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10월 23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울림
‘삼일천하’라는 말이 있다. 조선 인조 때 반역을 꾀했으나 사흘 만에 축출된 이괄의 난을 조롱해 생겨난 말이지만, 흔히 조선 말기의 갑신정변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삼일천하’(1973)가 큰 몫을 했다. 급진개화파로서 일본 세력을 이용해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중국 상하이에서 자객 홍종우에 의해 피살된 김옥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곤 투모로우’는 이를 근간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신상옥의 영화 대신 오태석의 연극 ‘도라지’를 가져와 무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역사 고증에 비중을 둔 영화보다 ‘발칙한’ 상상력이 주는 별스런 재미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극이 그러하듯, 보여주려는 것이 역사의 충실한 재현이 아닌 그 시절을 통한 오늘의 비판과 풍자임을 전제할 때 비로소 이 작품의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뮤지컬계의 블루칩으로 통하는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연과 ‘잃어버린 얼굴 1985’의 앙코르 무대까지 한꺼번에 세 작품을 올린, 그야말로 인기 상한가의 연출가다. 한때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작품 4개를 동시에 공연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모습과도 겹친다. 국내에선 미국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네 작품을 같은 시기에 올린 적이 있는데, 한국 예술가로는 이지나가 그에 버금가는 기록을 갖게 됐다. 특히 “자기 복제가 심하다”거나 “흥행을 잇지 못한다”는 쓴소리를 들은 와일드혼과 달리,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예매율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포진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올해 한국 창작 뮤지컬 최고의 개가(凱歌)로, 그녀의 끝 모를 에너지와 열정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곤 투모로우’ 속 홍종우는 사료와 달리 파란만장한 독립투사로 그려진다. 모노톤의 무대는 누아르풍 형식적 재미와 세련된 비주얼로 치장해 여운이 긴 뒷맛을 남긴다. 개인적으론 역사 속 사건을 주로 다루는 1막보다 홍종우에 대한 오태석의 상상력이 적극 개입되는 2막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최종윤의 음악도 칭찬받을 만하다. 온통 자극으로 치장한 일부 대형 창작 뮤지컬의 그것과 달리, 차분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통해 이야기 좇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뮤지컬 넘버마다 배우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경쟁적으로 고음을 내지르지 않더라도, 민족의 현실과 아픔으로 인한 울분의 정서를 음악만으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도라지 타령’을 활용한 시대 분위기의 전달이나 베토벤 ‘월광’을 변주해 비장함을 더한 무대적 장치도 인상적이다.
본질을 망각한 채 정치적 이해나 권력의 향배, 허울 좋은 명분만을 논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은 지금도 달라진 바가 없어 절로 한숨을 내쉬게 된다. 광야의 초인들이 민족의 내일이라 꿈꾸던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먼 이야기 같아 서글프다. 오늘을 살아가는, 혹은 오늘도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래서 울림이 남다른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