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프랑스 I 닉슨 인 차이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22일 9:00 오전

WORLD HOT_FRANCE 1

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파리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 3.25~4.16

역사를 완성하는 음악의 화룡점정

 

두 정상의 엇갈린 대화를 테마로 만든 이 오페라에는

정치를 배제한 유머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E. Bauer/OnP

미국 대통령 닉슨의 1972년 중국 방문을 다룬 존 애덤스(1735~1826) 작곡의 ‘닉슨 인 차이나’는 피터 셀러스 연출로 1987년 휴스턴 오페라 극장에 올라 화제를 일으켰다. 파리에서는 1991년 MC93 극장에서 공연됐고, 2012년 샤틀레 극장에서 중국인 천시정(Chen Shi-Zheng) 연출로 소프라노 조수미가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역을 맡은 바 있다.

이번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의 수려한 지휘하에 토마스 햄슨·르네 플레밍 같은 스타 성악가들이 캐스팅됐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성 연출가 발렌티나 카라스코의 발탁은 과감했다. 그녀는 놀라운 창의성과 넘치는 유머로, 까다로운 파리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사와 인종을 고증하다

문제는 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픽션’이라는 점이다. 닉슨과 마우쩌둥의 정치 술법이 주된 플롯인데, 실제로 그들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대본가 앨리스 굿맨은 이 지점을 픽션으로 발전시켰다. “역사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픽션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토머스 햄슨의 말처럼, 큰 도전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르네 플레밍(1959~)과 토마스 햄슨(1955~)은 둘 다 닉슨(1913~1994)의 시대를 함께 살았다. 따라서 저마다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며 구상했다. 당시 닉슨의 부인 팻 닉슨이 입은 코트의 붉은색은 중국인에게 행운의 상징이자 역사적 요소로, 이번 제작에도 등장했다. 품위가 넘치는 귀부인임이 플레밍의 음색과 자태에서 잘 우러나왔다. 반면, 늘 식은땀을 흘리던 닉슨은 토마스 햄슨의 고상한 모습을 통해 더 미화된 것 같다. 작곡가 존 애덤스가 “토마스는 닉슨보다 더 섹시하죠”라고 언급할 정도이다. 존 애덤스는 “이 작품이 초연된 1987년만 해도 제2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것 같던 중국이 오늘날처럼 경제 부흥에 성공한 것을 보며, 그들의 저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고 이번 제작에 대한 소감을 부쳤다.

따라서 연출가는 기존의 틀만을 따르지 않은 채, 좀 더 영리한 해석을 제시해야 했다. 닉슨의 역사적 방문과 베트남전, 문화 대혁명 등의 기록과 사진들이 사용됐고,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처럼 1971년 중국과의 수교가 단절된 당시 두 나라의 냉전이 탁구 테이블 위에서 표현됐다. 연출가는 이 세 요소를 주요 무대 미술로 삼으며 익살스러움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한편 존 애덤스는 중국인 역할의 캐스팅은 꼭 동양인을 원했고, 총리 ‘저우언라이’ 역으로 바리톤 샤오멍 장, 마오쩌둥의 통역관 ‘낸시 탕’ 역에 야제 장, 마우쩌둥의 두 번째 비서 역에 닝 장,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역으로 캐슬림 김 등 주목받는 동양 성악가들이 무대를 섭렵했다.

 

탁구에 은유한 위선적 외교의 씁쓸함

©E. Bauer/OnP

1막은 전율이 느껴지는 합창 ‘인민들은 영웅이다’가 두다멜의 눈부신 지휘에 따라 울렸다. 닉슨은 사막 주변 공항에 도착하지만, 비행기나 계단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거대한 금속 독수리가 내려온다. 착륙의 장면을 독수리가 은유하며 움직인다. 붉은 카펫 위로 미국 팀, 즉 닉슨 부부와 국무장관 ‘키신저’가 등장하고 검은 코트를 입은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 포도빛 유니폼을 입은 ‘장칭’, 그리고 청회색 유니폼에 모자를 쓴 ‘마우쩌둥’의 비서들이 보인다. 양옆으로는 탁구대가 줄지어 자리 잡았다.

이어 닉슨과 키신저, 저주언라이와 마오쩌둥은 책으로 가득 찬 마오쩌둥의 도서실에서 만난다. 사무실이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가고, 그 아래 숨겨진 감옥이 보인다. 체제에 방해되는 저서를 불사르고 지식인들을 고문하는 곳이다. 그중 어느 바이올리니스트가 무섭게 심문당한다.

하지만 그들의 외교 대담이란 별것이 아니다. 닉슨은 ‘여기에 오게 되어 아주 기쁘다’는 인사치레, 마오쩌둥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을 보여주고, 키신저가 아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닉슨이 대만에 대해 말하면, 마오쩌둥은 ‘내무상과 말하라! 나는 키신저와 철학을 논하련다!’라고 답하는 등 서로 엇갈리는 질문과 대답이 탁구공처럼 오간다. 대본을 쓴 굿맨의 텍스트는 아주 감질난다.

연회 장면은 더 웃긴다. 근사한 차림의 등장인물들이 보이지만 연회장은 거대한 탁구장으로 변한다. 음악에 따라 탁구 장면이 빨라지기도, 늦어지기도 한다.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가 중국을 앞서자, 붉은 유니폼을 입은 마오쩌둥이 허겁지겁 등장해 키신저를 누른다. 이어서 치어리더들이 나와 마오쩌둥의 품에 안겨 승리의 포즈를 취한다. 외교란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가, 우습다.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리!’라며 이를 보는 저우언라이의 씁쓸함은 정곡을 찌른다. 연출에서 마오쩌둥과 닉슨·팻 닉슨, 키신저 등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역할에 사로잡혀 살지만, 오직 저우언라이는 이를 초월해, 다른 차원에 사는 캐릭터다.

 

캐슬린 김이 선보인 아리아의 스펙트럼

©Christophe Pele/OnP

2막은 ‘퍼스트레이디’ 팻 닉슨의 외출로 시작된다. 눈이 내리는 걸 기뻐하는 그녀는 붉은색 코트 차림으로 탁구 학교, 초등학교, 돼지 농장을 방문한다. 교실과 농장은 사진으로, 눈은 투명 줄에 걸린 하얀 탁구공으로 처리된다. 그물이 움직이면 눈이 떨어지는 듯하다. 르네 플레밍은 ‘이런 예언이 있다. 꿈과 같은 이 인생을 왜 후회하리!’라며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한다. 크림같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음색으로, 길고도 서정적인 아리아를 노래해 감동을 주었다. 붉은 용이 반려동물처럼 정겨운 눈빛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며 머리를 마주칠 때 더욱 그랬다.

그날 저녁, 마오쩌둥이 준비한 것은 아주 거대했다. 극장 계단에 청중이 꽉 차 있고, 중국 전통 차림의 어린 여자아이는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노예인 아이는 부자에게 쉬지 않고 채찍을 맞는다. 채찍 소리가 거대한 바스티유 극장 안을 울렸다. 이어서는 푸른 정글 영상이 비치고, 길 잃은 병사가 보인다. 비처럼 떨어지는 미사일, 폭탄….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저지르는 야만성이다. 그 가운데 이리저리 오가며 진두지휘하는 조그마한 여자가 보인다. 바로 장칭이다. 그녀는 붉은 공산당 국기를 들고 연단에 올라가 마오쩌둥의 붉은 수첩을 높이 들어 그 유명한 아리아 ‘나는 마오쩌둥의 아내!’를 부른다. 이 작품의 진정한 성악적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이다. 틀어 올린 머리에 안경을 쓴 장칭으로 분한 캐슬린 김은 온 힘을 다해 고음의 포르테를 폭죽 같은 비르투오소로 선사해 전율을 일으켰다.

3막은 1막에서 학대당하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나는 상하이 음악원 원장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투사된다. 진정으로 중국을 발굴하고 싶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다큐멘터리 영화 ‘마오에서 모차르트까지’의 한 장면이다. 탁구대가 넘어져 있고, 그 사이에서 마오 부부와 닉슨 부부는 아주 사적인 그들의 내면을 노래한다. 마오쩌둥은 하와이풍의 셔츠를 입었고, 장칭은 속옷 차림이다. 그들은 과거를 회상한다. 장칭은 마오쩌둥의 큰 윗도리로 몸을 가리며 ‘나는 아직 버틸 수 있다’를 부른다. 캐슬린 김은 전막과 전혀 다른 서정적이고 순수한 감성의 음악성을 보여주어 비평가들과 청중을 놀라게 했다. 그녀에게 쏟아진 갈채가 눈부셨다. 닉슨 부부는 파자마 차림으로 정권을 쥐기 전, 다리미질하던 그들의 평범한 과거를 노래한다. 다시 독수리가 등장하고 저우언라이와 용이 배웅을 나온 가운데 닉슨 부부는 돌아간다. 탁구대 위에서는 중국인들의 정신을 상징한 용 모자, 미국인들의 힘을 상징한 독수리 모자를 쓰고 서로 대립했지만, 팻 닉슨과 용의 헤어짐은 왠지 아쉬워 보였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거듭날까?

©Christophe Pele/OnP

흔히 존 애덤스를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정의하지만, 그의 음악은 표제에 중심을 두며 조성의 한계를 해체해나간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두다멜의 영리하고 미묘한 화성 감각은 이 작품을 현대음악에서 한 편의 고전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름 끼치게 흥분되며, 감칠맛 나게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다.

이 작품의 시사성은 ‘Has been’(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시제)인가? 그렇다면, ‘마크롱 인 차이나’는 어떤가. 최근 중국을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유럽인의 관점을 피력했고, 시진핑은 대만 문제에 우선을 두며 서로 엇갈린 대담을 주고받았다. 탁구로 은유 된 닉슨과 마오쩌둥의 만남처럼 말이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다.

 


INTERVIEW

소프라노 캐슬린 김

 

혁명가의 아내로, 히스테릭한 여인으로

 

캐슬린 김 ©Workroomk

공연이 끝난 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역을 맡은 소프라노 캐슬린 김을 만났다. 조용하고 고운 억양으로 소곤거리듯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이번 작품에 오른 소감이 어떤가.

10년 전 메트로폴리탄에서 피터 셀러스의 연출로 공연한 경험이 있다. 그 후 베를린 필 등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회 버전으로 많이 연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프로덕션은 색감도 다르고, 캐스팅·반응도 너무 좋아 기뻤다.

10년 전 이 작품 공연 당시 만났던 존 애덤스는 어땠나.

살아있는 작곡가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들은 ‘이 부분을 왜 이렇게 썼는지’ 질문할 수 없지만, 애덤스는 지휘를 하는 것만 봐도 그 의도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오쩌둥 부인인 ‘장칭’은 아주 고약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실존 인물이라 역할에 대해 깊이 공부하며 그녀의 삶을 요약한 책을 읽었는데, 그녀의 행동이 모두 마오쩌둥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 또한 한 여자였고, 이 점에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3막의 대본에서 그녀의 이런 면이 드러난다. 3막이 지루하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좋아하는 부분이다.

닉슨 역을 맡은 토마스 햄슨은 음악적으로 어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처음 공부했을 때는 아주 어려웠다. 멜로디가 화성과 상관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화음을 비껴가기 위해서 귀가 아주 좋아야 하고, 리듬도 마디마다 다를 정도로 자주 바뀐다. 지휘자도 이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 작품이다.

2막 끝까지는 연기만 하다가, 갑자기 고음의 포르테를 포함한 아리아를 불러야 했다.

이전 프로덕션에서는 2막 아리아 전까지 아예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출연하게 되어 힘들긴 했지만, 장단점이 있다. 이번에는 무대에서 먼저 몸을 풀고, 중간부터 아리아를 부를 때 목이 잠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씩 합창 부분을 따라 불렀다.

아리아 ‘나는 마오의 아내!’는 카랑카랑한 톤으로 히스테릭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는데, 노래보다 대화체에 가까웠다.

오페라는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이다. 대사 전달에 맞추다 보니 ‘예쁘게’ 화난 것을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화난 감정대로 표현해서 그렇게 들린 것 같다.

비평가들은 3막 아리아 ‘나는 아직 버틸 수 있다’에서 보여준 순수한 감각에 놀랐다. 벨칸토 창법에 뛰어난 것 같은데.

그 창법을 무척 좋아한다. ‘루치아 람메르무어’에서도 구사했었지만, 아직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익숙한 고음 퍼포먼스 때문에 하이 콜로라투라 레퍼토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연출가와의 교감은 어땠나.

1막에서 장칭 역이 약간 코믹하게 연출됐다. 한 역에서 여러 개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은 파리 오페라 극장장 알렉상드르 니프의 에너지가 잘 반영된 작품이라 그간 해온 버전보다 더 재밌었다. 캐스팅도 그랬는데, 이번 오페라는 토마스 햄슨과 르네 플레밍에게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특히 나이, 커리어로 보아 햄슨은 작품을 아주 잘 선정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운이 맞아 함께 하게 된 것이 기쁘다.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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