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함부르크의 웅장한 랜드마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9월 5일 9:00 오전

BEHIND THE MUSIC SCENE 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Hamburg Musik gGmbH , Elbphilharmonie , Christoph Lieben-Seutter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1964~) 1982년 오스트리아 빈 필립스 테크니컬 어시스턴트로 근무했다. 1988년에는 빈 콘체르트하우스 부대표로 근무했고, 1991년에는 대표로 승진했다. 1996~2007년에는 빈 모던 페스티벌의 대표를 맡았고, 2007년부터 엘프 필하모니 대표로 근무 중이다.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명소로 급부상한 함부르크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그 방점을 찍은 공간이 있다. 1966년 지어진 카카오 창고를 리노베이션한 엘프 필하모니는 오래된 붉은 벽돌 위에 얼어붙은 파도의 형상이 하늘 위로 넘실거리는, 그야말로 건축가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집대성된 건축물이다. 사실 엘프 필하모니가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설계를 발표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건물의 삼면이 바다와 접해있어 지반이 연약했고, 창고였던 공간의 원형을 보존하며 그 위에 건축물을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함부르크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에 예산이 당초 계획했던 것의 3.5배까지 불어나 시와 건축회사가 법정 공방을 벌여 공사가 1년 반 가까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시련 속에 결국 완공된 엘프 필하모니는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아함이 돋보인다. 2007년 9월부터 엘프 필하모니를 이끌어온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는 소프트웨어 기술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18년에 이미 2022/23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고, 2022년에는 2029년까지 재계약에 성공할 만큼 엘프 필하모니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그와의 영상 인터뷰를 위해 화면을 틀었다. 두꺼운 안경 뒤로 빛나는 날카로운 눈동자는 자칫 매서운 느낌을 줄 만큼 차가웠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모습에서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필립스의 소프트웨어 기술자였다가 예술경영인 알렉산더 페레이라의 추천으로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부대표가 되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해왔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공연장을 찾곤 했는데, 기술자 재직 당시 지인의 추천으로 페레이라의 일을 도울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이후 본격적으로 공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술과 공연 분야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궁금하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공연예술 모두 유저 즉, 소비자가 주체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프트웨어든 공연이든 접근성이 핵심인 산업이다. 유저들이 프로그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듯이 공연도 관객이 쉽게 보러 올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어느 쪽이든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빈 콘체르트하우스, 취리히 오페라, 빈 모던 앙상블 페스티벌 그리고 엘프 필하모니까지…. 공연장·페스티벌·오페라에서 종횡무진 일을 해왔다. 사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공연장·페스티벌·오페라 프로덕션 모두 나에게는 훌륭한 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 모두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오페라 제작은 다른 공연 제작보다 과정이 복잡하다고 느꼈다. 의상과 소품을 비롯해 무대 제작, 성악가, 오케스트라까지 신경 쓸 부분이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오페라는 훌륭한 지휘자만으로는 좋은 무대를 만들 수가 없다. 모든 분야의 적극적인 협력 하에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에 더욱 넓은 시야로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2007년에 엘프 필하모니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계약이 2029년까지 연장되었다. 그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엘프 필하모니는 공연장·호텔·레스토랑·아파트가 한 빌딩 안에있는 복합시설로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아니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가시적인 변화로는 직원 수의 변화랄까. 2007년 시작할 당시에는 직원이 3명뿐이었지만 현재는 220명의 직원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창고가 공연장이 되기까지, 힘겨웠던 시간들

엘프 필하모니는 오래된 창고를 리노베이션 하여 탄생한 공연장이다.

건축 당시 함부르크 시민들은 엘프 필하모니를 반기지 않았다. 세금으로 건축하는 것이다 보니 비용에 대한 문제도 있었고, 완공이 지연되어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다행히 완공 이후 시민들의 자랑으로 자리 잡아 이제는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젠 워낙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 그중 일부만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개관이 2010년에서 2017년으로 연기되었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건축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함부르크시, 빌딩 관계자 그리고 건축가의 의견이 상충하면서 조율되지 못한 채 1년씩 계획이 지연되었고, 어느 시점에서는 1년 반 가까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조직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었고, 그동안 라이츠할레(Laeiszhalle)에서 공연을 계속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공연에 오는 관객 성향을 파악하면서 엘프 필하모니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프 필하모니의 콘서트홀은 디자인은 물론 음향적인 면에서 탁월하다. 뮌헨 알리앙스 축구장과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헤어초크와 드뫼롱(Herzog&de Meuron)이 설계했고, 야스히사 토요타가 음향을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함부르크 시민들의 애칭인 ‘엘피’는 1997년 함부르크시가 기획한 하펜시티 프로젝트(Hafencity/항구도시)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당시 함부르크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관광 및 지식기반 산업을 주도하는 도시로 거듭나고자 했고, 여기에 ‘엘피’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탈바꿈해 이제는 시민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이 되었다.

엘프 필하모니 ©THIES RÄTZKE

엘프 필하모니는 아주 특별한 공연장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여러 겹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인상적일 정도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 로비에 들어서면 눈앞에 함부르크 시내와 바다가 펼쳐져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준다. 홀 내부에서는 탁월한 음향이 귀를 매료시킨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첫 개관 때와 비교해 3배 이상 증가(코로나 이전 기준)한 것만으로도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엘프 필하모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추천한다면.

엘프 필하모니는 외관과 내관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건축물로 장엄하고 화려한 외관과 대조적으로 내부는 간결한 디자인에 고급자재를 사용해 깔끔하게 구성했다. 특히 로비에서는 함부르크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숨어있으니 꼭 직접 와서 보시길.

엘프 필하모니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품는 공연장이 되기 위하여

공연장 프로그래밍은 보통 몇 년 전부터 진행하는지.

보통 2~3년 전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다. 주로 클래식 음악을 올리지만, 재즈·팝·교육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한다. 2022/23시즌 공연은 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을 포함, 흑인 음악·이슬람 음악으로 채워지는 수피(Sufi)페스티벌, 볼프강 림(1952~)의 현대음악들을 조명하는 공연 등 여러 기획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살리고자 노력 중이다.

엘프 필하모니와 더불어 라이츠할레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 개관된 공연장과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공연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라이츠할레는 1908년에 개관되어 무지크페어아인과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슈박스’ 형태의 공연장이다 보니 실내악처럼 작은 규모의 공연이나 합창 공연을 많이 기획하게 된다. 반면 엘프 필하모니는 ‘빈야드’ 스타일의 현대적인 공간이다. 무대가 넓어서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 공연에 안성맞춤이라 프로그래밍에서도 이 점을 고려한다.

상주 오케스트라인 NDR 엘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는 어떻게 협력하는지.

그들에게는 먼저 대관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많은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함께 상의하는 것은 물론 신년 음악회나 이벤트성이 강한 음악회를 공동 제작한다.

엘프 필하모니의 프로그래밍을 보면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수피 페스티벌 등 월드뮤직 기획부터 바흐와 같은 고전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다루고 있다.

국제적인 공연장으로서 양질의 좋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엘피’에서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사실 이런 시도는 관객 접근성 확대뿐만 아니라 공연을 만드는 우리에게도 흥미진진한 도전이다.

아티스트 섭외 기준은.

기본적으로 관객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연주자를 원한다. 하지만 연주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기에 직접적으로 프로그래밍에 대해 요청하지는 않는다. 연주자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연주할 수 있는 공연장이야말로 최상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공연장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연주자들도 외에 신인 연주자를 발굴해 초청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티스트와의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다. 개인적인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축 당시 라이츠할레에 공연하러 온 음악가들이 건축 중인 엘프 필하모니를 견학하러 왔던 일이다. 건축 당시부터 워낙 음악가들 사이에서 ‘엘피’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음악가들이 이 공연장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안전모와 장화를 신고 공사 현장에 들어와 견학할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1년 공연 횟수는 어느 정도인가.

엘프 필하모니와 라이츠할레 2개 공연장에서의 공연 횟수는 1년에 약 1,200회 정도 된다.

 

관객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생각하기

9월에는 하버 프런트 페스티벌이라는 책과 음악이 함께 하는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문학과 음악을 결합한 강연이 열리기도 하고 음악가들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갖기도 할 예정이다.

0세에서 청소년까지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 미래 세대에 전달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독일의 음악교육 모토는 ‘젊은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한다’이다.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아래 다양한 종류의 아마추어 앙상블과 수백 개의 악기를 학생들이 직접 시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학생들과 연주자들이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스쿨뮤직(School Music)’이다. 학생들은 리허설을 견학하는 것은 물론 연주자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반대로 연주자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다음 저녁에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연주자들과의 만남은 학생들이 공연에 친밀감을 느낄 기회이자 음악애호가 혹은 연주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예산 운용현황을 공개한다면.

예산의 절반은 티켓 수입으로 충당한다. 나머지 1/4은 공적 자금, 또 다른 1/4은 개인 후원이다.

예술경영가로 오랜 시간 일해 왔다. 예술경영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예술적으로 훌륭한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 저변에 깔린 다양한 문제들, 예를 들면 티켓 예매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나 로비에서 판매하는 커피의 맛까지 신경 쓸 수 있어야 한다. 관객들이 엘프 필하모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경험할 모든 것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엘프 필하모니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엘프 필하모니의 지속적인 성공을 꿈꾼다. 좋은 공연을 더 제공하고, 여러 관객이 공연을 보러 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객석’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한 마디는.

인터넷이나 사진으로 보는 엘프 필하모니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보는 것과 천지 차이다. 말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부족한 엘프 필하모니의 품격을 직접 와서 경험하길 바란다. 특히 페스티벌 기간인 5월이나 크리스마스 기간에 방문한다면 이곳의 매력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으니 기억해 주기를.

 


2016년 말 엘프 필하모니가 완공되던 날에 건물의 외벽 유리에는 ‘Fertig(끝냈다)’라는 단어가 새겨졌다고 한다. 함부르크 시민들의 품으로 엘프 필하모니가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인고의 시간 끝에 사랑을 받을 준비를 마친 엘프 필하모니의 안도가 절절히 새겨진 단어였다. 그가 여전히 고민하는 한 가지는 관객의 접근성이다. 이제 공연장이 공연장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음을 엘프 필하모니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언제든 클래식 음악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을 때, 클래식 음악도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엘프 필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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