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표절 논란 클래식 음악계는 건강한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9월 2일 9:00 오전

SPECIAL

대중음악 표절 논란
클래식 음악계는 건강한가

끊임없이 창작이 일어나는 예술계에서 ‘표절’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화제다. 분명하게 단어와 문장을 베껴 쓰는 글, 똑같은 구도와 색을 사용해 버리는 그림 등과 다르게 단 열 두개의 음으로 선율을 만드는 음악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창작자는 그래서 더 곤혹스럽다. 나의 창작은 순수한 나만의 것일까? 타인에게 ‘받은 영감’을 어떻게 ‘내 것’으로 빚어낼 수 있을까?
현 클래식 음악계의 표절 관련 생태계를 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넘어 기존의 창작물을 응용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총괄 장혜선·이의정 기자

PART1. ESSAY 애매모호한 표절, 의도가 중요하다 _ 성용원
PART2. DIALOGUE 표절에 관한 진솔한 대담 _ 송주호
PART3. KNOWLEDGE 무(無)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없다 _ 계희승
PART4. INTO THE BOOK 옛 음악을 인용한 오늘의 음악 _ 이의정
PART5. Q & A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_ 허서현

 

 


 

PART1. ESSAY

작곡가 성용원
애매모호한 표절

의도가 중요하다

 

 

 

 

 

 

 

가요계 표절 논란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작곡가 성용원이 ‘객석’ 편집부로 에세이를 보냈다

최근 불거진 유희열의 표절 의혹에 가요계가 시끄러운데, 음악에서의 표절은 대체 어디까지 용인될까? 표절의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장르와 시장에 따라 개념도 다르고 해석도 천차만별이다. 주관적인 음악의 특성상 듣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걸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 딥러닝이 발전할수록 유사성의 음악을 찾는 건 아주 쉬워진다. 이번 유희열 표절 논란으로 그동안 유야무야 덮어갔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불거졌다. 전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으며, 사회적 정화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재활용’은 바로크 시대부터
서양음악사에서 바로크 작곡가들은 궁정과 교회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연주될 음악을 무수히 작곡해야 했다. 그들은 궁정이나 교회에 속한 직원(?)이었으며 파티나 행사를 위한 의례용, 여흥용 음악을 끊임없이 작곡했다. 한번 쓴 곡은 일회용에 불과했다. 당시의 기술은 악보 전파가 쉽지 않았기에 한번 쓰고 버려진 오선지 선율이 다른 사람의 음악으로 재활용되는 일도 부지기수였을 테다.
‘변주곡(variation)’과 ‘편곡(arrangement)’이란 정의에는 원작을 다른 편성으로 바꾼다는 기능적인 요소 외에, 이미 존재한 음악을 다른 스타일로 변형시킨다는 유희적 요소도 있다. 낭만시대 수많은 비르투오소는 자신들의 빈약한 창작력을 보완하기 위해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당대의 히트곡을 본인이 연주하는 악기에 맞게 화려하게 편곡했다. 마치 무대 위의 서커스처럼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쳐 보이며 관객을 놀라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띄우는 발판으로 삼았다.
‘내 양말 빵구났네’라는 재미있는 가사의 동요는 독일 노래 ‘내 모자 세모났네’를 의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 다정다감한 멜로디는 독일에서 유래한 게 아닌 나폴리 민요로 여겨지는데, 이 선율을 작곡가 라인하르트 카이저(1674~1739)가 자신의 징슈필 ‘편안한 사기, 베네치아의 카니발’에 삽입하면서 독일 내에 순식간에 퍼졌다. 이 주제에 파가니니(1782~1840)가 ‘베네치아의 카니발’이란 제목의 변주곡을 썼고, 심지어 쇼팽(1810~1849)까지 같은 주제의 변주곡을 내놓았다.
당대 슈퍼스타였던 리스트(1811~1886) 역시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리스트는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아리아나 다른 선율을 따와서 여러 개의 피아노곡으로 만든 ‘패러프레이즈(paraphrase)’와 관현악곡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곡을 피아노로 효과적이게 전환하여 더욱 많은 사람이 그 곡을 알게 만든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 즉 편작의 대가였다.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는 “현대의 작곡가들에게는 12음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의 멜로디나 코드 진행들이 다 나와서 더 이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고도 했다. 명곡들로 인류의 심금을 울린 위대한 작곡가도 작곡의 고충을 토로할 정도로 창작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성한 작업이다.

존경하는 대가에게 바치는 마음을 담기도
‘레퍼런스(reference)’와 ‘오마주(hommage)’는 음악에서 심심치 않게 드러나는 작법이다. 존경하는 선배 대가의 작품 일부를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거나 의미를 서로 연결해서 ‘풍자(parody)’해서 유머 또는 메시지의 전달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작곡가인 필자도 최근에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의 장면에 새롭게 음악을 붙여달라는 의뢰에 맞춰 각각의 장면에 적합하게끔 의도적으로 위의 기법을 썼다. 찰리 채플린의 행진에는 그의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영화 ‘스타워즈’에서 어둠의 상징인 다스 베이더의 반주 모티브를 베이스로 깔았고, 채플린이 바닷가에서 소녀를 만나는 서정적인 장면에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의 화성 진행을 그대로 가지고 오고, 선율만 거기에 맞게 새로 쓰면서 과거의 양식과 현대의 조우를 꾀하기도 했다. 이런 작법을 레퍼런스 또는 패러디, 오마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멀리서 상어를 상징하는 등지느러미만 보이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영화 ‘죠스’의 영화음악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상어가 나타나기 직전, 그 긴장감을 절묘하게 표현하며 오금을 저리게 했던 존 윌리엄스(1932~)의 선율은 예전부터 드보르자크(1841~1904)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4악장 도입부와의 유사성 논란이 잦았다. 느리게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것까지 닮았지만, 존 윌리엄스의 ‘죠스’ 테마는 ‘미’와 ‘파’ 두 음이고, 드보르자크는 ‘시’와 ‘도’ 두 음이라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이것은 과연 표절일까? 인용일까?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기를 권한다.
글 성용원(작곡가)

성용원 독일 칼스루에 음대 음악이론&작곡과, 독일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음대에서 공부하고, 상명대 뉴미디어 음악학 박사를 취득했다. 여주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2011~2017)를 지냈다. 오페라 ‘리어왕’ ‘밥할머니’, 뮤지컬 ‘신 명성황후: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리’, 전쟁레퀴엠 ‘희망의 불꽃’ 등을 작곡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교수, SW아트컴퍼니 대표이다.

 


 

PART2. DIALOGUE

작곡가 장석진&한대섭
표절에 관한 진솔한 대담

재생산은 창작의 일부일까?

현대음악에서는 표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두 작곡가와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표절 | 인용 | 영향 | 아류 | 창의적인 응용의 차이
최근 대중음악에서의 표절 문제는 오랫동안 신뢰했던 사람으로부터 발생하여 비교적 충격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동시대 한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표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대섭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은 표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죠. 순수음악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절이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요.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인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익숙하죠.
인용은 순수음악을 지향하는 클래식 음악의 오래된 작곡 기법이기도 합니다. 단, 인용은 본인이 밝혔을 때 성립할 수 있을 텐데, 만약 밝히지 않는다면요?
한대섭 인용된 부분이 공공재가 아닌 이상, 내 것인 양 발표하면 곧 표절이 됩니다. 내가 누군가의 음악을 인용한다는 것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이를 숨기지 않거든요.
장석진 동시대의 것을 가져오는 것은 표절이고, 나와 세대가 다르면 그것은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작곡 기법을 따라 하는 것을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의도적으로 표절을 한 사람은 모든 곡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대섭 작품이 우연히 똑같을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뉘앙스가 비슷하더라도 아주 똑같은 것이 나올 수는 없어요. 쓰다가 어느 작품이랑 똑같아지면 다시 의도적으로 고치려고 할 테죠. 그런데 고치면 음악이 이상해지고, 그래서 그대로 두면 바로 표절이 되는 것이죠.
장석진 음악회에서 음악을 들을 때 훔쳤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있는 그대로 음을 가져왔다기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져온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우리는 그것을 표절이라기보다는 ‘영향을 받았다’는 말로 미화하곤 하죠.
한대섭 사실상 순수음악은 나를 표현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표절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 영향이 강하게 보인다면 표절이라기보다는 ‘아류’라고 생각해요.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음악이나 좋아하는 음악과 비슷하게 곡이 써질 때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한대섭 그런 때가 없지는 않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본인이 분명히 알아요. 하물며 그대로 쓴 것을 본인이 모를 수가 없죠.
장석진 자신이 받은 영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쓰다가 당연히 인식되고, 그러면 그 부분은 지워내야 하죠.
연상된 것을 지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석진 요즘 뮤지컬을 보면 4마디마다 음악이 바뀌어요. 표절을 피하려고.
한대섭 ‘창의적인 응용’을 다들 하고 있는 것이죠.
장석진 음악을 조금 바꾸어서 새로 쓰는 건 사실 큰 노력이 듭니다. 중요한 점은 진짜 자기 음악을 하는 소수가 있다는 거죠!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는 예술가가 많아 보이지만, 시대가 소수를 걸러줍니다.

기능 | 목적 | 표현 방식 | 자기복제 | 콩쿠르 | 재생산 시대
순수음악에서는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우선 대중음악만큼 많은 이들이 아는 곡이 많지 않고, 또한 인용이나 영향 등으로 돌려서 말하면 더더욱 모호해지니까.
한대섭 표절은 ‘기능’과 ‘목적’ 때문에 발생합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교회나 궁정에 납품해야 했고, 이를 위해 음악을 찍어내야 했죠. 그래서 서로 대놓고 표절했다고 하더군요. 오늘날에는 나를 표현하는 독창성을 예술이라고 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는 독창성, 즉 ‘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에서 표절했다는 말이 나오면 더 이상 활동이 불가하죠.
그러한 사례가 있었나요?
한대섭 클래식 음악계에서 표절 논란이 되는 경우는 말 그대로 복사하고 붙여 넣은 경우입니다. 주로 콩쿠르나 공모 등에서 무언가를 쟁취하고 당선되어야 할 때 그런 일이 생기는데요. 이 역시 기능과 목적이 있는 경우죠. 저는 다섯 번 정도 봤어요. 발각되면 심사위원들과 공유하고, 당사자에게도 발각된 사실을 알리죠.
장석진 저는 심사할 때 오케스트라 표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표절이라고 당사자한테 말했더니 오히려 상대쪽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어요. 당연히 상대쪽의 표절로 결론이 났고요. 또, 자기복제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어요.
한대섭 자기복제는 작품을 여러 개 쓰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곡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수백 곡 중 좋은 곡이 완성되면 그것이 명곡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런 부분에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장석진 공부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예전에는 대중음악도 클래식 음악과 다르지 않았어요. 1980년대 이전 대중음악을 생각하면 자기 생각과 자기 색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지금의 대중음악은 재생산의 시대가 되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동 작곡(창작)이 일반화된 것도 이러한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재생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장석진 상업음악이라는 개념이 완성된 건 1980년대입니다. 그것이 이어져서 지금은 소비의 시대가 됐죠.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을 소비하고, 돈을 위해 음악을 쓰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한대섭 대중음악이 상업화되면서 표절이 발생하고, 그것은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누군가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죠.

데이터 | 시스템 | 유연한 사고 | 해외 표절 사례 | 사운드 | 음향
그런데 표절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을까요? 주파수 기반 오디오 DNA 데이터나 악보 이미지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대섭 사람은 악기만 바꿔도 다르다고 느끼는데, 그걸 잡아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사실 대중음악은 이미 있죠. 멜로디만 넣으면 표절인지 찾아줘요. 충분한 데이터를 저장해 놓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죠.
장석진 그런데 특정한 분위기가 필요해서 비슷한 음악이 요구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표절이라고 잡아낸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음악은 유연한 사고가 필요해요. 이렇게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음악을 쓰는 사람은 많은데, 그걸로 우리는 일일이 분노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을 ‘예술가’라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특정인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그를 예술가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외국 체류 중에도 표절 사례를 본 적이 있어요?
한대섭 시스템이 좀 다릅니다. A 교수로부터 레슨을 받은 사람은 제자라는 이유로 A의 작곡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습니다. 현대음악은 어떻게 보면 사운드여서, 다른 사람이 A의 사운드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표절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자가 하면 표절이라고 안 하죠. 사실 정말 비슷한 게 많습니다. 대가가 몇 명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장석진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을 표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작곡 기법은 화성학의 일부일 수 있고…. 그걸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요즘 전 사운드에 대한 부분도 표절이 될지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지금은 사운드의 시대니까요. 비슷한 샘플을 구매하여 사용하면서 다른 음악과 비슷한 소리가 날 때가 있는데요.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어 모두가 아는 소리가 될 때도 있죠. 그렇게 기존 사운드들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 표절인가 아닌가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집니다.
샘플은 비용을 지불하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일종의 허락된 표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직 사운드에 관해서는 표절에 관한 논쟁은 없는지요?
장석진 아직 그런 얘기는 없지만, 이제는 음악을 찍어내는 재생산의 시대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다른 이야기로, 유명한 사람들은 표절이 잘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운드 샘플에 없는 자기만의 소리가 있어야 하죠. 기존 소리만으로는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요즘 관객은 좋은 음악과 영화를 많이 접하면서 귀가 밝아졌어요.
주파수의 조합 자체가 작품이자 저작권의 대상일 수도 있으니, 음향도 표절의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진 유명한 사람의 음향을 그냥 가져다가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분명 원작자가 들었을 때는 기분이 몹시 나쁠 거예요.
한대섭 결국 ‘가치’가 있느냐의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콜라주처럼 미술에서는 무언가를 가져왔을 때 더 나은 예술이 될 때가 있어요. 그걸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즉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주제가 우선이 되면 그걸 표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예술을 더 가치 있게 만들었을 때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 거겠죠. 진행·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장석진 가천대 음대·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길드홀 음악학교·런던 칼리지 오브 뮤직·서리대학에서 수학했다. 2014년 정규 음반 ‘The Yellow Door’을 발매했다. 국악관현악 ‘어느 날’ ‘목멱산’ 등을 발표했고, 다수의 영화음악과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OST를 작곡했다. 제10회 아창제 국악부문 당선, 제12회 아창제 양악부문에 당선됐다.

 

 

한대섭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바이마르 작곡 콩쿠르에서 발표한 관현악곡 ‘Polytique Luminare’를 통해 1등상 및 관객상을 받으며 큰 시선을 끌었다. 20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음악실험무대 작곡가, 2017~19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작곡가, 2018 경기문화재단 경기남부예술활동지원 작곡가, 2019 ARKO 창작실험활동지원 작곡가에 선정됐다.

 

 

 


 

PART3. KNOWLEDGE

무(無)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없다

표절과 관련된 용어들 차이

패러디·오마주·모티브·편곡·표절 등 기존의 작품을 사용하는 용어는 많다. 용어가 많다는 것은 이러한 행위가 다양하고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행위는 창의성과 먼 거리에 놓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본 적도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발산적’ 상상력이 있다면, 아는 것을 조합하는 ‘수렴적’ 상상력도 존재한다.
자신의 창작물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 세상. 창의성에 관해 재고한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_파블로 피카소
“유능한 작곡가는 빌리고, 위대한 작곡가는 훔친다!”
_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음악적 창의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모차르트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음악학자 로버트 여딩엔은 저서 ‘갈랑 양식 음악’에서 1788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545 1악장의 일부가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 사실상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컨대 이 ‘쉬운 소나타’의 특정 마디는 이탈리아 작곡가 파스콸레 카파로(1715/16~1787)의 ‘솔페주 연습곡’이나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페로티 신부의 B♭장조 소나타 3악장 일부와 동일하다. 네 마디에 불과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영락없는 ‘표절’이다.

카파로는 모차르트가 소나타를 작곡하기 1년 전 세상을 떠났고, 페로티 신부의 작품은 1756년 출판되었으니 상황은 모차르트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이는 ‘작곡’의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여딩엔은 18세기 작곡의 의미가 ‘발명’보다는 단어의 어원 그대로 ‘조합’(com+posare)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여딩엔의 연구는 18세기 음악가들이 당시 유럽 전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이탈리아 기악 음악의 대가들로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음악적 패턴을 습득한 후, 이를 ‘창의적’으로 이어 붙이고 꾸미는 방식으로 교육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이 뜻하는 바는 모차르트가 생각 이상으로 ‘수렴적’ 상상력이 뛰어난 작곡가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창의성은 ‘발산적’ 상상력이다. 문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음악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창의적인 음악도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수렴적 상상력이 중요하다. 모차르트는 당시 통용되는 음악적 ‘매너’를 습득한 후 이를 조합해 한 편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데 탁월한 작곡가였다. 과학적 창의성이 이 두 가지 상상력의 ‘종합’으로 발현된다는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설명처럼 음악적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딩엔의 이론과 모차르트의 사례는 1720~1780년 유럽에서 유행한 이탈리아 갈랑 양식에 국한된 것이지만 음악을 작곡하고 창작하는 데 기존 작품을 사용하는 일은 목적과 정도, 범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찬란한 서양고전음악의 역사에서 ‘표절’의 사례는 없었을까? 이 글에서는 기존 작품이 사용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패러디·오마주·모티브·편곡·표절의 개념과 차이를 간략히 알아본다. 이어지는 내용은 작품의 ‘사용’에 따른 저작권 침해 사례보다는 작곡가의 ‘창작’에 방점을 두고 작곡과 이론을 전공한 음악학자가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익살’을 주는 패러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패러디’의 정의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이다. ‘익살’이 목적이라면 자기 스스로를 패러디한 모차르트를 따라갈 작곡가가 없다. 오페라 ‘돈 조반니’ 최후의 만찬에서 레포렐로가 부르는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에 웃음을 선사하며 기사장의 등장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돈 조반니’ 초연 1년 전 피가로 역을 맡았던 바리톤 펠리체 폰치아니가 레포렐로의 아리아를 부르다 말고 슬쩍 던지는 대사 ‘이 선율 너무 익숙한데?’는 일시적으로 ‘제4의 벽’을 붕괴하며 관객과 직접 소통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전곡을 공연한 2006년 잘츠부르크 ‘Mozart 22’ 프로덕션에서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가 피가로와 레포렐로 역을 동시에 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코믹한 효과를 노리고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은 분명하지만 서양음악사에서 패러디는 작곡가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풍자를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실용적인 이유로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15~16세기 모방 미사와 패러프레이즈 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미사곡을 작곡하는 데 모방과 패러프레이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미사곡이 철저히 ‘실용’적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사곡을 ‘작품’ 또는 ‘예술’로 생각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미사곡은 예배를 위해 존재하는 ‘기능성’ 음악이었다. 성인(聖人)의 축일을 기념하거나 후원자를 칭송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기존 작품이 미사곡을 창작해야 하는 작곡가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비밀이다.

‘경의’를 표하는 오마주
패러디가 익살이나 풍자, 실용에 목적을 두고 있는 반면 ‘오마주’는 그 반대의 경우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따르면 오마주는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음악에서도 다르지 않지만 사전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오마주를 정의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고전음악에서도 오마주는 비교적 현대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누군가에게 ‘존경’이나 ‘경의’를 표하려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이 동시대 인물일 수 있지만 과거의 대가들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음악사에서 과거의 대가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가 19세기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도 대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18세기까지 그 시대 가장 핫한 작곡가는 언제나 당대 활동 중인 작곡가였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이 어떤 작곡가의 작품을 얼마나 훌륭히 연주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관심이 없는 반면 19세기 작곡가들에게는 이 대가들의 작품이 모방하고 뛰어넘어야 할 ‘걸작’이었다. 제목에 ‘헌정’이나 ‘예찬’을 뜻하는 ‘Hommage à’ 같은 표현이 사용된 작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작품 일부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분위기만 비슷하게 유지하기도 하고, 모티브만 가져와 완전히 새로운 곡을 쓰기도 한다.

모티브는 ‘재료’의 역할
모티브의 사전적 의미는 ‘음악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 ‘둘 이상의 음이 모여서 된 것’이다. 음 두 개 갖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면 베토벤 교향곡 5번 도입부 선율(솔-솔-솔-미♭)을 떠올려 보라. 이어지는 선율(파-파-파-레)은 모티브의 반복이고 1악장 전체가 이 동기를 발전시키며 진행된다. 둘 이상의 음이 모여서 모티브가 된다면 이것만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표절 여부는 동기 자체보다는 사용 방식에 있다. 음악적 모티브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쇤베르크(1874~1951)의 표현을 빌리면 동기의 ‘발전적 변주’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Op.108 2악장의 첫 소절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응원가 ‘We are the Reds’의 첫 소절과 매우 유사하지만 모티브가 발전되는 방식에서 브람스가 왜 브람스인지 알 수 있다.

‘소비’를 촉진하는 편곡
서양고전음악에서 편곡은 일반적으로 ‘트랜스크립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의도된 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나 편성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는 일 또는 작품을 말한다. 트랜스크립션은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의 이동을 뜻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원곡에 없는 음이 추가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 편곡(arrangement)은 적지 않은 변화를 수반한다. 원곡에 없는 음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선율·화성·리듬·템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요소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바흐-부소니 에디션’으로 알려진 부소니의 바흐 편곡집이 좋은 예다.
19세기는 이른바 편곡의 시대였다. 18세기 말 교회의 쇠퇴와 봉건제도의 몰락,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중산계급이 탄생하고, 영국의 산업 혁명으로 인해 업라이트 피아노의 대량 생산 및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가정에서 혼자, 혹은 이웃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음악과 악보의 수요가 급증했다. 음악학자 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오언 노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관현악단이 흔하지 않았던 19세기 초 런던에서 모차르트 교향곡을 감상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피아노·플루트·바이올린·첼로로 구성된 4중주 편성이었다. 음악학자 낸시 노벰버의 최신 연구 역시 19세기 초 베토벤 교향곡 트랜스크립션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려준다. 훔멜·클레멘티·체르니·칼크브렌너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편곡은 단순한 ‘창작’ 이상의 산업이었다.

헨델 ‘아키스와 갈라테이아’(2017년 밴쿠버 오르페움 극장) © Diamond’s Edge Photography

‘몰래’ 가져오는 표절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절을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무도 모르게 한다는 건 의도했다는 뜻일 테니 방점은 ‘몰래’에 있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행위라는 말이다. 저작권 개념이 있기 전 서양음악사의 대표적인 표절 사례는 헨델이다. 남의 작품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위대한 편곡자’로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헨델의 1718년 오페라 ‘아키스와 갈라테이아’는 라인하르트 카이저(1674~1739)와 헨델 자신의 작품을 ‘빌려’ 작곡한 것이다. 음악학자 존 와인밀러는 이 오페라에 수록된 총 22개의 악곡 가운데 최소한 다섯 곡이 카이저의 것이며, 이 다섯 곡 각각 카이저의 다섯 작품에서 골고루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헨델의 음악적 ‘차용’은 와인밀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르네상스 시대 시와 회화에서도 보편적인 창작 방식이었다. 가져온 것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여러 차례 변형을 가해 기존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공하는 것. 와인밀러는 영문학자 G. W. 피그맨 3세의 표현을 빌려 헨델의 ‘차용’이 ‘변형을 수반한 모방’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수렴적인 동시에 발산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저작권법이 없었으니 괜찮다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예전과 달리 이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만들어 내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래’ 할 수 있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창작물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 세상이라는 뜻이다. 헨델은 고사하고 이 글을 시작하며 언급한 모차르트도 오늘날의 검증 시스템이 있었다면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사전 검열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피아노 소나타 K545도 없다. 창의성의 개념과 정의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글 계희승(음악학자·한양대 교수)

계희승 줄리아드와 뉴욕 퀸스컬리지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한양대에서 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 홍콩대에서 음악학 박사를 마쳤다. 한양대 교수·공동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오페라·영화음악·게임음악을 연구하며, 대표 논문으로 ‘벤자민 브리튼과 나사의 회전 소리, 혹은 ‘해석’의 전회’ ‘바실리오와 피가로는 무엇을 들었는가? 오페라, 혹은 엿듣기의 예술’ 등이 있다.

 


 

PART4. INTO THE BOOK

오희숙 저│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음악학자 오희숙

옛 음악을 인용한 오늘의 음악

타인의 것으로 새로운 예술 만들기

표절 아닌 인용이 나름의 예술적 창작 방식으로 수용되어간 것을 탐구한 책 ‘문화 상징으로서의 인용음악’의 저자를 만나다

“서툰 시인은 남의 작품을 모방하지만 성숙한 시인은 남의 작품을 훔쳐 오며, 삼류 시인은 자신이 취해온 것을 파손시키지만 일류 시인은 그것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원래의 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T. S. 엘리엇)
인용과 표절. 두 단어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서도, 법적인 기준점을 지우고 창작자의 마음으로 섰을 때 아리송해진다. 100년, 200년이 지나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을 통째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전에 한 작곡가가 쇼팽의 ‘발라드’를 통째로 가져와 곡의 절반을 채워 넣은 것을 마주한 적이 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묘한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기존의 작품을 가져와서 잘 ‘사용’하는 것은 작곡가의 실력이다. 음악학자 오희숙은 20~21세기 국내외 21명의 작곡가가 타인의 것을 가져와 예술로 만든 ‘인용’에 주목하여 작품을 분석하고, 인용의 의미를 철학·미학적으로 깊게 탐구하였다. ‘상호텍스트성’은 인용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일어나는 효과이다. 한 텍스트가 이전, 또는 동시대의 다른 텍스트와 맺는 관계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인용을 통해 한 작품이 다른 작품과 얽히며 창조되는 새로운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책의 주제인 ‘인용음악’과 ‘상호텍스트성’에 학문적 관심이 생긴 계기가 무엇일까요?
현대음악에 지속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음악에서 중요한 미적 가치는 ‘독창성’입니다. 음악사의 흐름은 지속해서 ‘새로움’을 쫓아요.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첨예화되었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20세기 후반에서는 그 새로움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나타나요. ‘인용음악’이 등장한 겁니다. 말러의 교향곡을 베리오가 재료로 활용한다거나, 바흐의 음악을 크럼이 창작에 활용한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이런 경향이 문학의 ‘상호텍스트성’ 미학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신간에서 ‘인용음악’과 ‘문화적 환경’을 연결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인용음악에는 음악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 담겨 있어요. 과거의 전통과 현실적 상황을 모두 들을 수 있죠. 우리가 ‘아리랑’의 첫 부분만 들어도 이 선율이 상징하는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인용이 일종의 안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낯선 현대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경복궁 타령’ 민요가 나올 때, 우리는 음악이 담고 있는 의미를 더욱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용음악은 음악이 몸담은 문화를 복합적으로 지시하면서, 음악과 문화와의 촘촘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점이 매력이에요.
목차 순서가 독특해요. 보통 역사가 담긴 책들은 옛 작품부터 요즘 작품으로 시간을 따라 진행하는데, 이 책은 그 반대로 작품들을 담아냈어요.
최신 작품부터 과거로 향하게 순서를 정한 이유는 상호텍스트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용음악은 어쩌면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대화는 현대에서 과거로 진행되거든요.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 점이 바로 상호텍스트성의 매력이에요. 이러한 점을 부각하고 싶었습니다.
책에 ‘상호텍스트성’을 느낄 수 있는 21개의 작품이 있어요. ‘객석’ 독자들을 위해 이 중 하나만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작곡가 신지수의 ‘정신분열적 토카타’가 있어요. 그가 새로 작곡한 음 하나 없이, 친숙한 피아노곡들이 계속 중첩돼 등장하죠. 다양한 음악적 단편들 하나하나에 엄청난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쇼팽의 ‘장송행진곡’ 등이 나와 상징성이 겹겹이 쌓이면서 정신분열적 작품은 결국 진지한 의미체가 됩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로 음악이 진행되는 듯하지만, 작곡가의 정교한 작업물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한국에서 피아노를 치는 여성’이라는 문화적 담론까지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했죠. 음악학자 컬러가 말했듯이, “한 텍스트가 그 텍스트가 속한 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아 하나의 문화적 담론이 될 때 온전한 상호텍스트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표절’과 ‘인용’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어요.
사실 글쓰기와 다르게 예술음악은 출처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인용음악을 쓰는 작곡가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가져올 때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기존의 음악을 ‘재료’로 활용해요. 이러한 의도 없이 기존의 작품을 마치 자기 작품인 것처럼 하는 게 표절이죠. 즉, 진정한 인용이란 남의 작품의 요소를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상자가 원본을 전혀 몰라도 인용을 사용한 작품을 즐길 수 있을까요?
섬세한 질문이에요. 사실 인용한 음악을 모를 때, 인용음악의 묘미를 즐기기 어려워집니다. 영문학자 봉준수가 이에 관해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다시금 재활용함으로써, 결국 남의 텍스트, 남의 목소리를 통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겸손한’ 기법이 인용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를 인용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독자(청자)를 고려하지 않은 ‘오만한 수사법’이다(p.23)”라 했죠. 인용에 일종의 엘리트주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원본을 모르는 경우에도 음악의 흐름에서 인용한 재료를 특별한 어떤 것으로 인지하여, 음악적 흐름의 ‘독특성’을 감지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의 인용음악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나요?
현대음악은 디지털 문화 속 변화를 겪고 있어요. 디지털 음악 중 샘플링과 리믹스 기법을 많이 활용합니다.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1975~)의 ‘베토벤 9번의 교향적 리믹스’와 베토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작업한 작품이 있죠. 창작계에서는 디지털과 AI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어,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며, 저 또한 새로운 미학의 관점에서 현대음악을 계속 연구하고자 합니다.
글 이의정 기자

오희숙 이화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음악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음악미학과 현대음악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집필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 ‘음악과 천재, 음악적 천재미학의 역사와 담론’ 등이 있다.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 교수, (사)음악미학연구회의 대표이다.

 


 

PART5. Q&A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알아두면 쓸데있는 생활 밀착형 저작권 지식

‘남의 작품을 함부로 도용한’ 표절은, 어쩌면 남의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작품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해보자

 

Q.클래식 음악은 오래돼서 저작권이 없으니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나요?
A. 모든 클래식 음악에 저작권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현재 작곡가의 사후 70년이 보장되고 있답니다. 원래는 50년이었던 저작권법이 2013년 개정됐어요. 그래서 현재는 1962년 이전에 사망한 작곡가의 작품까지만 저작권이 없는 상태! 생존해있는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의 작품은 물론이고, 존 케이지나 힌데미트 등 비교적 최근 현대 작곡가들은 아직 작품의 저작권이 살아있어요.

Q.저작권이 있는 작곡가의 작품은 어떻게 사용하나요?
A. 작곡가가 계약한 출판사를 통해 악보를 구입하거나 빌려야 해요. 대여할 경우 연주를 몇 번 할지, 실황 녹음이 되는지 등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집니다.

Q.클래식 악보는 온라인 사이트 IMSLP에서 다운로드받아서 쓰고 있어요. 무료로 쓸 수 있던데, 불법이 아닌가요?
A. IMSLP(International Music Score Library Project) 많이들 쓰고 계시죠. 이 사이트는 2006년에 시작된 국제 악보 도서관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저작권이 끝난 작곡가들의 작품, 그리고 자기 음악을 공개하기에 허락한 동시대 작곡가들의 악보만이 올라와 있어요. 직접 나에게 필요한 악보를 다운받아서 공연하는 것까진 문제가 없지만, 다운받은 악보를 재배포하거나 묶어서 악보집을 만들어 파는 등의 상업적 이용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죠?

Q.제가 사용하려는 음악은 쇼팽의 녹턴이에요. 쇼팽은 사후 70년은 넘었으니, 제 브이로그(V-log) 배경음악으로 사용해도 괜찮겠죠?
A.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없어져도, 그 음원을 녹음한 연주자나 음반 제작자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저작권’은 아니지만 ‘저작인접권’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해당 음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음원의 실연자나 음반 제작자를 통해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해요. 만약 실력이 뛰어나시다면, 본인이 직접 쇼팽의 녹턴을 연주해서 그 음원을 사용하는 것은 OK!

Q.공연 앙코르곡으로,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하려고 합니다. 그날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설 수 있게 공연 편성에 맞춰서 곡을 조금 편곡하려고요.
A. 아쉽지만 앙코르곡을 바꾸는 게 어떨까요? 저작권이 유효한 작품은 작곡가의 허락 없이 편곡할 수 없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최영섭)는 생존 작곡가시네요. 직접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만약 작곡가가 자신의 저작권을 신탁관리단체에 신탁한 경우 해당 기관을 통해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음악 저작권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실연자의 권리는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Q.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편곡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작곡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A. 최근 있었던 비슷한 일의 예를 들려줄게요. 얼마 전 국립오페라단에서 창단 60주년을 기념하며, 창단 다시 공연한 ‘왕자, 호동’을 재공연했는데 작사가와 연락이 닿지 않아 난항을 겪었죠. 공연은 결국 성공적으로 치러졌는데요, 바로 법정허락 제도를 거쳤답니다. 법정허락 제도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도 저작권자를 알 수 없어 이용 허락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승인을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승인되면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산정한 보상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어요. 국립오페라단은 작사가가 활동했던 극단, 학교를 통해 수소문했고 신탁관리단체로부터 신탁 여부를 조회하는 등 시행령에 있는 ‘상당한 노력’을 수행함을 인정받았고, 이후 ‘법정허락’을 최종적으로 승인받았답니다.

Q.제 창작물에 저작권이 생기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A.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생기는 권리입니다. 특별한 절차가 없어도 헌법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죠. 하지만 저작권을 등록하면 공식적인 장부에 올라가고,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공시하게 됩니다. 권리를 묻게 됐을 때, 또한 저작권을 두고 거래할 때 조금 더 안전할 수 있으니 등록은 해두는 것이 좋겠죠?

Q.제 저작권을 무시한 게시물을 온라인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신고하면 되나요?
A. 저작권의 권리자가 게시물이 올라가 있는 사이트 운영자에게 복제전송 중단 요청을 할 수 있어요. 사이트별로 저작권 침해 신고를 위한 방식을 제공하고 있으니까 직접 사이트에 문의해야겠네요. 자세한 사항은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실질적인 표절에 대한 저작권 신고 및 상담은 ‘한국저작권위원회 법률상담센터’에서 문의가 가능합니다.

Q.회사에서 업무 중에 만든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전혀 없나요?
A. 회사에 종사하면서 업무상 만든 저작물은 모두 회사 겁니다. 만약 근무 계약 등을 맺을 때, 저작권에 대한 내용을 썼다면 계약서에 정해진 대로 저작권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내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다면 계약 시 참고!

Q.카페에서 음악을 틀 수 없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A.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려요. 상업용 음반을 재생할 경우에 생기는 권리 때문인데요, 상업 음반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공연권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2017년에 그 대상 공간이 확대되면서 커피 전문점, 주점, 체력 단련장 등이 추가되었고 그래서 ‘카페에서 음악을 못 튼다!’는 결론이 나온 거죠. 이 법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50㎡ 미만의 영업장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Q.이거 다, 안 지키면 어떻게 되나요?
A. 저작권법에 따르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일상 속의 사소한 저작권, 어색하더라도 지키는 게 좋겠죠!
글 허서현 기자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