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엘리트 연주자에게, 사람들은 ‘일반적인’ 것을 원했다.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해외로 유학을 가서 연주 실력을 더 갈고닦아, 전문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 성장하길 바랐던 것일 터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콘은 집시음악, 대중음악과의 협업, 뮤지컬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전혀 새로운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집시음악으로 음반 발매와 해외 공연을 병행하며, 뮤지컬 ‘파가니니’ 속 액터-뮤지션으로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까지 소화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뮤지컬 ‘모비딕’으로 액터-뮤지션의 길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제작 첫 과정부터 참여하면서 난항도 겪었지만, 그때부터 재공연에 이르는 3년을 함께한 작품이다. 국내에 액터-뮤지션이라는 장르가 없었던 당시, 이 작품은 자연스레 이슈가 됐다. 이제는 관련 논문에서도 액터-뮤지션 ‘1호’로 내 이름이 언급되더라.(웃음)
‘모비딕’과 ‘파가니니’에서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나? ‘모비딕’에서 피아니스트와 연주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을 그와 즉흥으로 연주하면, 음악감독이 이를 듣고 곡을 쓰기도 했다. ‘파가니니’에서도 음악적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했다. 극 중 바이올린의 한 선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실제로 파가니니가 한 선을 위해 작곡한 곡을 발췌해 꾸몄다. 또 파가니니 ‘모세 판타지’의 일부를 차용하면서도, 이어지는 부분은 더 광기 어린 느낌으로 직접 작곡해 덧붙였다.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와 카프리스 24번이 연이어 연주되는 극의 절정에서는 무반주 카덴차를 삽입해 매번 즉흥으로 연주한다.
공연을 통해 파가니니가 새롭게 다가왔을 것 같다. 학생이었을 때에는 테크닉의 기준이 되는 시험 곡 정도로 느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직접 파가니니가 되어보니 그가 곡을 작곡한 의도나 의중을 고민하게 됐다. 더욱이, 연주할 때 광기 어린 파가니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신체적 움직임을 적절히 연기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연주에 더욱 감정적으로, 처절하게 임할 수 있었다. 파가니니 안에 들어가서 연주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연주와 연기, 노래와 춤까지 모든 것을 해내야 했는데. 대전에서의 초연 무대에 오르기까지 아주 짧은 준비 기간이 주어졌었는데, 단시간에 연기력을 채워야 했던 것이 쉽지 않았다. 전문 뮤지컬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해보니 그들과 발성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 느껴져서, 평소에도 극적인 목소리 톤으로 말하며 연습했다. 연주자가 나뿐이라는 점이 부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도전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여러 음악가를 조명한 작품은 많았으나, 바이올리니스트가 주인공인 작품은 없었다. 파가니니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바이올리니스트가 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연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작품의 진정성을 살리고 싶었다.
제대로 된 파가니니를 들려줌으로써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끌어올렸을 것 같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바이올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반응을 자주 접했다. 뮤지컬이라는 대중적인 매체로 파가니니라는 아티스트와 바이올린, 더 나아가서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더라.
노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시간 낭비한다’는 쓴소리를 가끔 들었다.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고,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길을 처음 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지금까지 의미 있는 것들을 쌓아왔다고 생각한다.
후배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공자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한다. 하지만 그중 극소수만이 스타 연주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연주자가 배출되지만, 연주 시장이 활발하지 않아 재능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하는 작업이 액터-뮤지션이라는 틈새시장을 형성하고, 후배들에게는 또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으니 의미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런 길을 생각하고 있는 몇몇 후배들이 조언을 구해오기도 했다. 이 길이 더욱 구체화되어 앞으로 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길 바란다.
집시음악이 주 무기다. 어떤 음악인가?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진다. 러시안 집시는 보컬이 주를 이루는 형식을 가졌고, 스페인에서는 플라멩코가 유명하다. 바이올린이 특징적인 집시음악은 루마니아와 헝가리가 대표적이다. 클래식은 보통 정제된 좋은 소리를 내는 것에 중점을 둔 반면, 집시음악은 소리가 깨끗하지 않을 때도 있고 감정이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클래식이 우아한 은유법 같다면, 집시음악은 직설 화법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가끔은 직접적인 화법이 감정을 더 자극하지 않나. 이 점에 매료됐다. 음악의 구조, 템포나 셈여림도 자유롭고, 공연 시에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자유롭고 신나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집시음악으로 해외 공연도 자주 한다. 월드뮤직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일본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이후 집시 바이올린의 고장 헝가리도 찾았다. 그곳에서 직접 집시들을 만나 팀을 꾸려 공연하고, 음반 제작을 위해 녹음도 했다. 레퍼토리 중 절반은 내가 작곡한 곡으로 채웠다는 것이 더욱 의미 있었다. 그중 한 곡에 대해 ‘진짜 헝가리 집시 곡인 줄 알았다’는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집시음악의 홈그라운드’에서 연주했다는 것도 뿌듯했는데, 그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헝가리 집시들을 만나며 이 음악을 계속할 예정이다. EDM에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접목해 클럽 공연도 해보고 싶고, 노래로만 채워진 앨범도 다시 발매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KoN의 음악’이 파가니니의 것처럼 남는 것이다. 망가지고 좌절하는 파가니니를 연기하고 있지만, 몇백 년이 지나서도 그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보면 부럽다. 여러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내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다. 시간이 걸려도 하나씩 밟아나가려고 한다. 의미가 있고, 거기에 재미도 있다면 무엇이든 해볼 생각이다.
글 박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