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22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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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듣다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음악으로 써 내려간 긴 서사시

©Nintendo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도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입니다. 2017년에 출시하자마자 그 해 모든 게임 시상식을 휩쓸었던 바로 그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줄거리와 음악을 추적해봅니다. (2018년 2월 한국 발매)

 

왕국을 위협한 대재앙

게임의 배경은 왕족과 기사, 몬스터 등이 존재하는 가상의 왕국 ‘하이랄’입니다. 하이랄 왕국에는 고대로부터 한 이야기가 대대손손 내려져 왔습니다. 언젠가 어둠의 힘을 가진 ‘재앙 가논’이 부활하여 하이랄을 습격하는 데, 성스러운 힘을 가진 공주와 어둠을 몰아내는 검을 지닌 기사가 이를 물리친다는 내용이었죠. 예언에 적힌 공주와 기사는 바로 이 게임의 주인공인 ‘젤다’와 ‘링크’였습니다. 하이랄 왕국 사람들은 이러한 전설을 믿고 재앙 가논의 부활을 차근차근 대비합니다. 다만 젤다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언에 따르면 젤다는 성스러운 힘을 가져야 했지만, 정작 젤다는 성스러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힘에 관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던 중, 재앙 가논이 갑자기 부활합니다. 예상보다 강력했던 재앙 가논의 힘은 하이랄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선택받은 용사 링크라 할지라도 대규모 몬스터 군단에는 역부족이었고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죠. 링크가 몬스터의 공격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그 순간, 젤다는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성스러운 힘을 발현합니다. 젤다는 기절한 링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재앙 가논을 홀로 막으러 갑니다.

©Nintendo

이 이야기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게임에 포함된 두 주인공과 하이랄 왕국의 과거이며, 왕국이 멸망하는 과정과 성스러운 힘을 찾기 위한 젤다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 이야기는 게임 속에서 18개로 파편화된 기억들을 찾아야 알 수 있으며, 이 기억들은 컷신(게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면으로,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없는 순간)으로 재생됩니다. 이 컷신에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작곡가들은 라이트모티프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18개의 기억 중 16번째 기억 ‘절망’이라는 제목의 컷신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컷신은 재앙 가논이 하이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 때, 젤다와 링크가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는 장면입니다. 젤다는 자신이 성스러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이 모든 재앙을 초래했다며 자책합니다. 여기서는 반음계로 상승하는 베이스 선율 위로 젤다를 상징하는 ‘젤다의 자장가 테마’가 현악기의 트레몰로 기법으로 제시됩니다. 불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죠. 이후 빗소리와 함께 잔잔한 피아노로 다시 ‘젤다의 자장가 테마(Zelda’s Lullaby)’가 흘러나오는데, 원래 선율의 리듬을 크게 변형시킨 형태로 등장하여, 이미 온몸이 진흙과 비로 만신창이가 된 젤다를 표현합니다. 컷신이 끝나는 마지막 20초엔 하강하는 선율의 음악이 젤다의 통곡과 함께 흘러나와, 젤다의 절망을 상징합니다.

 

희미하게 이어지는 두 주연의 음악

두 주인공이 재앙과 싸우고 100년이 지난 후,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링크는 어느 한 동굴에서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들리는 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 바로 젤다의 목소리였죠. 자신이 100년 동안 하이랄 성에서 가논을 봉인하여 최악의 피해는 막았지만, 이제 곧 자신의 봉인을 해제하고 재앙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긴급한 메시지였습니다. 이제부터 링크, 즉 플레이어는 젤다를 구하고 100년 전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재앙 가논을 토벌하는 모험을 떠나야 합니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을 하다보면 점묘주의를 연상시키는 희미한 선율의 피아노 음악을 주로 들을 수 있습니다만, 특정한 인물을 상징하는 라이트모티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말을 타게 되면 배경음악이 바뀌면서 특정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낮에 말을 타고 달리면 말발굽 소리를 모방한 피아노 반주 위에 젤다를 상징하는 ‘젤다의 자장가 테마’가 아련한 현악기로 연주됩니다. 그리고 밤에는 용사 링크를 상징하는 ‘링크의 테마(Main Theme)’가 비슷한 피아노 반주 위에 현악기로 연주되죠. 말을 타고 황폐화 된 하이랄을 가로지르며 젤다를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달리는 링크, 그리고 그 모습 뒤로 흘러나오는 아련한 젤다의 테마와 링크의 테마는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간으로 상징된 음악

©Nintendo

링크는 마침내 재앙 가논이 봉인된 하이랄 성에 도착합니다. 수많은 위험과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는 하이랄 성 입구에서부터 성의 본관까지 가야만 하죠. 하이랄 성의 음악은 거대한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이루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이는 링크의 이야기가 종장에 다다랐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하이랄 성의 음악에는 여러 가지 라이트모티프가 복합적으로 등장합니다.

하이랄 성의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음악은 ‘링크의 테마’ ‘젤다의 자장가 테마’ ‘가논의 테마(Calamity Ganon)’ 등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테마를 주로 사용한 것은 본 게임의 줄거리를 움직이는 주요한 인물들이 동시에 모여 있는 게임의 마지막 무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죠. 흥미로운 것은 링크가 하이랄 성의 건물 밖에 있을 때 플레이어는 ‘링크의 테마’를 주로 들을 수 있고 하이랄 성의 건물 안에 있을 때는 ‘젤다의 자장가 테마’를 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성 바깥에서 고군분투하며 가논에게 달려간 링크와 성 안에서 재앙을 간신히 봉인하고 있었던 젤다를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앙의 끝

©Nintendo

링크는 치열한 싸움 끝에 재앙 가논을 무찌르고 젤다를 구출합니다. 재앙으로부터 풀려난 젤다는 성스러운 힘으로 재앙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리죠. 이 게임의 백미는 플레이어가 모든 기억을 찾은 후에야 볼 수 있는 에필로그 컷신에 있습니다. 어둠의 힘을 몰아낸 후 평화가 찾아온 하이랄의 평원을 젤다와 링크가 함께 걷습니다. 세상은 이미 파괴됐지만, 행복하고 멋진 하이랄을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젤다는 링크를 돌아보고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 컷신에서 ‘젤다의 전설 시리즈’ 전체를 상징하는 ‘링크의 테마’가 흘러나오는데, 여기에 뜬금없는 음악 하나가 절묘하게 등장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절망’이라는 제목의 컷신에서 젤다의 절망을 상징했던 그 음악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일까요? 젤다가 통곡할 때 등장했던 절망의 음악이 젤다가 희망을 품고 링크를 향해 웃을 때, 흘러나오는 희망의 음악이 됐습니다. 이는 링크가 젤다를 구원하고 절망적인 세계에 희망을 다시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치밀한 연출입니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은 그야말로 음악으로 써 내려간 서사시입니다. 방대한 규모의 세계를 누비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 숨겨진 음악들을 속속들이 찾아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죠. 이번 5월 12일, 6년 만에 출시되는 후속작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에는 어떤 섬세한 연출과 음악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본 기사의 내용은 닌텐도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창성

서울대 작곡과에서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으며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KBS 1FM의 PD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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