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장우성, 연출가 박소영, 작곡가 이선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5월 6일 8:00 오전

DIALOGUE

 

극작가 장우성·연출가 박소영·작곡가 이선영

섬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목소리를 듣다

 

장애인들의 ‘고립’을 다룬 음악극 ‘섬:1933~2019’가 들려주는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에 대하여

 

왼쪽부터 장우성, 박소영, 이선영 ©라이브러리컴퍼니

저 멀리 남해의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가보지 않은 섬 곳곳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1933년대 소록도로 강제로 이주당한 한센인 백수선, 1966년대 그곳에서 일했던 오스트리아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2019년 ‘장애도(島)’로 일컬어지는 서울 한복판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고지선까지. 목소리 프로젝트(극작가 장우성·연출가 박소영·작곡가 이선영)의 음악극 ‘섬: 1933~2019’는 세 개의 시공간을 교차하며 각자의 ‘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다룬다.

작품은 2019년 초연(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이후, 오는 5월 약 한 달간 국립정동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정동극장은 작품의 육성·지원·유통을 수행하는 2차 제작극장으로서 이번 제작에 함께했다. 다시 오르는 작품의 제목은 여전히 ‘섬:1933~2019’이다. 5년이 흐른 지금, 과거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작가 장우성은 “초연 당시와 크게 달라진 지점은 없다. 물론, 작품을 다시 준비하며 각색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기존 내용을 바꿔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변했는지 생각해 보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편견과 차별은 여전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극중 고지선의 마지막 대사가 눈에 밟힌다. “사람들은요. 익숙해지면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아요.” 지하철 안을 뛰어다니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지원의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승객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독백한다. “아, 이 풍경에 녹아들 수 있구나. 우리 지원이가 특별하지 않구나.”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 우리가 여전히 ‘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공연을 앞두고, 국립정동극장에서 극작가 장우성·연출가 박소영·작곡가 이선영을 만났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고민만큼의 확신이 담겨있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잊혀진 이들의 이야기

 

음악극 ‘섬:1933~2019’ ©우란문화재단

세 분이 함께하게 된 계기와 작품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박소영 세월호 참사 이후 참여한 광화문 집회에서 양희은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때 같이 있던 이선영 작곡가가 그의 노래처럼 단순하지만, 힘 있는 선율의 곡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담백한 민중가요 스타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이후, 장우성 작가가 저희와 뜻을 함께하면서 지금의 목소리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이선영 고난의 시작이었어요.(웃음) 대학로의 모든 극장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올릴 극장을 수소문 하고, 극장을 구한 뒤엔 청소부터 수표까지 모든 일을 저희가 직접 도맡아 했죠. 그렇게 첫 작품으로 전태일 열사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태일’(2017)을 올린 뒤, 우란문화재단의 협업 제안으로 음악극 ‘섬:1933~ 2019’(2019), ‘百人堂 태영’(2023)까지 총 세 편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섬:1933~2019’(이하 ‘섬’)는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록도로 강제 이주당한 한센인 및 발달장애 아동 가족의 삶을 다룹니다. 이들을 조명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장우성 실존 인물을 조명하는 작품인 만큼, 제작 과정에서 다른 어떤 요소보다 인물 선정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그러던 중 소록도에서 활동한 두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2017)을 보게 되었고, 봉사와 헌신으로 평생을 보낸 이들의 삶을 작품으로 다루게 됐습니다.

박소영 ‘섬’이 단지 소록도에서 벌어진 과거의 참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의 동시대성을 두고 현재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주제를 고민하던 중, 장우성 작가가 발달장애 특수학교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어요. 작품에 등장하는 고지선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류승연 작가님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2018)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발달장애에 대해 많이 배웠죠.

 

우리는 삶과 표현의 방법을 찾아가는 중

 

발달장애 아동의 특징을 나열하는 고지선의 대사나 ‘장애우’라는 단어의 수정을 요구하는 대사 등에서 장애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장애를 주제로 작품을 준비하며 특별히 신경을 쓴 지점이 있었나요?

박소영 한센인과 장애인을 주제로 다루는 만큼, 대사나 연출에서 불편하게 느껴질 만한 장면이 없는지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시간을 거쳤어요. 사실,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장애우’란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의도가 있다기보단 잘못된 표현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거죠. 저 또한 그랬고요. 이러한 지점을 작품에 녹여 넣으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연출적으로는 한센인 묘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직접적인 묘사보다 배우들의 몸에 천을 두르는 방법으로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을 남겨뒀죠.

작품 속에서 ‘이 목소리는 꼭 전하고 싶다’고 생각한 캐릭터 혹은 장면이 있나요?

이선영 두 번째 넘버인 ‘사랑이 머물던 시간’을 모두 함께 부르는 장면을 꼽고 싶어요. ‘섬’은 차별, 헌신, 소외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관객에게 어떠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면, 관객들은 복원된 그들의 삶을 보며 자연스레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되는 식이죠. 사실, 이 곡을 쓰는 동안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역사를 공부한다고 한들, 제가 당시 소록도 사람들의 애환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요. 그들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고민하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나네요.

 

기억해야 할 동시대의 목소리

 

말과 글의 형태로 남아있는 인물의 삶을 무대에 복원한다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취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실존 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작품 주제 및 인물 선정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장우성 선한 영향력을 실천한 이들 중에서도 잊힌 목소리, 기억해야 할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목소리 프로젝트의 목적인 만큼,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들을 저희가 다시 조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는 과정이 제일 어려워요.

박소영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요. 작품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의 지인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하면서 최대한 이들의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창작진으로서의 고민 혹은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장우성 극작가로서 제 나이와 위치에 맞게 깊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커요. 가끔은 내가 과연 성장하고 싶은 동력이 있는지 스스로 묻기도 하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자신을 속이면, 결국 함께하는 동료들을 괴롭히게 되는 거니까요.

박소영 주변에서 제게 7~80%만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100%를 채우려 하냐고요. 그런데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스스로 충족이 안 되더라고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체력과 시간의 제한,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속에서 고민이 많아요.

이선영 지금까지 목소리 프로젝트로서 총 세 작품을 올렸는데, 각각의 목소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직도 모두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왜곡되지 않게 목소리를 잘 전달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홍예원 기자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우란문화재단

 

 

Performance information

음악극 ‘섬:1933~2019’

5월 22일~7월 7일 국립정동극장

연출 박소영, 극본 장우성, 작곡 이선영 백은혜·정연(마리안느·고지선 역), 정운선·정인지(마가렛·백수선 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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