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레브레히트 칼럼 | SINCE 2012
영국의 평론가가 보내온 세계 음악계 동향
번스타인의 그림자 걷어내기
뉴욕 필의 새로운 음악감독에게 거는 기대
뉴욕 필하모닉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지휘자를 임명한 지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라 이제는 살아있는 이들이 그때를 거의 전설처럼 기억하고 있다. 지난 시간 뉴욕 필이 보인 창조력의 부재는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 이후 지휘봉을 이어받은 모든 선의의 지휘자가 그의 자취와 싸웠음에도 음악적·인간적·매체적인 부문에서 모두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번스타인은 뉴욕 필을 바꿔 놓았다. 그는 말러·닐센·아이브스의 교향곡을 들고 오는가 하면 현존하는 미국인 작곡가들을 홍보하고, ‘마에스트로’로서 유례없이 젊은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며, 오케스트라 음악을 일반 대중에게 전도하기 위해 텔레비전의 힘을 활용했다. 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를 쓴 대단한 작곡가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시청자가 알고 있던 것 역시 도움이 됐다.
번스타인은 11년이라는 기록적인 기간에 음악감독 직에 있었고, 그의 후임자들은 비교라는 불행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나치게 절제하는 피에르 불레즈, 깊이가 없는 주빈 메타, 악천후처럼 어려운 쿠르트 마주어, 지루한 로린 마젤, 설익은 앨런 길버트, 회계 실수가 의심되는 얍 판 츠베덴까지. 댈러스 심포니에서 5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던 따분한 네덜란드인의 비호 아래 뉴욕 필은 변방에서 지방으로 표류하기만 했다. 맨해튼 중심가 너머에 뉴욕 필이 존재하는지 누가 알기나 했겠는가.
이번엔 다를까?
할리우드 볼의 지휘자이자 마스코트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지난 달 구스타보 두다멜(1981~)이 뉴욕 필의 구원자로 등장한 소식에 기뻐했던 기사는 ‘뉴욕 타임스’에서만 최소 9개는 되는데, 이 과장된 기사들은 절박한 기대를 무비판적으로 쏟아냈다. 이들은 맨해튼의 메시아를 열망하고 있다. 42세의 두다멜은 번스타인이 뉴욕 필에 임명된 나이와는 동일하나 그에 못 미치는 명성을 보유했다. 번스타인은 교향곡 두 곡을 작곡하고, 브로드웨이 인기작을 보유했으며, 코번트가든 및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했고, 의심스러운 정치적 견해로 미 국무부에 의해 여권이 파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두다멜의 약력은 오직 세 줄이다. 수습 기간을 보낸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17년간 활발히 활동한 LA 필하모닉,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아직은 아무런 명성을 떨치지는 못한 파리 국립 오페라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베네수엘라인의 피와 열정이 흐르는 그는 마르크스주의자 휴고 차베즈(1954~2013) 정권이 가난한 아동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것으로 그들을 구제하는 국가 차원의 음악적 온실 ‘엘 시스테마’(El Sistema)에서 수학했다. 두다멜은 이 선전기구의 대표 인물이자, 세계적인 홍보대사이며, 진실한 신자였다.
2013년, 두다멜은 차베즈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으며 그의 장례식에서 지휘를 맡았다. 두다멜과 절친한 이들은 그가 여전히 차베즈의 ‘볼리바르주의’(편집자 주_남아메리카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을 따르는 것으로 남아메리카의 경제적·정치 주권을 회복하고, 국민의 윤리 교육 등을 지지하는 내용)를 옹호하며 엘 시스테마의 사상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두다멜은 이렇게 말했다. “엘 시스테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제게 주어진 책무, 남은 일생의 책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중을 위한 예술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2018년 이래로 차베즈의 뒤를 이은 괴짜 니콜라스 마두로(1962~)에게 배척받은 그는 고향의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두다멜은 ‘라라랜드’의 도시 LA에 엘 시스테마의 전술을 적용했고, 그의 LA 유스 오케스트라(Youth Orchestra Los Angeles, 이하 YOLA)는 음악 교육 및 사회적 결속의 선구자로 발돋움했다. YOLA는 라틴계 가사 직원들에겐 최저 시급을 마지못해 쥐여 주지만 두다멜의 선의에는 수백만 달러를 쾌척하는 기부자들 앞에서 LA 필과 함께 공연을 펼친다. 여기서 음악적 캘리포니케이션(물질만능주의)의 제1법칙은 ‘상대적인 가치에 대해 절대 질문하지 말라’이다.
다시 돌아온 따뜻한 리더십
두다멜의 음악적 재능은 2004년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처음 알려졌다. 콩쿠르 우승 후 그는 경력 쌓기를 서두르지 않았으나,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은 그에게 열렬한 관심을 보냈고, 다니엘 바렌보임은 스페인어로 작성된 필수 철학서 목록까지 전달했다. 물론 두다멜이 그 목록의 서적들을 읽었다는 신호는 아직까진 없지만 말이다. 그는 장대한 개념에 흐트러지지 않는 본능적이고도 타고난 음악가로, 음악적 준비에 있어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악보의 어떤 지점에서 막혔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밤이고 낮이고 자신이 아는 모든 이에게 전화를 걸 사람이다.
그의 남다른 재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최상의 연주를 보여주지 못할 때조차 그들 자신이 뛰어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따뜻함과 활력이다. 두다멜의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기에 억양이 강하고 위트가 없음에도, 그의 대인 관계 기술은 경이롭다. 그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양과 타악기를 연주하는 문어를 지휘하며 할리우드의 벽을 부쉈다. 영화 ‘스타워즈’ 사운드트랙의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두다멜 추종자를 자처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자신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트랙의 지휘를 그와 계약했다. 번스타인의 후계자들로부터 최상의 가호를 받은 두다멜이니, 이러한 맥락에서 원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뉴욕 필 음악가들이 언급할 이름은 오직 하나였다.
그렇다면 하버드 대학 강연을 맡기엔 조금 부족한 영어와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이 판자촌 출신 사회주의자는 수많은 전임자가 실패했던 링컨 센터의 부흥을 이룩할 수 있을까? 두다멜은 공명 음향과 더불어 이전과 같은 금권정치가 아닌 바깥 도시를 향하는 디자인으로 뛰어나게 재건축된 공연장이라는 귀중한 이점을 가지게 됐다. 또한 자신의 요청에 모든 위험을 무릅쓸 음악가들의 호의를 손에 쥐었으며, 뉴욕의 문화 엘리트층에게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고려된 적이 없었던 무수한 라틴계 사람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에 그의 발자취를 각인시킬 수 있을지, 번스타인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있을지는 모두 음악에 달려있다. 생기 넘치는 말러리안 두다멜은 LA에서 쇤베르크나 다른 어떤 근대 작곡가의 곡을 지휘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하게 완성된 존 애덤스와 앤드루 노먼의 작품에 도전했다. 새로운 작품은 시간을 들여 배워가는 그에게 뉴욕은 깜짝 놀랄 만한 무언가를 기대할 터이니, 그의 지휘봉이 첫 번째 박을 연주하기 전까지는 말을 삼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현재로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뉴욕 필이 이 절호의 기회에 제대로 된 지휘자를 골랐다는 사실 뿐이다.
번역 evener
글 노먼 레브레히트
영국의 음악·문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텔레그래프’지, ‘스탠더즈’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블로그(www.slippedisc.com)를 통해 음악계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한다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의 영어 원문을 함께 제공합니다 본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It has been 65 years since the New York Philharmonic last appointed the right conductor, so long ago that hardly anyone alive remembers it except as legend. The ensuing vacancy of imagination has meant that every well-intentioned baton since then has been held up against Leonard Bernstein’s and found wanting in every department – music, human and media. Bernstein transformed the Philharmonic. He imported symphonies by Mahler, Nielsen and Ives, promoted living American composers, reached out to young audiences as no maestro before or since and used the power of television to proselytize orchestral music across a mass audience. It helped that most viewers knew that him as the super-cool composer of West Side Story. Bernstein was music director for a record 11 years. His successors were doomed by comparison. Pierre Boulez was too ascetic, Zubin Mehta superficial, Kurt Masur heavy weather, Lorin Maazel boring, Alan Gilbert half-baked and Jaap Van Zweden an accounting error. Under the dull Dutchman, formerly earning $5 million a year at the Dallas Symphony, the NY Phil profile drifted from peripheral to provincial. Who, beyond midtown Manhattan, even knows the Philharmonic exists? Could a Hollywood conductor or avatar possibly change that? Last month’s annunciation of Gustavo Dudamel as saviour of the New York Philharmonic has excited no fewer than nine, count them, hyperbolic features in the New York Times, an uncritical outpouring of desperate expectation. They long for a Messiah in Manhattan. Dudamel is 42, the same age as Bernstein on accession, but with a shorter roll of credits. Bernstein had composed two symphonies and a Broadway hit, conducted Covent Garden and La Scala and had his passport nullified by the State Department for suspect political views. Dudamel has, up to this point, held just three jobs – an apprenticeship with Sweden’s Gothenburg Symphony, 17 lively years at the Los Angeles Philharmonic and, latterly, at the Opéra de Paris, where he has yet to make a mark. Venezuelan by birth and fervour, he was groomed in El Sistema, a state musical hothouse devised by the Marxist Hugo Chavez regime to redeem children from poverty by teaching them to play an instrument. Dudamel was the poster boy of this propaganda machine, its global ambassador and true believer. In 2013, he wept at Chavez’s death and conducted at his funeral. Those close to him say he still upholds Chavez’s ‘Bolivarian socialism’ and remains loyal to the ideals of El Sistema. ’It is a symbol of our country – beautiful,’ he has said. ‘If I have a commitment, if I have something that I will care for in my life, it is this, art for the people.’ Ostracized since 2018 by Chavez’s successor, the crackpot Nicolas Maduro, he yearns for regime change back home while making more of a mark on the world map. In Los Angeles he adapted the Sistema playbook to La La 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