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월 3일 8: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사막을 함께 걸을 ‘우리’의 확장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2023년 12월 6~19일 국립극장 달오름

 

홍단비(극본)/이기쁨(연출)/정지혜(작창)/ 김홍남·정지현·이수현(수어 통역사)

최근 배리어프리 공연들이 발산하는 창의성이 놀랍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더 이상 ‘읽기’의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막은 대사가 가진 감정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무대 전면을 돌아다닌다. 국립극단의 기획공연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또한 여러 요소들을 무대의 연출로 활용했다. 두 주인공, 헬렌 켈러(정지혜 분)와 앤 설리번(한송희 분)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수어 통역사가 따라다니며 무대를 누빈다. 극의 전달자이자 조연이다. 수어 통역사들이 가진 특유의 표현력도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된 화자를 앤 설리번으로 설정해, 그가 어린 시절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성장한 이야기부터를 자세히 다룬다. ‘낙타’는 사막 같은 고단한 삶을 사는 두 주인공이, 사막 공기보다는 시원한 서로의 몸에 기대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개체다. 익히 알려진 일대기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덕에 이야기에 스릴 넘치는 반전은 없다. 하지만 점차 고조되는 극을 ‘감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뭉클한 지점에 도달한다. 네 명의 악기 연주자 김솔지(타악), 심준보(전자음악), 양성태(고수), 전경호(마림바)가 악기를 잠시 내려놓고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과 함께 춤을 추는데, 관객은 그제서야 시각 장애인 마림비스트가 이 무대에 함께해왔던 것을 깨닫는다. 다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았을까. 배리어프리는 분명,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것이다.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극장

 

당신의 궤도 안에서

비킹구르 올라프손 피아노 독주회

2023년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조명 아래 피아노 한 대가 홀로 서 있다. 고요한 기다림 끝에 빙하의 푸른빛이 연상되는 청록색 슈트를 걸친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무대에 올랐다. 곧 ‘아리아’의 첫 음이 울리며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이 시작됐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2023)에 대한 호평은 내한 무대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피아노를 어루만지는 듯한 그의 손길에 건반은 다채로운 음색으로 응했다. 빠른 템포에서는 청명했고, 느린 템포에서는 포근했다. 음반이 청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했다면, 공연은 시각적인 효과를 더했다. 지휘하듯 우아하게 움직이는 오른손과 잦은 페달링으로 깡충 올라간 바지 밑단, 건반에 빨려 들어갈 듯 피아노 가까이 상체를 기울이는 모습은 그의 손이 닿는 음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게 했다. 바흐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긴 여정의 끝, 다시 한번 ‘아리아 다 카포’의 선율이 무대를 가로질렀다. 변주 사이를 비우는 찰나의 정적 속에서 바흐를 해석하는 그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고,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서른 개의 행성으로 이뤄진 완벽한 태양계이기에 서른한 번째 행성을 더할 수 없다”라며 앙코르 연주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설명했다. 대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하며, 800여 명의 팬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준 뒤 로비를 나섰다.

시리도록 깜깜한 겨울밤, 몇 광년을 넘어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처럼 서른 개의 행성을 지나 발견한 올라프손의 우주는 밤하늘 아래서 밝고 투명하게 반짝였다.

홍예원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4팀 4색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2023년 12월 8·9일 국립극장 하늘

 

국립창극단은 심사를 거쳐 4명의 신진 작창가를 선발해, 극작가와 묶었다. 올해 프로젝트에는 소리꾼 안숙선이 고문, 작창가 한승석과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 멘토, 연출가 고선웅과 배삼식이 극본 멘토를 맡았다.

작창가 이연주·극작가 이철희의 작품 ‘금도끼 은도끼’는 현대적 해석을 더했다. 작창에서는 서양음악의 화성 개념으로 혼합된 양식을 보였다. 대본은 멈추지 않는 유머가 가득했으나, 전개가 평범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작창가 이봉근·극작가 김도영의 ‘두메’는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를 소재로 한 진지한 전통극이다. 이봉근의 작창은 느리고 빠른 장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전통 판소리와 유사하여 진지한 극본과 잘 맞았다. 극본은 제한된 시간에 급하게 전개를 이어 나가 결말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작창가 신한별·극작가 윤미현의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는 이름처럼 유쾌한 대본과 이에 맞춘 빠른 장단으로 관객을 끊임없이 폭소하게 했다. 전래동화의 현대적 해석도 어색하지 않게 이어졌고, 소리꾼 조유아에게 딱 맞는 창은 작창가가 배우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작창가 강나현·극작가 진주의 ‘눈의 여왕’은 안데르센의 동화를 창극으로 만든 것으로 아이들을 위한 맞춤 공연이었다. 동화의 내용을 창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관객층의 확대에도 좋은 장점이었다. 대사가 많고 창이 적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필요할 때 등장하는 창은 서양음악의 징슈필 같아서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국립극장

 


Traditional Music

 

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역사·기록·연기·연출·대중화를 위한 점검

2023년 12월 5일 국립극장 하늘

 

창극의 현재를 성찰하고, 이를 통해 발전과 성장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은선)의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가 작년 겨울의 시작점에 열렸다. 국립창극단은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 국내 전통음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장의 인물에게 대거 발표를 의뢰하였다. 유은선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윤중강(음악평론가)이 국립창극단의 역사, 최혜진(목원대 교수)이 창극 배우의 정체성, 한승석(작창가/중앙대 교수)이 창극 작창의 의미, 고선웅(서울시극단 단장)이 창극 연출의 실제, 송소라(고려대 연구교수)가 창극 세계화를 위한 과제에 대하여 발표했다.

윤중강은 역사에 관해 고찰하기에 앞서, 국립창극단 기록의 여러 오류를 지적했다. 특히 국립창극단이 간행한 ‘국립창극단 70년사’(2020)에 1960~1970년대 국립창극단 공연 배우의 누락이나 오기가 많아, 자료로서의 의의가 떨어짐을 아쉬워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성악연구회의 의지를 이어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른 시기 젠더프리의 형태를 취한 여성국극의 역사도 중요하게 짚었다. 이외에도 창극이 현재 인기를 끌고, 해외에도 초청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소리꾼 김금미·유태평양·김준수·김수인 등의 활약이 있었고, 이를 이해하여 창극의 저력은 단원의 저력과 같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진이 발표를 이어받아 배우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역설했다. 소리꾼과 창극 배우의 차이를 중심으로, 창극 연기 톤은 서양의 극과 연기 방식을 가져온 탓에 판소리가 추구했던 방향과 유사하면서도 분명 다른 길을 걷게 됐음을 지적했다. 창극이 탄생한 첫 세대부터 지금까지 연기하는 태도나 동작은 변화를 겪어왔고, 전통예술의 연기 방식이 ‘광대’라면 현대에는 ‘배우’에 가깝다는 의미였다. 서양 연극의 연출가가 그대로 창극의 연출은 맡는 것 역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연기술이 성장하지 못한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현대의 국립창극단이 여러 실험으로 좋은 소임을 수행하고 있지만 ‘광대’로서의 역량이 길러지길 바랐다.

한승석은 작창의 표기 문제부터 부족한 작창가 양성 과정의 현실, 그리고 작창가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설명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에 새로운 소리를 더하는 것에는 ‘더늠’이라는 용어가 존재하며, 기존에 있던 소리를 재구성하는 것은 ‘연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이러한 표기가 현재 ‘작창’과 혼재되어 있다. 또한 작창가가 가져야 하는 역량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국내 작창가의 수는 현저히 적다고 이야기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모든 소리를 이해하면서 판소리 음악 구조, 동시에 서양음악 화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출가가 큰 권한을 갖는 극 장르 특징으로 전통음악의 이해 없이 작창자의 의도를 변질하거나 삭제하는 고초가 있다고 전했다.

고선웅은 반대로 과거 작품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는 연출가의 시각에서 작품의 요소와 소리를 더하고 빼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흥보씨’ ‘만세배더늠전’을 연출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전달했는데, 늘어지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전통의 텍스트에서 부족한 설득력은 새롭게 구축해야 단단한 무대를 만들 수 있다고 표했다.

송소라는 창극이 대중예술로 자리 잡고, 세계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창극의 하위 장르가 성장해야 함을 지적했다. 20세기에도 창극은 음반·라디오·TV와 더불어 생존했으며, 현대의 ‘조선판스타’(MBN)와 ‘풍류대장’(JTBC) 등과 같은 TV프로그램에 앞으로도 적극 동참하는 것이 수용층을 확장할 수 있는 방향이다. 뮤지컬이 다양한 하위 장르로 소극장에서도 창작극을 이어가면 대극장도 성장할 수 있듯이, 창극도 다양한 하위 장르가 탄생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어지는 패널토의에서는 발표자 다섯 명과 김향·남인우·박애리·이주현·이진주가 함께하였다. 자유토론으로 잠시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머지않아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다양한 질문이 그치지 않았고, 토론의 열기는 관중석으로도 확장됐다. 예정된 시간을 40분이나 초과하였는데도 관중석에 질문의 손은 계속 올라왔고, 주최 측은 이에 답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며 심포지엄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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