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통춤의 미덕
국립무용단이 고전에 근거한 춤 모음 ‘향연’을 공연했다. ‘선비춤’ ‘오고무’ 등은 한국 전통무용의 이미지를 지녔으나, 사실 국립무용단을 기반으로 지난 50여 년간 다듬어진 레퍼토리다. 이 한국무용 소품들은 장편 창작 무용극이나 현대적 창조성을 추구하는 신작에 비해 더욱 친근하고 편안하다. ‘향연’은 과거의 유사한 무대와 달리 궁중정재를 포함시켰다. 궁중무용 전공자 김영숙이 제사에서 따온 ‘제의’와 ‘무의’ 중간에 잔치에서 추던 ‘진연’을 배치했다. 맥이 끊겼던 궁중무용을 복원시킨 김천흥 선생과 동시대 인물들이 남긴 소중한 유산 덕에 접하게 된 무대다. ‘승무’는 전통예술원 교수 양성옥이 구성했고, 나머지 일곱 개 작품은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조흥동이 안무하거나 재구성했다.
‘향연’의 각 춤은 뿌리가 크게 다른 한편, 유사한 느낌의 소도구나 춤사위를 중복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정돈하기 위해서인 듯 계절 감각이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으나, 열한 개 춤을 사계절로 나눠 묶었다. 궁중무용 세 편이 봄을 의미했고, 여름 장면에는 ‘바라춤’ ‘승무’ ‘진쇠춤’이 배정됐다. 가을은 ‘선비춤’ ‘장구춤’ ‘소고춤’ ‘오고무’가 채웠고, 대단원인 겨울은 태평성대를 감사하며 다가올 봄을 기약하는 ‘신태평무’가 맡았다. 조흥동 스타일로 재현된 한국춤들은 기교가 다양하고 구성이 정갈해 고전으로 생존할 만한 매력을 지녔다.
무형문화재 ‘태평무’는 현재 왕비 옷을 입고 춤추지만, 그 원형은 굿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무당이 왕으로 분장해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던 굿 장면이 연상된다. 조흥동의 ‘신태평무’는 기존 ‘태평무’ 동작을 활용한 대규모 군무로 넓은 보폭을 강조한 남자들의 한삼춤과 박춤이 특징이다. 궁중풍 ‘기원무’라 할 만하다. 여름의 문을 연 ‘바라춤’은 고유의 부딪기, 밀기, 치기, 돌리기 등 기본 동작을 군무의 다양한 변화에 적용했다. 은색 바라를 20명 이상의 군무진이 휘돌리며 전통의 점잖음과 화려함을 강조했고, 실내에 적절한 음향까지 신경 쓴 배려가 돋보였다.
‘승무’에서는 여성들의 장삼춤이 각각 멋을 부리는 가운데 조화를 이뤘고, 북 앞뒤에서 14명이 연주한 고유한 리듬감은 한국춤의 신명을 동경하도록 했다. 가을 부분에서는 ‘장구춤’이 가장 인상적이다. 초록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어여쁜 여인들이 장구를 메고 등장한 무대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그림이다. ‘신고산타령’에 맞춰 열채로 흥을 돋우다 궁채를 사용하며 본격적인 리듬을 만들고, 빠르게 달리거나 회전하며 환호와 갈채를 유도했다.
국립무용단 ‘향연’을 보면서 단원들의 무한한 능력에 감탄했다. 타악기 연주의 탁월함, 여성 춤의 섬세함은 더 이상 요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성을 띄었다. 이 장점을 계승하는 것이 단체의 주요 의무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각적 통일감이 출중했다. 커다란 매듭 장식 몇 개와 흰 패널로 채운 무대 디자인, 흰색이 주를 이룬 가운데 조금씩 달라지는 의상 디자인과 색감 변화가 정구호의 저력을 드러냈다. 반면, 너무 많은 작품을 선보여 오히려 감동을 반감시킨 느낌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세노그라프(scénographe, 무대연출가) 역할을 한 정구호를 메퇴르 앙 센(metteur en scène, 연출가)으로 부르는 잘못된 호칭은 세계적 관행과 어긋나므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