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실내악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들이 첫 내한한다
지난 세기 보헤미안 현악 4중주단을 시작으로 프라하·스메타나·야나체크·파노하·탈리히로 이어지는 굴지의 현악 4중주단을 배출한 체코는 21세기에도 ‘유럽 실내악의 콘서바토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또 하나의 명문 현악 4중주단을 일궈냈다. 세계 주요 실내악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며 6월 16일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이 그 주인공이다.
음악평론가 이장직은 레퍼토리에서 템포 설정까지 만장일치로 예술적 선택을 이어가야 하는 현악 4중주를 ‘네 명이 어깨동무하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동문이나 가족이 함께 꾸리는 경우는 많지만 현악 4중주단을 시작할 때 연인이나 부부였다가 헤어지고나서도 다시 4중주단을 함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의 태동은 사랑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제1바이올린 주자인 베로니카 야루슈코바는 16세에 첼리스트 페테르 야루셰크를 만났다. 야루셰크가 몸담았던 시캄파 현악 4중주단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야루슈코바는 현악 4중주와도 사랑에 빠졌다. 스메타나 4중주단 비올리스트였던 밀란 슈캄파에게 현악 4중주단 운영에 관해 자문을 구하자 밀란은 “음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에 온 걸 환영한다”며 격려했다. 2002년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이 출범했고, 창단 멤버는 카테르지나 게므로토바(제2바이올린)·파벨 니클(비올라)·루카시 폴라크(첼로)로 채워졌다.
결성 초기 피렌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하다가 루카시 폴라크가 퇴단을 결정했고, 시캄파 현악 4중주단의 페테르 야루셰크와 서로의 자리를 교환했다. 현재 베로니카 야루슈코바와 페테르 야루셰크는 부부지간으로, 파벨 니클은 원년 멤버로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에서 함께하고 있다. 제2바이올린은 몇 번의 교체를 거쳐 마레크 즈비에벨이 맡고 있다. 앙상블 이름은 동명의 작곡가에게서 따왔는데, 아우슈비츠에서 숨을 거둔 작곡가 파벨 하스의 비극보다 그가 체코 음악에 미친 중요성에 집중한다는 의지를 팀명에 담았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은 창단 초기부터 보로딘·아마데우스·이탈리아·모자이크 현악 4중주단 멤버들과 교류했으며, 2005년 수프라폰과 계약하면서 대내외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프레미오 파올로 보르치아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단번에 유럽 음악계가 주목하는 신진 앙상블로 웅비했다. 1987년에 시작되어 보통 3년 간격으로 개최한 이 대회 입상 팀은 21세기 현악 4중주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1997년 1위 아르테미스 현악 4중주단(Virgin Classics·Erato), 2000년 3위 카살스 현악 4중주단(Harmonia Mundi), 2002년 2위 퍼시피카 현악 4중주단(Cedille Records)이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이 2007년 그라모폰 최우수 실내악상을 시작으로 BBC 라디오 3 ‘뉴 제너레이션 아티스트’에 선정되어 보낸 2007~2009년은 현악 4중주단의 기존 질서가 요동치던 때다. 2008년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이 해체하고 30년 전통의 하겐 현악 4중주단과 에머슨 현악 4중주단이 DG를 떠나 각각 다른 곳으로 미리오스와 소니 클래식스로 옮길 채비를 하면서 시장은 이들을 대체할 새 소리를 찾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은 영국 에이전시 인터무지카와 계약하면서 참가하는 축제를 엄선하고 협연자의 층위를 높였으며, 참신함과 중량감을 갖춘 레퍼토리로 스케줄을 관리하면서 새 시대의 강자로 부상했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의 전략은 세심했다. 에머슨 현악 4중주단과 달리 제1·2바이올린 주자가 엄격히 주어진 역할만 소화한다. 여기에 공연 사이 가끔씩 트리오를 넣는 변격을 가미했고, 팀 컬러가 테크닉 위주의 차가운 앙상블로 비쳐질 위험을 베르나르다 핑크나 콜린 커리와의 협주로 중화시켰다. 그래서 CD로 듣던 모던함이, 공연에서 보면 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지난 2월 18일 위그모어 홀 공연을 위해 런던을 찾은 네 멤버를 만났다. 한 질문에 여러 멤버가 이어 답했다.
6월 16일 내한 공연 레퍼토리가 모두 체코 작곡가의 작품이다.
야루셰크(첼로) 2014/2015 시즌은 체코 작곡가의 유명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함께 보이는 ‘보헤미안’ 시리즈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한국 공연은 슐호프·드보르자크·야나체크로 짰다. 시간이 지나 하이든·베토벤·슈베르트 작업을 다시 한국 팬에게 선 보일 기회가 오면 좋겠다.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연주한 이리 게므로트의 마림바 5중주 같은 신작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야루슈코바(제1바이올린) 어디서 먼저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각자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때마다 서로 “네 생각이 최고”라고 추켜세운다. 보통은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연주하고 그걸 녹음해 같이 들은 다음 토론에 들어간다. 토론 시간이 길진 않다. 무엇을 수정할지 금방 알 수 있는 건 친밀함 덕분이다.
니클(비올라) 리허설을 하다 보면 익숙한 것과 다르게 연주하는 서로를 발견한다. 그때부터 우리의 민주적 질서가 발동된다. 왜 연습한 것과 다른지 물은 다음, 각자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결과는 모호해진다. 팀워크로 움직이는 순간이다.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은 유독 제2바이올린에서 멤버 교체가 많았다. 제2바이올린의 역할이 어려운 걸까.
야루셰크(첼로) 제2바이올린을 제1바이올린보다 덜 중요하게 보는 청중의 시각이 있다는 걸 안다. 건강하지 못한 관점이다. 게다가 각 역할을 바꿔가는 게 민주적이라는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제2바이올린이 제1바이올린보다 못하다고 하면 즈비에벨이 우리 팀에 합류했을까?
즈비에벨(제2바이올린) 오케스트라를 못 가서 왔다(웃음). 물론 농담이다. 제2바이올린은 제1바이올린과 전혀 다른 테크닉과 어려움을 요구한다. 경쟁 관계가 아니다.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낀다(웃음).
위그모어홀에서 드보르자크의 ‘미니어처’를 연주할 때 보니 트리오 편성에, 모두 검정으로 통일한 의상이 캐주얼한 디자인이더라. 또 제1바이올린은 요제프 수크처럼 활에 힘을 실어 비브라토로 음영을 조절하는 접근이 아니었다. 의상에서 어프로치까지 현대적 인상이다.
야루슈코바(제1바이올린) 내 셔츠는 ‘자라(ZARA)’의 남성 라인이었는데, 안 들켰나 보다(웃음). 체코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슬라브적 가치’에 대한 대답이 서로 다르다. ‘미니어처’에서는 제2바이올린이 지지하는 탄력으로 리드한다.
니클(비올라) 체코 작곡가마다 지리적, 문화적 소양이 다르고 유대인적 정체성도 다르다. 우리 피에는 분명 체코의 전통이 흐르지만 전설적인 현악 4중주단들과 비교해서 우리의 차이점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
앙상블에서 호흡을 교환하는 방법은 설 때와 앉을 때 다르다. 가령,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은 바이올린 주자들이 앉았을 때, 심지어 두 다리를 공중에 띄우기도 한다. 상체 힘만으로 연주를 하는 것인데,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에서는 시각적으로 서서 연주할 때 비스듬히 서 있는 제1바이올린 야루슈코바가 에너지가 순환되는 시작점으로 비쳐진다.
야루셰크(첼로) 야루슈코바가 서서 연주할 때 코와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고 있다. 앉을 때는 숨소리가 크지 않다. 위그모어 홀에선 청중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야루슈코바(제1바이올린) 내가 어떻게 숨을 쉰다는 건가? 당신(야루셰크)이 따라 해봐라. 연주할 땐 내 호흡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연주자들의 조화뿐 아니라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숨 쉬는지는 현악 4중주에서 매우 중요하다. 활 쓰기의 호흡이나 음악적 톤, 꾸밈음을 세부적으로 조절하는 우리의 약속 모두 개인의 호흡에서 시작된다.
많은 평론가들과 미디어에서 ‘지금은 파벨 하스 현악 4중주단의 시대’라고 한다. 이에 공감하나.
야루셰크(첼로) 체코 음악에 대한 관심을 그렇게 표현해주는 게 아닐까. 그런 칭찬에는 우리가 단순히 체코 음악뿐 아니라 고전 레퍼토리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격려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다.
사진 Luáš Kadeřáb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