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연과 만나다

한 편의 소설은 어떻게 공연으로 재탄생했을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7월 3일 5:58 오후

THEME ISSUE

LITERATURE

소설, 공연과 만나다

한 편의 소설은 어떻게 공연으로 재탄생했을까?

요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공연들이 꽤 무대에 오른다.
국내에서는 발레·뮤지컬·판소리가 이탈리아에서는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100개 이상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글 이의정·홍예원·이실비아

 

Part 1. BALLET 안무가 지우영 _이의정
발레 ‘레미제라블’ 7.13~16

Part 2. MUSICAL 소설가 이금이 _홍예원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 7.15~8.19

Part 3. PANSORI 소리꾼 이자람 _홍예원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6.29~7.2

Part 4. FESTIVAL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_이실비아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 6.7~7.23

 

THEME ISSUE ➊

BALLET ‘레미제라블’의 안무가 지우영
대사 없는 문학의 완성

 

지우영(1969~)
독일 하노버국립대에서 무용실기를 전공했다. 2003년 창작발레를 전문으로 하는 ‘댄스시어터샤하르’를 창단했으며, 같은 해에 한국발레협회 신인안무가상을 받았다. 현재 대한무용협회 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경계선지능 청소년을 교육하는 예룸예술학교·예하예술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안무가이자 한 단체의 단장, 대사를 직접 쓰는 작가이며, 리허설 무대를 가로지르는 연출가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문학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창작이 어렵지 않냐고 묻자 “머릿속에 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책을 줄줄 외던 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흐르는 머리를 가볍게 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렇게 20년 동안 20여 개의 창작발레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머리는 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방증으로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그가 창단한 단체 ‘댄스시어터샤하르’는 여태껏 시도되지 않았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전막 발레에 도전한다.

창작발레 ‘레미제라블’은 2020년 전막 초연 후 방방곡곡문화공감 사업을 통해 공연된 바가 있습니다. 이번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의 공연은 단독 공연이 아니었기에 짧은 분량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은 ‘댄스시어터샤하르’의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120분 분량으로 새롭게 제작했습니다. 이전 공연에서 사용했던 영상을 수정했고,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도 고민 중입니다. 출연자도 바뀌었죠. 이번 공연에는 무용수 스테파니 킴과 정민찬이 함께 합니다.

각각 코제트 역과 마리우스 역을 맡았죠! 두 무용수와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두 무용수 모두 아주 오래된 인연이에요. 정민찬은 오랫동안 우리 단체의 무용수로 있었죠. 이번에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2’에 참가했다는 소식에 응원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스테파니 킴의 경우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할 때 주역 무용수를 찾을 수가 없던 상황에서 급하게 만나 알게 됐습니다. 그때로부터 벌써 9년이나 알고 지냈네요.

다른 배역 역시 눈에 띕니다. 장 발장(강준하 분), 자베르(김남진 분) 외에 젊은 장 발장(윤전일 분), 젊은 자베르(한선천 분)라는 창작 역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이중 구도로 연출 방향이 짜이면서 역할을 분리해야 했습니다. 보통 ‘레 미제라블’의 시작은 장 발장이 빵을 훔치는 장면이나, 석방되고 은촛대를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그러나 이 공연은 소설의 끝인, 장 발장과 자베르가 하수도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사건의 순서를 뒤집은 이유가 있을까요?
소설을 무대로 각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작의 의도입니다. 저는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 ‘용서’라고 생각해요. 장 발장이 자베르를 보내주는 그 장면은 두 주요 인물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순간이고, 이를 강조해야 한다는 생각에 첫 장면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 외에 무대로 올라온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요?
원작의 색을 그대로 유지한 것도 있습니다. 중요하게 꼽히는 혁명 장면이 그렇죠. 여기에는 특별한 무용적 요소도 있는데, 관객 중에는 이 부분을 명장면으로 꼽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레미제라블’하면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어떤 곡이 연주되나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유명하다 보니, 그 음악을 기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음악을 사용할 수는 없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제 작품의 원작이 소설이기 때문에 춤에 영감을 주는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펠리시앵 다비드(1810~1876)의 작품을 사용합니다.


발레 각색에선 음악이 중요하다

이번 ‘레 미제라블’ 외에도 기존 작품을 각색하는 시도를 여럿 했습니다. 소설 ‘소공녀’도 선보였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동명의 발레로 제작했습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들기도 했죠. 각색을 시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다른 작품을 바라볼 때면 비틀고 싶어지는 지점, 궁금해지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은 “‘호두까기 인형’에는 왜 호두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런 질문에서 이야기가 점차 불어나죠. 항상 남성에게 구원을 손길을 기다리는 여성 대신 진취적인 여성상을 넣게 되고, 현대 인류를 위해 실험당하는 흰색 쥐를 추가하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호두파이의 나라가 나오고, 어린 클라라가 아닌 결혼한 성인 클라라가 등장하고, 악역인 쥐들이 흰색 실험용 쥐로 대체됐죠.

각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원작자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와 함께 보러온 어른이 더 감동하는 작품처럼요.(웃음)

그 과정에서 알맞은 음악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발레에서는 음악이 정말 중요합니다. 발레 공연을 관람할 때면 몸동작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음악에 집중해보는 것도 발레 ‘레미제라블’을 즐기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안무를 짤 때 음악의 감성을 더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무작들 중 창작발레로 태어났지만, 여러 장르가 담겨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한국은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이라는 장르 구분이 아주 엄격합니다. 이로 인해 장르 구분에 대한 인식도 깊게 박혀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를 탈피하고자 여러 장르를 인용했습니다. 댄스시어터샤하르에도 과반수가 발레 전공자이지만, 다른 전공자도 있습니다. 서커스를 하거나, 뮤지컬을 하는 단원들이죠. 발레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댄스시어터샤하르의 활동을 보다 폭 넓게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댄스시어터샤하르


원작 소설 속으로
소설 ‘레 미제라블’ 줄거리
빅토르 위고 저|정기수 역|48,800원|민음사

뮤지컬·영화로도 잘 알려진 ‘레 미제라블’은 민음사 번역본의 경우 5권, 2,40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이다. 원작에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19세기 초반·중반 프랑스 민중의 생활이 낱낱이 서술되어 있으며, 작가인 빅토르 위고(1802~1885)는 이를 몸소 겪은 인물이기에, 이 소설은 시대의 목격인 역사서의 역할도 한다.
주인공인 장 발장은 빵을 훔친 죄와 탈옥 죄를 더해 19년 간 옥살이를 한다. 석방된 후, 그는 또다시 교회의 은식기를 훔치지만 이를 용서한 미리엘 주교를 통해 교화된다. 전과 사실을 숨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장 발장을, 자베르 경감은 여전히 전과자로 취급한다. 각색된 여러 ‘레 미제라블’은 이 둘 사이의 사건을 주로 서술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주변인물인 팡틴·코제트·마리우스·테나르디에 부부·에포닌 등의 비참한 삶을 상세히 읽어볼 수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창작발레 ‘레미제라블’
7월 13~16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원작 빅토르 위고, 안무·연출 지우영
강준하(장 발장), 윤전일(젊은 장 발장), 김남진(자베르 경감),
한선천(젊은 자베르), 스테파니 킴(코제트), 정민찬(마리우스) 외

 

 

THEME ISSUE ➋

MUSICAL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소설가 이금이
무대 위에서 피어난 연대와 사랑

이금이(1962~)
1984년 새벗문학상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당선돼 작가로 등단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유진과 유진’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청춘기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망나니 공주처럼’ 등 50여 권의 책을 펴냈으며, 202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한국 후보로 지명된 바 있다.

태평양을 건너 포와(하와이)로 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자료 조사를 위해 미주 한인들의 이민사를 다룬 책을 보던 이금이 작가는 앳된 얼굴에 꽃과 부채, 양산을 들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과 마주했다. 그 순간, 작가의 머릿속에는 1920년대 사진 한 장에 운명을 걸고 하와이로 시집간 ‘사진 신부’, 하와이 이민 1세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무엇이 이들을 하와이 이민선에 오르게 했을까,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교과서에도 소개되지 않았던 씁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는 이금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4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 되었고, 그것을 이루는 문장에는 한 시대를 오롯이 살아 낸 여성들의 연대와 사랑이 담겼다.

“사진으로만 남은 인물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싶다”던 작가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됐다. 지난해 11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뮤지컬로 관객에 첫 선을 보인 작품은 8개월 만에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오는 7월,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다시 한번 관객을 맞이한다. 흑백 사진 속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와 연기로 살아 숨쉬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하 ‘알로하’)의 원작자 이금이에게 소설의 뮤지컬화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1984년 새벗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일찌감치 이야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동화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갖게 됐고요. 그 뒤로도 이야기 만드는 것은 제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기에 자연스레 꿈을 이룰 수 있었죠. 마음속에 들어온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고 싶은 강한 열망이 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알로하’에서 특별히 애착이 갔던 인물 혹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세 명의 ‘사진 신부’가 찍힌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버들, 홍주, 송화 이 세 인물에 가장 많은 애착을 느끼지만, 버들의 남편 ‘태완’에게도 큰 애정이 있습니다. 태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는데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스러져 간 한국인들을 표상하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태완이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첫사랑이 묻힌 묘지에서 개미가 꾄 도시락에 물을 부어 개미를 따라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이주노동자로서 태완이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이 응축된 장면이에요. 처음 이 장면을 썼을 때는 물론이고, 글을 퇴고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거칠 때마다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소설과 뮤지컬은 장르적 차이가 있는 만큼, 원작이 뮤지컬로 각색될 때 기대하거나 걱정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뮤지컬 제작팀을 믿었기에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어요. 오히려 제 소설이 어떻게 재해석 될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이 컸습니다. 다만, 뮤지컬 넘버도 대사 그대로 방언을 사용한다기에 말씨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살짝 걱정했는데요. 배우 분들이 대사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하셔서 기뻤습니다.

원작보다 뮤지컬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된 장면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소설은 버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다른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설명이 버들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었어요. 송화는 무당의 손녀로 태어나 가장 낮은 곳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지요. 하와이에서도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송화는 버들이 인간적인 성숙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저는 송화가 연대와 자매애를 가장 헌신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썼는데, 송화를 불쌍한 존재로만 여기는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제가 잘 표현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뮤지컬에서는 송화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며 제가 의도했던 부분들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특히, 송화에게 소설과 다른 서사를 부여하고, 그의 내면을 자세히 표현한 부분이 좋았어요. 송화가 자기 마음을 ‘구음’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여성들의 이야기

말씀하신 대로 ‘알로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요. 특별히, 여성 서사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서사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결정적인 이유는 세 명의 사진 신부가 찍힌 사진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이름조차 갖기 어려웠던 시대에 사진 한 장에 운명을 맡기고, 가족과 고향을 떠난 사진 신부들이 제게는 선구자이자 모험가로 보였어요. 그들이 고난 속에서도 자매애로 연대하며 삶과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알로하’는 백 년 전 조선을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주 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뮤지컬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지요.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하죠. 백 년 전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하와이로 갔던 한국인 노동 이민자와 사진 신부들은 이방인·소수자·경계인의 삶을 살아야 했어요. 현재 한국의 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무시와 혐오, 차별과 배제 등은 백 년 전 미주 한인들이 하와이에서 겪었던 일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뮤지컬 ‘알로하’를 통해 잊혔던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고,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들 역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운명을 건 선구자이자 모험가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근대 한국 여성들의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능력이 닿는다면 그 주제로 이야기를 더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전작보다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성장한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밤티 출판사·서울시뮤지컬단


원작 소설 속으로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줄거리
이금이 저|13,800원|창비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원작인 소설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사진 한 장에 운명을 걸고 하와이로 시집간 세 여성의 삶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하와이 이민선에 오른 ‘사진 신부’ 버들, 홍주, 송화는 고향에 있는 부모를 뒤로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 태평양을 건넌다.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혼인을 치른다는 설렘은 잠시뿐, 이들 앞에는 사진과 다른 모습의 남편과 사탕수수밭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된 이민 생활에도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은 기꺼이 서로 도우며 가족이 된다. 낯선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세 여성이 보여주는 사랑과 연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Performance information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
7월 15일~8월 19일 국립극장 해오름
원작 이금이, 연출 심설인, 음악감독 김길려, 안무 한선천
이예은(버들), 정은영(홍주), 서유진(송화), 조성윤(태완) 외

 


THEME ISSUE ➌

PANSORI 마르케스의 단편을 각색한 소리꾼 이자람
오래된, 새로운 노래

이자람(1979~)
10살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한 후, 은희진·오정숙·송순섭을 사사했다. 2007년에는 직접 작·작창 및 소리꾼으로 1인 다역을 맡은 ‘사천가’를 선보인 바 있으며 이후,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노인과 바다’ 등 꾸준한 작창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예술감독·연출·연극배우·음악 감독·라디오 DJ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온 이자람은 현재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소리꾼 이자람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이방의 순례자들’을 읽다 달콤한 낮잠에 빠져든다. 잠에서 깬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연출가에게 전화를 건다. “찾은 것 같아.” 창작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됐다.
창작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는 마르케스의 걸출한 작품 중에서도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짧은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원작으로 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외국인 노동자 오메로·라사라 부부가 쿠데타로 쫓겨난 고국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며 시작하는 작품은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20세기 남아메리카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오래 묵은 된장 혹은 치즈 같은 깊이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이자람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찾아 판소리로 다시 쓰고, 그만의 스타일을 덧씌운다. 그렇게 ‘추물/살인’(원작 주요섭)과 ‘노인과 바다’(원작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이방인의 노래’가 탄생했다. 2015년 초연 이후, 꾸준히 관객과 만나고 있는 이 작품이 오는 7월 CKL스테이지에서 다시금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앞둔 그에게, 그가 개척하고 있는 문학과 판소리에 관해 물었다.

마르케스의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원작으로 창작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를 다시 썼습니다. 소설과의 첫 만남이 궁금한데요.
함께 작업하는 박지혜 연출가와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아메리카 환상문학에 관심이 생겨 남아메리카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창작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의 작품 스케일과 공연의 체력적인 부담으로 단편을 찾고 있었거든요. 여러 권의 책을 읽다가 단편집 ‘이방의 순례자들’의 첫 작품을 읽고 낮잠에 빠져들었는데요.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작품이 마음에 남아 바로 박 연출가에게 연락해 이 소설을 공연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소설에서 특별히 애착이 갔던 인물 혹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소설을 읽은 직후에는 마르케스가 그러했듯 전직 대통령에게 마음이 많이 갔습니다. 허나 이 이야기를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 깊게 바라보고 탄복한 인물은 라사라였어요. 역시나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라사라가 대통령의 허름한 숙소에 가서 그의 빨래를 챙겨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냉소와 오해를 이겨버리는 사랑과 연민,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평소 즐겨 읽는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책을 고를 때 주로 작가의 성향, 이야기가 다루는 세계나 사건의 크기를 고려하는 편인데요. 제게 가본 적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존경합니다. 요즘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1962~)를 좋아하고, 한국 작가 중에는 정세랑,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잘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반지하, 신승은 작가의 책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저의 좁은 시야를 조금씩 부수는 중이에요.

원작이 있는 작품을 판소리로 재창작할 때, 원작의 작품성과 비교될까 우려되진 않으세요? 원작을 찾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직조하는 좋은 능력이 있다면 원작을 찾지 않을 텐데, 세상에는 훌륭한 이야기 창작자들이 많잖아요. 대신 저는 판소리를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그들의 작품 세계에 제가 투영되는 순간을 포착해 판소리로 만드는 거죠.

 

원작보다 유머러스한 대화들

작품 속 원작보다 더 유머러스한 대목들이 귀를 사로잡습니다. 오메로가 소고기를 먹는 장면(‘칼 든다 포크 든다/포크로 고기 잡고 칼로 쓱쓱 베어낸다/육즙이 흐르는 소고기 한 덩어리/혀를 내밀어 얼른 입 안에 넣는다/씹는 순간 퍼지는 육즙의 향연’)에서 통통 튀는 기타 연주와 ‘먹방’을 떠오르게 하는 연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지, 대본을 쓰고 작창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자람에게 먹는 것은 소중함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는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누어 먹고, 맛있게 먹고, 음식이 가진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즐겨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성향 덕분에 작품 내에 새로운 음식 관련 장면들이 등장하는 듯합니다. 2020년 재연 이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하는 소리꾼 이자람의 태도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데요. 아주 내밀하고 티가 나지 않는 변화이지만, 지금의 저로서 내뱉고 싶은 말투와 태도로 이야기를 대하며 대본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방인의 노래’가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스스로가 이 이야기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저 또한, 누군가의 대중이며, 동시대의 기호를 탐닉하는 사람이니까요.

소리꾼이자 작창가, 연극 및 뮤지컬 배우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가 있다면요.

연극이나 뮤지컬 연출가들에게 연기에 재능이 많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어왔지만, 정작 무대에서 연기만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연극 ‘오일’에 이어 최근에 막을 내린 ‘오셀로’에서도 제가 연기만으로 무대 위에서 올곧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확인하고 싶었죠. 다행히 작품에 폐를 끼치지 않고, 극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제 역할을 잘 해낸 것 같습니다. 하반기에도 여러 일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 모든 약속을 무사히 마친 뒤, 스스로를 조금 고독하게 만들어 ‘노인과 바다’의 후속작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완성 플레이그라운드

원작 소설 속으로
단편집 ‘이방의 순례자들’ 줄거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정효석 역|5,500원|
한나래 출판사

사실과 환상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 현실을 깊이 있게 드러내는 환상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가 1995년에 발표한 단편집이다. 작품에 담긴 열두 편의 단편은 마르케스가 18년 동안 집필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의 원작인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은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장식한다. 작품은 스위스 제네바를 배경으로 오메로·라사라 부부가 쿠데타로 쫓겨난 고국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당시 남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Performance information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6월 29일~7월 2일 CKL스테이지
원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작창 이자람, 연출 박지혜, 시노그래피 여신동
이자람(소리꾼), 이준형(고수), 김정민(기타리스트)

 

 


THEME ISSUE ➍

FESTIVAL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를 위한 라벤나 페스티벌 6.7~7.23
소설 속 상상이 축제 현장으로

올해로 34회를 맞은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주제로 두달 여 동안 100개 이상의 공연을 준비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20세기 위대한 이탈리아 작가 중 한 명이다. 환상문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다루며 이탈리아 교육 현장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권장된다. 환상과 현실, 동화와 과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여 성공적인 작품을 남긴 그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정치적, 시민적 참여로도 저명한 인물이었다. 연극·영화·음악·만화의 세계에도 관심이 많았던 작가로, 다양한 문학적 흐름을 발전시켜 후대에 전달하여, 이탈리아 문화의 기준점이자 이탈리아 문학의 이정표로 여겨진다.

작품 속 상(像)으로 표현하는 현실
칼비노는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농학자, 어머니는 식물학자로, 조국인 이탈리아를 잊지 말라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이탈로’라 지었다. 그가 세 살이 됐을 때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며,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랐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에 녹아 들어있다.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여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종전 후 전과하여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자연과 문학을 공부한 그는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쓴 신현실주의(네오레알리스모.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사조를 뜻한다)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1947)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환상’과 ‘우화’는 환상문학을 기조로 삼은 그에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20세기의 어지러운 현실을 한발 물러나서 바라보기 위해 채집한 우화를 이용하거나, 사건을 과거의 시점으로 이동시켜 ‘반쪼가리 자작’(1952), ‘나무 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을 발표한다.
1964년 파리로 이주한 뒤 소설가 레몽 크노(1903~1976)와 관계를 맺으며, 과학 이론, 특히 우주의 탄생과 물질의 구조, 기호학 등의 주제에 관심을 돌리며 작품 활동에 전환점을 맞는다. 후기 대표작인 ‘교차된 운명의 성’(1969)과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 등이 여기서 탄생한다. 그의 자연 과학에 대한 지적 관심은 계속되어 ‘우주 만화’(1965), ‘제로 사냥꾼’(1967) 등으로 SF 장르까지 아우르며 끊임없이 문학의 장르를 개척해 나간다.
1984년 칼비노는 하버드대학의 유서 깊은 강의인 ‘찰스 엘리엇 노턴의 시학’의 강의를 맡게 되는데, 이탈리아 작가로서는 그가 최초였다. 문학과 책이 처할 운명에 의문이 끊이지 않던 이 시기에 그는 ‘새로운 천년을 위한 문학’을 주제로 이 강의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1985년 9월 6일 뇌출혈로 쓰러진 후 시에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두 달간, ‘도시’ 속 100회의 공연!
라벤나 페스티벌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주제로 100개 이상의 공연을 준비했다. 소설 속 도시들이 유기체로 묘사되는 것처럼 축제도 그 안에서 여러 유기적 관계를 가진다. 소설로부터 영감을 받아 여러 공연을 엮는 세션의 이름도 흥미롭다. ‘도시와 교환’ ‘지속되는 도시들’ ‘도시와 음악적 기호들’ ‘도시와 눈 그리고 무용’ ‘도시와 욕망’ 등이다. 이러한 카테고리를 통해 축제는 여러 문화가 만나고, 끊임없는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는 곳이 된다.
‘도시와 교환’ 섹션에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로리 앤더슨(1947~)의 ‘Let X=X’ 공연이 축제의 서막을 연다. 아르헤리치와 미샤 마이스키가 함께 베토벤·드뷔시·쇼팽의 소나타로 찾아오며, 서거 20주년을 맞아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의 ‘포크송’ 공연, 록과 현대 클래식 음악이라는 두 장르를 합친 프랭크 자파(1940~)의 ‘노란 상어 모음곡’이 이어진다. 싱어송라이터 파투마타 디아와라(1982~)의 ‘와술루’ 음악은 서아프리카 전통·블루스·재즈를 결합한 것으로 종교근본주의에 의한 아프리카 여성이 처한 상황을 전한다.
과거의 공포를 담은 펜데레츠키와 헨리크 구레츠키(1933~2010)의 작품은 ‘지속되는 도시들’이라는 주제와 맞닿는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현대 도시는 편리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소비주의·오염·소외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주제로 새로 해석된다. 에미오 그레코(1965~)와 피터르 숄텐의 세계 초연작인 ‘우리 그리고 눈들(WE, the EYES)’에서도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에 눈을 뜨고자 하는 욕구가 나타난다. 또한, SF영화의 시초이자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프리츠 랑(1890~1976)의 ‘메트로폴리스’(1927)가 연주와 함께 상영된다.
안네 조피 무터는 ‘도시와 음악적 기호들’이라는 주제에 맞춰 무터 재단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라벤나를 찾는다. 호세인 피슈카르의 지휘로 연주되는 루토스와브스키(1913~1994)의 ‘애도의 음악’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이란 여성들에게 헌정된다. 또한, ‘도시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라벤나의 유네스코 유적지에서 탈리스 스콜라스, 테네브래 합창단, 킹스 싱어즈가 영국의 합창 3부작을 장식한다.
무용 공연은 ‘도시와 눈 그리고 몸’으로 연결된다. 무용수 엘레오노라 아바나토(1978~)와 세르히오 베르날(1990~)을 포함하여 전 세계 극장의 무용수들이 에투알 갈라를 수놓으며, ‘새로운 공연’이라는 명칭으로 불가리아·우크라이나·러시아에 속한 고대 전통 성악이 춤과 얽힌다. 연극이 수놓은 섹션에는 ‘도시와 욕망’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연극 ‘돈키호테’는 말라골라 궁전에서 올려진다. 이탈리아 시인이자 민족음악학자인 아멜리아 로셀리(1930~1996)의 시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저항이란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면(Se resistere dipende dal cuore)’은 그의 녹음된 목소리로 시작하는 작은 작품이다. 칼비노의 ‘지속하여 구체화하는 행복한 도시’는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도 번성하는 것으로, 라벤나 페스티벌에서는 양로원·병원·감옥 등의 장벽을 음악으로 극복하여 이를 실현한다.
칼비노가 글을 쓰는 이유는 현실을 재창조하고 새로운 의미를 담은 미래를 위해서였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담아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여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던 칼비노. 그의 작품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새로운 세대 안에서 그의 의지처럼 미래를 제시하며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이실비아(이탈리아 통신원) 사진 라벤나 페스티벌

원작 소설 속으로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줄거리
이탈로 칼비노 저|이현경 역|13,000원|민음사

소설은 베니스의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이 나누는 짧은 대화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환상성과 다의성을 지닌 조각의 이야기들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내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심리적·감각적으로 그려지는 55개의 가상의 도시들이 등장해 도시와 인간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으며, 도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남과 사라짐을 거듭하는 유기체라 말한다. ‘도시와 기억’ ‘도시와 욕망’ ‘도시와 기호들’ ‘도시와 교환’ ‘도시와 눈들’ ‘지속되는 도시들’ 등 11개의 범주로 나뉜 도시들은 1에서 5까지 비순차적으로 붙은 번호에 따라 출현하고 사라진다. 작가의 의도는 바로 이 구조와 해석에 있다. 독자는 자기 고유의 순서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고, 작가의 언어 기호로 담아낸 내용을 풀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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