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노에 기대어
여전히 건반 앞에 선 거장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하여
영하 3도의 흐린 날씨, 옆구리에 ‘객석’ 12월호를 끼고 종종걸음으로 서초동에 도착했다. 거리에 비친 스타인웨이 갤러리의 전시장 속 피아노는 젊은 연주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몇몇은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악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같은 공간 한편에 자리 잡은 작은 홀에서 아침부터 연습을 이어온 백건우 선생을 만났다.
단정한 차림에 무채색 머플러를 두른 그는 아늑한 분위기의 연습실에서 기자를 맞이했다. 따듯한 물 한 잔을 마주하고 자리에 앉은 그의 하얀 머리칼 뒤로 잿빛 구름이 느릿하게 흘렀다. 물이 식어가는 동안 갈색 서류 봉투에 넣어 온 ‘객석’ 12월호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객석’과 인터뷰한 지도 꽤 오래되었네요.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도 잘 안 나.” 노장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일었다. 잠시의 침묵. 천천히 말을 고른 뒤 들려오는 그의 차분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음악으로 전하는 내리사랑
그는 피아노 앞에서 보낸 67년의 세월을 건반 위에 펼쳐두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일찍이 외국에서 연주 생활을 시작하며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견뎌 온 그에게 음악은 듬직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음악으로 위로받은 젊은 피아니스트는 이제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는 백발의 거장이 되었다. 인터뷰 다음 날 있을 현대자동차그룹 필하모닉 오케스트라(HPO)와의 협연(12.3/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앞두고, 그는 지금껏 수없이 연주했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악보를 다시금 펼쳤다.
“같이 연주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예요. 다들 음악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들이 프로페셔널하든 안 하든, 그걸 떠나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소리를 낸다는 게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저는 연주의 수준을 떠나 이런 공연을 굉장히 귀하게 생각해요. 음악 훈련을 잘 받았을지라도 곡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그건 무의미한 연주지, 좋은 연주가 될 수 없어요.”
그의 이러한 신념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11년과 2013년 연평도, 울릉도 등지에서 펼친 섬마을 콘서트부터 2019년 세종 꿈나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리고 2021년에는 대구·통영에서 지휘자 김선욱과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 연주에 함께했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이름있는 오케스트라나 유명한 홀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으로 삼곤 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누구든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청중이 있으면 해야죠.”
후배 연주자들에게도 그는 든든한 거목과 같은 존재다. 올해 경기필하모닉의 새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며 지휘자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김선욱은 취임 기념 신년음악회(1.12/경기아트센터 대극장)라는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백건우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선욱이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후배예요. 피아노를 연주하든, 지휘를 하든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는 연주자이기도 하고요. 지휘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자리이니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죠. 이번에 같이 선택한 곡이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인데 국내에선 이 곡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예요. 저도 헝가리·러시아·일본 등 주로 해외에서 연주했으니까요. 이번에 다시 공부하면서 선욱이한테 다시 들어도 너무 좋은 곡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선생님, 기가 막혀요!”라고 답이 왔어요. 이번 연주가 서로에게 힘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같이할 때마다 늘 좋았거든.”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후배의 새 행보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잠시 방문할 계획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장에게 유럽-아시아 간 장거리 비행은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사실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데, 여러 번 다녀도 멀긴 머네요.” 그는 자신의 체력을 걱정하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모차르트
흔히들 그를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부른다. 구도자, 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사람. 지금도 그에게 음악은 정답이 없는 진리이자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청년 시절을 충만케 한 스크랴빈과 포레, 프로코피예프부터 베토벤, 슈만 그리고 그라나도스까지. 지난날의 디스코그라피에는 음악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는 모차르트가 있었다. 그의 첫 모차르트 음반(DG)은 지난해 국내에서 녹음을 마치고, 오는 5월 발매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모차르트 작품이 워낙 어려워요. 바흐나 베토벤, 브람스 등의 작품을 보면 곡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모차르트의 작품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귀한 천연(天然)의 음악을 모차르트가 그대로 가지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음악을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데, 인간으로서 그걸 표현하기 힘든 거죠. 연주자는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보여줌으로써 청중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음악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스스로 몸을 불태우는 소신(燒身)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모차르트 녹음을 미뤄왔던 거죠.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다면 한 번쯤은 연주해 봤을 모차르트지만, 일곱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연주해 온 거장에게도 모차르트는 여전히 새로운, 고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모차르트가 악보에 담아낸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어린이들의 ‘순수함’에서 발견했다.
“보통 음반 표지에 연주자 사진이 들어가는데, 이번 음반에는 제 사진이 아닌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의 어린 학생들이 그린 제 초상화를 넣어보려고 해요. 어린이들이 제 음악을 듣고, 제 얼굴을 그리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꼭 제 얼굴이 아니어도 돼요. 점이나 선, 특정 색깔일 수도 있겠죠. 추상화를 그려도 괜찮아요. 그냥 제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음악 안에서 어린 친구들이 상상하는 것들을 담아보고 싶어요. 모차르트와 피아니스트 할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그리다 보면 좋은 그림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웃음) 볼프강·아마데우스·모차르트 이렇게 세 장의 음반으로 구성해 세 명의 친구가 그린 그림을 각 음반의 표지로 사용하는 거죠. 모차르트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어린이들과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대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 한구석에 늘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공모를 받아서 좋은 그림이 많으면 전시회를 열어도 좋고, 제 음악회가 있을 때 바깥에 전시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들을 모아 책을 낼 수도 있겠고…”
“마침 5월이기도 하네요!”
“그럼.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린이날에 맞춰 발매해도 좋고!”
어린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찬 따스한 봄날을 상상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피아노 앞에서 보낸 70여 년의 세월
빈 궁정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린 모차르트의 모습은 1956년, 열 살의 나이에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서울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어린 백건우와 닮았다. 2026년, 데뷔 70주년을 맞이하는 거장의 광활한 시간을 이 짧은 대화에 어찌 다 담을 수 있을까.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추억은 시들어 버리고 만다. 그 역시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지난 시간의 소중한 인연들을 다정히 살피고 있었다.
“사실 몇 년 후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죠. 제가 몇십 년 동안 연주 생활을 하면서 함께 한 음악 친구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가까이 지내는 이들도 있고, 한동안 떨어져 지낸 이들도 있고. 많은 친구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니까 한국에서 같이 연주하며 여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살아온 불란서(프랑스)나 음악 생활을 시작했던 독일에서 모일 수도 있고요. 돌아보니 정말 많이 다녔어요. 아마 초기에 나만큼 러시아에 자주 간 사람도 없을 거야. 동구라파(동유럽)부터 동남아 그리고 수교 이후에는 중국도 다녔죠. 세계 방방곡곡에 여러 인연들이 있는데 데뷔 70주년을 계기로 그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안 가본 곳을 손에 꼽을 만큼, 해외에서의 오랜 연주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늘 그의 곁에 머물렀던 가족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는 작년 1월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1976년, 배우 윤정희(1944~2023)와 결혼한 그는 지난 46년의 세월을 그녀와 나란히 걸어왔다. 13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아내를 돌보고, 당신 말고는 누구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녀의 뜻에 따라 연주 여행도 함께 다녔다. 그럼에도 아내의 병색은 점점 짙어졌고, 결국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딸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음악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윤정희는 그렇게 가족의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 10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윤정희에게 공로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60년 영화 인생을 기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개막식의 대형 스크린에 그녀의 환한 미소와 함께 지난 시절의 대표작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대리수상자로 선정된 딸(백진희)이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의 첫 음을 그었다. 무대 위에 바이올린 선율이 고요히 흘렀다.
“처음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 저에게 개막식 연주를 제안했어요. 그런데 사양했죠. 연주를 하게 되면 우리 진희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던 만큼, 딸이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열심히 돌봤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아내가 떠나던 날 아침, 진희가 병석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어요. 엄마가 음악을 들으면 좋아한다며. 그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딸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운 무대였을 것 같네요. 엄마 사진이랑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데 그 화면을 보며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야 했으니, 힘들었겠죠.”
그는 ‘겪지 않아도 될 일’로 마음고생한 지난날을 담담히 돌아봤다. 띄엄띄엄 말을 이으며 고른 모든 단어에는 그의 가족, 아내와 딸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내가 음악을 즐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다녔는데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물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으니 온전히 즐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비스듬히 기울인 그의 어깨 위로 햇빛이 일렁였다. 한차례 구름이 지나고, 투명하게 시린 하늘이 창가에 비쳤다. 한평생을 피아노 곁에서, 후배 연주자들의 든든한 선배이자 동료, 그리고 한 가족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시간은 여전히 그의 시간대로, 천천히 흘러간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황필주
백건우(1946~) 1956년, 열 살의 나이로 데뷔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지나 레빈을 사사했다. 1992년 스크랴빈 피아노 작품집으로 디아파종상을, 1993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으로 프랑스 3대 음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후, 데카와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꾸준히 음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200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 기사훈장을 수여받았다. 2023년 제6회 성정예술인상에 선정되었으며, 올해 첫 모차르트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선욱/경기필하모닉(협연 백건우)
1월 12일 오후 7시 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1번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6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차르트 환상곡 3번 K397, 론도 K485, 피아노 소나타 2번 K280 외
ALBUM
‘볼프강·아마데우스·모차르트’(DG)
모차르트 환상곡 K396·K397·K475, 론도 K485·K511, 피아노 소나타 2·10·12·14·16번 포함 17곡 수록(5월 발매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