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독일 악센투스 레이블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발표했다. 2015년 6월 베를린의 유명한 레코딩 장소인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의 녹음으로, 여러 해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에 대한 심도 깊은 실험과 진지한 모험을 마친 김선욱은 비로소 레코딩을 통해 베토벤을 찬미하기 위한 자신만의 철옹성에 첫 벽돌을 얹었다. 첫 곡인 21번 ‘발트슈타인’에 대한 첫인상부터 말하자면, 발터 기제킹의 콜롬비아 레코딩이 보여주던 ‘아름다운 욕망의 질주’가 21세기에 새롭게 재탄생한 듯하다. 첫 주제의 연타음과 트릴은 베토벤이 의도한 새로운 사운드의 세계를 인식한 듯 장식적 효과를 배재하고 스토리텔링을 위한 주요 질료로 받아들여 부분마다 전혀 다른 의미와 구조적인 효과를 생성해낸다.
대곡인 29번 ‘함머클라비어’는 마치 시간을 재단하는 듯한 연주로, 완벽한 양손 옥타브의 화성과 저음부의 배음, 오른손의 육중한 무게감을 실은 날렵한 스타카토를 보여준다. 특히 3악장에서 김선욱은 셋잇단음 옥타브와 16분음표에 제각각 다른 무게의 터치로 대조를 연출했다. 장조와 단조, 호모포니와 폴리포니를 오가는 멜로디에 복선율적인 깊이와 상징을 담으려는 듯 초감각적이면서 투명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4악장 푸가의 장대함과 단호함은 기존의 비르투오소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사뭇 다르기에 눈여겨볼 만하다.
열광적인 힘보다 대위법적인 구축력과 논리적인 호소력이 감동과 다채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선욱의 해석은 치열하다 못해 백색섬광을 내뿜는다. 특히 왼손 옥타브의 상승과 오른손 옥타브의 하강에 이어지는 트레몰로의 흐드러지는 댓구, 재기발랄한 성부 진행, 진폭 큰 스케일의 수축과 팽창을 통한 음악적 묘미는 베토벤이 이 작품을 통해 제창하고자 한 새로운 음향 세계를 대변한다. 다음에 발매될 그의 프랑크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이 기다려진다.
한편,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에 도전하고 있는 김정원. 그의 슈베르트 레코딩 시리즈가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슈베르트의 수많은 미완성 피아노 소나타와 단편을 모두 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총정리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찾기 힘들다.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일련의 리사이틀을 여는 동시에 서울 일신홀에서 레코딩을 시작했는데, 녹음 퀄리티가 훌륭할 뿐 아니라 연주 또한 아름답고 정묘하며 오소독스하다.
빈의 뉘앙스와 화사한 색채로 가득한 한편, 수줍은 멜랑콜리와 회색빛 음영까지 드러내기에 아름답게만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음향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수반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의 풍부한 울림, 다채로운 터치와 감각적인 페달링이 슈베르트의 정서를 설득력 높게 확장시킨다. 특히 19번 D958과 13번 D664에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아름다움과 통렬함의 공존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슈베르트 피아노 레코딩으로 이러한 음반이 한국에서 탄생했음에 갈채를 보낸다.
사진 빈체로·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