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새로운 춤이 낯선 당신을 위한
컨템퍼러리 발레 입문서
17세기에 확립된 춤의 장르, 발레. ‘고전’의 반열에 올라 사랑받는 와중에도, 이 춤은 멈추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새로운 옷을 갈아 입어왔다. 토슈즈와 튜튜를 벗어던지고 ‘동시대’의 옷을 입은 발레가 아직 조금 낯선가. 5월은 ‘객석’과 함께 발레의 역사를 살피고, 동시대 춤 현장을 돌아보며 ‘컨템퍼러리 발레’를 이해해볼 시간이다. 총괄 허서현 기자
CHAPTER 1 컨템퍼러리 발레의 시작과 전개
CHAPTER 2 새로운 춤을 만든 작품과 사람들
CHAPTER 3 한국 발레단의 변신과 탐구
CHAPTER 4 한국 발레단 창작의 해외 진출
CHAPTER 5 축제 속 컨템퍼러리 발레 만나기
CHAPTER 1 컨템퍼러리 발레의 시작과 전개
고전에 대한 거부와 창조적 포용
고전부터 모던, 컨템퍼러리를 거친 발레의 역사
최근 국내 발레계가 들썩인다. 컨템퍼러리 발레단을 표방하며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이 지난 4월에 창단 사전 공연을 선보였고, 5월에는 세계적인 안무가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국립발레단),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유니버설발레단) 등 대형 창작 작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발레’라면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리던 사람들도 ‘요즘 발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고전 발레가 아닌 컨템퍼러리 발레 말이다.
‘컨템퍼러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고전 발레
컨템퍼러리 발레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무용학자 산산 콴(Sansan Kwan)이 지적하듯, 무용계에서 ‘컨템퍼러리’가 쓰이는 방식이 문화나 장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고전 발레와 컨템퍼러리 발레, 모던 발레와 컨템퍼러리 발레, 그리고 컨템퍼러리 발레와 컨템퍼러리 댄스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구별되기는 할까? 이 글에선 컨템퍼러리 발레의 기원과 특징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청사진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컨템퍼러리 발레는 발레, 특히 ‘고전 발레’를 전제한 개념이다. 따라서 고전 발레를 이해해야 컨템퍼러리 발레를 이해할 수 있다. 고전 발레는 흔히 19세기 말, 발레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구축한 작품 양식을 지칭한다. 이 작품 양식은 이성애적 결합, 즉 결혼을 주제로 한 전막공연이다. 남녀 주인공의 춤과 표현력을 과시하는 고전적인 2인무(grand pas de deux), 다양한 민속춤과 볼거리를 나열하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 정교하게 구성된다. 프티파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러시아 황실 발레단에서 60여 년간 발레마스터로 군림했기에 그의 스타일은 러시아 발레의 전형이 되었다.
물론 프티파 혼자 고전 발레를 만든 것은 아니다. 발레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 서양 귀족의 사교춤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종의 아카데믹한 춤 스타일인 당스 데꼴(danse d’école)은 17세기 프랑스에 세워진 음악무용아카데미에서 확립된다. 몸의 수직축을 중심으로 길게 늘이고, 몸의 관절을 분리하여, 발은 외전한다. 대칭·균형·조화 등의 고전적 미적 원리와 ‘불필요한 노력을 감추고 우아함을 중시’하는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의 미학을 몸으로 구현했다. 이러한 것들은 발레의 토대와 원리가 되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축적된 발레의 움직임 원리와 정교한 작품 양식이 정점에 달한 것이 바로 고전 발레였다.
그런데 프티파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 양식을 ‘고전 발레’라 명명한 적은 없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후 황실극장의 기록가(regisseur)였던 니콜라스 세르게예프가 자신이 기록한 무보(춤의 동작을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한 것) 뭉치를 들고 영국 빅웰스 발레에서 ‘잠자는 미녀’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황실발레단의 레퍼토리 상당수를 재현했을 때 영국 평론가들이 이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작품들을 ‘고전 발레’라 명명한 것이다. 따라서 고전 발레는 시대적 개념이 아니라 고전적 양식과 미학을 강조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변화
고전 발레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였지만, 무엇이든 멈추면 썩기 마련이다. 매너리즘에 경도되어 현실로부터 멀어진 양식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으니, 바로 모던 댄스와 모던 발레이다. 특히 지배 계층의 세계관에서 출발한 고전 발레는 민족주의·산업화·도시화로 급변하는 세계와 개인의 자율적인 주체성을 담는 데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에 ‘모던 댄스’는 발레의 양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한 ‘안티-발레’ 운동으로 등장했으며, 발레가 아닌 방식으로 자연스럽고도 진지한 춤, 나아가 동시대와 상호작용하는 춤을 추구했다.
반면 발레의 제도와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대를 담고자 한 이들은 ‘모던 발레’를 개척했다. 이 분야의 선구적 안무가였던 미하일 포킨(1880~1942)은 왜 농민 주인공이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등장하는지, 군무는 왜 기계처럼 똑같이 춤추는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며 발레를 현실화하려 했다. 미술만큼이나 오랫동안 신화와 영웅 이야기가 장악했던 발레에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또한 안무가들은 턴아웃·풀업 등 발레의 엄격한 규칙에서 벗어나 다양한 움직임 어휘를 도입했다. 조지 발란신(1904~1983)의 경우 기존의 스토리를 없애고 발레의 미학에 미국 흑인 춤의 움직임을 도입하여 신고전주의 발레, 추상 발레라고도 불린다.
‘모던’과 ‘컨템퍼러리’ 구분하기
그렇다면 모던 발레와 컨템퍼러리 발레는 어떻게 나뉠까? 근대·현대의 구분처럼 전자는 20세기 전반, 후자는 20세기 후반의 발레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시대적 구분이 늘 유효하거나 명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모던 댄스와 포스트모던 댄스, 그리고 컨템퍼러리 댄스의 흐름과 깊이 연관된다.
‘안티-발레’ 기획으로 시작된 모던 댄스는 곧 발레만큼이나 형식에 갇히게 된다. 발레가 강요했던 보편성은 깨뜨렸지만 안무가마다 자신의 테크닉 원리를 세웠으며, 무용단의 운영 방식이나 작품 창작에 있어 여러 가지 규칙들이 굳건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일련의 무용가들은 양식화된 움직임과 위계화된 체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춤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실험했다. 새로운 양식을 찾는 정도가 아니라 춤의 제작 방식과 전제 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극장을 벗어난 춤, 춤추지 않는 춤, 전문가가 필요 없는 춤이 등장했다. 이를 무용 이론가 샐리 베인즈(Sally Banes)가 ‘포스트모던 댄스’라 명명하면서 기존 모던 댄스와 구별되었다. 포스트모던 댄스는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며 춤을 둘러싼 모든 전제와 관습을 해체했다.
모던 댄스가 ‘안티-발레’라면 포스트모던 댄스는 ‘안티-댄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것이 춤이 될 수 있다’는 반(反)본질적 세계관이 이론적으로 성립되면서 더 이상 나아갈 방향이 없어졌던 것. 이후의 춤들은 다시 극장으로 돌아와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컨템퍼러리 댄스는 1980년대 이후 시대정신을 상실한 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요즘 춤’ 이외에 별 뜻이 없으니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템퍼러리의 특징을 굳이 꼽자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융합적 움직임이다. 예술 춤 장르는 물론이고 민속 춤과 대중 춤까지 모든 장르가 뒤섞인다. 무용수는 이제 다양한 장르의 움직임을 능숙하게 해내길 요구받는다. 무용학자 수잔 포스터는 오늘날 무용수가 ‘고용된 몸(hired body)’로서 다재다능한 몸(versatile body)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고 분석했다. 둘째, 컨템퍼러리 댄스는 기존 예술에 대해 성찰한다. 예술 춤의 역사와 특징에 대한 인식·이해·반성·저항을 전제하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 질문한다. 당연히 인종·젠더·섹슈얼리티·정치성·극장·몸·퍼포먼스 등의 사회문화적 담론이 따른다.
발레에 영향을 준 ‘컨템퍼러리’ 바람
발레 장르에서는 포스트모던 댄스 같은 근본적인 해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며 컨템퍼러리 댄스의 특징이 발레에 투영되며 컨템퍼러리 발레가 형성되었다. 모던 발레가 발레를 현실화하고 움직임의 어휘를 다양화 했다면, 컨템퍼러리 발레에선 장르 구별의 해체가 본격화되어 발레의 ‘룩’이나 움직임 원리마저 무너뜨린 ‘다재다능한 몸’이 두드러졌다. 특히 체계적이고 융합적인 교수법을 바탕으로 무용수의 놀라운 초유연성(hypermobility)과 가소성(plasticity)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수직축과 단단한 상체가 사라지고, 몸의 각 부분을 분리시켜 운용하며, 양말을 신고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테크닉도 자주 선보인다.
그런데 컨템퍼러리 발레가 당스 데꼴의 원칙을 버리고 여러 춤 장르를 받아들이다보니 컨템퍼러리 댄스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모던 발레를 선두했던 네덜란드댄스시어터가 이제 발레를 단체 정체성에서 빼버리고 컨템퍼러리 댄스로 재정의한 사례가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컨템퍼러리 발레를 컨템퍼러리 댄스와 구분하는 유효한 기준은 움직임 스타일이 아니라 무용수의 훈련 과정이다. 당스 데꼴을 포함하는가, 창작과 수용이 기존 발레학교나 발레단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가 하는 것이 판단 기준이다. 다시 말해 작품 내부가 아닌 외부, 가시적 특징이 아닌 비가시적인 요소, 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 달렸다는 것이다. 해외 주요 발레단에선 제롬 벨·아크람 칸·자비에 르 루아 등의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가를 초청해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들의 작품을 컨템퍼러리 발레라 명명할 수 있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품의 외부적 조건들 때문이다.
오래된 춤을 낯설게 보고 싶은 마음
한편 컨템퍼러리 발레는 움직임 차원의 확장에 비해 정치사회적 차원의 성찰은 더디다. 1990년대 이후 소위 ‘패러디 발레’가 등장해 고전 발레가 고수해 온 완벽하고 이상화된 몸 이미지, 이성애적 관계성, 위계적 구조, 몸에 대한 권력 통치 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성찰이 본격화했다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여기엔 발레가 4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장르일뿐더러 옛날 작품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연되는 장르라는 점이 작용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구축된 안정적인 체계와 풍부한 콘텐츠는 발레의 유산이다. 하지만 거기에 탐닉할 때 ‘장르’ 춤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발레는 ‘앤티크’ 가구와 같다. 모든 가구를 최신 유행에 따라 바꿀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앤티크가 전제하는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전통을 아끼고 잘 간수하고픈 마음과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려는 마음이 공존한다. 컨템퍼러리 발레는 마치 부담스럽지만 버릴 수 없는 앤티크 가구를 짊어지고 추는 춤이다.
글 정옥희(무용 평론가)
CHAPTER 2 새로운 춤을 통해 신세계를 열다
5~6월, 화제의 컨템퍼러리 발레 공연
새로운 발레를 통해 신선한 매력을 선보이는 작품 & 사람들
춤은 결국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정답이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역사 속에서 그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면, 춤 현장에서 이끌고 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무용수 모니크 조나스와 이현준은 동일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배경으로 추는 서로 다른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다. 안무가 최진수와 유회웅은 대한민국발레축제의 현장에서 각각 한국의 과거(화양연화)와 현재(라이프 오프 발레리노)를 소재로 삼은 안무작에 집중했다. 이들이 말하는 자신의 작품 속 몸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컨템퍼러리 발레의 실체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화양연화’ 안무가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최진수
근현대사에서 찾은 창작의 소재 재즈와 화려한 조명, 하이힐과 군화를 신은 무용수, 그 사이로 흐르는 대사.
2019년에 초연됐던 서울발레시어터(이하 SBT)의 창작 발레 ‘화양연화’가 다시 관객을 찾는다. 곳곳에 새로운 시도가 녹아 있지만, 공연은 어렵지 않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는 1995년 창단 이후 100여 편의 창작 발레 레퍼토리를 쌓아 온 SBT의 풍부한 경험 덕분일 것이다. ‘화양연화’ 총연출과 안무는 SBT의 단장·예술감독인 최진수(1974~)가 맡았다. 2018년부터 SBT를 이끌며 활약 중인 그는 과거 유니버설발레단과 SBT의 주역 무용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에게 그가 몸짓으로 표현해 낸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화양연화)’에 관해 물었다.
SBT가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발레를 기본으로 하면서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SBT의 슬로건은 ‘발레 콘텐츠의 다양화와 발레 예술의 저변 확대’다. 모든 장소가 무대가 되고, 무대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고 있다.
‘화양연화’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삶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김상옥 의사는 1920년에 암살단을 조직하고, 의열단에 가입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조국을 위해 불같은 삶을 살았다. 그 삶이 인상 깊어, 주인공 ‘이열’을 만들었다. 주인공 ‘이열’은 이순신 장군의 차남 이름에서, 일본군 헌병 대장 ‘칸요’는 이완용의 일본 이름에서 가져왔다.
고전 발레와 비교해 ‘화양연화’의 특징을 소개한다면?
재즈와 홍콩 가수의 노래 등 다양한 음악이 사용된다. 음악과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으로 빠져들기 쉬운 감정선이 있고, 약간의 대사도 사용됐다. 또한 무용수들의 연기력도 많이 요구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발레 공연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이 하이힐과 군화를 신고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공연예술의 장르 파괴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어떤 원로께선 “토슈즈와 푸에테(한쪽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쪽 다리로 채찍을 휘두르듯 회전하는 동작)가 없는데 그게 무슨 발레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극 전개에 필요하다면,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여러 음악을 사용하고 대사도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이 관객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영화를 좋아해, 영화처럼 연출하기도한다. 관객들도 흥미롭게 봐주시는 것 같다.
창작 발레가 낯선 이들도 ‘화양연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언해 준다면?
‘화양연화’는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만든 작품이다. 인체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조화를 다양하게 느껴 본다면 좋겠다. 와인을 마실 때 향과 빛깔, 맛을 모두 음미하듯 말이다. 사실 관객이 추상적인 현대작품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 발레는 음악·연극·미술적인 요소와 결합하며 수백 년에 걸쳐 발전해 왔고, 서양 관객은 오랜 시간 향유해 왔다. 한국은 서양의 문화예술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되지 않아서 다양한 작품을 받아들일 시간과 앞으로의 경험이 필요하다.
구상 중인 작품이 궁금하다.
올해 말엔 해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내년엔 국악과 결합한 마당놀이 발레극 신작을 제작할 계획이다.
글 김강민 기자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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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레시어터 ‘화양연화’
6월 11·1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총연출·안무 최진수/조안무 박경희/지도 강성인·황경호
혁신의 매튜 본 vs 고전에 충실한 케네스 맥밀란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뉴 어드벤쳐스 무용수 모니크 조나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엣 역 모니크 조나스(1995~)가 말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든 춤은 스토리에 뿌리를 둔다. 즉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이유는 재해석된 고전 캐릭터의 현실성에서 출발하는 것. “관객은 그저 앉아서 이야기를 즐기면 되고, 어떤 사전 지식도 필요 없을 것”이라는 안무가 매튜 본의 말대로,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춤은 구태여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모니크 조나스는 2019년부터 안무가 매튜 본의 무용단체 뉴 어드벤처스에 합류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초연 제작 과정에도 참여했다. 직접 무용단 ‘조나 댄스(Jona Dance)’ 창단하기도 한 그는 매튜 본과의 작업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진실성을 유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940년 마린스키 발레에서 초연한 이후, 많은 안무 버전을 가진 작품이다. 애쉬튼(1955년)부터 존 크랑코(1958년)·케네스 맥밀란(1965년)·누레예프(1977년)·장 크리스토프 마요(2006년) 버전까지 있다. 계속 재창조되는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버전이든, 그 핵심에는 첫사랑, 플라토닉한 사랑, 젊은이들의 사랑, 그리고 욕망 등의 본능이 이야기를 통해 묘사된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 내한하는 5월, 케네스 맥밀란의 버전도 공연된다. 관객은 두 버전을 모두 감상할 기회가 생겼는데,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같은 달에 다른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경험할 기회가 있다니! 멋진 소식이다.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에서 유명해 당연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두 버전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매튜 본은 고전 발레를 참조하지만, 주로 컨템퍼러리 댄스의 스타일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고전 스토리를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세기 베로나에 있지 않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베로나 인스티튜트라는 가상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 또한 그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오래된 동화에서 예상하지 못한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인터뷰의 목적은 관객에게 조금 낯선 컨템퍼러리 발레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 매튜 본의 작품이 ‘얼마나 발레틱한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 같은가?
글쎄, 매튜 본의 작업에서는 스토리가 늘 중심에 있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스타일은 다양하다. ‘빨간 구두’는 고전적 동작의 어휘를 사용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다 현대적인 몸의 언어를 사용한다. 모든 춤의 언어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매튜 본은 모든 인물, 심지어는 관객이 모르는 부분의 역할에도 이름, 역사, 성장 배경과 주요 성격을 부여한다. 그는 ‘진짜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 나 또한 이것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기본기라고 믿는다.
2019년부터 뉴 어드벤쳐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튜 본이 요구하는 표현력을 위해 무용수로서 필요한 역량은 어떤 것들인가?
뉴 어드벤쳐스의 무용수는 주로 발레나 컨템퍼러리 댄스 중 한 전공으로 최소 3년 이상의 정규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대부분 두 전공 모두를 소화할 수 있다. 뉴 어드벤쳐스에서 이를 활용해 레퍼토리 내에서 다양한 변형을 겪는다. 어떤 공연이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느냐에 따라 필요한 기술은 다르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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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5월 8~19일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
연출·안무 매튜 본/음악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편곡 테리 데이비스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 이현준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 역
2012년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 발레단으로서 최초로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였다. 당시 티볼트 역에 캐스팅됐던 이현준(1985~)은 로미오 역을 맡은 객원무용수의 부상으로 ‘로미오’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유니버설발레단을 대표하는 무용수가 된 그가 다시 한번 ‘로미오’로 분한다. 작품에 대한 연습과 연구,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의 ‘로미오’를 공연 전, 미리 만나봤다.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전에 가장 부합한 안무라는 평을 받는다.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안무가 있는가?
이 작품에서 안무가가 불어넣은 매력은 도전적인 파드되(2인무)라고 생각한다. ‘도전적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체력적인 부분 때문인데,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안무인 발코니 장면(파드되)을 로미오의 독무로 시작하고, 머큐쇼·벤볼리오 등과 어울리는 장면의 안무 역시 빠른 회전과 도약으로 이뤄진 독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수많은 독무 중에서도 연회장에서 가면을 쓴 로미오가 줄리엣 앞에서 추는 독무에 특히 애정이 간다.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수석무용수 강미선(줄리엣 역)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작품을 준비하며 안무에 관해 의논한 부분이 있다면?
그는 무대 경험이 많은 만큼 상대 무용수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는, 어떠한 경지에 오른 무용수라는 생각이 든다. 10대 소년 소녀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수한 첫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고 있다. 나이는 더 이상 로미오가 아니지만, 마음만은 아직 청춘이다.(웃음)
폭넓은 레퍼토리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전 발레와 컨템퍼러리 발레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차이를 두지 않는 편이다. ‘발레’라는 틀 안에서 기본기는 통일되기 때문에,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컨템퍼러리 발레는 안무가가 원하는 느낌을 표현해야 하기에 자신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동작이나 표현도 있을 텐데, 이를 위한 연습 방법이 있는가?
공연을 준비하며 안 풀리는 날을 한 번 이상 겪어야 그에 대한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 무대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실수하더라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관건이다. 잘하고 싶고, 무대에 대한 욕심도 많은 편인데, 문훈숙 단장님의 “스토리에 집중해야 동작도 잘 풀리고 명확해진다”는 조언이 도움이 됐다. 나이가 들어가며 신체적인 면도 변하는 만큼, 요즘은 체력 관리에 힘쓰고 있다.
발레 공연의 매력을 소개해 준다면?
최근 미디어를 통한 공연 관람이 늘어났지만, 현장 공연만큼 가슴 떨리는 일이 있을까 싶다. 특히, 발레는 그 어떤 장르보다 원초적인 춤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 주는 종합예술이라고 자부한다. 이번에 선보일 대중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발레 공연에 입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케네스 맥밀란 같은 안무가가 되는 게 꿈이다. 아직 경험은 많지 않지만, 조금씩 발레 작품을 만들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Performance information
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5월 10~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안무 케네스 맥밀란/음악 프로코피예프/연출 줄리 링컨/지휘 지중배/코리아쿱오케스트라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안무가
유회웅리버티홀 대표 유회웅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춤추다
대한민국발레축제에는 국립, 시립발레단과 더불어 여러 민간발레단이 참여하여 해마다 주제에 맞춘 창작안무작을 선보인다. 그 때문에 축제 공모작의 다수는 컨템퍼러리 발레이다. 안무가 유회웅은 이 축제와 나란히 성장한 인물이다. 14회의 축제 동안 총 7번의 참석, 5개의 작품을 선보인 그는 대한민국발레축제를 “감사한 기회의 장”이라고 말한다. 그가 창단한 단체 ‘유회웅리버티홀’은 올해 발레 공연에서 조연의 자리를 차지하던 남성 무용가의 삶을 주연의 위치로 옮겨 놓은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를 준비했다.
본인의 이름을 딴 무용 단체 ‘유회웅리버티홀’을 2012년에 창단했다. 창단 배경은 무엇인가?
‘유회웅리버티홀’의 정체성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표현하자’이다. 춤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에 다가가고, 연극적 요소를 활용하여 발레를 대중화하고자 했다. 어린이 발레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발레라는 장르에서 할 수 있는 보다 큰 재미를 추구하여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 모으고자 한다.
12년간 유지해 온 단체에 어려움은 없었나?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단체는 프로젝트 그룹처럼 운영되는데, 이는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에는 적합했지만, 레퍼토리로 굳히기에는 부족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문제에 반응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온 것은 기쁜 일이다.
앞선 언급처럼 지금까지의 작품은 사회와 현실이 가진 문제에 주목한 것이 많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뜻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집에는 늘 뉴스가 틀어져 있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다. 일상의 대화에서 묻어 나오는 여러 사람의 사회적 고민도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과 방법보다는 발레를 통해 그 주제를 나만의 언어로 제시하며, 관객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예술을 추구한다.
2008년부터 첫 개인 안무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와 단체에서 바쁘게 활동 중이다.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 공연인 ‘봄의 제전’(4.26~28) 속 ‘No More’의 안무도 준비 중이다.
국내에는 아직 컨템퍼러리 발레보다 고전 발레 공연이 선호되곤 하는데, 서울시발레단의 창단으로 컨템퍼러리 발레가 관심받기를 기대 중이다. 현시대 문제를 다루는 것부터, 연극적 요소를 갖춘 것, 미디어 아트나 또 다른 기술을 결합한 것 등 폭넓은 컨템퍼러리 발레를 만나 볼 수 있을 테니, 작품의 색이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안무가로서 생각하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필수 요소가 있을까?
고전발레의 정형화를 벗어나서 다양한 움직임을 그려낸다면, 안무가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컨템퍼러리 발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컨템퍼러리 발레의 필수 요소가 명확히 있다기보단, 안무가의 상상력과 개성을 따라간다.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는 한국에서 남성 무용수를 꿈꾸는 이들의 삶을 반영했다. 입시, 콩쿠르 수상, 병역 문제 등의 이야기가 있는데,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나?
어느 한 특정 인물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한국의 ‘발레리노’ 모두가 주인공이자,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솔직한 이야기이다. 발레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대중이 ‘발레리노’를 주목할 수 있도록 꾸몄다.
‘비겁해서 반가운 세상’(2014·2015),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2019), ‘변화가 변화를 변화한다’(2020), ‘No News’(2021), ‘커튼콜’(2023)까지, 꾸준히 대한민국발레축제에 참여했다. 본인에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어떤 의미인가?
내겐 정말 의미 있는 행사이다. 상상하던 그림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던 스케치북이며, 수많은 도전을 열정으로 행할 수 있게 해준 감사한 행사이다. 이런 기회의 장을 덕에 안무가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언제나 이 축제를 통해 많은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날개를 달아 멋지게 활동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대한민국발레축제
Performance information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6월 11·1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유회웅(안무)/김지영·김현웅·이현준·이재우·변성완·류형수(무용)/이도엽(무대·기술)/김정화(조명)
CHAPTER 3 한국 발레단의 끝없는 변신 탐구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문훈숙
창단 40주년을 맞은 발레단의 미래
창작으로 새 길을 열어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창단 당시 발레 불모지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에서, 민간 발레단이 이들이 이뤄온 역사는 의미심장하다. 특히 창단 직후, 우리 고유의 문화를 담은 발레 ‘심청’ 창작에 돌입했고, 1986년 초연된 이 작품은 40년 내내 유니버설발레단 고유의 레퍼토리로 혁신을 거듭해왔다. 이후 ‘춘향’ ‘더 발레리나’에 이어 최근 강미선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작 ‘미리내길’이 포함된 ‘코리아 이모션 정’을 선보였으며 오하드 나하린·이어리 킬리안·나초 두아토 등의 모던 발레 안무작을 선보이는 등 레퍼토리 다양성에 앞장서 왔다.
문훈숙 단장은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고려한 것은 무용수들의 실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가와 국내 관객이 ‘꼭 봐야하는 작품’인가였다. 2001년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모던 발레 작품들을 하나씩 선보이면서 국내 발레계의 성장을 언제나 고려했다”고 언급했다. 오는 5월,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 중 하나인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중 하나다.
창단 40주년을 맞이해,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든 소회는 무엇인지요?
최근에 공연 연표를 만들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정말 다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창단 초기부터 세계적인 교육자와 교육 시스템 도입, 해외 라이선스 작품 도입, 해외 공연 진출, 창작 발레 개발 등 최초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1984년 당시 한국 발레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비포장도로를 가고 있던 한국 발레를 위해 고속도로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미국인인 애드리언 델라스 예술감독을 통해 ‘조지 발란신’ 하면 떠오르는 명작들 ‘세레나데’ ‘아폴로’ ‘라 손남불라’ 등을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고전 발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해외 유명 안무가들의 컨템퍼러리 발레 작품을 소개한 공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전 발레의 기반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이후, 2001년부터 모던 발레를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던과 드라마 발레를 통해 레퍼토리를 완성해 나가는 단계를 밟았던 것입니다. 사실 모던 발레 작품을 시작할 때 내부에서 반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트렌드가 변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죠. 당시 컨템퍼러리 작품을 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발레단 반열에 오를 수 없고, 무용수들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검증된 세계적 안무가들의 우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시도는 국제 춤 시장에 유니버설발레단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명 안무가일수록 일정 수준의 무용수들이 아니면 자신들의 작품 공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안무가의 작품을 공연했느냐는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무가 한스 반 마넨처럼 고전 발레에 가까운 작품, 좀 더 컨템퍼러리한 나초 두아토, 그리고 완전히 컨템퍼러리 댄스인 오하드 나하린까지 차근차근 ‘아, 이 정도면 단원들이 할 수 있겠다’ 하며 단계를 밟았습니다. 단원들의 몸의 언어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고전 발레 공연 수준도 올라갔죠. 그중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존 크랑코의 ‘오네긴’도 이런 맥락에서 무조건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장이기 전, 무용수로서의 문훈숙도 많은 발레 팬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모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것을 선택 하실 건지요?
그간의 공연장들을 선정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해서 엄선한 마스터피스들입니다. 하나를 고르는 것은 ‘아들이 좋냐 딸이 좋냐’는 것과 같습니다. 작품마다 개성이 있고, 제각기 다른 스타일인데 제 취향은 이어리 킬리안의 ‘프티 모르’,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와 ‘멀티플리시티’입니다.
창작으로 다져온 역사
시간을 거슬러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뉴욕에서의 해외 공연은 우리나라 무용예술 작품의 해외진출이란 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성과입니다.
네, 1998년에 뉴욕 시티센터에서 ‘심청’과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습니다. 저희 발레단의 최초 뉴욕 공연 프레젠터 역할을 거절했던 폴 질라드가 이 공연을 보고 나서는 “이제부턴 내가 유니버설발레단을 맡겠다”라며, 2001년 링컨센터 스테이트 시어터를 비롯한 미국 3대 오페라 극장, 발레의 본고장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유럽 전역에서 공연을 하면서 유니버설발레단이 한국 발레 위상을 높였습니다.
당시 현지 관객이 창작 발레 ‘심청’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에 무척 놀랐습니다. 관객이 발레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효’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한국적 소재의 발레 ‘심청’이 발레단에 갖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지요.
‘심청’은 1986년 초연된 작품인데, 음악을 새로 작곡한 것을 고려할 때 창단하자마자 기획한 델라스 예술감독님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발레단과 함께 38년 동안 수정 보완을 거치면서 함께 성장한 작품이죠. 이제는 유니버설발레단 하면 떠오르는 간판 작품입니다. ‘백조의 호수’가 처음에는 창작 발레였지만 지금은 고전이 된 것처럼, ‘심청’은 저희 발레단의 고전이 된 발레입니다.
이어 창작된 ‘춘향’은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이 모티브가 되어 초연을 가진 이후 재공연을 하면서 차이콥스키의 모음곡으로 음악이 바뀌었고, 무대에 LED 영상을 쓰기도 했지요.
재공연 당시 안무가였던 유병헌 감독이 공연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고민하더니, 차이콥스키 음악으로 교체를 제안했습니다. 공연 후 모두가 “차이콥스키 음악이 신의 한 수였다”고 말하더군요. ‘심청’이 프티파 스타일의 고전 발레에 가깝다면, ‘춘향’은 좀 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같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작품이지만 ‘코리아 이모션 정’은 기존 국악과 편곡된 국악, 드라마의 OST까지 우리 국악을 토대로 만든 음악과 춤의 결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유병헌 예술감독의 구상과 기획으로 탄생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미리내길’ 2인무로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수상할 정도로 안무가 정말 획기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음악이 압도적으로 훌륭하고 인상적인데요, 유 예술감독의 강점인 음악 선정과 안무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리는 발레 동작, 상체는 한국 무용일 정도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고, 제가 아직도 춤을 출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2인무입니다.
다시, 새 길을 다져본다
40주년 기념 공연으로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입니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서 활동하는 서희가 줄리엣 역으로 내한하죠. 해외 주요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주역 무용수를 국내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들어주며 네트워킹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민간 직업 발레단에게는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작품을 기념 공연에 포함한 이유가 있나요?
상반기에는 8년 만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반기에는 6년 만에 ‘라 바야데르’를 선보입니다. 자주 올릴 수 없는 작품을 창단 40주년에 선보이는 것은 관객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기도 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산실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입니다. 서희도 선화예중·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졸업해 ABT에 갔기에 각별한 무용수입니다. 한국 관객들이 해외 발레단에서 빛나는 무용수를 국내 무대에서, 심지어 평단의 극찬받은 바 있는 대표 작품으로 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초청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보유한 레퍼토리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물론 발레단 살림을 꾸려나가는 책임자로서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요?
주변에서 “공연 횟수가 많다”라고 얘기하지만, 유니버설발레단 정도의 규모라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단원의 수가 줄어서 인턴 무용수도 많이 필요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뿐만 아니라 민간 발레단들이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공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죠.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 30주년을 맞은 서울발레시어터, 20주년을 맞이한 와이즈 발레단 등 그 기여도가 인정되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 지원이 가능한 방안이 절실합니다. 민과 관의 협력을 통해서 한국 발레의 인프라 구축과 국공립과 민간의 균형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국 발레가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영국의 로열 발레도, 미국의 ABT도 민간으로 시작됐지만 한창 발전하며 국가가 지원했고, 지금은 나라를 대표하는 단체가 됐습니다.
실제 결과물로써 수준을 증명한 단체에게는 운영과 공연 제작비, 해외 공연 등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 등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자산이 공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재단 설립과 함께 좋은 파트너십 확보도 필요합니다. 좋은 후원자들과 관계를 맺어 유니버설발레단의 춤 자산들이 널리 유익하게 쓰이기를 소망해봅니다.
앞으로 10년 후의 문 단장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연습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10년 후면 행정과 운영보다는 연습실에서 학생 또는 후배들을 지도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받았던 주옥과 같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발레단의 젊은 차세대 리더들이 발레단의 40년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면서 발레단을 새로운 감각으로 더욱 발전시키면서 잘 이끄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글 장광열(춤비평가)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CHAPTER 4 한국 발레단의 해외 진출과 전망
국립발레단의 런던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 4.10~13 참가기
새롭게 떠오르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과 현지 반응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내 린버린 극장에서 진행된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는 참여 단체의 공개만으로도 이미 매진 행렬을 이뤘다. 이는 로열 발레가 2019년부터 각국의 발레단을 초청해 안무가들의 초기 작업을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연례행사로, 작품 발표 후에는 안무가, 평론가 등 전문가들에게 피드백과 코치를 받을 수 있는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발레단을 위한 데일리 클래스를 비롯해 안무가로서의 경력 구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리더십 교육, 조명 워크숍 등도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주최 단체인 로열 발레가 두 작품을 선보였고, 버밍엄 로열 발레와 한국의 국립발레단, 그리고 노르웨이·독일·벨기에·스코틀랜드·체코·프랑스의 발레단에서 각 한 작품씩 총 열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런던에, 한국의 봄을 풀어내다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내에 있는 린버리 극장에서 열렸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코번트 가든 광장과 이어져 있으며, 로열 오페라, 로열 발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한다. 린버리 극장은 총 350석 규모로, 3층으로 이뤄진 객석은 짙은 색의 나무 장식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무대를 감싸고 있다.
공연은 국립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 활동하는 안무가 이영철의 ‘계절 ; 봄’(2019)으로 막을 열었다. 이영철과 함께 국립발레단 무용수 김별과 이현규가 무대에 올랐다. 김별은 손목부터 발목까지 꽃으로 장식된 분홍색 계열의 시스루 원피스를, 이영철과 이현규는 상체를 드러낸 채 짙은 녹색 계열의 치마를 입었는데, 치맛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꽃봉오리처럼 숨겨져 있던 두 가지 톤의 분홍색 색채가 드러났다.
팔과 어깨를 독특하게 분절하는 동작과 섬세한 손동작, 한국 무용을 연상시키는 발동작은 빠르게 이어지는 열 개의 작품 중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작품은 가운데 하얀 원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검은 댄스플로어와 대비되는 하얀 원이나 붉은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볼 수 없는 설정이었다. 10여 분 간의 안무 이후, 바로 다음 팀으로 전환되는 공연의 특성상 대부분의 무대가 세트 없이 조명만으로 구성되는 분위기 속에서 ‘계절 ; 봄’은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라이브 연주 또한 다른 무대와의 큰 차별점으로 다가왔다.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의 매혹적인 가야금 연주와 한국어로 불린 노래는 큰 박수를 받았다. “넌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꽃이길”이라는 짧은 설명에서 느껴지듯, 봄날처럼 아름다운 무대였다.
‘계절 ; 봄’은 국립발레단(KNB)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 5’에서 2019년 7월 초연한 작품이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는 차세대 안무가를 길러내기 위해 2015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매년 진행해 오고 있는 프로젝트다. 강수진 단장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특히,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로 탄생한 한국 창작 발레를 선보임으로써 그동안 이어온 프로젝트의 의미가 빛을 발했다.
초안의 작품이지만, 개성은 충만했다
로열 발레는 이번 인터내셔널 드래프트 워크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집단적 열망과 춤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진자의 흔들림 같은 작은 현상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안무가들은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으며, 열정과 갈등, 불안, 시간과 일상, 슬픔과 상실 등 여러 주제를 표현했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오노 요코(1933~)의 전시에서 영감을 받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악수하지 않는다’로,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는 ‘무시 당하지만 견딜 수 없는’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듀엣 동작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의 밀고 당김을 표현했는데, 남녀 무용수가 표현한 파드되(2인무)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무용수 안리 스기우라는 자신감 넘치는 무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달빛’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브로드스키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에 맞춰 기교를 뽐내며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전했다.
버밍엄 로열 발레는 ‘테트라’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슈만의 피아노 5중주 Op.44에 맞춰 두 쌍의 남녀 무용수가 절도 있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검은색 정장 차림에 사각형으로 구획 지어진 조명 안에서 묵직하게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표현했다. 이에 반해 체코 브르노 국립극장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기’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움직임으로 사회적 역할에 대한 탐구를 경쾌하게 담아냈다. 파스텔 색조의 폴로 티셔츠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려 신은 양말 등으로 시종 진지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전환했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할수록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 상황들을 기발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작품은 로열 발레의 수석무용수인 매튜 볼의 ‘To and Fro’였다. 진자의 흔들림에서 영감을 받아, 파트너와의 주고받는 에너지를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발전 단계에 있는 작품 초안이었지만, 각국의 무용수들은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토슈즈와 고전 발레의 안무를 포함한 팀도 있었지만, 양말을 신고 움직임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시도가 많았다. 여러 단체가 차례로 공연하는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음악과 조명, 의상 등으로 작품의 주제를 강조했으며, 무엇보다 훈련된 몸과 숙련된 안무로 십여 분이라는 시간 안에 각각의 개성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의 작품과 뛰어난 무용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의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참여 단체가 작품을 선보인 후, 안무가들이 모두 나와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몸의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헌신한 이들에게 관객은 힘찬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국립발레단·로열 발레
CHAPTER 5 축제 속 컨템퍼러리 발레 만나기
5.4~6.23 제14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전 일정 살펴보기.
고민이 된다면 기자 ‘PICK 3’를 믿고 보기!
문화체육관광부 지정사업으로 2011년 첫 문을 연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지난 13년간 꾸준히 높은 공연 수준과 내용을 지키면서, 2020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장르대표로 선정됐다. ‘대한민국’과 ‘축제’라는 명칭에 걸맞게, 국내 국립·시립·민간발레단이 두루 참여한다. 참여 단체는 그들의 창작 안무작을 선보인다. 올해의 주제는 ‘발레로 미래를 열다!’로 12편의 공연과 1편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 ‘객석’의 안방을 차지한 창작 발레 특집을 읽고, 공연 현장을 더 즐기고 싶은 독자라면 일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즐거움으로 다가갈 것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무용 관련 기획전시인 ‘LAYER’도 진행된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대한민국발레축제
PICK 1 한국인에게 친숙한 내용이 보고 싶다면?
서울발레시어터의 ‘화양연화’는 1919년, 이국땅 상하이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한 청년의 삶을 다룬다. 임시정부와 뜻을 함께하는 그는 과연 독립운동의 의지를 펼칠 수 있을까?
PICK 2 ‘미래’라는 올해의 키워드와 잘 어울리는 이 작품!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의 ‘Foggy 하지마’는 가까운 미래, 대기오염으로 호흡조차 힘들어진 미래를 그린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오늘날을 위한 공연!
PICK 3 조금 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없나요?
코리안발레스타즈의 ‘Metro, Boulot, Dodo’의 배경은 기자가 매일 타는 지하철 2호선.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기는 사람과 흔들리기를 거부하며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발레로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