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30주년 되는 해, 국립무용단과 조세 몽탈보의 시대를 잇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30주년 되는 해다. 양국 정상은 2015·2016년을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했다. 지난 9월 18일, 프랑스는 샤요국립극장에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을 올리며 개막을 알렸다. 한국은 이번 3월, 국립무용단 신작 ‘시간의 나이’를 국내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국립극장과 샤요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시간의 나이’는 한국에서 초연한 뒤, 6월에 프랑스로 건너가 샤요국립극장 시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샤요국립극장 상임안무가 조세 몽탈보(José Montalvo)가 안무를 담당하며, 국립무용단이 출연한다.
무용의 가능성을 넓히는 안무가
조세 몽탈보는 민족의 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탁월한 감각이 있다. 스페인의 정치난민이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한 그는 문화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2006년 내한한 몽탈보 에르비외 컴퍼니의 ‘춤춘다(On Danse)’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 라모의 명랑한 음악에 맞춰 유쾌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당시 공연을 본 무용평론가 장인주는 “프랑스 예술의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는 바로크 예술도 역사 속에서 기이한 예술적 혼합으로 평가되었듯이 ‘춤춘다’도 그런 면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춤추는 행위를 중심으로 한 현대판 바로크 작품으로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오늘날 장르 간 융합이 컨템퍼러리 예술의 화두가 됐다. 몽탈보는 아프리카 춤, 힙합, 발레 등 여러 춤을 한 작품에서 수용하여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넓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미술사와 시각예술을 전공한 그는 영상을 십분 활용하여 관객에게 시각적 재미를 선사한다. 몽탈보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비디오 아티스트인 미셸 코스트와 협업했다. 영상은 무대를 확장했고, 난해한 느낌의 현대무용을 즐겁고 쉽게 풀어갔다.
조세 몽탈보는 국립무용단의 전통미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할 계획이다. 춤과 타악 연주를 겸하는 한국무용수의 독특함을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에 접목하고,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작품과 양국이 협력해 촬영한 영상을 선보인다. 공연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조세 몽탈보를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작업을 위해 내한한 지 3주가 지났다. 작품 의도가 궁금하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컨템퍼러리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무용수들에게 전통 회화작품과 피카소 그림을 보여주며, 전통 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피카소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억은 유산이다. 그 유산은 우리가 다이빙할 때 도약대 역할을 한다. 나는 전통유산이라는 도약대에서 뛰어올라 오늘의 무용을 만들고 있다.
현재 어떤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국립무용단 단원들과 연습한다. 때때로 소그룹으로 나누어 작업하기도 한다.
국립무용단과 이전에 협업한 핀란드 출신 안무가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은 “한국무용수들의 개성이 강해서 원래 생각하던 방향과는 다르게 작업이 이뤄졌다”고 고백했다. 현재 국립무용단 무용수들과 호흡은 어떤가?
스물네 명의 단원과 함께 작업 중이다. 지금까지 무용수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열린 마음을 지녔다. 한국무용수들의 강한 개성이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무용수들과 함께 하는 작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무용수들에게 영감을 받아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단원들과 대화하며, 점차적으로 친밀감을 쌓고 있다.
처음 국립무용단과의 작업을 제안 받았을 때, ‘한국의 국립무용단’이란 명칭에서 느껴지는 한국 춤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이었나?
샤요국립극장의 극장장 디디에 데샹에게 협업을 제안 받았다. 당시는 한국무용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국립무용단은 어떨까?’ ‘무용수들은 어떻게 연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국립무용단을 관찰하기 위해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고, ‘코리아 환타지’ 공연을 봤다. 국립무용단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특별한 요소를 가졌다. 여러 작은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또한 느림의 미학이 있다. 팔 동작 하나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움직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움직임을 현대적 감성으로 옮기고 싶다.
국립무용단 단원들이 타악 연주를 하며 춤추는 모습에서 영감 받았다고 들었다. 춤과 악기 연주를 함께 소화하는 것이 한국 전통춤의 독특한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타악 연주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작품의 세 번째 부분에서 타악 연주가 등장한다. 작품의 첫 부분에서는 문화적 유산을 모던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펴보며 기술, 여행, 슬픔 등을 묘사했다. 세 번째 부분에서 타악 연주가 들어가는데, 원시적 느낌의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라벨 ‘볼레로’를 음악으로 사용한다.
한국의 전통 타악기 연주가 점점 발전해 ‘볼레로’가 등장하는 것으로 구상 중이다. ‘볼레로’는 하나의 모티브가 반복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 분위기를 원시적 축제와 접목시켜 연출하고자 한다.
‘시간의 나이’라는 제목은 ‘과거를 축적해가며 새로운 것을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최근 현대무용은 과거의 것은 모두 배제한 채, 오직 현대의 것만을 추구한다”고 당신은 밝혔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예술’과 ‘전통이 배제된 컨템퍼러리 예술’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세기 초 ‘모든 전통을 다 지워버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조형예술에서 시작했고, 무용에서도 나타났다. 이에 반대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창작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두 축은 여전히 프랑스 예술에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안무가들도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배제하는 쪽과 과거의 기억을 사용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을 지우면 무한한 가능성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전통은 풍부한 창조의 원천이다. 전통을 잘 활용하면 안무가는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국립무용단이 현재 가진 동작들은 엄청나게 풍성한 보고(寶庫)다. 전통을 가둬놓아서는 안 된다. 변형은 자유롭고, 작품을 재해석할 여지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성장하면서 습득한 문화 환경은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 당신은 스페인 출신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작품에서 민속적 통찰이 느껴진다는 평이 있는데,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이것이 작품에 어떻게 실현되는지 궁금하다.
부모님이 스페인 정치난민이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서 북아프리카, 모로코, 이탈리아 등 다양한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이 작품에서 표현된 것 같다. 국립무용단과 함께하며 느낀 점은 지리적으로 가깝지 않아도, 세계에 대한 비전이나 예술적 감성이 공유되면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이 당신의 작품에 상징이 됐다. 영상을 작품에 처음 도입하던 199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무용 공연에서는 영상 사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공연에서 영상이 과시적으로만 쓰이고 있다. 무대와 영상의 관계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심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영상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자연스럽게 공연에서도 영상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나에게 영상은 단순한 무대장치다. 공연장에 코끼리를 들여오고 싶을 때, 영상을 활용하면 쉽게 할 수 있다. 자유롭게 무대를 꾸미는 도구라고 보면 된다.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연 예술을 도와주고 무용수들의 몸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연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으면 영상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이번 작업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
국립무용단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작품이 별로일 수도 있고, 아이디어는 별로지만 작품이 좋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관객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연습하는 과정을 볼 때,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일부 무용수들은 프랑스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립무용단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모험을 할 준비가 된 단체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