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별들이 쏟아지는 가을밤
세계 관현악의 생생한 현재를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올가을이다. 가장 핫한 지휘자들과 그들이 이끄는 각양각색의 오케스트라들. 그 치열한 대전이 11월 펼쳐진다. 이때만큼은 유럽 어느 나라가 부럽지 않을 듯하다. 오케스트라 애호가라면 달력에 미리 일정을 체크해두길 바란다. 이 공연들을 모두 갈 수 있다고? 그렇다면 당신이 진정한 승자!
글 국지연·이정은·권하영 기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협연 안드라스 쉬프)
11월 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어느덧 그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고전이 된 존재들이다. 드넓은 러시아 대륙과 비장함을 음악으로 전했던 러시아의 대표적인 관현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내한 공연은 거대한 에너지가 넘치는 러시아의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날 무대는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80세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취임 30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공연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날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한 인터뷰에서 “198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신인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맡고 지금까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음악가로서 자신을 오로지 신뢰해줬기 때문이다”며, “위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오케스트라가 지금도 러시아 음악의 유산과 전통을 계속 잇고 있다는 것이 기쁨이며 영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무대의 또 하나의 매력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협연이다. 모범적인 연주로 사랑받아온 쉬프는 뛰어난 직관력과 분석력으로 절제된 피아니즘을 구사하는 연주자로, 특히 그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사이클은 프랑스 아비아티 최고 음악 비평가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쉬프는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연주한다. 각기 자신의 이름으로 음악의 역사를 써 온 이들의 만남이 가져다줄 감동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국지연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서로 다른 감수성과 서정성이 동유럽 풍 정서로 교차하는 무대.” (김주영)
“정통 러시아 사운드를 듣기 위한 최상의 선택. ‘황제’ 협연에서는 안드라스 쉬프와 테미르카노프가 밀고 당기는 고수들의 내공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류태형)
“80세 노거장 테미르카노프의 내한 공연은 그 자체로 매우 뜻깊다. 여기에 안드라스 쉬프의 협연이 더하여 우리 시대 최고의 향연이 피어날 것이다.” (송주호)
“고전적인 음악가 안드라스 쉬프와 러시아의 격정을 품은 테미르카노프/상트페테르부르크필의 조합은 매우 신선하다.” (최은규)
파보 예르비/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협연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11월 3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창단 150주년을 맞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은 2019/2020 시즌부터 차기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으로 활동할 파보 예르비가 함께해 더욱 깊은 의미를 담는다. 이날 무대의 중심은 말러 교향곡 5번이다. 말러 음악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이 작품은 한층 세련되어진 그의 작곡기법이 돋보이면서도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의 구성을 비틀어 풍자와 유머도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이 느껴진다. 더구나 누구보다 치밀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파보 예르비와 에너지 가득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어떤 시너지를 나타낼지 기대를 모은다.
100명 이상의 단원들을 보유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베토벤·말러·브람스·슈베르트 교향곡 전곡 음반을 녹음했을 만큼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특히 최근 라벨 박스 세트를 발매해 음악계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존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가족과 실내악 콘서트도 자주 열어 대중과의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더구나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제2악장으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취임해 반가움을 더한다.
이날 협연은 젊고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제2의 아르헤리치’로 평가될 만큼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함께 할 예정이다. 이날 선보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난 2017년 발매된 음반에서도 예르비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곡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감미로운 서정성과 큰 스케일로 극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의 매력을 부니아티쉬빌리만의 피아니즘으로 직접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국지연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파격적인 무대매너의 피아노 패션 스타와 센서티브한 드라마 연출가의 21세기적 만남.” (김주영)
“진먼이 다져놓은 정밀함에 예르비의 다이내믹을 더한 말러 교향곡 5번, 대담하게 가을로 뛰어드는 부니아티쉬빌리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류태형)
“에너지 넘치는 파보 예르비의 연주는 음악팬으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완성도 높은 연주도 언제나 선택 대상이다.” (송주호)
“파격적인 음악해석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음악가 상을 보여주는 파보 예르비와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공연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최은규)
마르틴 하젤뵈크/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협연 황수미·양송미·스티브 데이비슬림·박종민)
11월 1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이 1824년 초연 당시 어떤 형태로 연주됐을지 궁금하다면, 이 무대에 주목해보자.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마르틴 하젤뵈크가 1986년 창단한 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가 첫 내한 공연을 가진다. 마르틴 하젤뵈크와 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는 2016년 9월부터 ‘리사운드 베토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토벤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추구하는 것이다. 19세기 빈에서 사용하던 악기들과 연주법을 사용하여 베토벤이 살았을 당시의 음향을 발견함과 더불어, 작품이 초연된 홀에서 연주와 녹음을 진행하며 초연 당시의 역사성과 실제적 음향을 재현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토벤 ‘헌당식’ 서곡 Op.124와 3중창 성악곡 Op.116을 거쳐 교향곡 9번 ‘합창’에 도달한다. 소프라노 황수미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스티브 데이비슬림과 베이스 박종민, 그리고 서울모테트합창단이 관현악과의 풍성한 울림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만나는 19세기 베토벤의 음악. 시공간을 뛰어넘는 음악의 현장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정은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익숙한 레퍼토리의 생경한 만남. 새롭게 울릴 신선한 베토벤의 출현.” (김주영)
“1824년 빈 청중은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황수미 박종민 등 호화 성악진.” (류태형)
“베토벤이 의도했던 소리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이상세계를 보다 진실하게 마주할 것을 기대한다.” (송주호)
“베토벤 시대의 음향과 음악해석을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최은규)
안토니오 파파노/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협연 다닐 트리포노프·조성진)
11월 15·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7일 오후 5시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안토니오 파파노의 첫 내한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관현악과 오페라를 두루 섭렵하며 노련하고 극적인 지휘를 선보이는 파파노는 현재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지휘자 중 한 명이다. ‘화려하고 격정적이며 황홀한 최상의 연주’(영국 ‘가디언’지), ‘넘치는 에너지와 노련미를 두루 갖춘 지휘자가 만드는 스타일리쉬하고 드라마틱한 음악’(미국 ‘뉴욕타임즈’지) 등의 극찬이 그를 따라다닌다. 2005년부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악단의 명성을 한 층 더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로 창단 110주년을 맞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주세페 시노폴리와 다니엘레 가티, 정명훈 등 명망 있는 지휘자들이 감독직을 맡아 왔다.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소속으로, 1908년 설립 당시 오페라극장 소속 오케스트라가 대다수였던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최초의 관현악 연주 전문 악단으로 출범한 단체다. 유럽 외의 투어 공연이 많지 않고 한국 공연도 정명훈이 수장으로 있었던 1997년과 200년이 전부였기에, 이번 내한이 더욱 반갑다.
이번 공연에는 스타 지휘자뿐 아니라 젊은 스타 피아니스트 두 명이 가세해 더욱 화려한 무대를 만들 예정이다. 15일에는 다닐 트리포노프, 16·17일에는 조성진이 무대에 오른다. 15일 공연에서는 림스키코르사코프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즈의 전설’ 모음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선보인다. 16·17일에는 ‘올-베토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데, 교향곡 2번과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뒤 교향곡 5번 ‘운명’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정은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대한민국을 세계의 핫 플레이스로 만들 피아노 진검승부. 파파노의 재치와 센스도 흥미진진.” (김주영)
“파파노는 첫 내한. DG의 두 스타 트리포노프(라흐마니노프 3번)와 조성진(베토벤 3번)의 격돌” (류태형)
“우리에게 감춰져 있던 유럽의 보물을 보게 될 것이다. 트리포노프와 조성진 또한 각각 러시아와 베토벤 프로그램에서 젊은 열정을 보여줄 것이다.” (송주호)
“오페라와 기악 분야 모두에 탁월한 안토니오 파파노의 음악을 드디어 생생한 연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최은규)
발레리 게르기예프/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협연 선우예권)
11월 21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2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년 만에 다시 내한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뮌헨 필하모닉은 올해도 어김없이 뜨거운 관현악을 선사할 예정이다. 2015년 게르기예프가 뮌헨 필하모닉의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첫해에 내한했던 공연도 좋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이후 3년간 더욱 견실하게 다져진 탄탄한 호흡을 선보일 터.
‘러시아 음악의 차르’로 불리는 게르기예프와 ‘독일 정통 관현악’을 대표하는 뮌헨 필하모닉의 만남답게, 프로그램은 러시아와 독일 레퍼토리가 고루 분배됐다. 21일 성남아트센터에서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일한 협주곡에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특히 뮌헨 필하모닉은 말러 자신이 직접 지휘하기도 한 악단으로, 자신의 교향곡 몇 작품의 초연을 자신의 지휘로 뮌헨 필하모닉의 연주로 선보인 바 있다. 게르기예프 역시 감독 부임 첫 시즌의 오프닝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이를 뮌헨 필하모닉 자체 레이블의 첫 음반으로 발매했을 만큼 말러와 뮌헨 필하모닉의 관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러와 뮌헨 필하모닉의 이러한 유서 깊은 연관성으로 인해, 오늘날 뮌헨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말러는 그 의미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협연자로 나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역시 관전 포인트다. 러시안 레퍼토리에 강점을 드러내 왔던 그이기에, 이번 협연에서 선보일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의 기교와 서정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강렬하고 농도 짙은 소리의 향연을 기대해보자. 이정은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떨리는 손끝으로 빚어낼 러시아적 관능의 말러. 선우예권의 건강미도 주목거리.” (김주영)
“육중한 뮌헨 필을 움직이는 게르기예프의 섬세한 손길, 야수파의 색채같이 톡 쏘는 프로코피예프 3번을 선우예권이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 (류태형)
“예술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게르기예프의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선우예권의 도전적인 프로그램도 기대감을 높인다.” (송주호)
“게르기예프와 선우예권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공연.” (최은규)
마리스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30일 협연 예브게니 키신)
11월 29·3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트비아 출신의 거장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하 BRSO)이 2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지난 2003년 BRSO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마리스 얀손스는 오는 2024년까지 악단을 이끌며 조화로우면서도 묵직한, 그만의 색채를 더해갈 예정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사사했으며,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 상임지휘자로도 활동했던 그는 2008년 ‘그라모폰’ 지가 조사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제치고 RCO를 1위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BRSO 역시 6위에 올라 어떤 오케스트라를 만나도 유수의 연주력을 담보하는 안정적인 지휘로 신뢰를 얻은 바 있다.
29일에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통해 묵직한 관현악곡을 연이어 선보인다. 30일에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협연으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2011년 시드니 심포니와의 내한 공연 이후로 7년 만에 한국에서 협주곡을 선보이는 키신은, 지난 10월 한국에서의 독주회와는 또 다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 BRSO는 R.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를 통해 장엄한 교향적 사운드를 들려준다.
1949년 제2차대전 이후 설립된 BRSO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악단에 속하지만, 베를린 필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꼽힌다. 고전·낭만 레퍼토리 외에도 적극적으로 현대 음악을 선보이며 신작 위촉을 활발히 수행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선보이는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해 슈톡하우젠·하르트만·베리오 등 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꾸준히 올릴 뿐 아니라 이들을 직접 포디움에 세우며 악단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독일 악단이 내뿜는, 활기차면서도 권위 있는 연주에 귀 기울여보자. 권하영
칼럼니스트 한줄 기대평
“세련미로 감싼 후기 낭만과 스트라빈스키. 모처럼 선보일 정통파 비르투오소의 리스트.” (김주영)
“한국에서 키신과 얀손스 두 빅카드의 협연. 애호가들이 첫손에 꼽는 독일 오케스트라의 현재를 만끽하는 성찬.” (류태형)
“수차례의 내한 공연으로 검증된 얀손스와 키신의 완성된 음악의 결합은 온 인류를 감동시키는 클래식 음악의 정의를 알게 해 줄 것이다.” (송주호)
“얀손스와 키신의 조합이라면 올해 최고의 클래식 음악 공연이라고 할 만하다.”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