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의 리드 아래 펼쳐진 완벽한 호흡
이적, 한상원 등과 그룹 긱스로 데뷔, 버클리 음대와 뉴욕대 음악 대학원을 거치며 뉴욕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드러머 이상민의 공연을 보기 위해 지난 4월 25일 그리니치빌리지를 찾았다. 이상민을 비롯한 각 분야 최고의 뮤지션이 ‘이상민 그룹’에 합류해 르 푸아송 루주에서 펼친 이번 공연은 이상민이 귀국 전 가진 마지막 공연으로, 공연 기획사 7000마일즈 대표 이용준이 기획한 자리였다.
어두운 공연장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뉴욕의 한인 뮤지션으로 이뤄진 소울 팩토리의 활기찬 오프닝 공연 후, 무대 위에 연주자 빅 유키(건반), 가파 다나베(기타), 로벤 케이너(베이스), 이그마 토머스·제이슨 아스(색소폰), 이상민(드럼)이 올랐다. 각 분야의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모이기만 했는데도, 무대가 터질 듯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이윽고 놀라운 내공과 완벽한 호흡의 연주가 펼쳐지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공연에 빠져들었다. 개성 넘치는 아홉 곡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연주는 대부분 2010년 발매한 이상민의 앨범 ‘Evolution’에 수록된 곡으로 채워졌다. 특히 이번 공연의 타이틀이기도 한 ‘My Vanished Dream’은 이상민이 보스턴 유학 시절, 큰 기대감을 상실했던 감정을 표현한 곡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꿈을 상실한 것만 같은 그곳에서 이상민은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스스로 곡을 쓰며 음악 세계를 넓혀온 이상민을 드러머라고만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복합적으로 모여 특정 장르로 정의하기 힘든 이상민의 음악 세계는 정밀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그러면서도 굉장히 일상적인, 마치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 추구하는 이 세상과도 같았다. 마치 ‘인터스텔라’처럼!
이날 공연을 지켜보면서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하는 드럼의 리드 아래 그야말로 완벽한 호흡을 이뤄낸 것이 놀라웠다. 이상민은 공연 후 “각자의 분야에서 존경받을 뿐 아니라 적절한 조화를 중시하면서 앙상블에 혼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들로 그룹을 꾸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그룹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보였다. 그래서일까. 이 공연에서 이상민은 마치 혼을 쏟아부은 듯했다.
뉴욕에 살면서 많은 앙상블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상민 그룹의 연주를 그중 최고로 꼽고 싶다. 음악을 계속하면서 좋은 연주자를 많이 만나고, 좋은 음악으로 세상을 더 멋지게 만들고 싶다는 이상민의 한국 활동이 기대된다. 그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생긴다면, 지체 없이 달려가시길.
사진 신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