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일본의 피아노계를 잇는 마사야 카메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8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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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마사야 카메이

전성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이혁과 함께 롱티보 콩쿠르 공동 우승을 차지했던 이 젊은 일본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일본 클래식 음악 시장은 자국 인재들의 국제 콩쿠르 입상을 자생적 스타 만들기의 기회로 선용한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준우승 후지타 마오(2019), 쇼팽 콩쿠르 준우승 소리타 교헤이(2021)는 수상 전후 일본 내 대우가 확연히 달라졌다. 2022년 롱티보 콩쿠르 피아노 부문을 이혁과 공동 우승한 2001년생 마사야 카메이(영문 성명으로 표기함. 성-이름을 따르는 일본식 표기로는 亀井聖矢(가메이 마사야)다)도 마찬가지다. 만다라트 계획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8가지 세부 목표와 64가지 실행 계획을 작성하는 계획법)를 실천하며 고시엔(고교야구선수권대회) 유망주에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솟은 오타니 쇼헤이처럼 카메이의 로드맵은 치밀하다. 2019년 일본 음악 콩쿠르, 2022년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롱 티보 콩쿠르를 우승하고, 같은 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승에까지 오르는 과정은 본인이 대외에 목표로 밝히는 ‘2025년 쇼팽 콩쿠르 우승’에 맞춰져 있다. 일본인 연주자의 한국 공연 흥행은 늘 어렵지만, 금호문화재단과 통영국제음악재단은 국적과 관계없이 카메이의 음악성에 주목했다. 카메이가 5월, 금호아트홀 연세와 통영국제음악당 독주회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내한 독주회 프로그램 구성을 보니, 부소니와 쇼팽에서 고난도 기교를 요구하는 점은 지난해 발매한 앨범 ‘Virtuozo’(SMM itaku)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 독주회에서 기대하는 최고의 가치는?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작품에 담긴 역사적 맥락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가식 없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으로 연주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프로그램 구상에서 비르투오소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콩쿠르와 앨범, 공연에서도 ‘라 캄파넬라’나 ‘마제파’ 같은 초절 기교곡을 즐겨 배치했다. 초절 기교가 클래식 음악 작품에서 내포하는 진정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걸작은 단순히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해 고난도의 기교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곡가들은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미지가 있고, 이를 피아노로 온전히 표현하려는 수단으로서 기교가 필요하다. 단순히 음표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진정한 비르투오소를 만들진 않는다. 모든 기술을 손에 익히고, 그 기술들을 사용해서 피아니스트가 전해야 할 것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 있는 결과를 향한 믿음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배웠고, 중학생 때는 탁구부에도 가입했다. 정규 교육에서 클래식 음악 영재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가 가장 좋았다. 피아노가 삶의 중심이었지만, 부모님께서 스포츠를 포함한 여러 경험을 하길 권유하셨다. 축구와 탁구를 선택했던 건 손을 다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것 외에 음악사와 음악이론을 다각도로 공부하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과에 들어가기를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연주가 분명하고 기백이 넘쳤다. 본인이 사사한 스승들은 단순히 피아노가 사운드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편이었는데, 자기 확인에 익숙한 편인가?

머릿속에 음악에 대한 확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종종 상상 속의 소리를 연주하는 데 몰두하다 실제 소리에서는 풀어져 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연습 과정을 기록하며, 내 이상과 다른 부분은 교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릴 때 익힌 손가락·손·팔의 움직임과 근육 사용 방식은 지금 어느 정도 유효한가?

초등학생 시절의 스승님은 내가 성장하기 전에 안 좋은 연주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터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 터치에 대해 익힌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하세 마사이치 선생은 브루노 레오나르도 겔버(1941~,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거장의 품격을 갖춘 대가’라는 평을 받았던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의 제자였다. 그는 강력함과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음색으로 나를 안내해 주셨고, 덕분에 망설임 없이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연습 때 느끼는 사운드와 관중이 없는 리허설, 관객이 들어찬 공연장에서 느끼는 사운드에 큰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를 줄이려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나?

작은 방에서 연습하면서 찾은 이상적인 소리를 내는 방법이나 터치만으로는, 큰 홀에서 풍부한 소리를 내는 게 어렵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경험을 쌓으면서 피아노 악기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보다 홀에서 반사되는 음향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음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가락에 집중하기보다는 귀로 들으며, 유연하게 터치를 바꿀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년에만 세 개의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고, 두 대회를 우승했다. 경연에서 희망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정신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나?

성격이 낙관적이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는 편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결과에 대해서는 비관하지 않으며, 약점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로 생각한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는 피아노일 텐데, 어릴 때부터 지휘법·작곡을 공부 중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을 제외하면 피아노와 지휘, 작곡에 모두 성공한 음악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분야에 집중하기보다 다방면에 관심을 두는 행보가 앞으로 계속될까?

어려서부터 작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주하는 것을 즐기며, 작곡된 작품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고전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도 그렇듯, 고전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 위해 연구된다. 작곡가로서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독창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곡을 계속하고 있다. 언젠가는 가치 있는 것을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5년 쇼팽 콩쿠르 참가가 기대된다. 경연에서 우승을 목표로 삼았는데 대회 전까지 쇼팽 레퍼토리를 어떤 방식으로 늘릴 것인가?

음악은 언어와 같아서, 아무리 머릿속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결국에는 감각이 중요하다. 쇼팽에 정통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거나, 쇼팽이 살았던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많은 연주를 해내면서 자연스럽게 ‘쇼팽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콩쿠르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결과가 본질은 아니다. 그 공부 과정이, 내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이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사진 금호문화재단

 

마사야 카메이(2001~) 2022년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3위 수상, 롱티보 콩쿠르에서 공동 1위와 청중상·평론가상을 수상했다. 도쿄 필하모닉·NHK심포니 등 일본 대표 악단과 협연했으며, 교육·문화·체육·과학·기술 장관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일본의 젊은 피아니스트다. 지난해 산토리홀 독주회 데뷔가 매진됐고,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와의 듀오 콘서트는 5천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마사야 카메이 피아노 독주회

5월 18일 금호아트홀 연세, 5월 2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바흐 ‘샤콘느’(편곡 부소니),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라벨 ‘밤의 가스파르’, 리스트 ‘노르마 회상’

 


COLUMN

일본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는 누가 있을까?

일본의 서양 건반악기 역사는 16세기,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데 하비에르(1506~1552)가 미사용 클라비코드를 반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887년, 시즈오카 소학교에서 의료기 수리공 야마하 도라쿠스(1851~1916)가 일본 최초의 풍금을 제조했고, 1889년 ‘야마하 풍금제작소’가 설립되면서 일본은 20세기 피아노 악기 시장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야마하 풍금 제작 풍경

1889년, 문부성에서 파견한 유학생을 미국으로 보냈고, 고다 노부(1870~1946)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익힌 것이 일본 피아니스트 계보의 시작이다.

1937년, 미와 카이(1913~2011), 하라 치에코(1914~2001)가 쇼팽 콩쿠르에 출전하면서 콩쿠르를 향한 일본인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다나카 기요코(1932~1996)가 1955년 쇼팽 콩쿠르 10위에 올랐으며, 1965년 나카무라 히로코(1944~2016)가 4위에 오르며 일본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1964년 제18회 도쿄 올림픽은 일본이 서방과의 격차를 줄이는 계기였다. 일본은 1970년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와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1948~)가 각각 미국과 유럽에서 거둔 성과로 달라진 위상을 확인했다. 우치다는 1970년 쇼팽 콩쿠르 준우승·1975년 리즈 콩쿠르 우승으로 1970년대 후반 이후, 아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서구 클래식 시장의 핵심 연주가로 부상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일본은 레이블을 통해 해외 유학파 연주자들을 내수 시장에 알린다. JVC·킹레코드·도시바 음악 EMI 레이블로 알려진 구마모토 마리(1964~), 고야마 미치에(1959~) 등이 그 예다. 1990년에는 쇼팽 콩쿠르 입상자들이 이름을 남긴다. 요코야마 유키오(1971~)·다카하시 타카코(1964~)가 콩쿠르에 입상했으며, 2005년에는 세키모토 쇼헤이(1985~)·야마모토 다카시(1983~)가 공동 4위에 오른다.

이에 앞서 2002년, 우에하라 아야코(1980~)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일본은 고무된다. 이어 2011년 노부유키 쯔지이(1988~)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9년 후지타 마오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근까지도 일본인 콩쿠르 입상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무기와 게이고(1993~)가 3위를 차지했으며, 같은 해 쇼팽 콩쿠르에서 소리타 쿄헤이(1994~), 고바야시 아이미(1995~)도 동반 입상했다. 다가오는 2025년, 일본은 우시다 도모하루(1999~), 다카기 료마(1992~), 마사야 카메이의 쇼팽 콩쿠르 선전을 기대한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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