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랑랑 음반 프리뷰 현장

파리 센강 위로 펼쳐진 피아노 선율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11일 9:00 오전

WORLD HOT_2

유니버설뮤직으로 다시 돌아온 랑랑의 첫 번째 앨범 ‘피아노 북’

 

©Jean-Baptiste Millot

 

라벨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의 위촉으로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라벨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균등한 수준을 이루지만, 이 협주곡은 라벨이 정말로 많은 공을 들여서 쓴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왼손으로만 연주되는 협주곡임에도 불구하고, 라벨이 두 손을 위해서 쓴 피아노 협주곡 G장조보다 훨씬 더 어렵고, 오케스트라 파트 또한 더욱 무겁고 웅장하다. 두 협주곡은 어쩌면 비교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랑랑은 이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무리하게 익히려고 하다가, 왼손을 쓸 수 없게 될 뻔했다. 2017년 봄의 일이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오케스트라들이 랑랑에게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무리한 일정으로 피곤이 겹친 상태였던 랑랑은 아마도 이 협주곡을 가볍게 여겼으리라.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라벨이 겪었던 불화는 이 협주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전해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협주곡의 어려움 앞에서 음들을 마음대로 고쳐 연주하면서 “나는 나이가 많은 피아니스트인데, 이 곡은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라벨에게 말했다. 라벨은 여기에 “나 역시 나이가 많은 작곡가인데, 분명히 소리가 잘 난다”라고 응수해버렸다. 비트겐슈타인의 위촉으로 1931년에 작곡된 이 곡은 그가 6년 동안 연주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그러나 라벨은 비트겐슈타인이 파리에서 연주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의 파리 연주를 막아버렸다. 결국 이 협주곡의 파리 초연은 1937년 3월 19일, 지휘자 샤를 뮌쉬와 피아니스트 자크 페브리에의 연주로 이루어졌고, 라벨은 1937년 말에 세상을 떠났다. 비트겐슈타인은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지난 뒤에야 후회했다. ‘나는 이 협주곡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제야 나는 이 협주곡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깨달았다.’

 

©Jean-Baptiste Millot

 

파리 센강 위로 펼쳐진 이야기

3월 29일에 발매되는
랑랑의 새 음반 ‘피아노 북’

파리의 센강 위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실은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안에서 바라보는 센강 주변의 풍경은 또 다르다. 공간적으로 보면 커다란 차이는 없지만, 위치가 바뀌면 풍경도 완전히 달라진다. 움직이는 배의 모터 소리는 마치 센강의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랑랑은 자신이 왜 한동안 연주를 중단해야만 했는지,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마치 재미있다는 듯이 배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이번에 녹음한 음반인 ‘피아노 북(Piano Book)’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연주를 시작했다.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가 첫 곡이었다. 여운이 꽤 깊게 남은 ‘엘리제를 위하여’ 다음으로 그는 멘델스존 ‘물레의 노래’를 연주했다. 몇 개의 조명만이 켜져 있는 배 안이 경쾌해졌고, 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밤 표정도 달라졌다. 조명들로 밝혀진 빛들이 생기를 띠는 듯했다.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기 전, 랑랑은 자신이 파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랑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인 파리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물론 이는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파리의 음악평론가들은 그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그를 ‘광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거에 랑랑은 한 인터뷰에서, ‘왜 그 사람들이 저를 싫어할까요?’라고 반문하기도 했었다.

 

피아니스트 랑랑을 바라보는 시선

과거 파리의 살 플레옐과 샹젤리제 극장,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에서 랑랑의 연주를 꽤 많이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랑랑은 그대로다. 독주회든, 협연이든, 실내악 연주든, 그는 언제나 큰 동작으로 연주한다. 랑랑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살 플레옐에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그의 동작이 하도 커서 청중은 지휘자가 두 사람인 협주곡 연주회를 경험해야만 했다. 클래식 음악애호가들이 보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반론을 제기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을 상상력이 가득한 자유로운 예술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들을 어떠한 틀 속에 가두어 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클래식 음악과 엘리트 교육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쇼맨십으로 가득한 광대와 같은 이미지로 랑랑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일화가 두 가지가 있다. 프랑스 뮈지크 라디오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음반평론석(La tribune des critiques de disques)’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방송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방청객의 참여로 공개 녹화되고, 일요일에 청취할 수 있다. ‘르 피가로’의 음악전문기자인 크리스티앙 메를랭을 비롯한 파리에서 활동하는 전문 평론가들과 음악관계자들이 참여한다. 매주 한 작품을 정하고, 연주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몇 장의 음반들을 듣고 토론을 거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연주를 선정하는 것이다. 한 번은 가장 좋은 연주로 뽑은 음반이 랑랑의 녹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평론가들이 스스로 놀라고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랑랑에 대한 평론가들의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크 음악으로부터 출발해서 모차르트의 음악의 수호자가 되었던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죽기 얼마 전 랑랑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과 24번을 녹음하는 작업을 했다. 이 두 음악가의 만남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대와 문화, 음악적 성향을 지닌 두 음악가의 만남은 음악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아르농쿠르는 랑랑과의 만남을 놀랍고도 행복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두고 염화미소가 통했다. 아르농쿠르가 그저 한마디를 하면 랑랑의 연주와 음악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르농쿠르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랑랑과 같은 연주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고 했고, 랑랑은 아르농쿠르와의 만남을 축복이라고 했다. 바스티유 오페라 부근에서 출발한 배는 센강을 고요하게 가로질러 어느새 에펠탑 가까이에 도달했다. 랑랑이 드뷔시 ‘달빛’ 연주를 마치는 순간, 에펠탑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랑랑은 이 우연을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저녁이 되길 빌었다. 가까이서 본 랑랑은 매우 명랑한 사람이었고, 피아노를 통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줄 아는 피아니스트였다.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사진 유니버설뮤직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