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를린 슈트롬 페스티벌
도시의 개방성을 증명한 새로운 시도
2월 7일 금요일 밤, 베를린 필하모니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맞았다. 개관 이래 최초로 전자음악 축제인 슈트롬 페스티벌(Strom-Festival fur Elektronische Musik)이 개최된 것이었다.
7일과 8일로 이어진 행사는 모두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날 밤 축제에는 백발의 노인부터 파격적인 패션을 한 젊은 베를리너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낯선 풍경은 이어졌다. 공연 시작이 임박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마시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DJ 부스가, 양쪽으로는 사람 키 두 배 만한 스피커가 묵직하게 서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로비 2층 난간에 올라서니 ‘비트’가 공간에 울려 퍼진다. 8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공간과 음악, 그리고 이를 채운 사람들. 의외의 조합이 자연스레 굴러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축제의 전반부는 다소 경직된 듯 보였지만, 자정에 가까워 오자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축제는 객석에 앉아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메인 홀, 자유롭게 술을 마시거나 춤추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로비, 그리고 이번 축제를 위해 제작된 시각 작품을 볼 수 있는 헤르만 볼프 룸 총 세 개의 공간에서 진행됐다. 늦은 새벽에 이르기까지 장장 7시간 동안 다섯 명의 아티스트에 의해 계속된 공연은 홀과 로비를 번갈아 가며 채웠다.
축제를 기획한 총괄 큐레이터이자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DJ 슈테판 골드만은 메인 홀 무대를 꾸몄다. 전자음악의 ‘뉘앙스’를 강조하는 그의 신념이 느껴진 시간이었지만, 난해하게 느껴지는 감상은 나를 비껴가지 못했다. 21세기의 전자음악을 제대로 맛보고 나니, 낯설게 느껴졌던 20세기 전자음악이 비로소 ‘음악’처럼 다가왔다고 할까. 동시대 전자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축제가 끝난 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테크노 음악 분야에서 20여 년간 쌓은 커리어로 베를린 필하모니에 입성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굉장했다.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전자 음악이라는 장르에 주어진 엄청난 기회였다. 베를린 필하모니만의 독특한 음향 구조를 활용해 클래식 연주자들이 아닌 다른 아티스트들과 음악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이런 축제가 개최된 계기가 궁금하다.
최근 필하모니에 총괄 매니저 안드레아 자이트슈만과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선임됐다. 연주 프로그램에 대한 큰 변화가 예견되어 왔는데 전자 음악을 위한 장소로 이 공간을 새로이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가 그중 일부였다. 이 선택지를 두고 함께 논의할 대상으로 내가 초대됐고, 긴 대화를 거쳐 이를 프로그램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페스티벌을 구상하며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나.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음악사에서 전자 음악은 큰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듣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인 콘서트홀에서 이 음악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필하모니와 같은 기관들이 이 음악을 조명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운 아티스트들과 동시대 전자 음악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대에서 선보인 음악은 미리 작곡된 것인가, 아니면 즉흥의 결과물인가.
스튜디오에서 미리 작곡된 것이다.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 음악을 필하모니 대공연장의 음향 구조에 맞게 적용하는 과정이다. 특정 소리의 위치를 바꾼다거나 다른 요소들의 셈여림을 조절하는 등의 작업이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무대 위에서 하는 것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은 실제로 공간에 적용되어 음악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전 과정은 순간의 감정에 의해 진행됐다. 마치 같은 음악이 다른 콘서트홀에서 다른 템포로 연주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필하모니 홀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음악을 빚고자 노력했다.
이번 축제 개최에 개방적인 도시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당연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이래로 도시에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다른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기회들이 활짝 열려 있다. 세계적인 예술도시라고 일컫는 뉴욕과 파리에서조차 클럽 분야는 정치·경제적 권력 앞에 항상 쓰러지기 쉬운 존재다. 베를린에서는 정부의 큰 지원을 받는 분야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기관이 클럽과 전자 음악의 문화적 맥락과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 박찬미 사진 베를린 필하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