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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듣다
게임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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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 XVI
환상의 마법이 야기한 잔인한 복수극
게임은 의미심장한 각인을 얼굴에 새기고 있는 주인공 ‘클라이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국가 간의 처절한 전쟁에서, 그는 한 인물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아 불리한 전황을 타개할 용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용병 ‘클라이브’의 복잡한 사연은 그의 신분이 사실 ‘로자리아’라는 멸망한 공국의 왕자라는 데에서 출발하죠.
왕자에서 노예로
클라이브는 뛰어난 검술 실력과 인자한 성품으로 백성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강력한 불의 소환수(마법 중 가장 강력한 마법으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힘)가 깃든 동생 ‘조슈아’가 있었죠. 클라이브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소환수를 다룰 수 없다는 이유로 천대받았지만, 용맹한 왕자로서 로자리아 공국을 침공하려는 철 왕국에 맞서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전황을 갖추고, 다가오는 철 왕국과의 전투를 대비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철 왕국이 아닌, 옆 나라 상브레크 황국의 암살자들과 군사들의 기습을 받습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습격 당한 로자리아 군사들은 속절없이 쓰러졌고, 학살에 가까운 아비규환이 펼쳐졌죠. 그 과정에서 나라의 지도자인 아버지가 전사하고야 맙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목이 잘려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클라이브의 동생 조슈아는 격한 감정에 휘말려 소환수의 힘을 폭발시키지만, 곧이어 또 다른 강력한 소환수가 나타나 조슈아를 살해하고 맙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목도한 클라이브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습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친어머니인 ‘에너벨라’가 계획한 것으로, 권력을 위해 상브레크 황국과 내통하여 남편과 자식들을 버리는 극악한 일을 꾸민 것입니다. 에너벨라의 파렴치한 행동은 멈추지 않고, 정신을 잃은 클라이브를 보고 황국의 병사로 써먹자며 얼굴에 각인을 새겨 끌고 갑니다. 클라이브는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왕자에서 노예에 가까운 신세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는 동생 조슈아를 죽인 소환수를 찾아내기로, 그리고 처절하게 복수하기로 다짐합니다.
사건을 만들고 예고하는 음악적 연출
대다수의 게임이 어느 정도는 현실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면, ‘파이널 판타지 XVI(16)’은 그러한 타협 없이 순전히 판타지적 상상력에서 기인했다고 호소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음악이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XVI’에서 음악이 비어있는 순간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화가 오가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플레이어가 게임기를 잡는 매 순간이 음악으로 채워지죠. 이는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 음반이 총 8장의 CD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합니다. 음악의 규모도 마찬가지로 이 ‘맥시멀리즘’에 부합합니다. 모든 음악이 빽빽하고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음악의 역할은 소환수 간의 전투에서 극대화됩니다. ‘파이널 판타지 XVI’에는 여러 국가가 존재하는데, 각 국가는 강력한 군사적 무기이자 비대칭 전력인 ‘소환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불·얼음·바람·번개 등 게임 속 마법의 속성 별로 한 개체씩 존재하는 소환수는 그 마법의 정점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환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도미넌트’라고 부르고, 이들은 국가에 따라 고귀한 존재로 여겨지거나, 반대로 그저 전쟁을 위한 노예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펼치는 전투가 결국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기에 소환수와 도미넌트는 ‘파이널 판타지 XVI’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시각적으로도 가장 극적으로 연출되는 소환수 간의 전투에서 음악은 그들의 위엄과 압도감을 특색 있게 표현합니다. 가령 얼음의 소환수인 ‘시바’의 경우 빠르게 전개되는 음악 속에서 고음역의 소프라노가 긴 호흡의 노래를 부릅니다. 격동하는 전쟁의 열기 속에서 모두를 얼려버리는 차가운 능력을 표현하는 듯한 소리이죠. 이는 ‘시바’가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점과도 잘 어울립니다. 한편, 불의 소환수인 ‘피닉스’의 경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한 선율이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게 움직이고 치솟는 불길을 묘사하듯 음악이 역동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불의 소환수를 조종하는 ‘조슈아’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본 후, 분노의 화염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하던 모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게임의 놀라운 점은 음악이 단순히 플레이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한발 앞서나가 플레이어가 음악을 따라가게끔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게임의 경우, 특정 상황에서 플레이어의 진행도에 따라 음악에 계속해서 악기를 늘려나가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상황을 반영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XVI’은 오히려 갑작스럽게 음악의 전개를 바꾸거나 아예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면서 플레이어의 상황을 미리 제시하여 다가올 변화를 인식하게 합니다. 이 방식에 따라 한 시퀀스에 여러 음악이 동시다발적으로 녹여지게 되죠. 처절한 전투 상황에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 장조로 전환되고 플레이어를 독려하는 응원가로 바뀐다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지금 승기를 잡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플레이어가 하나의 음악극이나 오페라에 들어간 기분을 선사해 주죠.
마지막 ‘판타지’를 위하여
클라이브는 복수를 향한 분투 끝에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합니다. 사실 클라이브에게는 본인도 알지 못했던 소환수의 힘이 깃들어 있었고, 로자리아 공국이 멸망하던 그날, 폭주한 친동생 조슈아를 죽인 소환수는 바로 통제 불능이 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인생을 바쳐 쫓아다닌 복수의 대상이 자신인 것을 알았을 때 클라이브는 무너지고, 세상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동료들의 도움과 여러 여정을 통해, 다시 한번 궁극적인 복수를 계획하게 되죠. 바로 인간을 만들고, 그들에게 마법을 선물한 악신(惡神) ‘알테마’를 죽여 ‘마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말이죠.
소환수를 이용한 국가 간의 전쟁, 어머니의 배신이 낳은 로자리아 공국의 멸망 등의 중심에는 마법이 있었습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자,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자, 마법의 에너지가 담긴 자원을 가진 자 등은 세계에서 윤택한 삶을 얻지만, 역설적으로 마법 자체는 다툼과 분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진흙탕의 원천이었죠. 클라이브는 그래서 ‘마법’이 없고, ‘판타지’가 존재하지 않아, 인간이 ‘자신의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판타지의 종식, 즉 ‘파이널 판타지’인 셈이죠. 과연 그의 복수와 투쟁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이번 기회에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어떠신지요.
글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KBS 1FM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