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동안 두 달간의 휴식을 취한 베를린에도 새로운 시즌이 다시 시작됐다. 8월 30일 오후 7시 필하모니에서 열린 시즌 오프닝 공연에서 베를린 필은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로 2014/2015 시즌의 화려한 막을 열었다. 이번 2014/2015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브람스·슈만·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진두지휘하는 공연에서 이 세 작곡가의 교향곡이 모두 연주될 예정이다. 특히 2009/2010 시즌에 엄청난 호평을 받은 바 있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사이클은 올 시즌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다시 재현된다. 환상적인 낭만을 선사할 브람스와 슈만의 교향곡들은 베를린 무지크 페스티벌에서 이미 9월 중 일부가 공연되기도 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11월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연주될 베토벤 9번 교향곡인데, 이 공연은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의미도 지닌다. 새로운 시즌 달력에서는 이미 베를린 필과 함께 오랜 시간 자주 무대에 서왔던 친숙한 지휘자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블룸슈타트·바렌보임·샤이·게르기예프를 비롯해 하이팅크·얀손스·무티·틸레만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불과 몇 년 전에 베를린 필과의 데뷔 무대를 가졌으나 이제는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두다멜·파보 예르비·넬손스·소키예프와 같은 젊은 지휘자들 또한 게스트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전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이자 뉴욕부터 시카고까지 미국 유수 오케스트라들의 단골 게스트 지휘자였던 지아난드레아 노세다를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997년 공연 이후로 베를린 필과 긴 공백기를 가졌던 다니엘레 가티도 이번 시즌 필하모니 포디엄에 다시 선다. 베를린 필과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것은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마찬가지. 1996년 클라우디아 아바도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필하모니에서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녀 또한 2014년 11월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 아래 슈만 피아노 콘체르토로 돌아온다. 아르헤리치를 시작으로 이매뉴얼 엑스·예핌 브론프만·엘렌 그리모·랑랑·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의 피아니스트와 이자벨 파우스트·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등 바이올리니스트의 협연이 이어진다.
서운한 소식도 있다. 자그마치 1969년부터 45년이 넘는 동안 베를린 필과 함께했던 안드레아스 블라우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예정이라고. 음악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는 블라우의 은퇴로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벌써부터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팬들에게 특히나 반가운 소식은 시즌이 마무리되는 2015년 6월 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정기 공연에서 진은숙의 ‘사이렌의 침묵’이 독일에서 초연될 예정이라는 소식. 필하모니 정기 연주부터 투어까지 베를린 필의 공연은 디지털 콘서트홀(www.digitalconcerthall.com)에서 생생한 라이브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챙겨보도록 하자.
글 윤정하(베를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