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47년 동행에 마침표를 찍는 세계 최정상 현악 4중주단
에머슨 콰르텟
네 개의 음률에게 작별을 고하다
이제껏 ‘만남’을 앞두고 있는 음악가와 예술가를 주로 다루던 ‘객석’의 커버스토리는 이번 호에 ‘이별’을 다룬다. 47년이란 긴 시간을 품고 온 에머슨 콰르텟이 해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리더 유진 드러커와 47년의 시간을 정리하며, 세월과 함께 변화해온 그들의 음악과 실내악단 살림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선배’ 악단의 은퇴 소식을 들은 한국 젊은 현악 4중주단도 이별의 전언을 띄우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총괄 임원빈 기자
Part 1. 리더 유진 드러커 인터뷰 _한정호
Part 2. 한국의 젊은 현악 4중주단을 만나다 _허서현·임원빈·이의정
——
©Studio Possiblezone
—————————————————————–
PART 1 INTERVIEW
“
우리는 젊은 콰르텟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성공을 거둘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서로의 헌신을 느끼며 그렇게 나아갔다. 우리 넷이 너무나 다르지만,
지속 가능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유머 감각 덕분이다.
”
유진 드러커(1952~)
컬럼비아 대학교·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몬트리올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하며 입지를 다졌다. 1976년 가을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우승자로 뉴욕에 데뷔했으며 1976년 에머슨의 창립멤버로 함께해오고 있다. 소설 ‘구원자(The Savior)’ ‘열망(Yearning)’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비올라
로렌스 더튼(1954~)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시작한 더튼은 이스트만 음악원·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비올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 하이페츠 음악원, 대관령음악제, 로마 실내악 페스티벌 등에 초청받아 왔다. 현재 뉴욕 주립대학교 스토니 브룩의 비올라와 실내악 전공 교수이자 로버트 멕터피 현악 전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이올린
필립 세처(1951~)
드러커와 함께 에머슨의 창단 멤버이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전 단원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현재 뉴욕 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의 석좌교수이자 클리블랜드 음악원의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첼로
폴 왓킨스(1970~)
BBC 심포니의 수석으로 활동했다. 사카리 오라모, 안드리스 넬손스 등과 무대에 올랐고, 멜버른 심포니, 노르웨이 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1997~2013년 간 내쉬 앙상블 멤버로 활동했고, 에머슨에는 2013년에 합류했다.
—————————————————————
세계 정상급 현악 4중주단의 초청 경비와 내역은 ‘우리가 왜 그들을 찾고 들어야 하는가’를 잘 대변해준다. 미국 동부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현악 4중주단이라면, 음악가 4명과 첼로용 총 5석의 직항 비즈니스 항공권이 필요하다. 2023년 비성수기 기준 인천-뉴욕간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은 약 850만 원. 첼로를 놓을 좌석은 때에 따라 정가를 받아서 앙상블 항공료만 약 4천 2백만 원이 든다. 서울 5성급 호텔 주니어 스위트룸급(1박 약 80만 원) 방 4개가 필요하고 5박을 머물며 서울 및 수도권에서 3회 공연을 한다면, 숙박료만 1천 6백만 원이다. 회당 개런티를 뺀, 항공과 호텔비만 약 6천만 원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간 업자가 자부담으로 현악 4중주단 흥행 공연을 주최하는 건 경제 관념상 미친 짓이다.
그래서 대기업 재단이나 공공 자금으로 운용되는 국내 저명 아트센터 등이 그동안 에머슨 콰르텟(이하 에머슨)의 내한 공연을 주로 주최했다.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친 에머슨 내한은 메세나 혹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내의 의욕적인 공연 기획자들의 경제 원리로는 도저히 데려올 수 없는 에머슨의 초청 과정을 소개한 본심은 이들이 ‘세계 최정상’이기 때문이다. 2008년 알반 베르크 콰르텟의 해산을 끝으로 현악 4중주단에 ‘전설적’이라는 이름을 떳떳하게 붙일 곳은 사실상 지금도 에머슨이 유일하다. 뉴욕을 거점으로, 바흐부터 베베른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또 음영이 풍부한 연주로 전 세계 실내악 애호가들과 음반 애호가를 매료시킨 에머슨. 그런 그들은 2023년 가을 뉴욕 공연을 끝으로 해산하며 음악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결성 47년을 정리하는 투어가 전 세계에서 진행됐고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네 차례 공연했다.
이름만 유지한 채, 원년 멤버가 은퇴하거나 사망해도 명맥을 이어가는 현악 4중주단이 있지만, 생로병사를 겪는 유기체처럼 현악 4중주단도 해산으로 운명을 다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알반 베르크 콰르텟처럼 에머슨의 선택은 후자였다. 연주가가 노년이 되면 기량이 쇠퇴하고 고집만 남아 이상하게 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에머슨은 “세월이 지나면 변화하고 사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입장으로 경력 후반기를 보냈다. 에머슨은 과거 연주를 좋아하던 이들이 2010년대 실연을 보고 실망하더라도 솔직하고, 정직하게 현재 모습을 노출하고자 했다.
에머슨의 과거 기록은 ‘객석’도 여러 차례 내한공연 기사와 신보 특집으로 꾸준히 다뤄온 바 있다. 이번 취재는 현악 4중주단을 40년 넘게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얼마나 어려운가에 초점을 두어 마지막 여정을 살피고자 했다. 현재 에머슨의 멤버는 바이올린 유진 드러커·필립 세처, 첼로 폴 왓킨스, 비올라 로렌스 더튼이다. 인터뷰는 리더 드러커와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1976년, 줄리아드 음악원 재학 중 창단
에머슨의 역사를 마감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각자 솔로 프로젝트와 교수 활동에 전념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맞다. 주된 이유는 교수, 실내악 연주자, 독주자로 개별의 프로젝트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다.
2021년 8월, 에머슨의 활동을 영구 중단하겠다고 알렸다. 공지 전까지 단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해산을 고민했는가?
2017년 11월이었던 것 같다. 유럽 투어 중에 해산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언제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고 발표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에머슨을 시작할 때 얼마나 활동하리라 생각했나?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성공을 거둘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할지 확신할 순 없었다. 앙상블의 경력이 점차 탄력을 받게 되면서 그룹에 대한 멤버들의 헌신을 서로 느꼈지만, 각각 개별적인 차원에선 향후 5년이나 10년 앞의 인생을 계획하기 어렵게 됐다.
1976년, 현악 4중주단으로 전문적인 활동을 시작할 당시, 멤버 모두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학 중이었다. 투어 일정 때문에 학교 수업을 놓쳐서 낙제하기도 했다는데.
엄밀히 말하면 낙제(fail)는 아니었다. 학칙상 기술적인 문제가 그렇게 알려졌다. 줄리아드 음악원 증명서에는 ‘현악 4중주 수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적혀있다. 당시 나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차 수강을 하고 있어서 일정 조율이 어려웠지만, 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에는 문제가 없었다.
1994년 내한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연주 여행을 떠나면 배고픈 동시에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교수의 입장으로서 학생이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에머슨처럼 투어를 나가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인가.
우리는 그 시절 젊은 콰르텟으로 공연을 시작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스토니브룩 음악대학 내 에머슨 콰르텟 연구소의 어린 친구들에게 가능한 학교 안에서 많은 공연 경험을 쌓도록 격려하고는 있지만, “먼저 학교 교과과정에서 좋은 성적 거두기를 바란다”고 하겠다.(에머스 콰르텟 연구소(Emerson String Quartet Institute)는 창단 40주년을 기념하여 2017년에 만들어졌다)
미국 음악학교에 이젠 실내악 수업이 필수 과목이 되면서 음악학도들이 현악 4중주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4중주단 생활만으론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 이런 구조라면 미국에서 건강한 현악 4중주단 탄생은 앞으로 매우 어렵지 않을까? 미국 실내악의 미래에 대한 당신의 전망은 어떤가?
미국엔 젊고 훌륭한 현악 4중주단이 확산 중이다. 번외 활동으로 각자 생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현악 4중주단으로 함께 일할 수 있으려면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 공립 학교에서 음악 교과가 우선시되고 교육 수준이 향상될 때, 현악 4중주를 좋아하는 미래 세대도 배출될 것이다.
롱런 비법은 존중과 유머 감각
음악 산업 종사자들은 에머슨의 롱런 배경을, “상호 간 기본적인 존중과 유머 감각” 때문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원년 멤버로서 이런 지적에 동의하나.
그렇다. 몇 년 동안 해산 관련 질문에 같은 답을 했다. 우리 넷은 너무나 다르다. 연주 스타일도 그렇고 개성도. 음악을 직업으로 지속하면서 발생하는 전문적인 도전에 대해 각각의 접근법이 아주 다르다. 만일, 젊은 콰르텟이 구성원들의 차이점에 갇혀 있거나, 문제 해결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에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일정한 성공이나 수입을 얻기 전에 콰르텟은 분열되기 쉽다.
현악 4중주단의 상호 신뢰를 훼손할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 현악 4중주단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개인 활동을 제한하는 규율에 대해 에머슨은 이해의 차이를 어떻게 좁혔나?
우리는 앙상블 운영비용 충당 문제와 재정적인 것에 관한 부분에 대해선 큰 이견 없이 일 해왔다. 구성원이 때때로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과 계약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DG는 당시 고안된 디지털 CD 문화에 걸맞게 참신한 현악 4중주단을 찾았는데, 관계자들이 먼저 에머슨에 관심을 표했나?
1980년대 중반까지 유럽 전역 공연을 담당한 독일 매니저 한스 디터 괴레가 DG 계약 체결에 도움을 줬다. 1987년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10여 년의 활동으로 어느 정도 콘서트 아티스트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리코딩 경력은 그 정도의 성공에 미치지 못했다. 결성 40주년을 기념해 2016년 DG가 52장 CD 박스를 출시한 것에 감사한다. DG는 여기에 올해 초 데카 골드 앨범과 피아니스트 키신과 협업한 프로젝트를 포함해 55장 CD로 우리의 마지막 시즌을 축하했다. 2010년 DG와 결별하고 소니, 데카, 데카 골드, 펜타톤 등 여러 음반사에서 녹음을 계속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알다시피 데카와 데카골드는 DG와 동일한 모회사 유니버설 클래식 소속이다. 얼마 전 프라하 공연은 체코 TV와 DG 협업으로 실황 촬영·녹음까지 함께했다. DG와의 오랜 인연이 마지막에 새롭게 이어진 셈이어서, 이 또한 기쁘게 생각한다.
멤버 교체의 시련에도 새로운 시대는 열렸다
현 멤버 이전에, 길레르모 피게로아(비올라), 에릭 윌슨(첼로), 데이비드 핑켈(첼로)을 보내고 새 멤버를 들였다. 새 멤버가 합류할 땐 어떤 느낌이 들었나? 멤버 교체 때 당신은 해방감을 느꼈나? 에머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틀에 갇힌 느낌을 떨치기 위해 멤버 교체는 불가피한 선택인가.
새 멤버가 오면 향후 작업이 늘 기대됐다. 수년간 연주한 레퍼토리에 대한 다소 다른 접근이 가능하리라 봤고,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새 4중주단이 공유할 경험을 기다렸다. 변화 때마다 그룹의 4분의 3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서, 연속성과 감각 측면에서 “다소 다른 에머슨 스타일”을 대중과 함께 했다. 세월이 지나면 적응과 함께 멤버 교체를 통한 진화가 공존해야 한다.
종전 멤버들과도 가끔 현악 4중주 이상의 편성에서 앙상블을 함께 하는데.
에릭 윌슨(첼로)은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아 에머슨을 떠났다. 나는 재정적 안정과 더욱 평화로운 삶이 함께하는 게 그에게 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2013년쯤, 데이비드 핑켈(첼로)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이 너무 바빠서, 고정된 앙상블 활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분명했다. 앙상블 탈퇴가 불가피해 보였다.
긴밀한 앙상블 감각과 민감한 리듬감이 에머슨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로 본다. 당신과 필립 세처는 제1·2바이올린 파트를 번갈아 연주하는 반면, 상당수 현악 4중주단이 제1바이올리니스트를 고정한다. 결성 초기부터 이 운영 논리에 동의하고 앙상블을 지속했나?
그렇다. 우리 둘은 처음부터 제1·2바이올린 역할을 교대로 맡기로 했다. 제1바이올린 역할만 하다가 보면 시즌에서 너무 많은 연습과 준비를 부담해야 한다. 우리는 한 시즌에 여러 레퍼토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역할을 균등하게 분담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봤다.
바이올린 파트의 저음과 고음간 이상적 조화에 1·2바이올린 역할을 바꾸기가 효과적인가?
그런 운용이 청중에게 추가적인 차원에서 음향적, 해석적 흥미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첼리스트만 의자에 앉고 나머지는 서서 연주했다. 지금은 전원이 앉아서 연주한다. 핑켈(첼로)이 첼로를 제외한 모든 주자가 일어서서 연주하자고 제안했다고 하는데, 공연장에 퍼지는 소리의 투영을 고려한 선택이었나. 아니면 에머슨이 음악을 유연하게 다루는 느낌을 시도하다가 나온 선택인가.
결성 25주년이었던 2001/02 시즌에 우리는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털리홀에서 시리즈 공연을 가졌다. 리모델링 전의 앨리스털리홀은 음향적으로 현악 4중주단에게 열악한 곳이었다. 특히 하이든 같은 고전주의 작품으로는 충분한 음향을 얻기가 어려웠다. 시리즈의 첫 프로그램이 하이든의 곡만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우리는 홀에 위치한 모든 청중에게 들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첼로만 앉히고 나머지가 서면 음향 방사(Sonic projection)가 개선된다. 우리는 이 혜택이 시리즈의 마지막 공연인 베토벤의 현악 4중주 Op.59와 버르토크의 작품까지 이어질 것이란 걸 알아챘고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 형태로 10년 이상 연습을 계속했다.
평상시, 시즌을 준비하면서 프로그래밍을 주도적으로 디자인한 사람은 주로 필립(바이올린)이었나? 멤버들이 프로그래밍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듣고 싶다.
필립은 주제에 맞춰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짜는 데 매우 능숙하다. 해산 발표 후 마지막 두 시즌 동안 우리가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걸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필립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가급적 많은 레퍼토리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고별 투어 ‘라스트 댄스’의 프로그램은 에머슨이 좋아하는 곡들로 가득하다. 이번 내한 투어 연주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거의 모든 연주곡이 내가 사랑하는 곡들이라 나에게도 행운이다. 한국 투어 곡 가운데 아끼는 세 곡을 꼽는다면 베토벤 현악 4중주 8번 Op.59-2 ‘라주모프스키’, 멘델스존 현악 4중주 1번 Op.12, 드보르자크 Op.105(대전·부천 공연)를 들겠다.
에머슨은 활동 중에 한국을 자주 들렀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994·2017)과 IBK챔버홀(2017), LG아트센터(2004·2010), 성남아트센터(2016), 롯데콘서트홀(2018)에서 연주했는데, 음향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
오래전 연주했던 곳도 있어서 음향을 명확하게 기억하진 못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공연장에서 받은 인상은 대체로 훌륭한 홀이고 실내악을 위한 장소로 보기엔 다소 큰 곳이었다. 가는 곳마다 열정적인 청중으로 가득 차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다. 특히 5년 전 음악극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를 공연한 롯데콘서트홀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에머슨이 방문한 실내악 공연장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을 미국과 유럽에서 한 곳씩 꼽는다면.
마음에 드는 장소나 관객을 택하는 건 늘 어렵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답하면서 곤란함을 겪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라 생각한다. 유럽에선 프라하 루돌피눔의 드보르자크홀,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모차르트홀을 선호한다. 미국에선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조던홀을 세계 최고의 공연장으로 본다. 뉴욕 앨리스털리홀 투어를 마친 다음의 현지 관객 반응이 우리를 짜릿하게 했다.
지난 시즌, 영국의 고별 투어는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로 마무리됐다. 에머슨은 거창한 몸짓이나 발언 없이 음악성만으로 위대한 작곡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런던 고별 공연을 마쳤다.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데, 당신이 전하고 싶은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가치가 있을까?
2022년 3월 런던 공연 전에 내가 작성한 성명서를 첨부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 사우스뱅크센터 공연의 프로그램북에 쓴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개요도 첨부한다.(해당 전문은 ‘월간 객석’ 홈페이지에 별도 게시 예정)
에머슨의 마지막 장을 앞두고
해산을 결정한 뒤, 마음만 먹었다가 결국 연주나 녹음을 못 하게 되어 후회하는 작곡가와 작품이 있지 않을까?
47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마노프스키의 작품을 조금 더 익혔다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하이든과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브람스의 현악 5중주와 현악 6중주곡을 녹음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같은 성공적인 그룹도 시간과 에너지, 기회 측면에서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에머슨 활동을 끝낸 다음,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소설은 계속 쓸 것인가? 에머슨 공연에서처럼 앞으론 다른 연주자 공연에도 프로그램 노트 작성 같은 글쓰기를 할 것인가?
그동안 작곡도 좀 했는데, 지난 3년간 바쁘게 해산 공연을 해왔으니 세탁기 건조기 모드처럼 잠시 쉬었다가 새로운 영감을 찾았으면 좋겠다.(웃음) 또한 소설 한두 권도 더 쓰고 싶다. 내 두 번째 소설 ‘열망(Yearning)’은 2021년 하반기 출간됐다. 세 번째 소설은 전염병 창궐 초반 1년 반 동안 완성했다. 이 책의 출판 대리인을 찾고 있다. 내 개인 연주라면 프로그램 노트도 계속 쓸 것 같다.
현시점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기성 현악 4중주단 가운데 에머슨을 계승할 팀이 보이나?
먼저 세인트로렌스(St. Lawrence) 콰르텟을 들고 싶다. 우리와 공부한 첫 그룹이다. 이들은 성공을 거듭했고 1998년부터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와 상주 단체로 재직했다. 비극적이게도 훌륭한 제1바이올리니스트 제프 너탈(1965~2022)이 지난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유럽에서 특히 성공한 아르테미스(Artemis) 콰르텟도 가르쳤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에셔(Escher)와 칼리도르(Calidore) 콰르텟도 가르쳤다. 이렇게 몇몇 앙상블을 자동으로 거론하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앙상블을 본의 아니게 무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해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에머슨은 클래식 음악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하는지를 몇 문장으로 남긴다면?
에머슨은 역동적인(dynamic) 연주 스타일을 고수했고, 애정을 가진 레퍼토리를 선택한, 그리고 조합하는 과정에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다. 우리는 두 편의 음악극과 음악과 시어를 결합한 여러 편의 실험적인 작품에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실내악의 적절한 영역으로 간주하던 범주를 능동적으로 초월했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사진 오푸스
Performance information
에머슨 콰르텟 리사이틀
5월 25일 오후 7시 30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2
퍼셀 샤콘 Z730(편곡 브리튼)
하이든 현악 4중주 29번 Op.33-5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5번 K421
베토벤 현악 4중주 8번 Op.59-2 ‘라주모프스키’
5월 26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멘델스존 현악 4중주 1번 Op.12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12번 Op.133
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Op.105
5월 2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퍼셀 샤콘 Z730(편곡 브리튼)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5번 K421
하이든 현악 4중주 29번 Op.33-5
베토벤 현악 4중주 8번 Op.59-2 ‘라주모프스키’
5월 28일 오후 5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멘델스존 현악 4중주 1번 Op.12
브람스 현악 4중주 3번 Op.67
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Op.105
BEST ALBUM
에머슨 콰르텟이 꼽은 베스트 음반
30장 이상의 앨범을 제작했고, 아홉 번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음악 역사에 남기고픈 앨범 세 장만 꼽아 달라는 어려운 질문 앞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택이 어려운데, 버르토크와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사이클(DG)을 꼽을 수 있겠다. 아니면, 베토벤 현악 4중주곡 사이클(DG) 대신 멘델스존 현악 4중주곡 사이클과 8중주(DG)를 넣을 수 있겠다. 연주 수준만 놓고 본다면, 베토벤보다 멘델스존 사이클이 더 일관적이었다. 우리가 녹음하고 편집한 최초의 레이어 위에 두 번째 레이어를 덧입히고, 멘델스존 현악 8중주를 추가하면서 기술적·음악적인 매력이 강화됐다.”
도이치 그라모폰 전집 (CD 55)
DG 4863260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DG E4470752
멘델스존 현악 4중주 & 8중주
DG 4795313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전곡
DG 4757407
——————
©Lisa Mazzucco
©Lisa Mazzucco
——————
유진 드러커가 에머슨의 뒤를 이을 앙상블로 꼽은 세인트로렌스 콰르텟
—————————————————
PART 2
한국의 현악 4중주단을 만나다
젊은 그들의 ‘꿈’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일구고 있는 현악 4중주단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에머슨의 ‘끝’에서, 그들이 앞으로 일구어나갈 새롭고 다부진 ‘시작’에 관해 묻고 들었다.
노부스 콰르텟
제1바이올린 김재영
에머슨 콰르텟이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드는 소회는. 시간이 정말 빠르다. 하겐 콰르텟과 함께 꼭 음반을 찾아 듣는 콰르텟이었는데, 한 시대가 가는 것 같은 섭섭함마저 든다. 이제 역사로 남는다고 하니 단단하게 버티던 축이 없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 오랜 시간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노부스 콰르텟도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팀이다. 팀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 왔나. 매 순간 앞으로에 대해 고민한다. 빠른 변화에 어떻게 맞춰나가야 할지 고민이 크지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자 당연한 과정이다.
요즘 노부스 콰르텟처럼 일찍이 현악 4중주단을 꾸리는 국내 연주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형태의 팀을 유지한 첫 사례이다 보니, 팀이 오래 유지되는 데에 여러 의미가 내포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후배 콰르텟들이 이 길을 따라올 수 있었듯, 앞으로도 그런 문을 열어나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
팀이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음악가로 살아가는 동안 여러 요소가 삶을 좌우하는데, 네 명의 음악과 삶에서의 합, 그리고 삶을 유지할 벌이도 버텨줘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만큼 콰르텟은 지속하기 힘든 장르다. 여러 유혹이 생길 때, 음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결국 나를 붙들어 준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
Performance information
노부스 콰르텟 리사이틀
6월 24일 오후 3시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베토벤 현악 4중주 6·8·16번
에스메 콰르텟
제1바이올린 배원희
47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선배 악단, 에머슨 콰르텟에게 인사를 전해달라. 어떤 현악 4중주단이든지 고별 무대를 갖는다는 것은 깊은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자신들만의 명확한 스타일과 족적을 남기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에머슨 콰르텟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에스메 콰르텟도 멤버들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과 지금의 소회가 다를 것 같은데. 처음엔 마음이 잘 맞는 연주자들이 함께한다는 설렘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동양인 단체로서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하는 우리의 음악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엄습해 왔을 때는 큰 위기였다. 긍정적인 생각과 많은 연습량으로 위기를 극복한 후 독자성을 갖추게 된 지금의 에스메가 더욱 자랑스러운 배경이다.
이상적인 콰르텟이란 무엇인가? 콰르텟은 항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함께 배를 움직이기 위해 누군가는 조타수가 되고, 누군가는 항해사가 되며, 누군가는 노를 저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들의 역할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민주적이되,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곧 포루투갈과 이탈리아 투어가 있는데, 세계 무대에서 에스메 콰르텟만의 음악적 색채로 현악 4중주의 매력을 전파하도록 노력하겠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에스메 콰르텟
Performance information
에스메 콰르텟 포르투갈 투어
7월 9일 카스트리스 상 베투 수도원
7월 10일 알코바사 수도원
리수스 콰르텟
제1바이올린 이해니
‘47년 역사’의 에머슨 콰르텟의 고별 무대의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 콰르텟으로만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기에 존경심이 들었다. 나 또한 아주 먼 훗날에 리수스 콰르텟과 함께 고별 무대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
콰르텟으로 활동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콰르텟은 흔히 결혼생활에 비유한다.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럼에도 서로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함께 가고 있다는 순간을 느낄 때 성취감이 든다.
모든 단원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다. 우리 역시 멤버 교체로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창단부터 함께했던 멤버가 팀을 떠난다고 했을 때,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새로운 멤버의 영입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리수스 콰르텟은 팬데믹 가운데 창단되었다. 위기를 이겨낸 만큼, 앞으로의 힘든 순간도 멤버들과 함께 이겨낼 것이다.
어떤 콰르텟으로 기억되고 싶나? 예전부터 현악 4중주단 선배에게 “함께 있기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콰르텟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또한 우리만의 색깔을 찾아 “리수스 콰르텟이라면 이 곡을 어떻게 해석했을까”하는 궁금증을 관객에게 남기고 싶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스테이지원
Performance information
리수스 콰르텟 리사이틀
6월 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베베른 현악 4중주를 위한 5개의 악장,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Op.132 외
아레테 콰르텟
제1바이올린 전채안
부천아트센터에서 에머슨 공연(5월 28일) 공연이 있는데, 그때 에머슨의 마스터클래스를 함께 한다고 들었다. 그들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영광이며 동시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현악 4중주라는 장르는 음악의 의미를 넘어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음악을 포함하여 더 넓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현악 4중주단 유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네 명이 모여서 리허설하고 동고동락하다 보면 항상 수월할 수만은 없다. 한 음, 한 마디를 연주해도 서로 소통이 되고 마음이 맞았던 순간의 연주는 다른 때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남다를 것 같다. 맞다. 리허설뿐 아니라, 평소에도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자 의견을 얘기하고 토론해서 오해를 최대한 줄이고, 존중하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가 되는 생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의 아레테 콰르텟은 어떤 모습이 될까?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매번 청중,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떳떳한 연주를 하고 싶다. 과정이 매번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지만, 소통과 존중을 쌓아 가면, 자연스럽게 좋은 음악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
Performance information
아레테 콰르텟 & 에머슨 콰르텟 마스터클래스
5월 28일 오전 11시 30분 부천아트센터 소공연장
멘델스존 현악 4중주 2번 Op.13
————–
©Jino Park
©Jeremy Kim
©Jino Park
—————————————————-
안녕..
에머슨 콰르텟
“
에머슨은 역동적인(dynamic) 연주 스타일을 고수했고,
애정을 가진 레퍼토리를 선택한,
그리고 그것을 조합하는 과정에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