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인석 & 남명렬 연극 ‘두 교황’, 신과 인간 사이에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9월 2일 9:00 오전

SPOTLIGHT

연극 ‘두 교황’의 배우 서인석&남명렬
신과 인간 사이에서

거룩함은 인간의 소양이 될 수 있는가?

선종(가톨릭에서 죽음을 뜻하는 용어)해야만 사직할 수 있는 종신직, 교황. 신의 대리자라는 막중한 무게 때문에 교황에 오르는 것도, 교황에서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2013년 실제로 현직 교황이 자진 사퇴했고, 이어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어 두 명의 교황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작가 앤서니 매카튼(1961~)은 이 실화를 중심으로 두 교황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섬세하게 상상하며 ‘두 교황’을 창작했다.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국내 관객을 만나게 될 연극 ‘두 교황’(예술감독 윤호진/연출 김민영)에는 내로라하는 연극계 원로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베네딕토 16세역에는 신구(1936~)·서인석(1950~)·서상원(1967~) 배우가 출연하고 프란체스코는 정동환(1949~)·남명렬(1959~) 배우가 출연한다. 그 중 서인석·남명렬 두 배우를 만나 교황과 인간 존재의 간극, 연극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교황’ 섭외를 받고 어떻게 출연 결정을 하시게 되었나요?
서인석 배우들은 다양한 역할을 맡습니다. 교황은 저도 처음인데, 출연제의를 받고 나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교황 자격이 있는가?’라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가 해온 연극들이 공교롭게도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품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겼죠. 무엇보다 제가 1973년 연극을 시작할 때 실험극장에서 처음 만난 윤호진(1948~) 선생과의 관계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제가 노래를 못해서 그동안 뮤지컬 출연은 고사했는데 이번엔 정극을 공연한다고 해서 즐겁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대본을 읽고 아주 감동을 받았어요.
남명렬 2년 전에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어요. 윤호진 선생님이었는데, 불쑥 영화 ‘두 교황’을 한 번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말씀드리니 기획 담당자가 대본을 하나 보낼 거라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어요. 대본이 영화보다 더 좋더라고요.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제 공연을 보러 오신 윤호진 선생님께 이 연극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연기하는 인물은 실존인물인 베네딕토 16세(1927~)와 프란치스코 교황(1936~)입니다. 그 점이 연기하는 데에 부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서인석 교황을 맡았던 베네딕토 16세가 실존인물이라는 것만 알지 그가 어떤 취향과 습관을 가진 분인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어떤 역할이든 연기할 때 주어진 대본을 중심으로 주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인물과 연결시켜서 이미지를 만들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연기를 오래했지만 배우는 늘 신인 같아요. 그 인물을 처음 만나기 때문이죠. 새로운 대본을 받을 때 매번 초보자 같은 자세가 됩니다. 결국은 자기 싸움인 거죠.
배우 역량에 따라 실존하는 그 분의 역할을 더 승화시킬 수도 있고 더 망가뜨릴 수도 있어요. 거기에 관객들과 얼마나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배우는 어렵고 힘든 직업 같습니다.
남명렬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명의 실존하는 ‘교황’을 연기하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잖아요. (웃음) 만약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배우 이해랑(1916~1989) 같은 분을 연기한다고 하면 그 분을 잘 아는 분들이 ‘실제로 그렇다, 아니다’라고 판단과 평가를 하게 되겠죠. 하지만 교황은 물리적·심리적으로 먼 인물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연기를 해도 실제 여부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제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창조했을 때 그 인물이 관객에게 닿으면 그 인물이 된 것이라는 스스로의 확신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름 속에서 세상을 이롭게

두 교황이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베네딕토 16세는 상대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고 평가되는데 교황 퇴위를 결정한 것을 보면 가장 파격적인 인물입니다. 서인석 선생께서 파악하신 교황의 퇴위 결정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인석 베네딕토의 대사 중 “나 너무 늙었어. 86이야”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의욕과 열정이 있어도 신체적으로 부딪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 끊임없이 기도를 하지만 답변을 받지 못하는 외로움, 많이 달라진 시대적 환경과 사제들의 변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교황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데도 자기한계를 느낀 거죠. 마침 그때 프란치스코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 열려 있는 마음에 점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신앙의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하면서도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나의 후임자는 이 사람이다!”라고 느끼고 퇴위를 결정한 것이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연한 이유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독재를 겪었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남명렬 선생께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건을 개인에게 어떻게 접목시켜 인물을 창조하실지 궁금합니다.
남명렬 아르헨티나의 독재 시절은 프란치스코 개인에게 매우 아픈 역사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사랑하고 희생을 줄일까 판단하고 결정했던 것들이 자신의 업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시는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남게 된 것이죠. 선한 판단이 항상 선한 결과를 낳지는 않거든요. 베네딕토 교황의 제안을 받고 쉽게 그 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를 연기하면서 느낀 건 이 분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는 것이었어요. 교리나 전통에 얽매이기보다는 어떤 인간이라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분이기에 저 또한 그 점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구현해낼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교황의 대화가 중심이라고 해서 성경과 신의 존재에 강조점이 놓여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인간과 삶, 세상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대화였습니다.
서인석 제가 윤호진 예술감독에게 상대 배우가 회차마다 교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연극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남명렬 배우와 함께 서로의 이야기도 하고 대본 분석도 하면서 하나씩 탑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을 성경에만 입각해서 혹은 교황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만 보면 뻔할 수 있죠. 그러나 교황도 사복 입으면 교황인지 모르잖아요. 결국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위치에서 보면 두 교황의 대화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더 풍부하고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남명렬 흔히 교황이라고 하면 멀리 있고 몹시 성스러운 인물로 생각하는데, 이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삶의 철학,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같은 걸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왜 상반된 생각과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가 논쟁이 중심입니다. 이 논쟁을 통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혹은 ‘이런 대척점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교황일 뿐이지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두 교황’ 연습 장면

세상을 바꿀 용기가 필요 한 때

서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명렬 두 교황의 대화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두 분의 용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프란치스코는 독재정권의 박해와 탄압을 받을 때 어떻게 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지 않을까를 고민했고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죠. 베네딕토는 교황 재직 당시 불거진 수많은 문제들을 대면하면서 과감하게 퇴위를 결정합니다. 주님이 주신 효용가치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요. 용기가 없었다면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고수했을 겁니다. 용기 있게 이 시대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한 두 분은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끝으로, 두 교황으로 호흡을 맞추며 많은 것들을 쌓아가고 있는 상대 배우에 대해 한 말씀 한다면?
서인석 남명렬 배우는 작품 속 두 교황처럼 실제로 저와 많이 달라요. 그래서 매력을 느낍니다. 대립이 있는 역할인 만큼 실제로도 사적인 친밀감을 조금 경계했어요. 공연 시작하기 전까지 식사나 술자리를 잘 안하려고 합니다. 공연 올라가면 하려고요. (웃음) 배우도 무대 밖 관계가 연극과 같아야 하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남명렬 배우는 좋은 연기 파트너입니다.
남명렬 더 친해져도 돼요.(웃음) 저는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신화적 작품인 ‘아일랜드’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한다는 것이 신기해요. 긴 세월을 배우로 굳건하게 존재하는 분과 함께 한다는 게 정말 영광입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연극 초년생처럼 연극을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자세가 저에게도 엄청난 울림을 줍니다. 이런 선생님과 함께 연기를 하는 것, 그런 것 자체가 행복아닌가요?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로네뜨

Performance information
연극 ‘두 교황’
8월 30일~10월 23일 한전아트센터
신구·서인석·서상원(베네딕토 16세)/정동환·남명렬(프란치스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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