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제프 소벨, 당신을 만찬에 초대합니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4월 1일 9:00 오전

ON THE STAGE

 

연출가 제프 소벨

당신을 만찬에 초대합니다

 

세계 프린지 축제의 1순위 초청 아티스트가

국내 무대에서 펼칠 기상천외한 예술

 

©Maria Baranova

 

 

 

 

 

 

제프 소벨 배우이자 연출가, 창작자로 극장에서 행위예술 공연을 제작해 왔다. 파리의 자크 르코크 학교에서 신체극을 공부했으며, 2001년부터 피그 아이언 극단에서 13년간 배우 활동과 교육 활동을 맡았다. 뉴욕 바드 대학에서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세계 다양한 축제에 초청되어 여러 제작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잘 차려입은 웨이터, 그가 들고 있는 뚜껑 덮인 음식, 건배를 위해 와인 잔을 높게 든 사람들, 새하얀 식탁보를 씌운 기다란 테이블, 무늬가 들어간 붉은색 벽지, 은은한 조명, 넓은 벽에 걸린 거대한 풍경화. 서양 레스토랑의 전형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간단하지만 인상적인 글자가 담겨 있다. ‘FOOD(음식).’ 레스토랑에서 하는 디너쇼일까? 실체는 그와 반대로 공연장에서 하는 ‘만찬쇼’이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출가 제프 소벨은 30인용 거대한 식탁을 공연장 한가운데에 놓고, 관객을 만찬에 초대한다.

웨이터 복장으로 차려입은 소벨은 관객이 풀어낼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FOOD’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그날의 공연은 테이블 앞에 착석한 손님(관객)의 참여로 만들어진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창한 말을 펼쳐야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그가 도울 테니까.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 참여형 공연을 만들어 온 베테랑, 제프 소벨의 빛나는 기발함은 오래된 유튜브 계정에 있는 16년 전의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 행위로 공연을 진행하는 그는 언어 없이 인간의 심리를 읽어내는 ‘마술사’ 같다. 게다가 실제로도 마술에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그는 2013년부터 일상을 소재로 한 3부작 극을 제작해 왔는데, ‘물체 수업(The Object Lesson, 2013)’ ‘내 집(HOME, 2017)’에 이은 ‘FOOD’는 그 마지막 시리즈이다. 그중 2019년 의정부음악극축제에 오른 ‘HOME’은 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번에 내한하는 ‘FOOD’는 2022년 필라델피아에서 초연되어, 2023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27회 전석 매진을 이끈 화제작이었다. 2년간의 미국·영국·호주 투어에 이어, 올해 드디어 강동아트센터(서울시 강동구)에 닿아 아시아 초연을 앞두고 있다. 직접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공연을 파헤치기 위해, 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다음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할 것.

 

퍼포먼스 연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술과 슬랩스틱, 그리고 황당한 상황을 벌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전통적인 연극보다 좋았죠.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전부 섞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10대 때부터, 대학에 다닐 때도 공연을 제작해 왔어요. 1998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만의 무대를 꿈꾸며 곧장 뉴욕으로 가기도 했고, 필라델피아에서 지내며 친구인 트레이 라이포드와 함께 ‘모두 중산모를 쓰고(all wear bowlers)’라는 극을 만들었죠. 이 작품으로 국제 투어를 시작하며, 제 경력이 시작됐어요. 2006년 부산 투어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멋진 공연이었죠.

일상 속 소재를 연극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시리즈를 제작해 왔습니다. 이러한 대상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상의 아주 평범한 부분이야말로 제게 아주 풍요로운 땅입니다. 관객은 잔잔한 일상을 보러 공연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상을 공연에서 만나면 꽤 짜릿하게 다가오죠. 인위적으로 꾸민 이야기보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낯선 이의 이상한 행동이 더 재밌지 않나요? 평범한 삶과 이걸 번역할 극적 언어를 찾아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정물화’해서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물’은 관객의 경험이 반영되어서 개개인의 마음에서 굴절해요. 의미가 더 개인화되는 것이죠.

관객을 더 조명하는 것이네요. 전작인 ‘HOME’에서도 관객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여 그들의 경험을 극화하는 즉석 공연을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진 ‘거대한 저장고’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흐려진 기억을 생각보다 잘 간직하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기억을 자극해서 무대 위에서 끌어내면, 그걸 설명하는 자신에게 제일 놀라곤 해요. 저는 이걸 지켜보는 게 감동스럽고요.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몰입하는 ‘이머시브 예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소규모 관객과 함께 직접 접촉하는 공연과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경험할 수 없던 것을 체험하는 전시가 있더군요.

저는 전적으로 전자죠. 기술 중심의 공연이 앞으로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미국의 젊은 세대에는 스마트폰을 거부하고 피처 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있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어두운 방에서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 거예요.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숨 쉬고, 함께 울고, 함께 생각하고 싶어 하니까요.

작업한 대부분의 공연에서 대사를 상당히 한정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행동이 더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언어를 피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태어나면서 소통·이해·공감·웃음을 능력으로 지니고 태어나지만, 언어를 지니고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서 언어 없이 눈치채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보통은 오히려 말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나죠. 사람들은 정말 계속 말을 해요. 마치 ‘언어를 피하는’ 것보다 ‘침묵을 피하는’ 것 같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지시하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제가 계속 추구하는 거예요. 저는 언어를 사랑해요. 하지만 아주 적게 사용하는 거죠.

 

그가 선사해 줄 ‘음식’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FOOD’ ©Maria Baranova

4월 4~7일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FOOD’는 음식과 그 생산을 다룹니다. 2022년 필라델피아 프린지아트 페스티벌에서 초연했는데, 어떤 구상과 과정을 통해 제작했나요?

2018년 가을, 아내가 첫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주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의존하는 새로운 생명이 아내가 먹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을 마시는, 그 생물학적 구조에 사고가 사로잡혔죠. ‘섭취’라는 단어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발상을 떠올리게 하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어요. 거대한 식탁에 관객이 빙 둘러앉으면, 그 자체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꾸미면 더욱더 그렇고요. 극장과 레스토랑은 굉장히 닮은 점이 많은데, 우선 완성품이 상 위에 올라갈 때, 그걸 손질한 뒤쪽은 가려져야 한다는 점이죠. 이 ‘숨겨진 생산 수단’에 관해 아이디어를 짜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다만 팬데믹이 찾아와 생각할 시간이 더욱 늘어나 버렸지만요. 제 아이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될 정도의 시간이었죠. 시간이 많아지니 이 공연은 이전에 했던 어떤 작업보다 혼자 작업하는 부분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공연에 참여한 인원은 전작보다 소규모이지만,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 볼 수 있었죠. 시범 공연은 2021년 12월에 시작됐고, 팬데믹으로 식탁에는 15명 정도의 관객만 앉아 있던 게 기억나네요. 그 공연을 발전시켜서 더 거대한 식탁을 만들고, 여기까지 이어지게 됐죠.

‘FOOD’는 작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고, 그 뒤로 애리조나·뉴욕·텍사스 등 미국 투어, 그리고 호주 퍼스에서도 공연됐습니다. 지역에 따라 관객 반응도 달랐겠네요!

투어를 통해 느낀 건데, 이 공연이 얼마나 ‘미국적’인지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동시에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게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서로 남의 말을 끊어내고 싶어 하거든요. 영국에서는 매우 어려웠어요. 그 지역 사람들은 훨씬 예의 바르더라고요.(웃음) 어느 나라를 가든, 어떤 공간을 가든, 공연은 매번 달라질 것입니다. 어떻게 다른지는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아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축제와 투어 때는 매일매일, 하루에 두 번씩 공연을 몇 주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관객과 상호작용 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퍼포먼스인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하하! 아니요, 저는 전문가인 걸요.(윙크)

관객 참여형 공연은 초반의 ‘아이스브레이킹’에 그날 공연의 흥망성쇠가 걸려 있다고 하죠.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는 비법이 있을까요? 맞아요.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고, 신중하게 준비하는 것은 공연 성공에 큰 도움이 되죠. 간단하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FOOD’의 경우는 한 단어이죠. 바로… 와인! ‘아이스브레이킹’에 와인 잔을 기울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겠어요?

 

심오한 듯, 가벼운 이야기

“왜 먹나요? 뭘 먹나요? 그건 어디서 왔죠? 그걸 위해 실제로 얼마를 지불해야 하죠?” ‘FOOD’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어쩌면 조금 공격적으로 도덕이나 환경에 관한 의무를 물어 경각심을 일깨울 수도 있는데, 공연의 목적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어요.

분명 공연이 선사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맞는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비판 같은 건 없어요. 오신 분들이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고, 인간과 음식 사이에의 관계를 보다 많이 조명해 보길 원할 뿐이죠.

이 공연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코미디는 사회비판을 품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비평가가 아닌 관객을 위해 공연을 제작하는 걸요.(웃음) 비평가의 글은 공연과 별로 연관이 없고, 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관객이 최고의 경험을 얻는 좋은 방법은 관람 전에 그런 글을 절대로 읽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비평가에게 거부감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제 공연을 보고 쓴 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응원하는 편이죠. 다만 그러한 분야는 제 작업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코미디가 사회비판을 품고 있다는 것은 동의해요. 인간이 가진 연약함·위험성·행동력·기이함이 다 담겨 있죠. 하지만 코미디와 비극 사이의 너무나 얇은 선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이 있으니, 첨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마무리로, 올해 계획 중인 일이 있을까요?

아이들과 나무집을 짓는 것이요!

이의정 기자 사진 강동문화재단

 

Performance information

연극 ‘FOOD’

4월 4~7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4월 12~14일 공주문예회관 대공연장

4월 19~2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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