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 ‘신드롬’의 내면, 그의 ‘스물’에 대한 기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15일 9:00 오전

COVER STORY

 

‘신드롬’의 내면 그의 ‘스물’에 대한 기록

피아니스트 임윤찬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처음으로 털어놓은 ‘나의 음악, 나의 삶’

©Studio Possiblezone

그의 성장만큼이나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진화 중이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10대의 천재 피아니스트…. 한 때는 K-클래식 신드롬의 선두 주자로 BTS와 함께 ‘문화 강국’ 한국을 증명하는 아이콘으로도 등장했다. 모든 수식어는 그를 설명하는 하나의 조각이다. 오늘의 이 기사 또한 스물의 청년이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여전히 피아노를 향해 묻고 답하는 예술가 임윤찬의 조각 일부다. 아직, 우리는 그가 가진 음악의 완전한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더 많은 퍼즐 조각이 필요하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유니버설뮤직·밴 클라이번 콩쿠르

 

©Lisa Marie Mazzucco

연일 임윤찬을 두고 K-클래식을 연관 짓던 뉴스가 쏟아져 나오던 한바탕의 소란이 지난 후, 2023년의 계획을 차곡차곡 밟아가고 있는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그는 일본 산토리홀과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독주회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2월에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미하엘 플레트뇨프가 이끄는 도쿄 필하모닉과의 협연에도 함께 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오히려 고요한 폭풍의 눈처럼 임윤찬이 꺼내든 이야기는 침잠하고 있는 깊은 내면의 것들로 가득했다. 낯선 도시, 새로운 사람들, 처음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까지…. 고요한 임윤찬의 내면과 여전히 시끌벅적한 임윤찬의 외면은 부지런히 서로에게 적응 중이었다.

임윤찬(2004~)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신작 최고연주상·청중상을 수상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위그모어홀, 산토리홀에서 독주회를 가지는 등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의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쿠퍼 콩쿠르 3위,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 2위 및 쇼팽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9년에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금호문화재단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하였으며,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입학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를 사사하고 있다.

 

소문 속 ‘의심’과 ‘확신’

임윤찬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18년이었다. 예원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4세의 그가 미국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2위를 수상했다는 짧은 소식이었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사진과 함께 전달된 소식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의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잊고 있던 그의 이름은 금방 다시 들려왔다. 딱 1년 후였는데, 그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로 승전보를 전했다. 소문과 함께 그의 나이가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더 놀란 표정이었다. “열다섯 살. 최연소 우승이래요.”

우승 후, 그와 길지 않은 분량의 인터뷰를 서면으로 주고받았다. 그의 답변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순수한 중학생’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승인 손민수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 자신이 배운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던 것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해부터, 임윤찬의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생중계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에서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협연이 범상치 않았다는 소문(?)이 종종 그 소식을 뒷받침했다. 2022년 ‘금호라이징스타’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한재민과 나란히 반짝이는 빨간 조끼를 입고 듀엣 공연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도,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의 국립심포니 취임 연주회에서는 연신 오케스트라를 이끌 듯 손짓을 하는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2021년 독주회에서는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연주하며 엄청난 레퍼토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젊은 연주자가 패기가 남다르네!’라는 인상이 남았지만, 이 레퍼토리가 청중을 휘어잡는 그의 비장의 무기였다는 것을 안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한동안 모든 콩쿠르가 개최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엔데믹’으로 국면이 접어들며 공연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온라인 생중계 시장에 뛰어들었고, 관객들도 ‘방구석 콘서트’에 익숙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콩쿠르(2022)가 실황 중계를 시작했다. 시차 차이가 컸지만, 오랜만의 큰 콩쿠르 개최가 반가워서 오전 내내 전날의 참가자들 연주 영상을 차곡차곡 보기 시작했다. 31세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안나 게뉴시녜(2위)의 연주가 퍽 마음에 들었고, ‘한국인 참가자인 임윤찬이 우승하면 좋기야 하지!’ 하는 응원의 마음뿐이었다. ‘아직은 어린 10대의 피아니스트’라는 임윤찬에 대한 의심이 미처 사라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듣자마자 이마를 짚었다. 준결승에서 선보인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연주 영상을 허겁지겁 찾아보고 나서는 이마를 한 대 더 쳐야 했다. ‘이 친구, 거의 작두를 타는데?’ 하는 속된 표현이 단전에서 우러나올 정도였다. 불세출의 연주자가 탄생했다던 소문에 대한 ‘의심’이, 긍정의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임윤찬의 ‘작두를 타는 듯한’ 콩쿠르 파이널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국내외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그 연주 영상의 파급력은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임윤찬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다음은 이미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이 된 그와 나눈 대화이다. 그로서는 우승 후 처음으로 가진 긴 단독 인터뷰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의 비밀

연이은 연주 일정과 장거리 이동으로 아주 피곤할 것 같아요. 전문 연주자로 컨디션 관리도 무척 중요한 부분인데, 아직은 젊음으로(!) 이겨내고 있나요?

사실 컨디션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안 하는 것도 같고, 음악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번 파리행 비행기에서 ‘이대로 하다간 오래 살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제 인생에서는 제가 아닌 음악이 1순위라서 앞으로도 그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늘 눈을 찌를 만큼 긴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같아요. 긴 머리, 무대에서 불편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머리를 자를 시간이 없어서 계속 이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를 시간이 있을 때는 자르고 무대에 오르는데요, 연습하다 보면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그 상태 그대로 올라가게 돼요.

여러 나라를 바쁘게 움직이는 연주자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꽤 큰 즐거움일 텐데요.

파리에서는 달팽이 요리도 먹었어요. 처음에는 엄청 거부감이 들었는데 막상 한 입 먹어보니 아주 맛있더라고요.

기왕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김에,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가 있었나요? 동경해온 ‘문화의 나라’라든지…

런던과 암스테르담이요. 어릴 때부터 마음이 끌리는 곳이었어요.

두 곳 중 런던은 이미 위그모어홀 독주회를 하며 다녀왔겠군요.

위그모어홀에 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꿈이었어요. 연주 프로그램도 정해놨었죠. 1부에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2부에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그리고 앙코르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60을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영국의 르네상스 음악, 특히 윌리엄 버드, 오를란도 기번스, 존 불 등의 작곡가들을 동경해왔기 때문에 영국에 꼭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요.

꽤 구체적인 이유였네요! 암스테르담은요?

피아니스트 유리 에고로프(1954~1988)가 뿌리 내린 도시잖아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가인데요, 러시아인이었던 그는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이탈리아 연주 여행 중 망명을 택해 암스테르담에서 여생을 보냅니다. 그의 명연주는 거의 다 암스테르담 시기에 이뤄졌어요. 비록 불치병으로 인한 짧은 삶이었지만, 이 연주자의 위대함을 직접 그 도시에 방문하며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해외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콩쿠르 이후 IMG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움을 받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IMG 아티스츠는 어떻게 음악가와 소통해야 ‘껍데기만 남은 예술가’가 아닌 진정한 예술가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영감을 주는 공연들, 음악가로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공연을 소개해주고 있어 제게는 ‘베르길리우스’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신곡’에서 저승의 안내자로 선정할 만큼 위대한 시인이다).

 

얼핏 보면 검은 상자처럼 생긴 피아노는, 무한한 악기입니다. 피아노로 우주를 탐험할 수도, 대지의 신음을 들을 수도 있죠. 또 이 악기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꺼내 읽어 내려가는 젊은 시절의 연애편지였다가, 자연이 부르는 노래가 되기도 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독함도 느낄 수 있죠. 인간의 모든 생과 자연의 위대함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담깁니다. 그리고 제가 피아노로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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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 Park

건반 위의 손

흔히 피아니스트의 손은 클수록 좋다는 인식이 있어요. 물론 윤찬 씨도 큰 편이겠지만, 크다기보단 골격이 두꺼워 튼튼한 장점을 가진 손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어요.

저는 제 손에서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걸요. 둔하고, 또 섬세하지도 않아요. 특히 일어나자마자 피아노를 쳐보면, 정말 아무 음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한심한’ 손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하. 모든 피아니스트가 공감하는 부분이겠네요. 그래도 피아노라는 큰 악기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체격 조건도 중요할 텐데요.

음악가는 마음과 귀로 연주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체격 조건이 좋다고 진정한 음악가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바로 앞에서 제 손에 대해 한참 푸념해놓고서 이어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어떤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든, 좋은 음악가가 되는 데에는 장점도, 단점도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본격적인 연습 전 손을 잘 풀기 위한 루틴 같은 게 있나요?

예전에는 하농 스케일(프랑스 피아니스트이자 교육가 샤를 루이 하농이 만든 연습법)을 연습한다고 답변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에도 스케일 연습을 하는데,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다른 조성으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왼손이 내림 가단조의 스케일을 연주하면, 오른손으로는 올림 다장조 스케일을 동시에 치는 식으로요. 손을 푼다기보다는 머리를 쓸 수 있는 연습을 위해서예요.

June 10, 2022. Yunchan Lim from South Korea performs in the Semifinal round in the Sixteenth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n Bass Performance Hall in Fort Worth, Texas. (Photo by Ralph Lauer)

타건 방식에 대해서도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었어요. 손과 손목이 늘 건반에 가깝게 내려와 있고, 강한 타건일수록 손이 튕기듯이 높이 올라오는 제스처가 자주 보이더라고요.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나요?

연주할 때 제 움직임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요. 저는 손민수 선생님께 ‘어떻게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요. 대신 어떻게 음악을 대하고 만들어갈지, 무엇을 탐험할지 배웠죠. 단지 연습하는 그 순간, 음악을 만들어 나갈 뿐입니다. 완벽히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요.

윤찬 씨 연습 방식이 궁금한 독자들도 무척 많을 거예요. 대단한 비법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꽤 많은 분이 ‘어떻게 연습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도 위대한 음악가들의 연습 방법이 늘 궁금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분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라도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올해 손민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책 한 권을 읽고, 마음에 답을 얻었어요. 위대한 음악가들의 연습 방법, 그리고 제 연습 방법을 말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떤 책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윤찬 씨가 읽고 있다고 말한 책은 늘 화제가 됐잖아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요. 깨달음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색하고 고민해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제가 동경하는 사람의 가르침으로는, 깨우칠 수 없죠. 저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족한 사람이라 제 방식을 답변하기 조심스러울 뿐더러, 혹시나 누군가가 이 답에 영향을 받을까 두렵긴 하지만… 결국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하여 나는 오랜 시간을 허비해왔고, 아직도 그 배움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네. 참으로 우리가 소위 ‘배운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하네. 오, 친구여. 단 하나의 깨달음이 있을 뿐일세. 그것은 어디에나 있네.”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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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Studio Possiblezone

 

임윤찬(피아노)/홍석원(지휘)/광주시립교향악단

지난해 발매된 통영국제음악당 실황 음반(DG)이 5월에 LP로 발매된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 수록되어 있다.

 

임윤찬의 2023/24 시즌은?

먼저 올해 초 있었던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 독주회에 대해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위그모어홀에 퍼진 순수한 마법이다.”

 

제임스 개피건/뉴욕필하모닉

5월 10~12일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펀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미하엘 잔덜링/루체른 심포니

6월 2일 스위스 엥겔베르그홀

6월 28일 롯데콘서트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정명훈/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10월 12일 메종 드 라 라디오

슈만 피아노 협주곡

 

정명훈/뮌헨 필하모닉

11월 15·16일 이자르 필하모니

11월 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카네기홀 ‘피아노 비르투오소 시리즈 – 임윤찬’

(피아노 비르투오소 시리즈 라인업 |

다닐 트리포노프·베조드 압두라이모프·이매뉴얼 액스·조성진)

2024년 2월 21일 카네기홀

쇼팽 연습곡 Op.10·25 외

 

클라우스 메켈레/파리 오케스트라

2024년 3월 6·7 파리 필하모니 피에르 불레즈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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