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마음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꿈꾸고 바라면 그 꿈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마음은 무언가를 실현시켜주는 주된 힘’이 된다.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의 마음은 지금 클래식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알리는 데 있다.
클래식 색소폰과 브랜든 최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입학식에서였다. 조금은 늦은 만남이었지만, 클래식 색소폰과 그 음악의 매력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은 그를 더 큰 무대로 이끌었다. 신시내티 음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이후 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장 드니 미샤(Jean-Denis Michat), 제임스 번트(James Bunte), 릭 밴매트레(Rick VanMatre), 오티스 머피(Otis Murphy)를 사사한 그는 신시내티 콩쿠르 1위, MTNA 콩쿠르 2위 등에 올랐으며, 여러 콘퍼런스에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솔리스트로서 아시아 최초로 미국 맨해튼 음대 작곡과 교수이자 뉴욕필 상임작곡가를 역임한 수전 보티의 색소폰 협주곡을 세계 초연한 것을 비롯해 링컨센터, 카네기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콘서트홀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 초청 리사이틀을 개최했고, 지금도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다양한 앨범 작업도 눈에 띈다. 클래식 색소폰 정규 앨범인 ‘색소폰 소나타(Saxophone Sonatas)’를 시작으로 직접 작·편곡한 곡을 실은 ‘더 색소폰 송(The Saxophone Song)’, 크로스오버 싱글앨범 ‘오, 해피데이(Oh, Happy Day)’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브랜든 최는 야마하 아티스트·디아다리오 아티스트·라프레크 아티스트로서 다채로운 무대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중앙대·삼육대·백석예술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시흥시 문화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를 수식하는 이름은 무수히 많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목표로 귀결된다. 바로 더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 색소폰과 그 음악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그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이 오늘의 그를 움직이게 한다.
브랜든 최의 브랜드 가치
공부 잘하던 평범한 학생이 한순간 클래식 색소폰에 빠져버렸다.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교내 윈드 오케스트라를 보고 멋있어 보여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여러 악기를 보여주었는데 그중 금색에 반짝거리는 색소폰이 가장 멋있어 보였다. 그러던 중 무대에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연주가 끝나고 나니 뭔지모를 감정들이 벅차올랐다. 무대에 서는 것이 점점 좋아지며 부모님께 무작정 전공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혼을 내시더라. 좋은 학교에, 성적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하니 황당하셨던 거다.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셨고. 하지만 한번 악기에 빠지고 나니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확신으로 답하며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부터 전공을 시작했다.
그 매력이 무엇이었을까? 색소폰의 음색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람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색소폰 소리가 사람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음역대와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더라.
조금은 늦은 시작이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며 눈에 띄는 성과도 많이 이루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는 음악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이론과 역사 등의 연주 외적인 부분, 그리고 내가 왜 색소폰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도 찾을 수 있었다.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하며 재즈도 배울 수 있었고, 재즈 빅밴드에서 연주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키울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미국 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주로 공부했는데, 프랑스에서 장 드 미샤 교수님과 함께하면서는 교수님이 직접 작곡한 곡을 시작으로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각각의 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장점들을 많이 흡수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프랑스로 갔던 이유가 색소폰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클래식 색소폰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색소폰 하면 대게 딴따라, 뽕짝, 케니 지, 팝, 재즈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색소폰은 베이스 클라리넷과 유포니움을 만든 벨기에의 악기 제작자 아돌프 삭스(Adolphe Sax)에 의해 탄생한 악기다. 인생의 걸작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만든 악기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삭스혼’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색소폰’이라 부르는 악기다. 이후 삭스는 친분이 있었던 베를리오즈를 찾아가 악기를 선보이며 작품을 부탁한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작곡가·연주자로 활동했던 베를리오즈는 자신이 기고하던 칼럼 ‘주르날 데 데바(Le Journal des Debats)’에 ‘색소폰의 출생증명’이라는 글로 악기를 소개하고, 합창곡 ‘신성한 노래’를 색소폰이 포함된 오케스트라로 편곡한다. 악기가 알려진 계기는 프랑스 군악대에 편성되면서부터이고, 이후 라벨, 드뷔시 등 프랑스 작곡가들이 색소폰을 위한 곡을 쓰며 점차 사랑받기 시작했다. 악기의 탄생은 벨기에에서였으나 진정한 역사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색소폰은 재즈·팝 등의 대중적인 장르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이것이 미 8군 부대를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국내 클래식 색소폰 역사가 짧다 보니 활동에도 어려움이 있을텐데. 악기 자체가 사람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처음에는 막막하고 힘들었다. 어떻게 이 악기를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 매 연주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악기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해외연주에서는 클래식 음악으로만 프로그램을 채우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함께 선보인다. 관객과 소통하며 조금씩 색소폰과 그 음악의 재미를 전하는 것이 우선이고, 많은 분들이 클래식 색소폰을 알게 되었을 때 나만의 색깔을 더 드러내고 지켜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내 음악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드뷔시나 라벨의 작품을 좋아한다. 특히 라벨의 작품은 내 개인적인 감성과 잘 맞는 것 같다. 드뷔시가 오케스트라와 색소폰을 위해 작곡한 ‘랩소디’도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색소폰 연주자라면 꼭 한번은 연주해야 할 곡이고, 내 유튜브 연주 영상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다. (브랜든 최의 더 많은 연주 영상은 유튜브 ‘브랜든티비(BrandonTV)’를 통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3월 아트엠콘서트와 콰르텟 앤의 ‘더 레드 탱고’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5개주 투어를 비롯해 마카오·광저우 등에서도 초청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다. 솔리스트로서도 무대에 오르지만 러시아 색소포니스트 니키타 지민(Nikita Zimin), 일본 색소포니스트 요 마츠시타(Yo Matsushita)와 함께 ‘제너레이션 1987’이라는 이름으로 앙상블 무대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로서 세계적인 활동을 이어가며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 시향이나 교향악축제 같은 의미 있는 무대에서 색소폰 협주곡이 연주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글 이미라 기자
아트엠콘서트
3월 16일 야마하뮤직커뮤니케이션센터
콰르텟 앤의 ‘더 레드 탱고’
3월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