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보 예르비가 6월 18일 파리 필하모니에서 고별 연주회를 끝으로 파리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예르비는 2010/2011년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했다. 음악감독직을 맡은 후 예르비는 총 216회의 연주회를 지휘했고, 그의 지휘봉 아래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는 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예르비를 통해 파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예르비의 전임자였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파리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예르비는 우선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프로그램을 훨씬 다양하게 만들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그는 시벨리우스를 포함한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더욱 자주 무대에 올렸다.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을 꾸준히 들을 수 있던 것도 예르비 덕이었다. 러시안 레퍼토리도 끊임없이 시즌 프로그램에 포함했고,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고전 작품을 연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르비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드뷔시·라벨·베를리오즈는 물론이고 티에리 에스케히 등 생존해 있는 프랑스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자주 초연, 연주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파리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들을 녹음해 다수의 음반을 선보였다.
예르비는 고별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3번을 선보였다. 알토 미셸 드영이 협연했는데, 그녀는 아름답고 표현적인 음색으로 말러를 노래했다. 6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이 장장 1시간 40여 분에 걸쳐 연주된 후, 관객들은 마에스트로에게 평소보다 더 열광적이고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나아가 파리 오케스트라는 예르비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오케스트라의 총감독인 브뤼노 아마르는, 베를리오즈가 1854년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에게 쓴 자필 편지를 선사했다. 또 오케스트라는 예르비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가운데 한 명인 시벨리우스의 작품 한 곡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 포디엄 위에 서서 지휘를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음악감독에게 이런 방식으로 감사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무대 대기실의 문을 언제나 열어놓았던 예르비. 그는 까다로운 파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에게 분명히 실력 있고 ‘나이스’한 지휘자라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필자는, 주관적일지는 모르지만, 예르비가 뛰어난 지휘자이긴 하지만 결코 위대한 지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기 전부터 그가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고 지휘하는 것을 보았으나 불행하게도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깊은 감동을 느낀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예르비는 기술과 경험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뜨거운 심장을 지니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는 ‘나이스’하지만 동시에 ‘차가운’ 지휘자인지도 모른다.
파보 예르비 이후 이제 갓 마흔이 된 대니얼 하딩은 파리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이끌어나갈까. 뜨겁고도 불안정한 여름이 지나고 9월이 오면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