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세비야의 이발사’ ‘로엔그린’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실험정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의 가방에서는 온갖 재치 넘치는 도구들이 튀어나왔다

지난 10월 2일과 3일,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와 ‘로엔그린’을 관람했다.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무대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만 과도한 생각과 의미 부여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세계 오페라극장이나 컴퍼니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제외하고 프로덕션 제작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제작비는 치솟고 극장의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 유럽 대부분의 극장은 공동 제작을 통해 예산을 절약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또한 2000년부터 고전적인 연출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신고전주의 양식을 채택해 단순하고 상징적인 무대로 청중이 한층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있다.

10월 2일과 3일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로시니와 바그너의 두 작품은 최근 오페라 연출의 현주소를 비켜가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따랐다. 밀라노와 빈, 뮌헨 사이에 있는 지리적인 위치 덕분에 취리히 오페라하우스는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며 세계 정상의 자리를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는 명품 극장이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역사는 18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그너의 스위스 망명 기간에 명성을 얻었던 악티엔 극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악티엔 극장은 1890년 대화재로 회복 불능에 빠지고 취리히 시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취리히 호수 곁에 새롭게 서게 된다. 그리고 1925년부터는 연극과 기타 이벤트를 다른 극장에 내주고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으로서 역할에 집중하며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 동시에 취리히 오페라하우스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초현대적으로 해석되다

10월 2일 저녁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2014/2015시즌 공연으로 열린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네오 로코코풍의 아름다운 로비와 객석은 이미 청중으로 만원이었다. 취리히 버전의 ‘세비야의 이발사’ 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시종일관 펼쳐진 부채가 인상적이었던, 연출가 그리샤 아자가로프가 제작한 2001년의 무대다. 펼쳐진 부챗살이 회전하면서 일어나는 한바탕 소동은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던 명연이었다. 취리히에서 40년 이상을 지휘하며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했던, ‘파파 산티’라는 애칭이 더 잘 어울리는 넬로 산티가 지휘를 맡아 음악적인 완성도도 상당히 높았던 공연이었다.

필자가 이번에 본 프로덕션은 2009년 12월 27일 막을 올렸던 체사레 리에비의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연출가이자 극작가·시인이기도 한 리에비는 무대 제작을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손을 잡았다. 그리스 국립은행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박물관 등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로 유명한 보타의 오페라 무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리노베이션을 맡았을 때 역사적인 흔적을 훼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했다.

서곡이 진행되면서 막이 올라갔다. 객석에서 작지만 강한 탄성이 들려왔다. 베일을 벗은 무대를 보는 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유명한 건축물인 카스티야 플라자의 초현대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능면체(菱面體)’라 불리는, 여섯 개의 마름모로 형성된 육중한 육면체 두 개를 세로로 겹쳐 세운 기둥이 두 개씩 양쪽으로 기울어진 채 떡하니 서 있었다. 총 여덟 개의 능면체가 네 개의 기둥으로 무대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각 면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LED 패널로 만들어져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 화면에 때로는 반라의 여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때로는 희화화된 여러 인물과 도구들이 바쁘게 등·퇴장을 반복하며 쉴 새 없이 청중의 눈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중 양쪽의 각 한 면은 거울로 뒤덮여 때로는 무대 위의 출연진과 소품들이 철저히 계산된 채 투사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로시나 역의 메조소프라노 안나 고랴초바 ⓒSuzanne Schwiertz

그럼 로시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바르톨로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알마비바 백작과 사랑이 시작되는 이 집은 1막 무대의 에센스다. 놀랍게도 보타는 바르톨로의 집을 무대 꼭대기 자막 바로 밑에 아슬아슬하게 배치해 등장인물의 다리만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1막 2장부터는 이마저 없애버리고 무대 전체를 집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1막 1장에서 바르톨로와 로시나는 무대에서 거의 보이지 않고 높은 곳에서 목소리만 들려왔다. 의상도 독특했다. 바르톨로와 그의 측근 베르타와 암브로조는 회색 베일을 걸쳤고, 로시나·알마비바·피오렐로는 플라스틱 느낌이 나는 1960년대 팝아트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피가로는 조끼와 함께 우아한 코트를 입어 완충 역할을 해주었다.

2012년부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엔리퀘 마촐라는 역시 이탈리아인 특유의 감각으로 서곡부터 상당히 발랄하고 디테일한 음악을 견지해갔다. 네 명의 기타리스트를 동반한 악사들이 반주하는 백작의 카바티나는 에드가도 로차를 대신해 출연한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테너 드미트리 이반체이가 불렀다. 그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네 명의 남자 주인공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로맨틱한 면과 로시니 오페라 특유의 희극적인 면이 공존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피가로를 노래한 레벤테 몰나리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취리히 데뷔를 했다. 특히 15번 숫자가 적힌 그의 가방은 마법의 상자였다. 가방을 무대 위에 놓고 열면 그 안에서 온갖 재치 넘치는 소도구들이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길게 목을 뺀 기린은 백미였다.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로지나에 익숙한 필자에게 안나 고랴초바는 러시아 가수 특유의 깊은 저음을 충만하게 뿜어내며 ‘방금 그 노래 소리는’을 소화했다. 바소 부포를 감당하며 오페라의 또 다른 열쇠를 쥐고 있는 바르톨로 역의 레나토 기롤라미와 바실리오 역의 장원웨이는 적시적소에서 매력을 발산했다.

결론은, 음악적으로는 최고였지만 오페라 부파를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한 연출은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과도한 생각과 의미 부여는 희극 오페라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빈 슈타츠오퍼와 산 카를로 극장의 ‘사랑의 묘약’은 아직도 고전적인 연출이지만 청중의 각광을 받고 있다. 굳이 2009년 무대의 리바이벌보다는 오히려 2001년 연출을 다시 가져왔더라면 어땠을까.


▲ 오페라 ‘로엔그린’ 중 1막의 결투 장면은 탁자 위에서 다소 싱겁게 끝났다


▲ 오페라 ‘로엔그린’ 중 로엔그린 역의 테너 클라우드 플로리안 포그트와 엘자 역의 소프라노 일재 밴 든 휘버 ⓒMonika Rittershaus

‘로엔그린’, 은유와 암시로 관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여기에 나와 함께 들어가요. 가르쳐드리지요. 진정한 헌신이 얼마나 달콤한 희열인지를 알기 위해. 믿음을 향해 돌아서면 거기에는 후회 없는 행복이 있어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2막 2장에서 여주인공 엘자가 악녀이자 마법사인 오르트루드의 꼬드김에 슬픔과 동정심을 가득 담아 대답하는 대목이다. 10월 3일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객석으로 들어서니 무대막이 위용을 드러냈다. 초원 위에 심장 모양의 붉은 하트 두 개가 붙어서 불꽃을 피우고 그 아래에 명대사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Es Gibt ein Glück)!’ 행복이란 진정한 헌신과 사랑 속에서만 있다는 진리를 잊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에, 거기에 행복이 있음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유럽의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는 현재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같이 악단 이름을 따로 지어 부르는 게 유행이다. 파르마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도 필아르모니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로 바꿨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도 마찬가지다. 필하모니아 취리히는 바그너의 오케스트라 작품 가운데 단연코 최고로 꼽히는 1막 전주곡의 미세한 현악기의 떨림을 기막힌 응집력으로 연주했다. 더구나 여성 지휘자로는 단연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는 시몬 영의 강력한 지휘봉은 기막힌 음향으로 무장한 1,200석의 객석 곳곳에 바그너의 향기를 가득 뿌려놓았다. 시몬 영은 3막 피날레까지 끈질긴 집중력을 보이며 커튼콜에서 성악가를 능가하는 가장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결혼 행진곡’으로 대표되는 ‘로엔그린’의 합창은 100년을 훌쩍 넘는 취리히 오페라 합창단의 노련한 화음으로 시종일관 작품의 질을 높여주었다. 또한 합창단의 연기력은 대단히 자연스러웠다.

시몬 영뿐만이 아니다. 사무엘 윤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활약했던 바이로이트 축제의 ‘로엔그린’에서 합격점을 받았던 테너 클라우드 플로리안 포그트가 로엔그린으로,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이 오르트루드로 다시 등장해 최고의 성악진을 구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소프라노 일재 밴 든 휘버가 열연한 엘자는 더할 나위 없이 청중의 가슴으로 다가왔다. 하인리히의 크리스토프 피셔서와 프리드리히의 마르틴 간트너는 ‘바그너 바리톤’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은 것은 빈 국립 오페라와 공동으로 제작해 뉴프로덕션으로 초연한 안드레아스 호모키의 연출이었다. 너무나 앞서가는 바이로이트 축제의 ‘로엔그린’에 다소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전날 ‘세비야의 이발사’의 초현대판 무대를 접했기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전주곡이 진행되면서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무대막 사이에 슬쩍 비친 것은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방이었다. 브라반트 영주의 장례식을 상징하는 장면이 방에서 벌어지다니, 충격이었다. 그리고 안트베르펜 셸드강의 기사와 병사들이 도열한 1막 도입부 또한 방 안에 짧은 가죽 바지와 초록색 사냥꾼 제복을 입은 술꾼들로 가득했다. 하인리히 왕은 두목 정도로 묘사되었다.

‘맥주 축제의 성배 기사’. 9월 21일 첫 공연이 끝나고 현지 언론이 묘사한 호모키의 ‘로엔그린’에 대해 비꼬는 듯한 비유다. 1988년부터 숱한 작품을 만들어온 호모키의 선택은 맥주 축제를 연상케 하는 바이에른 지방의 선술집이었다. 갈색 널빤지를 이어 붙인 밀폐된 방은 술집에서 쓰는 싸구려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가 수시로 재배치되며 의미를 전달하려 애썼다. 청중은 4시간 동안 이 술집 안에 갇혀 있었다. 호모키는 나름대로 바이에른의 맥줏집에서 의미를 전달하려 했으나 과연 청중은 그의 속내를 알았을까?

1막에서 엘자는 순백색 가운을 입고 재판에 임했다. 잔뜩 기다려온 로엔그린의 등장은 환호하는 사냥꾼들의 밀집된 무리 속에서 백조 한 마리가 들려 있고, 흰색 가운을 걸치고 바닥에 나뒹구는 나약한 기사의 용트림으로 싱겁게 끝났다. 프리드리히와의 결투는 탁자 위에서 진행되었다. 가장 지루해지기 쉬운 2막 1장은 역시 하얀 속옷을 입은 프리드리히와 오르트루드의 기나긴 대화로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2막 3장에서 그들은 두 탁자를 덮은 천을 벗겨 던지는 것으로 훼방을 놓았다.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었다.

드디어 3막의 ‘결혼행진곡’은 무대 밖에서 들려와 안으로 입장하는 하객의 합창으로 갈무리했다. 이 또한 성의 없어 보였다. 3막 피날레, 로엔그린이 사리지고 고트프리트가 나타날 때는 1막과 역순으로 전개되었다. 고트프리트는 로엔그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와 동일한 형상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물론 흰색 가운을 두르고.

호모키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번 프로덕션은 저렴한 제작비가 강점인지는 몰라도 연출이 주는 재미와 음악과의 합일은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음악은 최상이었지만 무대는 그렇지 못했다. 연출자의 은유와 암시가 등장하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거의 매일 공연이 올라가는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실험정신은 여전했다. 그건 취리히 호수 북쪽에서 흘러 시를 관통하는 리마트 강의 도도한 흐름과 동일했다. 그로스뮌스터와 그 건너편에 있는 유럽 최대의 시계탑이 설치된 성 페터 성당의 위용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사진 Opernhaus Zϋ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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