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 작곡가 레오나르도 빈치의 ‘아르타세르세’의 부활이 유럽 오페라계를 뜨겁게 달군다.
다섯 명의 카운터테너가 펼치는 화려한 경합이 그 인기 비결이다
헨델과 동시대를 살았던 레오나르도 빈치의 오페라 ‘아르타세르세’가 베르사유 궁정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3월 19~23일). 2012년 낭시 오페라에서 프로덕션이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온 이 작품은 쾰른과 암스테르담 순회공연으로 이어졌고, 음반과 DVD로 출반되어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성악가들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전대미문의 작품이 빠른 시일 내에 문제작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륄리’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빈치는 1690년 출생으로, 당시 이탈리아에서 이름난 작곡가로 군림했으나 무수한 여성편력 끝에 1730년 초콜릿 차에 든 독을 마시고 요절했다. 1730년 로마에서 초연된 후 100여 편의 연출 버전으로 재상연된 ‘아르타세르세’는 당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뛰어난 작품성이 보증되는 것은 물론인데, 흥미로운 점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인물이 두 명의 여성 역할을 포함해 모두 남성 가수로 구성되며, 그들 중 5명은 카운터테너라는 것이다. 당시 바티칸의 명령에 의해 여성들은 무대에서 노래할 권리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페라극장 안에 들어서면 케이블과 소도구들이 널린 극장 뒷면의 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공연 전 무대 뒤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솔리스트 중 여성 역을 맡은 막스 에마누엘 첸치치(만다네 역)와 발레르 사바두스(세미라 역)는 하얀 기모노 차림으로 분장을 마친 후 공연이 오르길 기다리고 있고, 유리 미넨코(메가비세 역)와 프랑코 파지올리(아르바체 역)는 무대 의상 차림을 하고 서성이고 있다. 디에고 파졸리스가 지휘하는 콘체르토 쾰른의 빠른 서주, 이어진 찬란한 금관의 느린 주제 아래 솔리스트들은 검은 옷을 입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으며 각자의 가운을 벗고 드레스를 입는다.
연출가 실비우 푸르카레테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는데, 첸치치는 이러한 연출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전했다. 첸치치는 “배역들이 의상을 바꿔 입어가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연습 과정이 실제 공연과 교차하는 게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심리나 사건의 추이를 몽타주 식으로 처리하는 근대 연극의 개념은 희박했다는 점에서 정통 바로크 오페라 개념에 충실한 연출이었다.
아르타세르세는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의 아들이다. 작품은 세르세가 측근 근위병 대장인 아르타바노에 의해 암살되면서 시작하는데, 이 암살을 중심으로 멜로드라마적인 요소가 묘하게 얽히고설키는 전형적인 오페라 세리아다. 암살에 연루된 것으로 오해를 받는 아르타바노의 아들 아르바체와 아르타세르세의 비극적인 우정, 아르타세르세를 사랑하는 아르바체의 여동생 세미라, 원수인 아르바체를 사랑하는 아르타세르세의 여동생 만다네의 얽혀버린 인연 등 여섯 명의 복잡한 관계가 그려진다.
야욕의 음모 속 여섯 남녀의 진실
1막은 아르타세르세의 여동생 만다네와 관복 차림의 아르바체가 서로를 껴안은 채 듀오 아리아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헬무트 슈트뤼머는 바로크 의복과 오트 쿠튀르가 혼합된 의상을 구상했는데, 스타워즈에서 온 듯한 아르바체의 의상은 시각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폭군이던 세르세의 명을 어기고 만다네를 만나기 위해 왕궁에 침입한 아르바체는 신분 차이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호소한다. 자그마한 키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카운터테너 첸치치는 만다네 역을 맡아 예쁜 가슴을 드러낸 드레스를 입고 여성미 넘치는 공주의 실루엣을 근사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세르세의 피가 묻은 칼을 들고 등장한 아르타바노가 그 칼을 아들인 아르바체의 손에 쥐어주면서 이 연인의 비극은 시작된다. 아르타바노는 아르바체를 향해 “내가 너를 위해 세르세에게 복수했다!”라고 고백한다. 아르타바노는 교활한 인물로 그려져서인지 뿔이 달린 투구에 털목도리가 달린 야만인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아르바체를 연기한 파지올리의 고음 트릴과 음색 변화가 어찌나 뛰어난지 카운터테너에게서 메조소프라노와 같은 소리가 나왔다.
아르타바노가 세르세의 피로 얼룩진 옷을 들고 희열에 휩싸여 있을 때 아르타세르세가 메가비세의 보호를 받으며 등장한다. 2012년 낭시에서 초연될 당시 필리프 자루스키가 맡은 이 역을 이번 무대에서는 한국 출신의 카운터테너 빈스 이가 불렀다. 수수한 외모에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청중은 이번 캐스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타세르세로 분한 그가 “아르타바노, 내게 당신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오!”라며 첫 구절을 노래하자 마치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빈스 이의 맑고도 강인한 음색은 아찔할 정도로 뜻밖이었다. “빈스 이의 노래를 눈을 감고 들으면 모두 여자라고 생각할 겁니다”라는 첸치치의 코멘트처럼 말이다.
처음에 세르세의 암살자로 지목됐던 아르타세르세의 동생 다리오가 살해되자 결국 아르바체가 암살자로 지목된다. 배신감에 빠진 아르타세르세는 ‘숨 쉬게 내버려주세요’ 아리아를 부르며 절박한 심정을 노래했는데, 빈스 이의 거침없는 고음 곡예는 다시 한 번 장내를 놀라게 했다. 이어 비운의 두 연인, 만다네와 아르바체는 슬픔이 담긴 듀오를 불렀다. 만다네 역의 첸치치는 살인 누명을 쓴 연인을 향해 “당신은 야만인인가요?”라고 외치며 격정적인 고음 트릴과 강렬한 감정이입으로 고뇌를 표현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아르바체 역의 파지올리는 환상적인 음색 변화, 매우 안정적인 저음, 그리고 수려한 장식음까지 7분여간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발음이 다소 답답하기는 했으나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놀라운 연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2막은 바로크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한 아르타세르세와 아르타바노의 대화로 시작한다. 아르타세르세는 아르타바노에게 아르바체의 배신에 대한 유감을 표하고, 아르바체는 억울하게 추방당하는 심경을 담은 아리아를 불렀다. 아버지를 암살한 자가 연인이라는 슬픔에 빠진 만다네, 아버지와 친구 중 누구에게 연민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러운 아르타세르세까지 각 배역이 번갈아가며 심경을 토로했다. 실제 암살자인 아르타바노가 다가올 운명 앞에 두려움을 토로할 때는 17세기 특유의 수사학적 기법으로 위협적인 자연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동물적인 본성을 묘사했다.
3막에서는 아르타세르세의 대관식에 맞춰 거대한 음모가 기획된다. 아르타세르세마저 독살하기로 계획한 아르타바노는 술잔에 독을 넣지만, 그 잔을 자신의 아들인 아르바체가 집어 들자 아르타바노는 결국 지금까지의 역모를 실토한다. 칼을 빼들어 아르타세르세를 살해하려는 아르타바노에게 멈추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아르바체가 나서자 결국 아르타바노는 자신의 야욕을 포기한다. 그렇게 세미라는 아르타세르세의 품에, 만다네는 아르바체의 품에 앉긴 채 희열에 찬 6중창으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진실과 사랑의 승리, 이것이 이 환상적인 작품의 교훈이었다.
“자연스러운 고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팔세토 창법을
사용하면 가성처럼 들리지만, 저는 소프라노 음역을 자연스럽게
구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운터테너보다 소프라니스트라
불리는 게 더 맞겠지요.”
떠오르는 카운터테너계의 신성, 빈스 이
3월 22일, 베르사유 왕실 오페라 근처에 위치한 호텔에서 빈스 이를 만났다. 옷장에는 그의 무대 의상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는 화장 때문에 목에 염증이 생겼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오페라 무대에서처럼 빈스 이의 목소리는 아주 고음이었다. “변성기 후 목소리가 굵어져야 하는데 가라앉지 않고 높은 상태로 남아있어서 카운터테너로 노래하게 되었나 봅니다”라며 서두를 뗐다. 그는 음역이나 음색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소프라노가 부른다고 착각할 정도라는 평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빈스 이는 2012년 낭시 공연 때 자루스키의 대역으로 이 오페라에 데뷔했다. 그는 “우리는 매우 친하지만 서로 무척 다릅니다”라고 말하며, 자루스키가 공연했을 당시 반응이 무척 뜨거웠기 때문에 걱정되는 측면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역까지 총 10명의 카운터테너가 한자리에 모이는 오페라이다 보니 부담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라이벌 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분위기였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빈스 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부모님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원래는 테너였지만 어느 날 포레의 ‘꿈꾼 후’를 선생님 앞에서 불렀더니 뜻밖에 반응이 좋아서 소프라노 작품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빈스 이는 카운터테너 테크닉으로 소프라노 작품을 부르는 것이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는 점을 깨닫고 대학교 3학년 때 카운터테너로 전향했다. 그에게 아르타세르세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작품 초기에는 어린 왕자일 뿐이지만, 부친이 죽고 나서 왕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 앞에서 조금씩 힘을 구축해나가는 사람입니다. 그 와중에 모함을 받은 친구를 처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휩싸이게 되지요. 사실 저는 항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아르타세르세 역을 맡았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더군요.”
빈스 이는 여러 카운터테너들이 한자리에 모인데다 여장을 한 성악가들까지 있어 특별히 더 배우는 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카운터테너들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각자의 장점이 제각기 다른 것을 발견했다고. 그는 2015년 빈치의 오페라 ‘우티카의 카토네’에서 여성 역을 맡을 예정이다.
“이번 작품에 나오는 만다네 역의 첸치치나 세미라 역의 사바두스는 얼마나 예쁘장하고 날씬합니까? 그런데 치마를 입은 제 모습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아찔합니다. 아르테세르세 역의 의상도 날씬한 자루스키에 맞춰 고안된 것이었지요. 오프닝 공연의 리셉션에서 팬이 초콜릿을 선사했는데, 먹고 나면 의상이 안 맞을까봐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것은 날씬한 실루엣만이 아니었다. 빈치의 ‘아르테세르세’에는 고음이 많다는 음악적인 난점도 산재했고, 리허설 기간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던 것도 어려운 점이었다. 빈스 이는 카운터테너로 전향한 지 이제 10년쯤 되지만, 원래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 높지는 않았다고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자연스러운 고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팔세토 창법을 사용하면 가성처럼 들리지만, 자신은 자연스러운 소프라노 음역을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카운터테너보다 소프라니스트(카스트라토 중에서 소프라노 음역을 내는 가수)로 부르는 게 더 맞을 것이라 말하며,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 배역들에 대한 관심도 피력했다. 아이처럼 까부는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역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이다.
세계적인 카운터테너로 급부상 중인 빈스 이는 슈퍼 파이브(Super Five)로 불리는 카운터테너 그룹의 일원으로 갈라 콘서트에 참가할 예정이며, 2012년 첸치치와 사비에르 사바타, 그리고 테리 웨이와 함께 베르사유 궁전에서 카운터테너 갈라에 참가해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가 한 국 무대에 설 날을 기대해본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Julian Laid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