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GAME&MUSIC_4
게임을 듣다
게임을 듣다
01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02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03 호그와트 레거시
04 모여봐요 동물의 숲
‘모여봐요 동물의 숲’
모일 수 없었기에, 모일 수 있었던 곳
슬슬 피서철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올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하러 갈 곳을 정하셨나요? 여러 후보지가 있겠지만 역시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곳은 섬이죠. 제주도, 오키나와, 몰디브, 괌, 사이판, 하와이… 이름만 들어도 어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작은 섬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등장하여 사람들이 일상을 떠나 머물렀던 섬입니다.
2001년에 출발한 ‘동물의 숲’ 시리즈는 플레이어가 귀여운 동물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이사를 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게임입니다. 꽃을 심어 집 주변을 꾸미거나 곤충 채집과 낚시를 하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죠. 최신작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은 기존 시리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전까지의 시리즈는 이미 존재했던 마을에 플레이어가 합류하는 방식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이주해서 직접 섬을 개척해 나가야 하죠.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그야말로 여름에 떠나는 휴양지를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면을 바다가 막고 있는 조그마한 섬에 들어가 일상과 단절되는 플레이어의 모습은 출근에 치이다가 하던 일을 잠시 제쳐두고 휴양지로 떠나는 우리네 모습과 닮았죠.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음악은 어떨까요?
우리만의 작고 편안한 섬
어떤 사람들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 게임에 음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음악이 몰개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곡가가 그렇게 의도하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제곡은 ‘모두 모여봐요’라는 보사노바풍의 음악인데, 플뤼겔호른·어쿠스틱 기타·우쿨렐레·봉고·더블 베이스를 사용했습니다. 플뤼겔호른은 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이지만 트럼펫 특유의 쨍한 음색보다는 오히려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호른의 음색에 가까워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게임 속 음악에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지배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작곡가 도타카 가즈미(1967~)는 빌보드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섬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고, 여기에 어쿠스틱 기타가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기타 코드 몇 개만 알면 누구나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할 수 있듯이, 기타는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익숙한 악기이며, 플레이어가 편안한 감정을 느끼기에 제격이죠. 한여름 밤의 캠핑장을 상상해보면 통기타를 치는 사람 주위에 모여 도란도란 같이 노래를 부르는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현실의 절망을 뒤엎은 가상 세계
서두에 피서지를 정하는 행복한 고민을 이야기했지만, 이는 불과 작년까지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돌연 찾아온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과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죠. 활기가 넘치던 거리는 생기를 잃었고, 복작이던 광장은 적막한 공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계 각국은 국경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현관문을 굳게 걸어 잠가야만 했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사회와 거리를 둔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모두가 힘들었던 이 시기에 발매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불티나게 판매됐고, 이를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기기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는 품귀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동물의 숲’ 시리즈는 ‘커뮤니케이션 게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일한 내용이 기승전결을 갖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맞게 집·마을 등을 가꾸고 그 결과물을 타인과 공유하는 게임이죠. ‘모여봐요 동물의 숲’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만든 섬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이 만든 섬에 방문할 수도 있죠.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시기에 이 게임은 함께 모일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 속, 사람들에게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한편 이 게임은 현실 세계의 시간이 반영되는 게임으로, 현실이 오전 10시라면 게임 속도 오전 10시입니다. 이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게임 속 시간대별로 서로 다른 특정한 음악이 흐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6시에는 오늘도 좋은 하루를 시작하라고 응원하는 것만 같은 음악이,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는 오후 1시에는 느슨한 기타 리프가 반복되는 음악이, 오후 6시에는 저녁노을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매번 똑같은 시간에 재생되는 음악은 게임 플레이에 있어 규칙성과 일관성을 부여합니다. 이는 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어쩌면 인물 간의 갈등도, 극적인 전개도 없는 이 게임은 그저 지루한 게임이라고 취급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2020년의 일상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언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될지,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지, 확진자 수가 급증할지…. 그야말로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난무한 일상에서 오히려 뻔하게 예측할 수 있는 규칙적인 게임 속 세상은 우리가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평소의 일상이었습니다.
간절한 부름, “모여봐요”
이 게임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마지막 퀘스트에 있습니다. 무인도에 이주해서 주민들을 불러오고, 다리를 만들고, 박물관 및 마을 안내소 등 여러 부대시설도 만들게 되면, 플레이어에게 무인도를 분양했던 주민 ‘너굴’이 인생 최대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인생 중 최고의 부탁이라니… 으리으리한 궁전이라도 지어달라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들어 본 너굴의 부탁은 바로 섬에 ‘K.K.’라는 음악가를 초대해서 라이브 공연을 열어보자는 것입니다. K.K.는 하얀 강아지로 게임 세상 속 인기 있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마을을 위해 플레이어가 가장 정성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사업은 음악가의 라이브 공연이었습니다. 이후 인기가수를 초대하기 위해 열심히 가구들을 배치하고, 나무도 심으며 섬의 평판을 올리면 토요일마다 K.K.가 섬을 방문하여 라이브 공연을 펼칩니다.
처음 K.K.가 섬에 초대받아 주민들 앞에서 기타와 함께 부르는 음악은 본 게임의 주제곡 ‘모두 모여봐요’입니다. 어쩌면 이는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간절히 듣고 부르고 싶었던 한마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금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죠.
어느덧 두려웠던 팬데믹으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는 지금, 이제는 게임 속 휴양지가 아니라 현실의 휴양지로 떠나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한번 불러봅시다. “모두, 모여봐요!”
※ 본 기사의 내용은 닌텐도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글 이창성
서울대 작곡과에서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으며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KBS 1FM의 PD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