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니·쇼팽 콩쿠르 위너 박재홍 & 브루스 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2월 13일 9:00 오전

COVER STORY

부소니·쇼팽 콩쿠르 위너 

박재홍 & 브루스 류

우승, 그 후의 이야기

©Yanzhang ©rohsh

 

지난 한 해 콩쿠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국내에서 새삼스럽게 뜨거웠다. 음악에 정진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거둔 값진 성과에 응원을 보내는 마음이야 응당하겠지만, 정작 그 관심은 이들에게 닥친 실체에까지 닿진 못했다.

두 피아니스트를 통해 ‘콩쿠르’의 의미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인종만으로 음악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는 없으나, 피아노 앞에 흩날리던 머리카락의 색깔이 검은색이었음은 분명했다. 세계의 콩쿠르 속에서 빛났던 두 아시안 피아니스트. 이들의 콩쿠르 ‘이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우리는 이 콩쿠르 신드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기획 허서현 기자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브루스 류를 소개할 때면,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붙습니다.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그러나 막상 이들이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말들은 조금 다릅니다.

박재홍은 자신을 늘 ‘피아노 치는 박재홍’이라고 말합니다. ‘피아니스트’라는 단어가 조금 부담스럽다나. 브루스 류는 콩쿠르의 성취가 그저 흐름의 일부였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콩쿠르 우승 후에도 “전문 연주자로 살 것이라곤 아직 결정 못 했다”고 답했던 그가 아니던가요!

콩쿠르를 우승한 이들의 앞에 놓인 것은 ‘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어 한 줄과 이 수식어로 인해 갑자기 산더미처럼 불어난 연주 일정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지 않은데,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별안간 바뀐 것이죠.

더불어 이러한 콩쿠르는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젊은 음악가들이 더 좋은 음악을 위해 정진하는 기회이며 국제적 감각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의 장입니다. 콩쿠르에서 만난 또래의 음악가들과 사귀며 이들은 앞으로의 음악에 도움이 될 정보를 얻습니다. 박재홍은 “오히려 우승하지 못한 콩쿠르로 배운 것이 더 많다. 콩쿠르를 거치면서 피아니스트가 얻는 것은 첫째로 방대한 레퍼토리에 관한 공부 기회, 둘째로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 자신의 임계치를 늘려보는 경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무언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두 피아니스트의 입을 빌려 ‘콩쿠르’의 의미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두 피아니스트와는 각각 대화를 나눴습니다. 브루스 류는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고, 박재홍은 연주를 위해 귀국한 며칠 사이의 틈을 노려 직접 만났습니다.

 


INTERVIEW

PART 1 두 피아니스트의 근황

국제 무대에서의 새롭고 바쁜 삶

박재홍의 ‘부소니, 그 이후’

©rohsh

이들이 우승한 콩쿠르가 개최된 곳은 각각 폴란드와 이탈리아입니다. 유럽의 한복판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인종만으로 음악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는 없으나, 피아노 앞에 흩날리던 머리카락의 색깔이 검은색이었음은 분명했죠. 세계의 콩쿠르 속에서 빛났던 두 아시안 피아니스트. 본격적으로 이들의 콩쿠르 ‘이후’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자면 두 사람의 인연은 조금 뜻밖입니다. 전날에도 연락을 주고받았을 만큼 ‘친하다’는군요. 이들의 만남은 2017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현장입니다. 콩쿠르가 이들에게 음악적 동료를 만나는 장으로 역할 한다는 것이 사실인 셈이죠. 3주간 이스라엘에서 머물며 진행된 콩쿠르 과정 덕에 이들은 더 빠르게 친해졌습니다. 박재홍이 부소니 콩쿠르를 우승했을 때, 하루 만에 축하를 보낸 것은 브루스 류였어요. “나 지금 쇼팽 콩쿠르 준비 중인데, 연습도 못 하고 네 연주를 보고 있었다”는 농담을 곁들인 메시지. 콩쿠르 매 라운드가 끝나면 서로 꼬박꼬박 연주에 대한 피드백도 주고받았습니다.

 

브루스 류와 친분이 있는 사이인 줄 몰랐네요.

박재홍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뭐 거의 친구죠. 쇼팽 콩쿠르 우승하고 브루스 류가 한국 왔을 때도 제가 같이 맛집 투어를 다녔는걸요.

그때가 11월이었고, 그 이후로도 많은 연주 일정을 소화했다고요.

박재홍 보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만 독주회를 여덟, 아홉 번 정도 했으려나요. 말 그대로 지옥의 투어였죠.(웃음) 이탈리아의 토리노와 남부에서도 연주했고,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등에서 데뷔 독주회도 치렀습니다. 그리고 12월 23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연주회를 했어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을 연주했죠. 이탈리아 투어 리허설 도중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습할 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익혀야 했습니다. 부소니 콩쿠르를 준비할 때보다 요즘 피아노를 더 많이 치게 되네요. 그래서인지 1년 사이에 제 연주도 달라진 것 같고요.

지난해 지휘자 자난드레아 노세다, 정명훈 등과 함께 협연한 경험도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박재홍 거장과의 협업이 어떻게 다른가를 느꼈어요.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주는 음색의 팔레트가 무한했습니다. 마치 제가 오케스트라의 한 파트로 융화되는 듯했죠. 정명훈/경기필하모닉과의 연주는 지난해 제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연주 영상도 많이 볼 정도로 워낙 팬이었고, 연주를 통해서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는데, 선생님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연주할 수 있는 수많은 연주의 방향을 제시해주셨어요.

지난해 안드라스 시프 내한 독주회에서는 통역으로 깜짝 등장했어요. 이날 무대 위에서 피아노가 아닌 통역자로서 마이크와 함께 했는데, 마이크 잡기에 소질은 좀 있다고 느꼈나요?

박재홍 전혀요! 전날 잠도 못 잘 만큼 떨었는걸요. 시프 선생님의 예전 마스터클래스를 들으면서 5시간씩 통역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결과적으로는 기억에 깊이 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날 무대 위에서 들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59 연주는 제 인생 공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선생님을 뵙고 음악적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부소니 콩쿠르 얘기를 좀 해볼까 해요. 사실 우승을 한 2021년이 첫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2019년에는 본선 1차까지밖에 오르지 못했었죠.

박재홍 첫 번째 부소니 콩쿠르에 나갔을 때는 정말 미련하게 준비했어요. 3~4개월 정도를 매일 12시간씩 연습했으니까요. 그때는 밥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어요. 딱 하나, 콩쿠르 결과가 안 좋았을 때 ‘연습을 많이 안 해서 떨어졌다’는 후회하기가 싫다는 생각이었죠. 시간이 지나 그때 연주를 다시 봤더니 정말 ‘잘’은 치더군요. 연습을 그렇게 했으니, 모든 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있었죠. 하지만 숨 쉴 틈이라곤 없는 연주였습니다. 콩쿠르가 끝나고 ‘연습 좀 덜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후회를 할 줄이야! 결국 이 모든 게 음악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과유불급이었죠.

그렇다면 2년 후, 부소니 콩쿠르에 다시 도전했을 때는 어떻게 달랐나요.

박재홍 누구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을 처음 겪으면, 그대로 끝이 날 것처럼 두렵죠. 하지만 그걸 담담히 잘 이겨내고 나면 훌쩍 성장하잖아요. 콩쿠르에 도전하면서 이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콩쿠르 결과가 절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죠. 음악은 취향이기 때문에 그날의 심사위원, 관객, 심지어 아주 사소한 날씨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겨요. 2021년 부소니 콩쿠르에서는 정말 마음이 편했어요. 자유로워지자, 희한하게도 좋은 성적이 나왔고요.

 

브루스 류의 ‘쇼팽, 그 이후’

©Yanzhang

브루스 류가 우승을 거둔 제18회 쇼팽 콩쿠르는 여러 이변이 겹쳐있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본선 대회가 늦춰졌고, 참가 지원자는 콩쿠르 역사상 최대 규모였으니까요. 예선부터 참가자들의 다양한 연주 스타일과 이력이 전 세계의 온라인 관객들에게 활발히 전달됐습니다. 색다른 분위기 속에 탄생한 우승자 브루스 류 또한 범상치 않았어요. 스타인웨이도, 야마하도 아닌 이탈리아 브랜드 ‘파치올리’ 피아노를 선택해 결선에 오르는가 하면, 콩쿠르 우승 후에는 “피아노는 여러 취미 중에 하나다. 앞으로 전문적인 연주자로서 살게 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신선한(?) 인터뷰로 회자도 됐습니다. 이소룡의 영어 이름 ‘브루스’에서 따온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저는 피아니스트 브루스 류입니다. 브루스 리(Lee)가 아니라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 피아니스트를 두고 누군가는 ‘쇼팽 우승자답지 못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새로운 시류의 쇼팽이 탄생한 것이라 했습니다. 브루스 류의 쇼팽 음악 해석에 대해서도 동일한 견해의 찬반으로 갈렸어요.

그의 진가는 결국 더 많은 관객들이 연주를 들음으로써 증명되고 있습니다. 쇼팽 콩쿠르 당시 독주 실황을 담은 음반(DG/4861555)은 ‘그라모폰’지의 비평가상과 편집자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라모폰’지는 “한 번의 호흡으로 피아니스트 슈라 체르카스키, 죄르지 치프라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호평했어요. 콩쿠르 이후 그는 파리·빈·브뤼셀·도쿄·상파울루·룩셈부르크, 그리고 북미 투어 등 ‘가장 핫하고 바쁜 피아니스트’로 전 세계를 순항 중입니다.

 

많은 연주자가 동경하는, ‘월드 와이드’ 연주자예요. 하지만 주로 비행기와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죠! 콩쿠르 우승 후 1년, 실제로 경험해본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은 어떤가요?

브루스 류 평행 이론 속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아닌 브루스 류’의 삶은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호텔과 비행기, 공항, 그리고 콘서트홀의 연속인 삶은 맞아요. 그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죠. 연주자의 삶에 대해 다들 환상을 가지고 있겠지만, 사실은 직장에 출근하는 일과 다를 것이 없어요. 같은 일을 반복하니까요. 그래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농담하거나, 재밌는 콘텐츠를 보는 일 등이요.

새로운 연주자들도 많이 만났을 텐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요?

브루스 류 연주자들을 많이 만난 것은 정말 좋았어요. 예를 들자면,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직접 본 일이 있겠네요. 80세가 넘었는데도, 무대에서 마치 30대처럼 연주하더군요. 같은 공연에서 아르헤리치가 무대 전에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봤어요. 흥미로운 경험이고, 제게는 전부 새로운 영감이에요. 이런 경험은 계속 첫 연주를 하는 것 같은 설렘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콩쿠르 우승 후에 ‘전문 연주자’로 살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었는데, 생각에 변화는 없나요?

브루스 류 저는 이 모든 연주를 정말로 즐기고 있습니다. 관객에게 음악을 공유할 수 있고, 새로운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많은 사람이 들으러 온다는 것은 엄청나게 영광이죠. 그리고 이 자체가 제가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전문적인 음악가로서의 직업을 원한다기보다는, 지금 제가 연주에서 느끼는 이 기분들이 계속 ‘새로운’ 채로 유지되길 바라죠.

현재 쇼팽 음악을 연주할 때,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이 있나요?

브루스 류 특별히 뭔가를 추구하진 않아요. 연주는 그 사람이 가진 자연스러운 성향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고, 제 연주 또한 그렇겠죠. 하지만 최근에는 옛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에 많이 관심이 있어요. 오늘날의 이성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 이그나츠 프리드만(1882~1948) 등이 있겠네요. 미켈란젤리(1920~1995)의 연주도 존경하지만, 음향에 대한 완벽함, 절제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스타일과 아주 다르진 않은 편인 것 같아요. 쇼팽의 음악은 벨 칸토 창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쇼팽 음악의 큰 매력이죠. 코르토와 프리드만의 스타일이 이 특징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쇼팽 콩쿠르 당시, 본인만의 쇼팽 음악 해석을 선보였어요. 그 해석이 기존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들과는 좀 달랐는데요.

브루스 류 저는 연주 해석에 다양한 시각들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고, 200년 전과 똑같이 연주할 수 없죠.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매일 컴퓨터를 보고, 심지어 요즘 아이들은 태블릿PC를 정말 유용하게 쓰잖아요! 쇼팽이 살았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에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촛불에 의지해 작곡했죠. 결국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시대상을 잘 융합해야 합니다. 물론 과거를 이해하려면 쇼팽의 자서전이나 그가 쓴 편지 등을 읽으며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굳이 현재의 내가 가진 성향과 부딪히는 요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설득력 있는 예술을 만들어 나가야죠.

 

박재홍 프로필

–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 4개 특별상(부소니 작품 연주상, 실내악 연주상, 엘리스 타라로티 재단상, 키보드트러스트 발전상) 수상

– 2015년 클리블랜드 영 아티스트 콩쿠르·2016년 지나 바카우어 영 아티스트 콩쿠르 1위

– 대구 영재교육원,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출신

– 서울예고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예정(3월)

 

브루스 류 프로필

– 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

– 2019년 포르투갈 비제우 콩쿠르 1위

– 프랑스 파리 출생,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

– 몬트리올 음악원 졸업, 몬트리올 대학교 재학

 


PART 2 판이한 성장 과정

지금의 나를 키운 스승과 문화

어린 시절과 음악적 자양분

두 피아니스트의 성장 과정은 판이합니다. 한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다문화의 특징을 장착했고, 한 사람은 한국 클래식 음악 교육 과정의 대표적 예시예요. 공통점이 있다면 브루스 류는 당 타이 선을, 박재홍은 김대진을 사사해 많은 콩쿠르 제자를 배출하는 스승을 두었다는 것. 이들의 탄생과 성장의 20여 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브루스 류는 1997년생으로, 중국인 부모를 두고 있지만 파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캐나타 몬트리올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중국의 문화를, 성장하면서는 유럽 및 서양의 문화를 모두 흡수한 그의 어린 시절은 ‘다양성’을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어느 누가 그를 쉽게 외향만을 보고 아시아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현재 브루스 류의 국적은 캐나다. 그가 쇼팽 콩쿠르에서 거둔 우승은, ‘캐나다인 최초’로 기록됩니다.

박재홍도 “음악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1999년생인 그는 대구에 거주하며 대구 영재교육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쳤고,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을 사사했죠. 두 곳의 영재원을 거친 그는 영재를 단지,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재가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연주자로 완성될지는 그 이후의 행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루빈스타인·에틀링겐 콩쿠르 등을 거치며 꾸준히 성장한 그는 2021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4개의 특별상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맨 처음 피아노를 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브루스 류 어렸을 때 관심 있는 취미 중의 하나였어요. 55개의 건반이 있는 장난감 피아노로 처음 치기 시작했죠. 부모님은 제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편이었어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음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됐죠.

박재홍 어렸을 때 승부욕이 엄청 강했는데, 친한 누나가 어느 날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워오더니 저더러 피아노도 못 친다고 놀리는 거예요. 그날 당장 부모님께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죠.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을 것 같은데, 어렸을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브루스 류 음, 사실 저는 음악에 대해서 그렇게 일정한 열정을 가진 학생은 아니었어요. 종종 아주 이상하게 연주하곤 했죠. 학구적인 자세로 자세히 악보를 보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었거든요.

박재홍 제가 처음 피아노에 빠지게 된 이유는 피아노 해머의 작동 방식을 관찰하면서였어요. 해머의 움직임이 신기해 피아노를 다 뜯어놓고 연습하곤 했죠. 그렇게 점점 피아노와 친해지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네요.(웃음)

청소년기에 만났던 스승들이 궁금합니다.

브루스 류 리차드 레이몬다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기초를 다지는 데에 많이 도움을 주셨죠. 제가 가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분이죠. 첫째로 몸을 통해 표현하는 법. 그리고 두 번째로 음악의 구조를 만드는 것을 늘 강조해주셨습니다. 음악은 절대로 직선이 될 수 없잖아요. 지금도 매일 연습하면서 그 방식을 잊지 않고 적용한답니다.

박재홍 대구 영재교육원에서 만난 이성원 선생님이 제 첫 선생님이시죠.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선생님께 배우면서, 중요한 연주의 기본기를 잘 가르쳐주셨어요. 지금까지도 각별하게 저를 아껴주세요. 어머니 같은 선생님이랄까요. 저는 김대진 선생님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배웠는데, 처음 2~3년은 정말 많이 혼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고, 고집도 센 야생마 같은 학생이었어요.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싶은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주셨죠.

 


POINT

박재홍과 스승 김대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유학 없이 국제 콩쿠르에서의 성과를 거둔 피아니스트 중 다수가 김대진(1962~)을 사사했다. 손열음, 김선욱 등이 있으며 부소니 콩쿠르 최초 한국인 우승자 문지영 또한 김대진을 사사했다.

박재홍은 스승을 처음 만난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때는 중학교 1학년, 방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흰 머리의 김대진을 본 순간 ‘백사자’가 떠올랐다고.

여러 콩쿠르를 도전하면서 스승으로부터 얻은 조언은?

콩쿠르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한 요행에 대해 말해주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자유롭게 치고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한 것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언제나 일정한 반응을 해주신 것. 콩쿠르 후엔 늘 ‘다음에는 뭘 할 거냐’고 말씀하셨다. 부소니 콩쿠르 우승을 했을 때도 똑같았다.

수많은 음악적 자양분을 받았겠지만, 물려받은 단 하나의 음악적 정수를 꼽자면?

“사람은 생긴 대로 연주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감히 내가 느낀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요약해보자면, 선생님은 특정 한 마디를 잘 치게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그 곡 자체를 잘 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교육하신다. 무대에서 묻어날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에 대한 교육이랄까. 추구하는 연주의 방향이 있으면,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깜짝 놀랐을 때 나오는 말이 ‘엄마야!’인 사람을, ‘아빠야!’라고 말하게 바꾸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쉽지 않은데, 그걸 해내시는 분이다.

지난 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연주회 레퍼토리인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세 개는 몇 년 전 김대진의 독주회 구성과 같은데.

그날 선생님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 연주에 대한 오마주기도 하다. 베토벤 후기 소나타는 지금 나이에서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레퍼토리다. 하지만 선생님과 11년 동안 함께 하면서 그 긴 여정을 잘 갈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일 것 같아서 선택했다. 잔잔하면서도 슬픈 연주였다.

 

브루스 류와 스승 당 타이 선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 그의 제자인 브루스 류도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며, 스승과 제자 모두가 같은 콩쿠르 출신이 됐다. 쇼팽 콩쿠르 순위권에 든 제자들을 다수 가르쳤다. 현재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쇼팽 콩쿠르를 비롯 다수의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이다.

당 타이 선은 쇼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당 타이 선(1958~)은 아시아인 최초의 고 있는 스승이었을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 타이 선에게서는 쇼팽을 배운다. 하지만 나는 베토벤 레퍼토리,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현대 음악 레퍼토리를 배웠다. 그래서인지, 쇼팽 콩쿠르에 나가고 싶다고 처음 말했을 때, 당 타이 선이 무척 놀라했던 기억이 난다.

당 타이 선의 교육은 어떤 방식이었나.

쇼팽 곡에 대한 해석을 비롯해, 스승과 나의 연주 스타일은 무척 달랐지만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다. 내 연주에서 장점을 찾아냈고, 그것이 단점을 보완시키는 데에 사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연한 스승이었다. 마치 내가 앓고 있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병에 딱 알맞은 약을 제조해주는 것 같았다.

스승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당 타이 선을 만나고 5년은, 내 인격을 발전시키는 데에 많이 도움을 줬다. 그런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인격이 안정화되면서, 더 확실한 개성을 찾았다. 그에게 음악에 대해 배울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된다.

 

 

 


PART 3 두 연주자의 현재와 미래

새 레퍼토리와 행보를 위한 준비

©rohsh

2021년 서울시향과의 협연 ©Gwansu Kim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브루스 류에 대하여

브루스 류가 쇼팽 콩쿠르의 매 라운드를 헤쳐 나간 연주들을 보면, 그가 한 작품, 한 작곡가에 대해 가진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1차 라운드부터 결선 무대까지, 그의 쇼팽은 점점 발전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상한 전통의 쇼팽은 아니었지만, 브루스 류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쇼팽을 완성해나갔습니다.

그 탐구의 자세 그대로,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레퍼토리는 프랑스 음악들입니다. 다음 음반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전할 한 가지 희소식은 프랑스 레퍼토리들로 지난해에 녹음을 완료한 상태라는 것. 음악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창의적인 관찰자인 브루스 류는 프랑스 음악에서도 그간 잘 연주되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들을 골라냈습니다. 또한 프랑스 라모의 작품을 포함해 쇼팽의 모차르트 ‘돈 조반니’에 의한 변주곡 Op.2와 피아노 소나타 2번, 그리고 리스트의 ‘돈 조반니에 대한 회상’ S.148을 함께 선보일 3월의 내한 독주회 프로그래밍은 그가 가진 다양한 창의성의 색깔을 실감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쇼팽 콩쿠르 이후 생길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식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브루스 류 매우 영광스러운 타이틀이라고 생각해요. 한 작곡가에게 큰 노력과 시간을 쏟았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팬데믹이라는 힘든 시간을 견디며 정성을 들인 만큼 특별하고요. 저는 작곡가에게로 스며들어 그가 어떤 생각으로 작곡했는지를 많이 고민합니다. 이 과정이 제게는 즐거움이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DG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었습니다. 다음 음반의 레퍼토리가 무엇일지 무척 궁금한데요.

브루스 류 다음 음반은 프랑스 음악입니다! 별로 놀랍지 않죠?(웃음) 흔히 프랑스 레퍼토리로 라벨과 드뷔시를 떠올리잖아요? 물론, 라벨의 음악도 수록될 것이지만, 저는 바로크 음악 레퍼토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장 필리프 라모(1683~1764)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 시대의 비르투오적 요소를 가진 음악이며, 숨겨진 보석과 같은 요소들을 찾고 싶어요. 실제로 라모의 음악은 터키 전통적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프랑스의 알캉(1813~1888)도 잊힌 작곡가 중 한 명인데, 무척 기교적인 작품들이 있답니다. 녹음은 마쳤고, 저도 이 음반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한국에서 있을 독주회에서도 쇼팽은 물론 라모의 작품을 연주하네요.

브루스 류 여러 시대의 작곡가들을 섞어서 연주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느껴요. 음악의 역사를 이어 나간다는 느낌이 있죠. 라모는 제가 특별히 연구하고 싶었던 작곡가예요. 프랑스 바로크의 주요 작곡가고, 화성학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많은 작곡가가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연주가 처음은 아니에요. 한국에서의 공연에 대한 기대가 있나요?

브루스 류 물론이죠! 한국은 현대적이고 화려하며, 클래식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곳이에요. 예술은 뭐든지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 사회에 균형을 잡아줄 수 있고, 음악은 국경 없이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죠. 한국 관객들의 열정은 연주자에게 감전된 것같은 짜릿한 느낌을 줘요. 이 감정이 공연을 더 즉흥적이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해줍니다.

 

2022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의 독주회 ©Kumho Cultural Foundation

 

박재홍의 새로운 둥지 찾기

인터뷰를 마친 밤 9시, 그의 다음 일정은 ‘연습실’이었습니다. 이틀 후면 2023시즌의 독주회 레퍼토리를 처음으로 선보이기 위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떠날 예정이었죠. 지난 한 해는 해외에서의 연주 횟수가 더 많았습니다. 3월이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식만을 남겨놓은 상황. 중요한 시기를 앞두었기에 “다음 연주 커리어의 성공을 위한 전략이 무엇이냐”에 무게를 두어 물었지만, 그는 반대로 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전략가’이길 경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는 믿음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흐리지 않을 단단함으로, 균형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서 말이죠.

 

부소니 콩쿠르의 부상으로 주어진 해외 연주가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시점인데, 재연주 초청으로 이어지고 있나요?

박재홍 감사하게도 적지 않게 받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내후년 시즌의 일정을 협의 중에 있고, 여름엔 독일에서 협연도 예정 중입니다. 이 협연은 지난 하이든 오케스트라 투어 당시 지휘자였던 롤란트 보어(Roland BÖer)가 자신이 상임 지휘자로 있는 뉘른베르그슈타츠 필하모닉 연주에 초청해주어 갖게 되었습니다.

콩쿠르 이후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매니지먼트를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이를 위해 고민하는 부분은 없나요?

박재홍 답변하기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네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의 클래식계에서 음악을 잘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보장되는 것이 많이 줄어들지 모르죠. 스스로 똑똑하게 자신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고 이행해야 유럽 무대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현실일 테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한번 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 연주에서 그런 생각들이 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진실성이 위협받는 것 같달까요. ‘다음 행선지’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의 무대가 소비되지 않길 바라거든요. 다니엘 바렌보임이 늘 하는 말이 있어요.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도 느끼는 건데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라는 말이요. 그 어떤 상황에도 얽매이지 않은 음악 본연의 상태죠. 현실과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겠지만 저는 결국, 좋은 음악을 하고 있으면 저만의 때가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다면 질문을 좀 바꿔볼게요. 어디서 살면서, 어떤 곡을 연주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피아니스트인 나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환경들입니다. 지금의 재홍 씨에게 필요한 환경은 무엇인가요.

박재홍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서울은 나고 자란 익숙한 곳이다 보니, 어떠한 외부의 도움없이 조금 더 스스로 잘 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어떤 지점에서 동기부여를 받는 편인지 궁금한데요.

박재홍 좋은 연주를 많이 볼 때요! 얼마 전 토리노에서 플레트뇨프의 연주를 보게 됐는데, 연주가 끝나고 나와도 유럽의 광장이 길게 펼쳐져 있는 그 여운이 정말 좋더라고요. 음악을 하는 친구들도 해외에 많이 있다 보니, 함께 협업하면 좋은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졸업 후의 새로운 주거지가 유럽인가요!

박재홍 어디에 새로운 둥지를 틀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아마 베를린, 아니면 빈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지휘에 대한 마음이 있다고도 밝혀왔는데요.

박재홍 지휘는 여전히 하고 싶어요. 교향곡을 듣는 비중도 늘어나고 있고요. 언젠가는 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먹게 된다면, 관련 학위 과정을 밟을 생각도 있고요.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계속 낮은 자세로 음악을 올려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레퍼토리를 잘 연주해내는 올 라운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꼭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서른 살이 되기 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입니다!

허서현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Performance information

브루스 류 피아노 독주회

3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10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3월 11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외

 

홍석원/국립심포니(협연 박재홍)

3월 10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드보르자크 피아노 협주곡 외

 

 

 

박재홍과 브루스 류의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Too Much Informaition

01 두 사람에게 최근 유행하는 MBTI(성격 유형 검사 결과)를 물어봤다. 브루스 류는 ENFP, 박재홍은 ENTP. 박재홍은 ENTP가 주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라며 머쓱 웃었다. 어렸을 때 성격은 그랬던 것 같지만, 지금은 많이 교화된 것 같다고. 브루스 류는 예전에 검사해본 적이 있는데, 정작 이 알파벳이 어떤 성향을 설명하는 거였는지는 기억하지 못 했다. 브루스 류가 설명을 궁금해한다고 덧붙였으니, 공연장에서 만난 그에게 ENFP에 관해 얘기해준다면 아마 반갑게 사인 한 장을 더 해줄지도! 참고로 브루스 류의 한국 독주회는 3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다. 6월에는 장한나 지휘의 빈 심포니와의 협연도 예정 중.

02 박재홍의 최근 취미는 영화 보기다. 잔인한 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보고 나면 사나흘은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고 괴로운 영화를 좋아한다고. 어쩌면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쏟고 있는 몰입력을 그대로 취미에도 쏟고 있는 게 아닐까?

03 브루스 류의 취미는 수영과 카 체이싱(차량 추격)이다! 지금도 연주 투어를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수영하러 가거나, 카 체이싱 경기를 보러 가곤 한다.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그에게, 취미 유지는 무척 중요한 부분.

04 브루스 류가 바쁜 투어 일정 속에서도 ‘흥미 잃지 않기 대작전’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있다. 원래 먹던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 먹기. 콘서트홀로 매번 가던 길에서 우회해 색다른 길로 걸어보기 등. 반복되는 삶을 재밌게 만드는 팁들이다.

05 지난해 한국에서 만난 브루스 류와 박재홍이 맛집 탐방을 하면서 먹은 음식은 갈비찜과 냉면이다. 브루스 류가 꽤 잘 먹었다고. 한강에도 같이 가려다가 ‘남자 둘이 웬 한강 데이트냐’ 싶어 안 갔다.

06 박재홍은 3월, 홍석원/국립심포니와 함께 아트센터인천에서 드보르자크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다. 평생 연주해볼 기회가 많이 없는 작품이라 참여를 결심했다고. 5월에는 마르쿠스 슈텐츠/서울시향과, 9월에는 이병욱/인천시향과 협연한다. 10월에는 스승인 김대진과 듀오 연주회를 하며, 가장 인상적인 연주 일정은 12월에 있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소식.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 공연에서 5곡 전부를 연주할 예정이다.

 


PART 4 COLUMN

박재홍과 브루스 류 우승 이전, 

메이저 콩쿠르 속 아시아 피아니스트

콩쿠르는 연주력 향상과 연주 기회 증진을 도모하는 면에서 클래식의 변방으로 취급받은 동아시아 배경의 연주가들에겐 불가피한 도전의 장으로 여겨졌다. 국제 콩쿠르 가운데 메이저급으로 평가되는 주최 측 역시, 참가자들을 국적으로 분류하면서 클래식의 글로벌화를 진전시켰다.

일본은 1937년 제3회 쇼팽 콩쿠르에 미와 카이(1913~2011), 하라 치에코(1914~2001)가 처음 참가해, 하라는 15위에 올랐다. 다나카 기요코(1932~1996)는 1955년 5회 쇼팽 콩쿠르에 나가 10위를 차지했고 심사위원 미켈란젤리는 다나카의 상위 입상을 주장하면서 상금 증서에 서명을 거부했다.

일본이 쇼팽 콩쿠르에서 배출한 첫 국제적 스타는 나카무라 히로코(1944~2016)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일본인 최초 전액 장학금을 받은 나카무라는 1965년 쇼팽 콩쿠르에서 일본인 최초 입상(4위)을 거뒀다. 197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치다 미츠코(1948~)가 준우승하면서 명실상부 아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올라섰다. 우치다는 입상 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고 지금도 세계 무대에서 최상위로 인정받는 유일한 일본 피아니스트다.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야마하·가와이가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인들의 쇼팽 콩쿠르 관람 붐이 일었다. 1990년 대회에선 결선 무대 객석 1,000여 석 가운데 250여 석이 일본 관중이었고 요코야마 유키오(3위, 1971~)·다카하시 타카코(5위, 1964~)가 입상했다. 2005년 대회에 세키모토 쇼헤이(1985~)·야마모토 다카시(1983~)가 공동 4위를 차지했고, 2021년 쇼팽 콩쿠르에서 소리타 교헤이(2위), 고바야시 아이미(4위)가 입상했다. 소리타와 고바야시는 정초 결혼과 임신 소식을 함께 알렸다.

구소련 시절 시작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1958년 7위 마츠우라 도요아키(1929~2011), 1982년 3위 고야마 미치에(1959~)에 이어 2002년 우에하라 아야코(1980~)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했다. 2019년 후지타 마오(1998~)가 2위에 올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1987년 준우승자 와카바야시 아키라(1965~)와 2021년 3위 무가와 게이고(1993~)가 명성을 알렸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2011년 노부유키 쯔지이(1988~)가 중국 출신 장하오천(1990~)과 공동우승했다.

중국 국적으로 메이저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 입상한 첫 인물은 1955년 쇼팽 콩쿠르 3위 푸총(1934~2020)이다. 1965년 아르헤리치가 같은 대회를 우승하며 푸총의 음반에 영향을 받은 점을 알리면서 명성을 얻었다. 1980년 베트남 출신 당 타이 선이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쇼팽 콩쿠르를 우승했고, 2000년 중국 충칭 태생의 리윈디(1994~)가 중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리윈디는 이렇다 할 메이저 콩쿠르 입상이 없는 랑랑(1982~), 유자 왕(1987~)과 함께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2000년대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한 1958년 공동 2위 류시곤(1939~), 1962년 공동 2위 잉쳉총(1941~), 1986년 7위 공샹동(1968~)은 입상 직후 서방 진출이 어려웠다. 2002년 3위에 중국계 이탈리아인 진주(1976~)가 입상하면서 중국계 연주자의 대외 이미지가 훨씬 밝아졌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중국계 미국인 안닝(1976~)이 1999년 3위로 올랐고, 선웬유(1986~)가 2위에 올랐다. 임동혁은 선웬유의 등위 결과에 항의하며 자신의 3위 수상을 거부했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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