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주재만, 공감할 수 있는 ‘지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0월 11일 9:00 오전

MOMENT

 

안무가 주재만

공감할 수 있는 ‘지금’

창작발레 ‘VITA’는 호평과 함께
5개 도시 공연에서 순항 중이다. 무엇이 화제일까

 

주재만 프랑스 바뇰레 무용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후 발레 히스파니코와 뉴욕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다. 동 발레단의 부예술감독을 역임했고, 현재까지 전임 안무가이자 발레 마스터로 활동하며 ‘Surface’ ‘Circular’ ‘Flight’ 등 다수의 신작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포인트 파크 대학 발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와이즈발레단(단장 김길용)의 신작 ‘VITA’가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절제된 발레의 심미성과 배치, 시각을 사로잡는 영상과 무대 연출로 ‘VITA’는 단숨에 화제에 올랐다. 그해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작품상을 받고, 올해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도 올랐다. ‘2022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 유통협력 사업’에 선정된 ‘VITA’는 여수·익산·대구 공연에 이어, 10월 서울 마포아트센터와 경남 양산문화예술회관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낯선 발레 움직임에 대한 감상의 허들을 낮췄다. 작품은 훼손된 자연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관계성에 대해 질문한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탄생한 서사는 동시대적 공감을 끌어냈다. 관객에게 통(通)한 것.
평단뿐 아니라 관객에게까지 호평받은 ‘컨템퍼러리’ 공연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러한 작품들에는 작품의 소재, 형식의 파괴, 실연자의 다양성으로 동시대성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토대로 와이즈발레단과의 첫 협업작 ‘Intermezzo’(2018)에 이어 성공적인 두 번째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안무가 주재만에게 물었다. 길고 긴 질문지의 요점은 하나. ‘당신의 컨템퍼러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단의 전임 안무가로 뉴욕에 머무는 그가, 20여 개에 달하는 모든 질문에 대해 빠짐 없이 답을 해왔다.

‘VITA’에 대한 좋은 후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계속 재공연되고 있는데, 뿌듯함이 클 것 같다.
무용수들과 힘들게 작업한 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 보람 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만들었는데, 많은 분이 공연을 보고 사랑해주셔서 기쁘고, 더 의미가 있었다.

‘VITA’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코로나, 지구 온난화 등 회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보면서, 생태적 순수성과 자연의 의미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자연을 떠나 살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자연 속에서 춤을 추며 감정을 표현했고, 춤을 소통의 수단으로도 사용했다. 자연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는 지금, 자연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면서 그 감사함을 표현하고, 인간과의 조화를 맞이한 발레를 선보이고자 했다.

발레에게 묻는다. 컨템퍼러리란?

와이즈발레단과는 두 번째 협업이다. 함께 하는 과정은 어땠나.
새로운 무용수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또 다른 경험이자 보람이었다. 무용수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기뻤다. 외국에서의 활동 경험이나 지식이 한국에서 이렇게 사용될 수 있어 흡족했다.

‘VITA’ 2막 장면

‘VITA’ 3막 장면

 

 

 

 

 

 

 

 

 

 

 

 

 

 

 

 

 

 

 

 

 

 

발레로 단련된 단원들이 창작 안무에 투입되어 얻게 되는 이점은 무엇인가?
발레 테크닉은 아주 중요하다. 어려운 발레 동작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무용수가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오로지 전통 발레의 동작만 이해하는 무용수는 그 동작을 다르게 이용하는 경험이 부족해서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상상력, 혹은 표현의 범위 문제다. 내가 안무를 시작하면 겁을 먹는 사람도 있고, 움직임이 생소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창작 안무에 대한 경험은 어떻게 쌓는 것이 좋을지.
무용 교류가 필요하다. 색다른 안무가와의 작업, 워크숍 등도 도움이 된다. 공연하지 않을 때도, 연구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 비해 미국에는 이를 위한 기회가 많다. 한국 무용수들의 테크닉이나 표현 연기는 아주 뛰어나다. 그래서 움직임에 대한 다양성과 탐구, 상상력이 조금만 보충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춤꾼’이라면, 다양한 분야의 춤을 항상 배우고 자기의 움직임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겠나.

한 인터뷰에서 발레와 현대 무용의 구분에 대해 “장르가 아닌, 사람을 봐달라”고 밝힌 바 있다. ‘발레’라는 장르의 제한을 없애면, ‘컨템퍼러리 발레’ 창작에 대한 자유 영역이 넓어질까.
컨템퍼러리 발레라…. 표현의 움직임이야 훨씬 더 자연스러울 테고, 움직임의 옵션도 많을 것이다. 동작이 더 창의적이면서 구체적이며, 복잡한 다이내믹이 들어갈 수 있는 연결성, 그리고 뛰어난 상상력을 반영한 구성과 뉘앙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전통 발레 테크닉과 라인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발레’라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VITA’에서는 비발디의 음악 중 ‘사계’를 사용한다. 최근 이 작품을 재조명해 환경과 연관짓는 현대 음악계의 움직임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을 소재로 삼은 ‘VITA’의 동시대성에 더욱 눈길이 가는데.
작품을 만들 때, 원래 클래식 음악은 자주 사용한다. 비발디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다. 비발디의 협주곡을 들으면 삶의 힘이 느껴진다.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담았달까. 열정과 힘, 숨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새 작품에 아주 적절했다. 많은 상상이 떠올랐고,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작품이 동시대성을 강조할 방법은 많다. ‘환경오염’과 같은 동시대적 소재를 삼을 수도 있고, 타 장르와의 협업이 이목을 끌기도 한다. 현대 무용에서는 새로운 움직임, 단원들의 인종 구성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추구하는 ‘컨템퍼러리’의 방향이 있나.
모든 안무가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감성’이다. 우리는 모두 몸을 가졌지만, 살아온 방식은 매우 다르다. 안무를 만들 때는 내가 겪은 것을 소재한다. 경험 속에서 배우고 느낀 것, 마음을 나눈 시간과 사람들. 인간의 욕구와 본능에 대해서도 다룬다. 나는 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무용수들도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서 마음속에서 끓어오른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VITA’ 1막 장면

 

 

 

 

무용수들과 함께 흘리는, 땀의 시간

현재 전임 안무가로 활동 중인 컴플렉션스 컨템퍼러리 발레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발레단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왔는데.
피부 색깔도, 살아온 문화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을 추고 에너지를 교류하며 엄청난 하모니를 이루는 발레단이다. 인간의 체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작들, 어려운 테크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인간미와 정직한 열정이 우리 발레단만이 가진 경쟁력이다.

처음 미국에서의 활동은 무용수로 시작했다. 안무가로서 커리어 전환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미국에서 훌륭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느꼈고, 그 수많은 움직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이 내 ‘뮤즈’였다. 덕분에 안무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절실해졌다. 지금도 내 머릿속은 거의 쉬지 않는다. 음악을 들어도, 대화할 때도, 꿈을 꿔도 소재가 떠오르고 움직임이 떠오른다.

발레단 내의 분위기는 어떤가. ‘Tears’(2017)를 시작으로 발레단 내에서 꾸준히 신작도 발표해오고 있는데.
미국에서 이렇게 활동하며 기회를 얻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항상 내 작품에 열정을 보여주는 무용수들을 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용실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음악을 들으며, 무용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의 기쁨이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작업이 이어질지도 궁금하다. ‘VITA’ 이후,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
현재는 미국 대학에서 발레 교수로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신작은 11월에 뉴욕 조이스 극장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행복했다. 한국에 가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젊은 무용수들에게도 경험을 다 나눠주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길 바란다

허서현 기자 사진 와이즈발레단
Performance information

와이즈발레단 ‘VITA’

10.14·15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10.28·29 양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제작 김길용/연출 홍성욱/안무 주재만/와이즈발레단/필하모니코리아(지휘 백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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