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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토머스 햄슨·볼프람 리거 듀오 리사이틀 1.22
신성을 들려주는 목소리
뜻깊은 공연장인 피에르불레즈홀에서 열린 독일 가곡 주간과 후고 볼프의 노래들
마치 신성한 제의와 같았다. 베를린의 프랑스 거리 33번지,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이름을 딴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 공연이 그러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슈베르트 주간’이 개최된다. 올해는 토머스 햄슨(1955~)과 볼프람 리거의 가곡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카트리나 파울라 펠스베르가와 말콤 마르티노, 율리아 클라이터와 미하엘 기스, 콘스탄틴 크리멜과 아미엘 부샤케비츠 등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가곡 해석자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또한 젊은 음악도들과 진행되는 토머스 햄슨의 공개 워크숍이 열리는 등 다양한 행사로 풍성함을 더했다. 지난 1월 22일, 머리에 흰 구름이 내려앉은 바리톤 토머스 햄슨과 피아니스트 볼프람 리거는 후고 볼프(1860~1903)의 가곡만으로 2시간을 채웠다.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의 호흡
68세의 토머스 햄슨은 노회한 제사장 같았다. 젊은 시절 천지를 호령하고, 기함을 토해냈던 기백은 옅어졌어도, 그것을 대신하는 형언할 수 없이 깊은 영험함이 있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음성뿐 아니라, 눈길 하나, 한숨 하나도 빈틈이 없었다. 향을 오래 품은 종이가 향 없이도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1974년 오페라 무대에 첫발을 디딘 그의 육신은 반세기 동안 음악을 공명한 끝에, 이제는 그 자체로 음악의 신이 된 듯했다.
피에르불레즈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복음을 찾아 순례를 온 열정적인 신도와 같았다. 이날의 신도는 제사장을 따라 탄식하고, 가슴을 애태우고, 또 웃었다. 이날의 연주가 완벽한 제의가 된 데에는 공연장의 독특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원형경기장 같은 이 공연장에서 관객들은 햄슨과 리거같은 연주자뿐 아니라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다른 청중의 모습 또한 지켜볼 수 있었다. 때로는 맞은편 성도의 은혜받은 모습 자체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 모든 분위기가 맞물리고 상승하여, 집중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문득 독일 가곡 장르가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배경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실감했다. 시어를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몸살을 앓았을 작곡가들, 평생 더 좋은 음악을 찾아 고행을 자처한 연주자들, 그리고 슈베르티아데 모임처럼 그 음악을 지지해 준 청중까지. 독일 가곡은 이 세 다리가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반석이었다.
연주의 마지막 음의 파동이 멈췄다. 그리고 잔향과 여운이 이어졌다. 그 누구도 감히 먼저 그 여운을 깨고자 하지 않았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박수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내 곧 장대비처럼 강렬해졌다. 여타 연주라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을 ‘브라보’ 함성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굳이 요란한 환호와 함성이 아니더라도 진심을 담은 끈덕진 박수는 여러 차례 연주자를 커튼콜로 소환했다.
제사장 햄슨 곁에는 다른 주역인 리거가 있었다. 그는 오늘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제사장이었다. 햄슨의 중저음 외에 어디선가 벌이 날아다니는 듯 저주파 소리가 들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이런 경우가 아닐까. 리거는 진정 정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성대를 비비는 노래가 아니기에 윙윙거리거나 때로는 쉭쉭 거리는 소리로 표현됐지만, 관객들은 리거가 부르는 노래도 듣고 볼 수 있었다. 햄슨과 리거는 2017년에 ‘후고 볼프 메달’을 듀오로서는 최초로 수상한 바 있는데, 이날의 공연에선 두 사람의 오랜 파트너십과 결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사진 피에르불레즈홀
VENUE 베를린 피에르불레즈홀
피에르불레즈홀이 위치한 건물은 2010년까지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세트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2016년에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가 입주하면서 이 자리는 새로운 역사를 갖게 되었다.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인 바렌보임은 1999년 유럽과 중동의 문화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인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는데, 팔레스타인 출신 문학자 에드워드 W. 사이드(1935~2003)는 이 오케스트라 창단과 활동에 사상적인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2002년에 음악과 사회에 대한 담론을 담은 ‘평행과 역설’이라는 책을 함께 출판할 정도로 뜻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이 예술가와 학자의 이상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1929~)를 만나 구체화됐다. 프랭크 게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 우리 시대의 수많은 랜드마크를 건축한 바 있으며,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이상을 초기 단계에서부터 옹호했다. 그는 기꺼이 이 뜻깊은 공간에 연주홀을 봉헌했다. 연주홀의 명칭에는 1964년에 바렌보임과 함께 베를린필에 데뷔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교감했던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의 이름을 담았다. 2017년에 개관한 이 피에르불레즈홀은 문화 교류와 혁신, 학문과 예술이 만나는 현장으로 베를린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교집합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거인이 존재했다. 오주영
CONCERT 서울시향과 만나는 토머스 햄슨
3월 28·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롯데콘서트홀
말러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3월 3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외
1월 취임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으로 좋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얍 판 츠베덴이 다시 한번 말러를 들고 토머스 햄슨과 만난다. 이 둘은 2022년 5월 뉴욕필과 함께 이미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선보인 적이 있기에, 같은 레퍼토리를 준비한 이날의 공연은 보증된 수표다. 또한 햄슨은 1990년에 번스타인/빈필과 함께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집’을, 제프리 파슨스와 함께 가곡 버전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녹음한 바 있다.
3월 28·29일 공연에 이어 햄슨의 은혜는 30일에도 이어진다. 서울시향의 실내악 시리즈 공연으로 피아니스트 한상일과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선보인다. 이 작품을 토머스 햄슨의 목소리로 미리 감상하고 싶다면 200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음반을 추천한다. 이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