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9월 30일 LG아트센터
실험정신만 돋보인 무대
우리나라 공연가에서 ‘페스트’만큼이나 개막 전부터 이목을 집중시킨 창작 뮤지컬도 드물다.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서태지 때문이다. 2016년 7월, 작품은 마침내 막을 올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극단적이었던 경우도 드물지 않았나 싶다. 음악만큼은 우호적인 평가를 얻을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페스트’의 가장 큰 논란은 뮤지컬 넘버에서 비롯됐다. 대중에게 생소한 노래가 많다는 지적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의 노래가 대부분인 작품의 실험적 성격이 가져온 논란이다. 제작진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일지 모른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뼈대로 선택했고, 대중적 인지도보다 마치 감춰진 트랙 같은 음악들을 배열함으로써 쉽게 예견된 논쟁이기 때문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주크박스 뮤지컬로서의 매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좋게 말해 파격이자 도전이고, 반대로 보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은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스무 곡 남짓한 낯선 멜로디를 대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익숙한 노래들이 극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고 활용되는지가 매력 포인트다. ‘맘마미아!’처럼 노랫말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기가 막힌 스토리를 짜맞춰내는 경우도 있고, ‘저지 보이스’ ‘뷰티풀: 더 캐럴 킹 뮤지컬’처럼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하거나 ‘위 윌 록 유’처럼 가상 스토리에 맞춰 노래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변치 않는 원칙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를 활용한다는 것인데, 덕분에 소재로 쓰인 음악가가 활동을 중단했거나 세상을 떠난 경우라면 뮤지컬의 인기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뮤지컬 관객뿐 아니라 그 음악을 즐겨 듣던 팬들까지도 무대로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페스트’는 일반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의 흥행 공식을 배제했다. 카뮈의 원작 소설이 지닌 상징과 은유를 서태지의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활용해 재구성하는 과감한 실험 정신을 추구했다. 덕분에 편곡을 맡은 음악감독 김성수는 그가 참여한 어느 작품 못지않게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무대를 꾸몄지만, 그 번뜩이는 변화와 날 선 변주를 쉽사리 눈치 채기 어려운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즐기려면 미리 원곡을 들어보고 공연장을 찾아야 비로소 파격이 보이는 별스런 주크박스 뮤지컬이 된 셈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던 서태지의 ‘음악’과 ‘예술성’을 뮤지컬로 재현해내는 데 걸맞은 도전이라 볼 수도 있다. 그의 음악은 늘 기존 질서의 답습이 아닌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담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서태지란 아이콘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진보가 시장의 팽창이 아닌 다양성의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페스트’의 실험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흥행의 성패를 떠나 곱씹어보게 되는 이 작품의 의의다.
사진 스포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