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변함없는 진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2월 5일 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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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변함 없는 진심

 

7년 만의 내한 독주회, 국내에서 처음 만나는 그의 협연까지!

 

©Marco Borggreve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단연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을 통해서이다. 2003년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를 받으며 세계에 인사를 먼저 올렸지만, 2005년 우승 당시 쏟아진 조명과는 비교가 안 됐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후 30년 만에 등장한 자국 우승자에 폴란드의 분위기는 최고조였고, 이를 축하하는 기사와 글이 쏟아졌다.

폴란드 국민이 가진 감수성은 한국과 유사한 성격을 보인다. 기나긴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123년 동안이라는 실국(失國)의 역사로 그들 역시 한(恨)의 정서를 품고 있다. 이 때문에 애국심이 높고, 국가의 위인을 귀하게 여긴다.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공항을 정식으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라고 칭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폴란드 곳곳의 레스토랑·카페 등에 사용된 수많은 ‘쇼팽’이라는 상호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돌아보는지 느낄 수 있다. 역사 속 인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유럽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을 사랑하듯이, 이들 역시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면 그가 ‘폴란드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니 ‘쇼팽’과 ‘스타’가 결합된 라파우 블레하츠가 받은 자국민의 사랑은 그야말로 폭포수 같았다.

재미있게도, 국내에서 그가 인기를 얻게 된 것도 우리의 이러한 정서가 작용한 덕분이다. 2005년 쇼팽 콩쿠르는 우리나라에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이 결선에 올랐을 뿐 아니라 임동민·임동혁 형제가 2위 없는 3위로 공동 입상을 했기 때문이다. 음악계뿐만 아니라 저녁 시간대의 TV 뉴스에도 그 소식이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임동민·임동혁의 기록과 영상을 찾아보며, 그 낙수효과로 자연스럽게 블레하츠의 연주를 접했고, 국내엔 그 셋의 결선 무대와 피아노 소나타 실황을 묶은 음반이 판매되기도 했다.

 

몸과 마음, 모두에서 숨겨지지 않는 쇼팽 사랑

모든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우승자가 우승 직후 쇼팽 작품을 질리도록 연주한 후, 다른 작곡가나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한다. 2015년 우승자인 조성진 역시 두 번의 쇼팽 음반(2016·2021)을 발매했지만, 그 외에도 브람스·모차르트·드뷔시·슈베르트·베르크와 최근의 헨델까지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녹음했고, 연주 레퍼토리는 그보다 넓다. 애호가마다 꼽는 조성진의 연주 영상 역시 쇼팽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블레하츠는 우승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쇼팽을 향한 사랑을 표하고 있다. 전주곡·협주곡·폴로네즈·녹턴, 그리고 작년의 피아노 소나타와 뱃노래까지. 그는 본인에게 입혀지는 ‘쇼팽의 이미지’를 가장 기쁘게 입는 피아니스트일 것이다. 덕분에 그간 발매한 바흐·모차르트·시마노프스키 연주까지 모두 쇼팽을 향한 사랑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이런 배경을 두고 블레하츠의 연주를 감상하면, 그가 들려주는 음색은 쇼팽이 가졌던 ‘아름답지만 지나치지 않음’에 가깝다. ‘선율은 자연스럽게 루바토로 움직이지만, 절대 템포를 벗어나지 않는 반주’를 보여주었던 쇼팽처럼, 그의 연주는 늘어지거나, 지나친 감상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다. 탁월한 리듬감이 견고하게 받쳐주어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인상은 물론,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순간을 즐기는 여운이 조금 부족하게 들린다. 잠시 멈춰 줬으면 하는 음에서 담담히 앞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끝 없는 깔끔함에 매료되면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것이 그의 연주이다. 개성이 있다.

 

만약 그의 음악을 못 들어봤다면

그러나 국내에서 블레하츠의 연주를 실황으로 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5년 쇼팽 콩쿠르의 인터뷰 영상에도 ‘수줍고’ ‘조용한’ 인상을 주던 그는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들떠버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전까지 주로 집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습했다고 전한 블레하츠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어울렸다. 전면에 나서지 않는 편이기에 뉴스나 소식이 적고, 폴란드 외의 지역에서 나눈 인터뷰는 손에 꼽을 만큼 부족하다. 기록된 연주 영상도 많지 않고, 그중 협주곡을 연주하는 영상은 쇼팽·모차르트·베토벤·생상스 외에는 찾기 어렵다. 유럽 음악 축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거나, 큰 직책을 맡는 일도 없다.

이제 이렇게 꼭꼭 숨어 있는 청년의 첫 내한 독주회가 이루어진 것이 2017년 10월, 우승 이후 12년 만이라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이어진 두 번의 내한(2019·2023)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의 듀오 리사이틀이었는데, 이는 조용했던 블레하츠가 보여준 의외의 적극성이었다. 물론, 김봄소리가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달성했을 때, 심사 결과에 의외라는 여론이 생겨 지역 일간지에 크게 실렸고, 라파우 블레하츠는 이 콩쿠르를 전부 집에서 TV로 시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폴란드 국민’이라는 특성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음반 발매 영상 인터뷰에서 “콩쿠르를 시청하는 동안, 김봄소리는 나의 최애 연주자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2월, 7년 만에 그의 독주회가 다시 성사되었다. 작년 봄에도 듀오 리사이틀로 얼굴을 비쳤기에 어쩌면 그가 자주 오는 연주자로 인식됐을 수도 있지만, 그의 내한 독주회는 사실 흔치 않다. 이번 내한 독주회(2.27)의 프로그램은 쇼팽·드뷔시·모차르트·시마노프스키로 평소 자주 연주했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콘서트홀에서 매번 다른 피아노로 곡을 연주한다. 수도 없이 연주한 곡에서도 매번 다른 감상을 얻는다”라며 공연의 특별함을 내비쳤던 그이기에 ‘같은 레퍼토리’ 속의 ‘다른 변화’의 효과는 이번 무대에서 빛날 것이다.

게다가 이번 내한에는 안제이 보레이코/바르샤바 필하모닉(2.13)과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가 국내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건 당연히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연주하는 슈만의 작품은 방대한 온라인에서도 피아노 소타나 2번 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열정을 쏟아내며 19세기 작품을 연주하는 연주자는 더러 있지만, 그처럼 단단하고 담담하게 낭만을 노래하는 피아니스트는 희귀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번 연주회는 꼭 가보도록 하자.

이의정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라파우 블레하츠(1985~) 2003년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06년 DG 음반사와 독점 계약을 하며 지금까지 총 8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2012년에 발매한 ‘드뷔시, 시마노프스키’ 음반으로 에코 클래식 어워드에서 독주 피아노 상을 받기도 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안제이 보레이코/바르샤바 필하모닉(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2월 13일 오후 7시 30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루토스와프스키 ‘작은 모음곡’,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 브람스 교향곡 2번 D장조 Op.73

 

라파우 블레하츠 피아노 독주회

2월 2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쇼팽 폴로네이즈 Op.40, ‘영웅’ Op.53,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K331, 시마노프스키 변주곡 Op.3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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