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4회를 맞이한 파리 가을 축제의 가장 중요한 음악 부문 프로그램은 작곡가 진은숙의 초상화였다. 작곡가 진은숙을 집중 조명하는 연주회가 10월 9일과 10일 라디오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다.
10월 9일에는 라디오 프랑스 내 오디토리움에서 크와메 라이언/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협연 김선욱)과 첼로 협주곡(협연 이상 엔더스)을 연주했다.
10월 10일에는 이상 엔더스와 김선욱이 리게티의 첼로 소나타, 진은숙의 피아노 연습곡 1·2·5번, 윤이상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 1’,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를 선보였다. 올 시즌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된 미코 프랑크의 어시스턴트 지휘자 마제나 디아쿤이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수석 단원들로 구성된 앙상블과 소프라노 서예리가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모음곡을 연주했다. 이날 오후에는 라디오 프랑스 내 스튜디오 104에서 진은숙의 음악 언어를 이해하게 해주는 동시에 그의 음악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작품 ‘코스미기믹스’와 ‘말의 유희’가 니우 앙상블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이틀 동안 라디오 프랑스에서는 진은숙의 작품 외에도 작곡가 박정규·서지훈 등의 작품이 함께 연주되었다.
2010년 스위스 제네바의 그랑 테아트르에서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관람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오페라가 남긴 인상은 대단히 신선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여느 현대 작곡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연주하기가 어렵다. 최고 수준의 연주 기량을 지닌 음악가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역량을 극한까지 추구해야 하는 작품이 많다. 그럼에도 진은숙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르투오시티는 청중을 압도하기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희로 다가온다. 작품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유연성과 시적 상상력 때문이다.
진은숙은 이미 유럽과 프랑스에서 익히 알려진 작곡가이고, 상당수의 작품은 현대음악 레퍼토리 가운데서도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이틀 동안 파리의 음악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뛰어난 한국 젊은 음악가들의 연주로 진은숙의 음악 세계를 밀도 있게 경험할 수 있었다. 11월 27일에는 20년 넘게 진은숙의 음악을 연주해온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마찬가지 파리 가을 축제의 일환으로 파리 필하모니에서 두 번의 연주회를 통해 진은숙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