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오직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흥취, 대금 연주자 유홍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2월 5일 8:00 오전

ABOUT FESTIVAL

 

대금 연주자 유홍

이 순간, 오직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흥취

 

한국즉흥음악축제의 예술감독인 그가 말하는 한국음악

 

즉흥음악이 무엇인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연주자가 본인에게 굉장히 깊숙이 들어가는 음악입니다. 더 진지하고 내밀한 것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면서 연주할 수 있죠.” ‘즉흥음악’에 대해 설명을 풀어놓던 그는 “즉흥음악, 참 재미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눈을 접으며 웃었다. 웃음소리에는 축제를 향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한국즉흥음악축제는 서울돈화문국악당과 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축제로 올해로 2회를 맞이했다. 전통의 소리를 뛰어넘어 즉흥음악의 ‘다음’을 준비하는 대금 연주자이자,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즉흥음악축제 예술감독을 맡은 유홍을 만나, 축제에 관해 묻고 들었다.

 

한국즉흥음악축제의 기획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현대음악과 즉흥음악 분야에 비중을 두고 활동해 왔습니다. 유럽에서 즉흥연주가 활성화되어 있는 걸 보면서, 한국에도 전통 음악가를 조명하면서 함께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축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축제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아, 대중에게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올해 2회를 맞이했습니다. 작년과 비교해 어떤 점들이 달라졌는지요.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늘었습니다. 작년엔 약 40명이었다면, 올해는 60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남산국악당(이하 ‘남산’)에 새로운 공연이 두 개 더 신설됐습니다. 밤 9시 30분에 시작되는 ‘나이트 콘서트’로, 한옥에서 밤에 듣는 국악과 전자음악은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또 하나는, 작년 돈화문국악당(이하 ‘돈화문’)의 프린지 공연에 참여했던 아티스트와 즉흥음악 1세대 연주자들의 합동공연인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입니다. 공연명에는 즉흥음악계의 ‘다음 장’을 만날 수 있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신진 예술가들이 팀을 이뤄 즉흥연주를 하는 돈화문의 프린지 공연과 기성 예술가들의 무대인 남산의 메인·한옥 공연은 유지됩니다.

즉흥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도 축제를 즐길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입니다. 즉흥음악은 서로 교류하고, 공감하고, 발견하면서 느끼는 음악입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으니, 미리 준비할 것도 없죠. 연주자들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순간에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재미있고 귀한 음악회입니다.

 

즉흥음악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오는 것

 

한국즉흥음악축제만 특별함은 프린지 공연 전부터 시작된다.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소리를 찾고, 고민하고, 내면에 잠들어 있던 예술을 깨우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워크숍이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워크숍은 가능성이 있는 연주자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시간으로 준비됐다. 축제는 조용하고도 즐겁게, 즉흥음악계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간 프린지 공연을 위한 아티스트를 모집했습니다. 어떤 아티스트가 선발되었나요?

즉흥음악은 자기만의 언어와 소리로 만들어지는 음악입니다. 단순히 지식과 기술로는 즉흥음악을 완성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는 예술가, 예술 안에서 대화할 줄 아는 아티스트를 선정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악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의 즉흥음악적 경험과 실력보다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더 고려하고 있습니다.

5회에 걸친 워크숍(2.6~20)에서는 어떤 교류를 하나요?

자연스럽게 서로 소리를 내고, 듣고,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갑니다.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고민, 다른 예술가와의 교류가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프린지 공연에 참여하는 실연자를 ‘아티스트’라고 명명하고, 워크숍에서는 이들이 아티스트로서 생각하고 음악을 만들어 나가도록 유도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즉흥음악으로 따라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음악을 만듭니다. 이 과정은 신진 음악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즉흥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워크숍에 함께합니다.

1세대 즉흥연주 아티스트인 색소포니스트 강태환, 피아니스트 박창수가 워크숍에서 특강을 진행합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이들이 우리나라 즉흥음악의 1세대를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예술 활동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이번 워크숍에는 전담 강사 제도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실제 즉흥연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프린지 팀을 전담하며 잘 다듬고 대화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국악 연주자뿐 아니라 서양악기·전자악기 연주자, DJ·무용가 등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섞여 팀을 이룬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것이 한국즉흥음악축제만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음악적 구조나 틀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즉흥음악’을 추구합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틀린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티스트도 자기의 상상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죠. 그러니 국악 연주자만 참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악 연주자들도 전통을 뛰어넘는 소리까지 모두 다루니, 오히려 더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습니다. 팀 구성은 제가 주도적으로 구성하는데, 잘 어울릴 수 있고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팀을 짜고자 했습니다. 특히 올해의 축제는 기존 즉흥음악계에 있어온 예술적 활동을 조명했습니다.

전혀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끼리 어떻게 좋은 즉흥음악을 연주할 수 있나요?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겠지만, 저는 서로의 반응을 치밀하고 세밀하게 살피면서 만든 음악이 좋은 즉흥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음악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상대가 낸 소리에 대립하는 소리로 대답하는 것처럼요.

예술감독으로서 목표가 궁금합니다.

음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작년과 올해만 해도 여러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계속 발전해서, 흩어져 있는 여러 예술가를 한곳에 모으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예술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열고 싶어요. 잘해보겠습니다.

김강민 기자 사진 서울돈화문국악당

 

유홍(1979~) 서울대 졸업 후 런던대 민족음악학과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했다. 2010년부터 베를린을 거점으로 아시안아트 앙상블, 듀오 모멘텀 등 현지 음악가들과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독일현대음악비평가상·사야국악상 등을 수상했고,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왓와이아트의 음악감독, 크리에이티브 음악 단체 아우프윈드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제2회 한국즉흥음악축제

2월 24~29일 서울돈화문국악당·서울남산국악당

 


집중탐구  국악에 흐르는 다양한 모습의 즉흥 연주

 

말 없는 대화의 현장, 그 사이에서 들리는

‘날개짓 소리’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를 표현한 문장이다. 재즈뿐 아니라 국악에도 이러한 ‘날개짓 소리’가 가득하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국악이 지닌 즉흥적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객석’(2002년 3월호)은 특집으로 ‘새 천년 화두-즉흥과 변용’을 선보였다. 8명의 현장 전문가들이 클래식 음악·재즈·국악·연극·무용 등에 담긴 즉흥성을 논한 특집이었는데, 한국즉흥음악축제을 앞두고 ‘즉흥’이라는 화두를 본지에서 다시 꺼내 보았다.

 

 

연주자의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순간

음악평론가 윤중강은 “민속음악에 있어서 즉흥은 생명과도 같다”라고 표현했다. 민속악은 주어진 공연 시간에 맞춰 공연 내용을 구성하며 자신만의 연주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연주의 내용이 달라져야 했기에 즉흥이 몸에 배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관객이 만들어 내는 즉흥성도 더해진다. 관객이 “얼쑤” “좋다” 외치며 흥을 돋우면, 연주자에게선 자연스레 신명 나는 가락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관객의 호응이 꼭 추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침묵하며 극에 집중하는 것도 호응이다. 연주자가 아무리 똑같이 연주를 반복하려 해도 객석의 분위기까지 동일할 수는 없으니, 공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문고 산조 예능보유자 한갑득(1919~1987)은 생전에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올라 흥에 취해 연주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가 특별한 가락을 연주하길 바라며 술을 준비하고, 스승의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가락을 기억하기 위해 제자들이 연주 내내 귀를 쫑긋 세웠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진위는 확실치 않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규칙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

국악에 내재한 즉흥성을 논할 때 ‘시나위’를 빼놓을 수 없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의 일종으로, 정해진 악보가 없어 모두 현장에서 연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은 먼저 중심음(기준음)인 ‘본청’을 맞추고, 이후 약속한 ‘장단’에 맞춰 연주를 시작한다. 자진모리장단으로 흥을 돋우고, 엇모리장단으로 분위기 변화를 주는 등 약속을 지키고 있으니, 즉흥음악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함께하는 연주자들이 서로 버팀목이 되어준다. 가야금이 높은 소리로 놀 때는 거문고가 든든하게 받쳐 주고, 피리가 가락을 불다 지친 기색이 보이면 대금이 이어서 흥을 돋우는 식이다.

한편, 국악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장르를 허물며 새로운 실험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아주 자유로운 즉흥음악을 펼친다. 규칙이 없는 만큼, 어떤 모든 시도를 허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합을 맞춰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대화’에 있다. 서로를 끊임없이 살피고, 상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찾은 답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연주를 공연이 일어나는 단 한 번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이번에 듣게 될 음악은 무엇일지 기대하게 된다. 수많은 예술적 대화가 오갈, 국악 속의 즉흥성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정리·글 김강민 기자 사진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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