님과 음향감독님과 많은 협동이 필요한데요. 악기의 수가 많아서, 조명도 다양하게 설치해야 하고, 전자음악을 많이 사용하는 탓에 음향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필요가 있죠. 그렇게 저만의 특별한 요구사항들이 너무 많았기에 항상 감독님들이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해 드리고 싶네요. 또 더 좋은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많은 분의 노력이 함께 한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무대를 위해 우선 순위에 두는 것과 가장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무엇인가요?
심선민 먼저 가장 작은 소리와 울림을 체크해요. 그래야 가장 큰 소리가 관객에게 어떻게 들리지도 잡히게 되죠. 작은 공연장에서 큰 소리를 내면 관객이 힘들테고, 역으로 큰 공연장에서는 작은 소리도 관객석 멀리까지 보내야 하니까요.
김미연 리허설 전에 연습용 패드에 손을 풀고, 부드러운 말렛으로 소리를 작게 내보곤 해요. 다른 동료들도 그 공간에서 자신의 소리를 찾아야 하는데, 저만 크게 내면 방해되기 때문이죠.
박혜지 마림바 같은 경우는 무대와 자리 배치에 따라 울림과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림바 배치부터 최우선으로 마칩니다. 또 연습 때 쓰던 말렛이 무대에서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리허설 때 급하게 변경해야 하기도 합니다.
박윤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준비물 리스트’입니다. 연습 기간, 리허설 전후, 연주 전날 리스트를 첨삭하고 혹시 모를 일들에 대비하여 예비 말렛이나 악기, 기타 장비들을 챙깁니다. 그다음은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도착하여 현장의 악기들을 점검합니다.
큰 도약을 위한 작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퍼커셔니스트들은 다른 악기에 비해 진로가 불확실한 편입니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에서 뽑는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은 편이기도 하죠.
김미연 오케스트라 입단 비율은 현악기·관악기와 비슷합니다.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면 오히려 타악기가 좀 더 무한하다고 생각됩니다. 꼭 오케스트라가 아니어도 솔로와 앙상블로도 많은 무대를 만들 수 있고요.
박윤 타악기 전공자들이 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가요. 진로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어떤 전공, 어떤 예술 장르에나 다 적용되는 게 아닐까요? 퍼커셔니스트는 여러 개의 악기를 동시에 배우고, 클래식 음악·현대음악·남미음악·재즈·전통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성장하기에 직종에 제한을 두지만 않으면 다른 전공생들보다 오히려 직업 선택의 폭이 넓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을 비롯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죠. 그런데 다른 악기들에 비해 타악기 신예의 등장은 더디게 느껴집니다.
김미연 저는 많은 신예가 나오고 있다고 느껴요. 다른 악기 콩쿠르에서 한국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타악기도 그 결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2019년 제네바 콩쿠르를 석권한 박혜지 씨도 자랑스러운 후배이고요!
박윤 오히려 과거에 비해 한국 타악기 계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것을 지금도 경이롭게 보고 있습니다. 타악기는 20년 전만 해도 해외 콩쿠르의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지금도 타악기 부문이 있는 해외 유명 콩쿠르는 몇 개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연주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선배 연주자들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김미연 이미 훌륭한 기량을 가진 퍼커셔니스트가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무대가 매우 한정적인 것이 늘 아쉬워요. 사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독주와 실내악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저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무대 확장 목표가 늘 있는 것 같아요.
박혜지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 환경 개선입니다. 몇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악기 밖에 없어요. 이 때문에 다양한 악기를 접해본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은 국제 콩쿠르에서 지정되는 곡들조차 연주가 불가능해 참가를 못 한 경험도 있습니다.
심선민 맞습니다. 한국의 각 대학교에서 보유하고 있는 타악기 종류와 개수는 해외 대학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예요.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교에서는, 타악기 교육을 위해 학교에 악기가 어느 정도 보유가 되어야 하는지 그 기준점부터가 다릅니다.
박윤 대중의 관심이 귀에 익은 선율악기 쪽으로 더 쏠리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현상이지만, 타악기 계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뿐만 아닌 다양한 장르의 타악기 공연을 누구나 수월히 올릴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악기 대여와 대형 연습실 등의 현실적인 인프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강태욱(Workroom K)
Performance information
트리오 콜로레스 리사이틀(협연 심선민)
7월 20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라벨 ‘쿠프랭의 무덤’, 키시노 ‘마림바를 위한 향나무’ 외
김은선/서울시향(김미연)
7월 2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 김택수 ‘스핀-플립’ 외
줄라이페스티벌(박혜지)
7월 30일 오후 5시 대학로 예술가의집 | 버르토크 두 대의 피아노와 퍼커션을 위한 소나타 Sz110
RECORD
퍼커셔니스트가 추천하는 음반
김미연
자스민 콜베르그 ‘아니마토’
자스민 콜베르그(마림바)/에릭 사뮤(비브라폰)/미하엘 잔데를링(첼로) 외
Lady Hamilton Productions
에릭 사뮤 ‘로테이션 I’ 외
박혜지
페르트 외트뵈시 ‘스피킹 드럼’
마르틴 그루빙거(음성·퍼커션)/페테르 외트뵈시(지휘)/프랑스 라디오 필
Alpha ALPHA208
페테르 외트뵈시 ‘스피킹 드럼’ 외
박윤
애블린 글레니 ‘소르베’ 1번 외
애블린 글레니(퍼커션)
RCA 74321476292
애블린 글레니 ‘Oxygen’ 외
심선민
게이코 아베 마림바 독주곡 모음집
게이코 아베(마림바)
Xebec XECC1005
게이코 아베 ‘수렴’ 외
PART2 연습실 탐방
심선민과 함께,
타악기가 있는 곳으로
나무와 금속을 두드려보다
“타악기는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긴다”는 퍼커셔니스트들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소장한 타악기의 종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음악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기에, 언제나 그들의 연습실은 각종 악기로 가득하다.
광나루역에 위치한 심선민의 스튜디오에도 각양각색의 타악기가 가득 모여 있다. 심선민은 오는 7월, 퍼커셔니스트 파비안 치글러·루카 스타펠바흐·마티아스 케슬러로 구성된 트리오 콜로레스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이번 무대에서 라벨과 생상스의 관현악 작품을 타악기 편곡 버전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일본전통악기 다이코(太鼓)를 비롯하여 봉고, 스네어드럼 등이 쓰인다. 마림바의 솔로가 돋보이는 미노루 미키(1930~2011)의 ‘마림바 스프리츄얼’을 포함해 심선민에게 헌정된 마림바 독주곡 키시노(1971~)의 ‘마림바를 위한 향나무’를 연주한다. 이번 연주에는 4종류의 건반 타악기가 모두 무대에 오른다. 나무로 된 마림바·실로폰, 금속성의 글로켄슈필과 비브라폰이다. 여기 소개된 건반 타악기 외에도 두 개의 악기가 연주에 쓰인다. 사각형 통의 속을 깎아 만들어 목탁과도 소리가 닮아 템플블럭이라고도 불리는 우드블럭과 소가죽을 씌운 두 개의 북이 하나의 조를 이루는 봉고도 그의 스튜디오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글·사진 임원빈 기자
말렛
mallet
건반 타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 크게 헤드와 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무·실리콘·나무로 만든 헤드를 다양한 색상의 실이 감싸고 있다. 헤드의 소재와 실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스틱은 주로 자작나무·단풍나무·대나무 등으로 만들며 재료에 따라 탄성도 다르다. 작품에 따라 ‘단단한(hard)’ ‘중간의(medium)’ ‘부드러운(soft)’ 말렛을 사용한다.
마림바
marimba
이번 공연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악기이자 독주를 맡은 악기이다. 음역이 넓고, 건반의 크기가 크며, 건반 바로 아래에 공명관이 달려 있다. 울림은 부드럽다. 5옥타브 마림바의 경우 건반이 61개이지만, 파이프는 최대 70개까지 달려있다. 딱딱한 스틱을 주로 사용하는 실로폰과 달리 고무나 천을 감싼 말렛을 사용한다. 대개 한 손에 1~2개의 말렛을 잡고 연주하며, 작품에 따라 한 손에 3~4개의 말렛을 쥐기도 한다.
글로켄슈필
Glockenspiel
여러 개의 작은 종을 매달아 치던 칼릴론에서 유래했으며 점차 금속 건반을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의 글로켄슈필이다. 한때 ‘철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악보에 표기된 음보다 사실상 한 옥타브 높은음을 내며 모차르트 오페라 ‘마적’, 차이콥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등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실로폰
xylophone
실로폰은 그리스어로 ‘나무 울림통’을 뜻한다. 처음 관현악곡에 사용한 것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이다. 튜닝과 울림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따로 있으며, 수십 종류의 채로 음색을 다르게 할 수 있다. 마림바와 비슷한 외형이나 크기와 건반은 마림바보다 작다. 채를 건반 위에서 굴리지 않고는 음향을 길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느리고 서정적인 곡보다 빠른 음계, 분산 화음과 같이 음형의 반복 등에 효과가 좋다. 심선민이 가진 콜베르크(Kolberg)사의 실로폰은 아래 위로 2개의 단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위의 단을 아래로 조절해 평평하게도 연주가 가능하다.
비브라폰
vibraphone
금속성의 건반을 지닌 비브라폰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비브라토가 가능한 타악기이다. 각 음판 밑 튜브에 공명기가 달려있고, 음판과 공명관 사이에 팬(송풍기)을 설치해 전기모터로 회전시킨다. 댐핑 페달을 사용해 음의 지속이나 어둡게 내기 위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