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김보라, 새로운 시간 위에 흐르는 몸의 영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9월 5일 9:00 오전

안무가 김보라

새로운

시간 위에 흐르는 몸의 영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오르는 신작 ‘유령들’. ‘유령’이 아닌 ‘유령들’인 이유는 뭘까

 

안무가 김보라의 시간이 변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계가 멈춰있던 2년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그는 매일 거울을 통해 자기 몸을 들여다봤다. 새롭게 발견한 몸은 다시 무대에 오르는 지금, 이전과는 다른 시간 위에 얹어졌다. 그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자 안무와 삶, 모든 것이 뒤집혀버렸다”고 언급했다. 자유로운 소통 방식 속에서 안무를 완성해 나가고 있는 김보라의 신작 ‘유령들’이 서울세계무용축제(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이하 시댄스) 개막작으로 공연을 앞두고 있다. 폭우가 멈춘 늦은 저녁, 방배동 아트프로젝트보라 연습실에서 김보라를 마주했다. 자신이 마주한 혼란을 이야기하는 예술가의 눈빛에는 어쩐지 설렘이 가득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는 해외 공연도 활발한 편이었다. 몇 년간 코로나의 영향이 컸을 텐데, 회복세를 느끼고 있는지.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앞으로 프랑스·영국·스페인·그리스에 가게 될 예정이다. 약 2년간 공연이 취소되고 잡히지 않았는데, 대신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변화라면, 어떤 것들이었나.

우선은 처음으로 쉼을 가졌다.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웃음) 관객을 물리적으로 대면하는 공연을 중단하고 나니 ‘내 직업이 뭐였지’ 싶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이 큰 변화라는 걸 작년쯤부터 느꼈다. 내가 지향하는 안무의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변화했으며, 작품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안무와 삶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시각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는데, ‘시간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된 순간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코로나 동안 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몸이 곧 공간이고, 몸으로 표현되는 춤이 ‘시각이 아닌 시간’을 말한다는 점에 도달했고, 이에 따라 안무 방법도, 말하고 싶은 주제도 바뀌었다. 시간 위에는 내 작업, 작품, 그리고 관객이 놓인다. 작품을 만들며 이 세 가지의 시간의 힘이 동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생겼고, ‘이것이 컨템퍼러리인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무용수들과의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지.

예전에는 움직임 하나하나 전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장면을 중요시했다. 장면이 넘어가면, 시간이 흘렀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안무라는 범위가 확장됐다. 무용수 스스로 춤이 발생할 수 있게끔 방법만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동등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소통 방식이었다. 장면이 사라지니, 나 또한 시간이 어떻게 흐를지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오히려 더 탄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고 싶은 개념을 위해서, 내가 재료를 계속 주입해 무용수들을 만드는 방식보다는.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

시댄스 2022에서 선보일 신작 제목이 ‘유령들’이다. 앞서 말한 변화가 반영됐나.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추구하는 시간의 방법은 음악으로 예를 들자면, 음표와 그다음 음표가 관계를 맺으면서 곡이 되는게 아니라 물방울 소리, 덜그럭거리는 소리 등이 재료가 되는 사운드에 가까운 방식이다. 조금 더 난해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느낀 시간을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신작에 영감이 된 소재가 있다면.

벌거벗은 나체에서 ‘유령들’이라는 영감을 얻었다. 몸은 만져지는 가장 실재적인 것인데, 시간이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더라. 마치 내가 유령에 씐 것처럼, 환영의 이미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벌거벗었을 때 보이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질문이 춤으로 확대됐다. 보이는 것 너머 환상의 이미지까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포함했다. 그렇게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유령은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인가?

제목이 ‘유령’이 아닌 ‘유령들’인 이유가 있다. 이 작품 안에는 네 가지의 유령이 맥락을 따라 진행된다. 언어·춤·몸·극장의 유령이다. 무용수들은 이 룰 안에서 순수한 자기만의 춤을 출 것이다. 춤에 있는 ‘유령’은 무용수의 여러 가지의 삶이 쌓여 발생한다. 이전에는 그중에서 수용하고 싶은 것과 수용하고싶지 않은 것을 나누려고 했다. 안무가로서 계획되지 않은 ‘유령’이 나올 때면 두렵기도 했달까.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령’과 함께하는 춤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전혀. 그런 평가는 보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작업할 때 낯선 것을 좋아한다. 안무 방법을 낯설게 만나거나, 낯선 행동을 보거나….

‘낯설다’는 것은 순간적인 감각인데, 그 감각을 믿고 창작을 계속 해나가기 불안하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불안’과 ‘의심’이다.(웃음) 작업할 때 불안하지 않으면 ‘아, 지금 잘 돌아가지 않는구나!’라고 느낀다. 마침표를 찍지 않고, 그렇게 한없이 불안에 떨다 보면 스스로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공연이 끝나는 순간에도 다시 연상하고 부족한 점을 분석한다. 만족은 공연 후가 아니라 작업을 하는 순간순간 질문을 해결했을 때 튀어나온다.

마지막으로, 아트프로젝트보라를 2013년 창단해 오랜 시간 이끌어왔다. ‘아트프로젝트=김보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트프로젝트보라는 나를 포함 기획자 두 명, 초기부터 함께 한 멤버 세 명을 비롯해 열한 명이 함께 하고 있다. 안무가 김보라는 분리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도 발달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필름 작업 등을 하고 있고 협업 툴을 만들고 싶어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나 외에 많은 사람이 해나가는 일이다. 컨템포러리 댄스가 중심이지만, 아트프로젝트보라를 댄스 컴퍼니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다양한 장르가 협엽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허서현 기자 사진 서울세계무용축제 조직위원회

 


PREVIEW 제25회 서울국제무용축제 9.14~10.2
한국 포함 9개국이 참가, 국내외 오프라인 공연 34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25주년 기획 ‘춤에게 바치는 춤들’에서는 아트프로젝트보라 ‘유령들’, 독일 무부아르 무용단 ‘Hello to Emptiness’, 포르투갈 조나스&란더 ‘바트 파두’, 김미애 ‘여(女) 음’ 등이 이어진다. 한-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스라엘 포커스’에서는 솔댄스 컴퍼니, 휴먼 필즈, 샤하르 비냐미니 등의 개성 있는 작품이 무대에 오르며 ‘해외초청 프로그램’으로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무용단이 참석한다. 우보만리의 ‘노동’, 파란 코끼리 ‘진동 축하’, 윤푸름 프로젝트 그룹 ‘정지되어 있는 것’ 등 국내 무용인들의 공연도 이어진다. 외에도 ‘명무에서 신명무’ 2탄, ‘댄스있송’ ‘시댄스 투모로우’가 진행된다. 축제는 예술의전당과 서강대학교 메리홀을 비롯 서울 주요 공연장에서 개최된다.


김보라(1982~)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혼잣말’(2010)을 시작으로 ‘꼬리 언어학’(2014), ‘소무’(2015), ‘무악’(2018) 등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로 세계 23개국 33개의 도시에 초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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