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현대음악을 밝히는 조명
힉엣눙크! 갈라콘서트
8월 31일 롯데콘서트홀
사계 2050-잃어버린 계절
9월 6일 롯데콘서트홀
현대음악이 어려운 이유는 감상자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낯선 작곡가가 어떠한 작법과 어법을 사용할지 예상할 수 없으며, 놓친 부분의 내용을 추측할 수 없고, 앞으로의 길이를 알 수 없다. 그런 청중의 손에 쥐어주는 프로그램 북과 해설은 넓이도 길이도 알 수 없는 캄캄한 복도를 지날 수 있게 하는 전등이다. 전등의 성능이 공연마다 다르다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세종솔로이스츠의 ‘힉엣눙크!’는 2017년부터 이어온 현대음악 페스티벌로 6개의 모든 공연에는 최소 하나의 살아있는 작곡가의 작품을 포함한다. 8월의 마지막 날 공연엔 중국 출신의 미국 작곡가 탄둔(1957~)의 첼로와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 ‘엘레지-6월의 눈’이 선택됐다. 탄둔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탄둔의 앙상블 ‘크로싱즈’는 “억울하게 처형된 여성의 결백함을 자연마저 통탄하는 희곡”에서 가져왔다 설명한다.
수도 꼽을 수 없이 다양한 타악기가 첼로 한 대를 둘러싼 채 연주가 시작됐다. 첼로는 선율보다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데, 주변 타악기가 스산한 분위기를 가중해 더 처절해 보였다. 작품은 전체 구조보다 순간의 사건이 먼저 보였다. 타악기가 첼로를 잡아먹을 듯이 울리다가, 첼로가 악을 쓰는 소리로 반격하기도 했다. 20분 이상 되는 단 악장의 작품을 한 번 듣고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는 데도, 연주자들은 관객을 계속 집중시키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매 순간의 소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연주였다. 신문지를 찢으며 끝나는 음악은 관객이 돌아가는 시간 동안 생각할 주제를 던져주었다.
‘사계2050-잃어버린 계절’은 기후 위기로 예측한 2050년 서울의 모습을 바탕으로 비발디 ‘사계’를 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AI·기후 위기·기후를 음악으로 표현… 복잡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작품은 간단했다. 새는 사라지고, 강물은 마르는 미래. 작품에서 새소리를 삭제하고 시냇물 소리를 지워낸다. 폭우·태풍은 더욱 강해지니 활을 더욱더 세차게 움직여 기후를 표현한다. 공연은 관객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 기후 변화를 설명해야 하기에 음악을 계속 끊고, 망해버린 세상 속 나의 일상을 내레이션으로 풀어내야 했다. 세상이 기울어져 가는데, 좋은 음악을 기대한 것이냐는 의미였을까?
2006년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기후 위기를 개탄했다. 새로운 음악을 감상하기보다 비발디의 악보를 함께 탐구하는 ‘불편한 공연’은 ‘불편한 관객’ ‘불편한 감상’을 생산해내는 시간이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세종솔로이스츠·뮤직앤아트컴퍼니
뮤지컬 팬더스트리
뮤지컬 ‘서편제’
8월 12일~10월 23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뮤지컬 ‘엘리자벳’
8월 30일~11월 13일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필자가 요즘 K-팝 문화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는 건 ‘역조공’이다. 팬들이 지지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조공’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몇 년간 역으로 스타들이 팬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역조공’ 문화가 새롭게 등장했다. 일례로 그룹 블랙핑크는 2집 선공개곡 사전 녹화에서 팬들을 위해 1인당 아디다스 티셔츠, 3단 도시락, 착즙주스, 멤버별 포토카드 4장, 미니선풍기를 준비했다. 얼마 전 잠실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아이유 역시 모든 좌석에 방석을 깔아 ‘방석 역조공’으로 이목을 끌었다.
연예인과 기획사 모두 ‘팬덤 파워’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K-팝이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부풀릴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하다. ‘팬심’ 때문이다. 현재 K-팝 팬덤의 힘은 시장 전반을 움직인다. 팬(fan)과 산업(Industry)의 합성어인 ‘팬더스트리’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팬들은 새로운 음원이 발표되면 스트리밍을 ‘총공(총공격)’하고, 내 아티스트가 공격을 받으면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국내 뮤지컬 산업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이후 20년간 연평균 20% 이상 꾸준히 성장하며 전체 공연시장 매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뮤지컬 시장이 어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단히 이야기되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하고, “전담 기구를 설립해야” 하고, “공공이 뮤지컬을 방임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확대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 아쉽게도 뮤지컬 ‘서편제’와 ‘엘리자벳’의 판권이 끝났다.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 ‘서편제’와 ‘엘리자벳’을 ‘잘 보내주기 위해’ 많은 뮤지컬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서편제’는 2020년 10주년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취소됐다. 원작 사용 기간이 만료돼 이번 시즌을 끝으로 10여 년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2년 초연한 ‘엘리자벳’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며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을 열었다.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연출·무대·안무·의상 등 모든 것이 대대적으로 변화할 예정이어서 한국 프로덕션의 상징과도 같은 이중 회전무대와 3개의 리프트, 11미터에 달하는 브리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서편제’와 ‘엘리자벳’은 지난 한국 뮤지컬의 10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기에, 필자 역시 웅장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서편제’는 꼭 전 시즌에 참여했던 이자람(송화 역) 캐스팅으로” “‘엘리자벳’은 김준수(죽음 역)와 박은태(루이지 루케니 역)의 조합을 놓칠 수 없지…” 마음속으로 두 무대와 ‘헤어질 결심’을 비장하게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두 눈을 사로잡은 건, (늘 너무나 잘해왔던) 뮤지컬 배우들이 아니고, (엄청난 자본이 들어간) 화려한 무대도 아니었다. 두 뮤지컬의 지난 시간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객석의 팬들에게 시선이 갔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애틋함은 자리에 모인 팬들을 더 뜨겁게 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연기되기도, 캐스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흔들림 없이 이들을 지지해 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뮤지컬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새로운 화제다. ‘K-뮤지컬’이라는 낯선 단어를 붙여줄 이들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 한국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국내 팬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지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PAGE1·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