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제네바 콩쿠르 10.23~11.3
풍부한 개성을 지닌 젊은 음악가들의 향연
작곡 부문에 한국인 작곡가 김신이 우승을 거두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네바 콩쿠르는 1939년 처음 설립된 이후로 기악·성악·실내악·지휘·작곡 등 26개 부문을 다양하게 개최해 온 권위 있는 콩쿠르다. 지금까지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1957)·마우리치오 폴리니(1958)를 비롯해 노부코 이마이(1968·비올라)·에마뉘엘 파위(1992·플루트) 등 숱한 음악가들이 이 콩쿠르를 거쳐왔다. 한국인으로는 최근 문지영(2014·피아노)·최재혁(2017·작곡)·박혜지(2019·타악기)가 우승을 차지했다(괄호 속 연도는 우승 연도). 현재 피아노·플루트·클라리넷·첼로·비올라·현악 4중주·성악·타악 총 8개 부문이 번갈아 펼쳐지며, 올해는 작곡 부문과 피아노 부문이 개최됐다.
예술적 자질을 두루 평가하는 시스템
피아노 부문 준결선에는 9명이 진출했다. 준결선은 10월 27·28일 독주회(60~75분)와 29·30일 실내악 연주로 이뤄졌다. 결선은 11월 3일 지휘자 마르체나 디아쿤/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진행되었다. 솔리스트와 실내악 연주자 그리고 협연자의 자질을 두루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예술적 프로젝트’ 평가가 포함된다. 준결선 진출자들은 콩쿠르 이후 추진할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피아니스트로서 철학과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프로젝트 구상안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가능성을 채점한다.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하려면 재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풍부한 개성과 강렬한 프로젝트를 통해 청중을 다방면으로 끌어당길 젊은 ‘예술가’를 찾고 있다”라는 것이 콩쿠르 측의 설명이다.
결선은 스위스 제네바 빅토리아 홀에서 펼쳐졌다. 케빈 첸·세르게이 벨랴프스키·카오루코 이가라시·지지안 웨이가 결선에 올랐다. 피아니스트 야니나 피알코프스카를 심사위원장으로 플로랑 보파르·틸 펠너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첫 순서였던 지지안 웨이(1998~)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택했다. 대륙의 호방함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관대한 페달, 유연한 손마디 관절로부터 비롯한 안정적인 테크닉과 피아니스트 랑랑을 연상시키는 무대 매너는 자신의 연주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이 없다는 듯 당당함을 풍겼다. 두 번째 연주는 카오루코 이가라시(1994~)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강철로 내려치듯 극대화해야 할 피아노의 타악기적 면모는 목각 인형을 연상시키는 맑은소리와 또박또박한 박자에 갇혀 분출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가장 성숙했던 17세 케빈 첸
케빈 첸(2005~)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는 놀라웠다. 조그마한 체구에 수줍은 미소를 지닌 그는 결선 진출자 가운데 가장 어리지만, 무척 고고하고 성숙했다. 밀도 높은 음색과 마디마디에는 힘이 있었으며 고음부는 얼음 결정처럼 투명했다. 특히 음악을 자연스럽게 고조시키는 그의 스타일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에게는 음악을 기다릴 줄 아는 보기 드문 인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주는 세르게이 벨랴프스키(1993~)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큰 키와 큰 손의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는 예상대로 진취적이었고, 같은 곡을 선택한 이가라시가 전하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러나 부족했던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조금 아쉬웠다.
결국, 우승은 케빈 첸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장 야니나 피알코프스카는 “이견이 오가기는 했지만 5분 만에 우승자가 결정되었다”라고 전했다. 각종 특별상에는 케빈 첸과 세르게이 벨랴프스키가 번갈아 호명됐으며, 예술적 프로젝트상은 케빈 첸이 수상했다. 연이어 다른 수상에 케빈 첸의 이름이 불리다 마침내, 우승자로 호명되자 장내에는 환호성이 터졌다.
작곡 부문의 쾌거, 김신 우승
지난 10월 26일에는 작곡 부문 최종 3인의 결선을 치렀다. 올해 과제는 무반주 6중창이다. 심사위원은 베아트 푸러를 심사위원장으로 진은숙과 스테파노 게르바소니가 참여했다. 우승은 ‘오네이로이의 노래’로 김신(1994~)이 차지했다. ‘오네이로이의 노래’는 그리스 신화 속 ‘꿈’이 의인화된 신 ‘오네이로이’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오네이로이들의 이야기는 작품 속의 여러 성부와 어우러지며 각 목소리만의 감정과 성격으로 독특한 노래를 만들어낸다. 가사는 들숨과 날숨의 소리 등 인간의 호흡과 발음 방식을 이용한 소리가 채운다.
김신은 콩쿠르 공식 인터뷰에서 “아주 희미하고, 추상적이어서 우리가 이해하거나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꿈의 형태에서 착안했다. 곡의 언어로 음소(단어의 의미를 구별 짓는 최소의 소리 단위)에 기초한 발음 체계를 선택했다. 그것은 분명 언어이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다. 발음 체계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며, 이 중 일부는 매우 독특한 바람 소리 또는 혀가 만든 소리 등을 포함한다. 이는 마이크를 통해 들으면 매우 명확하게 들린다. 이러한 소리를 마이크를 이용한 전자 음향을 통해 실험하고, 표현해보고 싶었다”라고 곡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영국 왕립음악원 작곡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신은 올해 루마니아에서 열린 에네스쿠 콩쿠르 교향악 작곡 부문에서도 우승한 바 있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제네바 콩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