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4년 대한민국 뮤지컬계를 강타한 유행이 있다. 바로 스릴러·괴기물의 인기다. 가상의 인물인 셜록 홈즈가 실존했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와 싸우고, 창조주를 꿈꾸던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를 누더기처럼 기워 괴물을 탄생시킨다. 달달한 솜사탕 이야기가 대부분이던 우리나라 뮤지컬 무대의 색다른 변신이 이색적이면서도 낯설고 동시에 흥미롭다.
제목만 보면 수입 뮤지컬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엄연한 순수 창작 뮤지컬이다. 일각에서는 창작 뮤지컬보다 K-뮤지컬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어느 작품이나 창작되긴 마찬가지라는 이유다. 창작 뮤지컬이든 K-뮤지컬이든 간에 2014년을 강타한 ‘프랑켄슈타인’의 대중적 인기는 반갑다. 익숙한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 뮤지컬들이 지닌 브랜드의 취약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왕용범은 여러 수입 뮤지컬들을 통해 익숙한 인물인데, 그동안의 노하우를 집약해 초연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수준급의 완성도를 선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무대에서는 한 배우가 극과 극의 상반된 이미지를 표현해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지금까진 ‘지킬 앤 하이드’의 조승우와 ‘맨 오브 라만차’의 정성화가 그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프랑켄슈타인’은 이런 재미를 더욱 확장시켰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중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한다. 마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저 인물이 이 배우?”라는 감탄사를 자아내듯,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는 등장인물들의 또 다른 정체성(?)을 확인해보는 재미가 적절히 배려돼 있다. 물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나오는 날이면 이런 재미는 더욱 배가된다.
콘텐츠 자체로만 보자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똑똑하다 못해 영악하게까지 보인다. 국내 인기 뮤지컬들의 흥행 요인을 모두 집결시켜놓은 듯하다. 애호가라면 유사한 감상과 느낌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쯤 공연을 즐기는 수준이라면 만족도나 즐거움은 최고가 아닐까 싶다. 적당한 긴장과 스릴, 자극적인 살인과 비정한 운명 등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특히 1막에 나오는 괴물의 탄생은 최고의 장면을 연출한다. 거대한 기계 세트가 보여주는 위압감도 인상적이거니와, 울부짖듯 절규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노래, 그리고 온몸을 드러낸 채 흔들리며 춤추는 실험용 사체들의 안무는 첨단의 과학이 가져올 예상치 못한 섬뜩한 결과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낸다.
대형 창작 뮤지컬에는 늘 한복 입은 주인공이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깨뜨린 것 같아 반갑다. 시각적인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점은 가장 칭찬받을 부분이다. 반면 음악적인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많다. 시종일관 자극과 과잉된 감정을 쏟아내듯 선율을 퍼부어대지만 대부분 단조롭고 가끔 조악하다. 정제된 음악적 구성이 악을 쓰고 소리 지르는 것보다 풍부한 감상을 자아낼 수 있음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모든 창작 뮤지컬을 향한 유일한 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는 분명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기왕 대중성과 흥행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니 뚜렷한 상업적인 성과도 뒤따랐으면 좋겠다. 창작 뮤지컬로도 규모의 수익을 창출해내는 바람직한 선례로 남길 기원해본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충무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