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년 예술가 25인의 성장보고서 (2)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16일 9:00 오전

 

 

연극 theater 작가와 작품의 동반 성장

 

연극 분야의 인큐베이팅 사업은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크게 작품 개발과 창작자 육성으로 나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공연예술창작산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나 두산아트센터(‘두산아트랩’ ‘DAC Artist’)처럼 한 기관에서 두 가지 성격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모두 운영하기도 한다.

작품 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팅 사업은 아이디어 단계부터 시작해 대본 창작·내부 리딩·쇼케이스까지 지원하는 사업(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 우란문화재단 ‘우란 이상’), 희곡 작품을 발굴해 무대화하는 사업(서울시극단 ‘창작플랫폼’), 작품 제작비 및 부대시설을 지원하는 사업(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뉴스테이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까지 다양하다.

창작자 육성을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지원을 통해 작품 발표 기회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연구 및 워크숍·네트워킹 지원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창작자가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문학·시각예술·무용·음악·전통예술·무대예술·기획 분야의 만 35세 이하의 예술가를, ‘DAC Artist’는 장르 구분 없이 만 40세 이하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다.

 

극작 김한솔 우란문화재단 우란이상/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 동반사업

뮤지컬 ‘빠리빵집’의 아이디어부터 시작해 초고·수정고·내부 리딩·트라이아웃 공연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원받았다. 특히 초고를 가지고 모든 배우와 함께한 ‘드라이 리딩’이 가장 도움이 됐다. 배우들이 대본을 읽어나가면서 낯선 캐릭터와 스토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수정해야 할 대사들이나 장면을 알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우란이상’은 ‘잘 되는 작품’이 아닌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말해준다.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창의인재 동반사업’은 작가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고 마지막엔 ‘데뷔를 대비하라’라는 이름으로 쇼케이스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작품이 계약에 이르기까지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많다. 이 사업은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것인데, 덕분에 창작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초고가 나오기까지, 그리고 몇십 번의 수정고를 거쳐서 무대에 오르기까지 창작자의 과정을 존중해주고 지원해주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연출 신유청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서울시극단 창작플랫폼-연출가/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사실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라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작품을 올릴 기회를 찾다 보니 관련 사업에 여러 번 참여하게 됐다. 이 중에서 ‘창작예술아카데미’는 예외적이었다. 당시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프로그램에 임했는데, 프로그램에서 생각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해줬다. 걸어 다니고 생각하고 방황해도 괜찮은 몇 개월을 보냈다.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을 얻었고, 덕분에 ‘그을린 사랑’(2016)이라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방식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있고, 활용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어떤 사업이든 결국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팀워크를 구성해 작품을 이어가는 데 꼭 ‘극단’이라는 이름이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 작품을 통해 만난 이들과의 관계가 하나둘 눈사람처럼 뭉쳐 여러 동지가 생겼다.

 

극작 신해연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서울시극단 창작플랫폼/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에 참여해 배우·무대디자인·작가·연출 등 여러 분야의 또래 연극인과 총체적인 동시대 연극의 흐름을 공부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작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현장에 나오면 또래 작가와 소통할 기회가 드문데, 서로의 시놉시스를 보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의지가 됐다.

‘창작플랫폼’은 약 일 년 반 동안 두 번의 낭독 공연을 거쳐 본 공연을 올린다. 보통 작품 인큐베이팅은 한 번의 쇼케이스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에 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안정적으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무조건 대본을 고치는 것보다 관객과 배우의 반응을 체감하며 느끼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신진 작가에게는 관객을 만나는 것만큼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함께 구축할 파트너 연출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긴 호흡에서 작업을 같이할 연출을 만날 수 있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극작·연출 윤성호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DAC Artist

‘두산아트랩’에서는 일정 정도의 제작비와 연습 공간 등이 지원된다. 두산아트센터는 작품 내용과 방향은 터치하지 않으면서 창작자의 고민을 기꺼이 나눈다. ‘DAC Artist’를 통해서는 3년 동안 두 번의 워크숍과 공연을 올릴 수 있다. 창작에 대한 적절하고 합당한 인건비를 받으며 무대·음향 등 각 파트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충분히 실험해볼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주어지는 작품 발표의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이 섰을 때 참여하면 좋겠다.

2011년에는 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신청하는 작품은 모두 공연하게 하자는 철학을 가진 축제다. 저렴하게 극장을 대관했지만, 제작비는 사실상 거의 창작팀에서 준비해야 했다. 이후 서울연극협회에서 서울연극제 본선 창작진보다는 신진을 지원하는 ‘미래야 솟아라’, 국립극단 ‘작가의 방’ 지원도 받았다.

사실 예술 역사상 후원 없이 창작 활동이 지속된 적은 없다. 현실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하고, 특히 신진 창작자는 자신을 알리거나 관객과 만날 기회가 너무나 적다. 경력 있는 기성 극단이 지원금을 얻기 더 쉬운 시스템이다. 민간·공공 할 것 없이 지원 프로그램의 수가 늘어났으면 한다.

 

 

김광보(서울시극단장) 공연을 완성하기 전에 낭독 공연, 쇼케이스 등 검증의 과정을 만들어주는 게 인큐베이팅 사업이다. 경연이나 경쟁이 아니라 완성된 공연을 향하는 과정인 것. 따라서 결과물을 판단할 때 최대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멘토가 주체가 되어 멘토링 한다면, 그것은 멘토의 생각을 이식시키는 작업밖에 안 된다. 작업의 중심은 언제나 작업자에게 있어야 한다. 다만 전문가 토론, 관객과의 대화 등 촘촘한 과정을 거쳐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만전을 기한다.

김옥란(연극평론가) 정권이 바뀌고 청년지원이 늘어나면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세금으로 예술가를 무한정 지원할 수는 없다. 한정된 파이로 한 곳에 얼마큼 떼어주면, 다른 곳은 그만큼 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운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지원사업별로 색깔과 정체성도 더 분명해져야 한다.

남윤일(두산아트센터 PD) 창작자가 있어야 공연장도 의미가 있다. 지원사업의 일차적 수혜자는 창작자이지만, 공연화되었을 때는 관객까지 수혜자가 된다. 지원사업에 처음 참여하는 창작자보다 두 번째, 세 번째 참여하는 창작자가 ‘두산아트랩’ 활용을 더 잘하더라. 창작자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을 때, 우리 프로그램이 떠오를 수 있도록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새로운 무엇으로 탈바꿈하기보다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것이 진정한 변화가 아닐까.

글 박서정 기자

 

 

국악 TRADITIONAL music 또 다른 무대, 해외로의 발판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공감대 아래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 많은 것이 특징적이다. 국립국악원·문화체육관광부·서울시·서울문화재단·예술경영지원센터·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각종 국공립단체가 국악 분야 인큐베이팅 사업에 직간적접으로 참여한다. 다양한 기관에서 시행되다 보니, 사업내용이 중복되지 않도록 주최 측도 지원 방식과 내용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이에 따라 청년 예술가는 창작곡 발표·공연 제작 및 기획 경험·해외 진출 등 자신에게 필요한 사업을 파악해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먼저 십여 년간 축적된 인지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브랜드화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국악방송의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와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소리프론티어’가 있다. 국악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 경연대회인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는 본선 진출팀에게 예술감독 멘토링부터 음원 녹음·유통·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의 기회를 준다. 2019년에 10주년을 맞이한 ‘소리프론티어’는 ‘한국형 월드뮤직 아티스트’를 발굴해 세계무대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축제라는 정체성을 적극 이용해 월드뮤직 관계자를 초청, 참가자들의 무대를 선보인다. 선정 단체에게는 창작지원금과 프랑스 바벨메드 뮤직 쇼케이스 등의 해외진출 기회도 주어진다. 한국전통음악의 해외진출 플랫폼으로는 2008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주관해온 ‘저니투코리안뮤직’도 있다. 경력 5년 미만의 신진 단체를 위한 ‘저니루키’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극장의 경우 신진 국악인 발굴을 통해 공연예술계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는 데 목적을 둔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남산국악당 ‘단장’, 정동극장 ‘청춘만발’, 국립극장 ‘3분 관현악’, 국립국악원 ‘청춘, 청어람’이다. ‘단장’과 ‘청춘만발’은 경연을 거쳐 선발된 팀에게 창작지원금과 멘토링을 포함한 공연 제작을 위한 공간·기술·홍보 지원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최종 선발된 팀에게는 다음 연도에 극장 기획공연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무대에 설 악단을 보유한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확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019년 국립극장 산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열 명의 신진 작곡가를 발굴해 3분 이내의 신곡을 위촉하는 프로젝트 성격의 ‘3분 관현악’을 공연했다. 발표된 곡은 현장 관객 설문조사와 전문가 및 연주단원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 국립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에 오른다. 같은 해 국립국악원은 국·양악 구분 없이 만 45세 이하의 국악관현악 지휘자를 발굴해 창작악단과 연주하는 ‘청춘, 청어람’을 기획했다. 국악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공모를 통해 선발된 네 명은 각기 색다른 해석으로 창작악단을 지휘했다.

이밖에도 민간극장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신진 예술가를 육성하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신진국악실험무대’, 서울에서 예술창작활동을 계획하는 데뷔 10년 이하의 예술인에게 2년간 지원금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 MAP’, 본 공연 제작에 최대 6천만 원이 지원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롯데장학재단의 후원으로 현재 연주자로도 활동 중인 노름마치예술단이 성악·기악·연희 부문 입상자에게 총 1억 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청춘열전 페스티벌: 출사표’ 등이 있다.

 

타악 김소라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과거 어떤 선생님·단체·지역 출신인지 눈여겨봤다면, 요즘엔 어느 축제 출신인지, 어느 쇼케이스에서 뽑혔는지가 연주 활동에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공신력을 인정받는 경연에서 입상하면, 차후 다른 지원사업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해외 무대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2015년 ‘소리프론티어’에서 우승한 뒤 부상으로 해외 진출 기회가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으로 온 해외 공연 감독과 각종 아트마켓에서 만난 공연기획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5년간 해외 활동을 병행하면서 느낀 점은, 음악성과 연주력은 기본이고 연주자에게도 기획과 홍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해외 공연은 외국 관계자들이 연주자가 한국에서 얼마나 인지도가 있는 축제에서 배출됐는지, 그를 통해 한국의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지에 메리트를 느끼고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 본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수상 경력을 활용해야 한다.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이후 그 연주자가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면, 결국엔 그가 참여했던 기관의 프로그램도 함께 돋보이게 된다.

 

가야금 김지효 국악방송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서울 남산국악당 단장/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정동극장 청춘만발

헤이스트링 결성과 동시에 한 곡을 집중적으로 멘토링 받는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 예술가에겐 작품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소중한 기회다. 무대 경험이 없던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퍼포먼스가 추가됐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음악적 색깔을 찾아 나갔다. 경연이 끝난 뒤에도 국악방송에서 공연에 출연할 기회를 줘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단장’은 공연 예술가가 갖춰야 할 자질을 다방면으로 알려줬다. 마련된 프로그램을 통해 성우로부터 스피치를, 탈춤 무용수로부터 몸동작을 배웠다. 이는 팀을 구성해 활동하는 연주자에겐 꼭 필요한 부분이다. 경력이 끊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에, 계속해서 여러 지원 사업·경연 무대에 도전했다. ‘청춘만발’ 콘서트로 말레이시아 투어 공연을, ‘단장’으로 영국 진출을 했는데 앞으로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

 

작곡 이고운 국립극장 3분 관현악/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30대 초반의 작곡가가 국악관현악단으로부터 작품 위촉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매우 반가운 기회였고, 3분 내에 메시지를 응축해 표현하는 작업 방식도 흥미로웠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젊은 작곡가 열 명의 카탈로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각자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선보인 곡은 관객 및 전문가의 반응을 반영해 수정·보완한 뒤 다시 국립관현악단 무대에 올릴 기회를 얻는다. 경험상 단순 예산 지원보다 쇼케이스 를 통해 창작 과정을 공개하고, 관객 및 전문가와 공유·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아가 무엇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아르코 창작음악제는 ‘최소 10년은 바라보고 지속해야 할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관객의 호응도 뜨거워, 창작자의 창작 욕구를 높여주는 좋은 사례다.

 

피리 이나연 정동극장 청춘만발

대학 졸업 후 국악 연주자로 살아남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아티스트가 전적으로 공연을 이끌어갈 수 있게 공간·연출·홍보·조명·음향 부분을 지원해주는 ‘청춘만발’에 참가한 이유다. 한 시간짜리 실내공연의 기획서 작성부터 축제 무대에 오르는 것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뜻을 모아 팀을 만들었지만, 공연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부담스러운 신진 팀에게 ‘청춘만발’을 추천한다. 공연 제작의 전 과정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큐베이팅 사업은 신진 창작자가 다음 발걸음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자신의 색깔이 담긴 공연을 만들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잘해주기를 바란다.

 

작곡 정원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오페라·전통예술)

지난해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전통예술 분야가 신설됐고, 교차지원이 가능해져 지원했다. 마침 제주도 굿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하던 찰나였다. 이 사업은 창작자의 연구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구주제와 부합하는 멘토를 붙여주고, 작품에 필요한 서적·공연·답사 비용을 지원한다.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잘 짜여있어 타분야 창작자와 교류할 기회도 주어진다. 최종발표 전에 중간발표를 거치는데, 심의위원과 작품의 방향성을 논의할 수 있지만 선택은 철저히 연구생의 몫이다. 다만, 순수예술 분야에는 일회성 공연이 많고 예술성을 고집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오랜 기간 하나의 작품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없어 아쉽다. 예를 들어 뮤지컬은 작품 인큐베이팅을 통해 대중적인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 경우도 있지 않나. 보다 많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도록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다.

 

철현금 한솔잎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MAP

개인이 혼자서 콘서트와 음반 작업을 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든다. 지원금 없이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주로 연말과 연초에 다양한 기금사업 공모가 올라오는데, 특히 다년지원(2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유망예술지원사업’에 지원했다. 지원금으로 첫 EP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열었다. 멘토링 지원을 받아 픽업과 이펙터 활용법을 익히기도 했다. 철현금의 음량을 확장하고,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는 등 철현금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기회였다. 다년사업이기에 장기적인 계획안에서 창작자가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또한 서울문화재단이 실시하는 여타 사업보다 기금액이 큰 만큼, 기존에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해온 창작자에게 적합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전통의 계승보다 창작에 중점을 둔 지원사업이 늘어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정성진(전 남산국악당 공연기획팀 팀장) 자기 기관이나 조직의 특성에 맞춰 방향을 날카롭게 가져가야 한다. 프로그램을 오래 유지하면, 자연스레 전문성이 알려지고, 기관이 선발한 팀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에 서울 남산국악당 ‘단장’은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공연계에서 선발된 팀의 작품이 유통되도록 각종 아트마켓에서 홍보하는 등 사후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한지영(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 팀장) 우리는 신진 양성보다는 준비된 팀, 잘하는 팀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게 프로모션해주는 것이 축제라는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악계엔 전통을 계승한다는 이유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매년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음악을 하는 팀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러한 틀을 깨는 것은 어떤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연주자 개인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 있다.

글 박서정 기자

 

 

장애예술 DISABILITY ARTS 동시대 예술계와 관계 잇기

 

최근 장애인 예술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더불어 장애예술가의 창작 지원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장애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언제부터였을까. 1996년부터 ‘장애인문화향수권신장’ 사업이 일부 추진됐지만, 2007년부터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2007년 개관한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공모를 통해 시각예술 분야 장애예술가에게 입주 공간을 제공하고, 장애예술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동안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 인큐베이팅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고민을 해왔다. 그중 ‘굿모닝스튜디오’는 입주예술가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동시대 미술계와 장애예술과의 상호 접점을 위해 큐레이터를 섭외해 워크숍을 진행하고, 새로운 형식의 배리어프리 전시를 운영했다. 오픈스튜디오에서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해 장애예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지난해 ‘굿모닝스튜디오’는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앞으로 서울문화재단은 공연예술(연극·무용)도 장애-비장애인 공동창작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5년에는 대학로 중심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이 개관했다. 장애예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이음 설립으로 좀 더 전문적인 지원 정책이 가능해졌다. 2019년 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에서 유망예술단체 집중 육성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다. 한국은 장애예술활동 지원 역사가 짧아서, ‘선택과 집중’에 의한 장애예술 육성은 선례가 없다. 우리나라 지원 정책은 ‘창작 지원’과 ‘복지 지원’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이음은 지난해 처음으로 ‘유망예술 프로젝트’ 지원 사업을 시도했다. 선정된 단체를 2년간 집중 지원하여 장애예술의 대표적 콘텐츠를 발굴하려는 목적이다. 극단애인의 ‘1인 극장 프로젝트’와 핸드스피크 ‘Deaf Art Festival’, 한국장애인문화협회 ‘K 에이블 POP 그룹결성 및 음반제작 프로젝트’가 최종 선정됐다.

 

연출·극작·배우 김지수 이음 유망예술 프로젝트

장애예술 지원사업에서는 중장기 지원 사업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공연·전시·발간 등 일회성 공모였는데, 유망예술지원사업은 2년 기간이어서 지원했다. 좀 더 체계적인 계획을 가진 사업이라 장애예술가에게 보다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이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에서 벗어나 개인 창작자로서의 경험을 넓히고,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로 2019년 ‘극단애인의 1인 무대’ 쇼케이스를 가졌다. 창작자로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자기 계발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은 프로젝트에 최종 선정된 세 단체 간의 만남이나 네트워킹 기회가 없었다. 앞으로 장애예술 인큐베이팅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단체를 위한 꾸준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화예술 정정윤 이음 유망예술 프로젝트

농아(聾啞) 무용단과 10여 년간 함께 활동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끊임없는 노력에도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없었다. 청각·언어장애인에게 맞는 전문적인 예술교육이 없다는 사실과 농문화(聾文化)와 예술을 어떻게 접목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기획·제작·무대까지 많은 실험과 실행, 그리고 자본이 필요했다. 지원받은 ‘Deaf Art Festival, Showcase!-Handspeak’는 청각장애인 예술가들이 직접 기획·제작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농문화예술 콘텐츠를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기존에 청각·언어장애인 예술 관련 자료와 방법들의 부재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상상했던 것을 실행하고 검증해보는 기회였다. 관객과 참가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재연을 기획 중이다.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 항상 다음 무대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만, 그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장애예술은 더욱 그렇다. 창작뿐 아니라 사업의 확장과 단체 간의 교류 및 운영에서도 지속 가능한 지원이 필요하다.

 

 

황기성(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주임) 현재 장애예술인들이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예술교육이 체계적이지가 않다. 예술고등학교·예술대학교 진학 비율이 낮은 편이다. 장애예술 인큐베이팅 사업은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만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현장 예술가와 만날 기회를 제공해 동시대 예술계와 동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면 장애의 종류·유형·등급이 다 다른데, 현재의 지원 사업들은 대부분 단체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장애예술가들이 원하는 수요에 맞지 않아서 소외되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는 장애유형별로 분류하여 소규모 사업을 진행해보고자 한다.

글 장혜선 기자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베를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도시민의 45퍼센트인 169만 명이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도시다. 그중 6만 명 이상이 예술가이고, 다시 그중 8,000여 명이 외국인이다. 언어도 생활 패턴도 다른 외국인 예술가들이 기꺼이 베를린을 향해 형성한 숫자다. 어떻게 보면 도시에서 숨 쉬고 있는 공연예술 공간과 그 속을 가득 채운 예술의 공기, 그리고 그 공기를 정화하고 생산하는 첨단의 인큐베이터가 가동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클래식을 비롯하여 공연예술의 장이 넓게 형성된 유럽으로의 진출을 꾀한 이들 중 많은 수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정착했다. 베를린이 전세계 청춘 예술가들의 ‘드림 시티’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게 탐구해봤다. 14년 차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이승원(지휘·비올라)은 사회·지리적 요건을 하나로 꼽았다.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안정적인 임대료가 중요히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베를린은 일곱 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독일의 수도다. 육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연주 여행 등을 떠날 수 있다는 뜻이다. 베를린 공항에서도 한두 시간이면 다른 유럽 국가들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도시의 개방성과 다양성은 이곳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정신적 태반이 되어준다. 두 차례의 전쟁과 한 번의 냉전 시대, 그리고 장벽의 붕괴를 경험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역사로부터 이미 터득한 베를린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받아들이는 데도 자연스럽다. 독일 뮌스터와 뮌헨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수연(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악장)은 “베를린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과 마을의 집합체다. 솔리스트로서의 방향이 확고했던 내가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활동을 병행하게 된 것은 약 6년 전 이곳에 정착했기에 가능했다. 이곳에서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포착하고 시도하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음악의 영역에만 한정해도 많은 예술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분단 당시 서독의 베를린은 각각의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 등을 소재하고 있었는데, 통일 이후 이를 통합 혹은 폐관하는 대신 모든 문화 공간을 계속 운영키로 했다. 그래서 이곳은 3개의 메이저 오페라극장, 7개 이상의 오케스트라 단체가 상주하는 예술 도시로 거듭났다. 도시 곳곳 다수의 문화 공간들은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16년 간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유성권(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은 이런 이점을 강조했다. 연주 기회가 많아 세계 각국 솔리스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베를린에는 매니지먼트의 영역도 두텁게 형성됐다.

한편, 베를린의 많은 예술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해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한다. 코미셰 오퍼 베를린에서는 ‘코미셰 오펀스튜디오(Komische Opernstudio)’를 운영한다. 프로그램에 발탁된 성악가는 2년간 마스터클래스와 워크숍 등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코미셰 오퍼 프로덕션에서 역할을 맡아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른다.

눈에 띄는 것은 스튜디오가 외국인의 참여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실질적인 경험을 쌓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외국인의 독일어 능력 향상을 스튜디오의 목표로 설정한다. 현 시즌에서 활동하고 있는 6명 모두 러시아·프랑스·발바도스·폴란드 등 외국 출신이다. 박창대(베이스)도 코미셰 오퍼 스튜디오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반년을 보낸 그는 “1대1 어학·발성·안무 세션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스튜디오 프로그램은 굉장히 밀도 높게 짜여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야 한다. 대신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2021년 시즌까지 박창대는 오페라 ‘마술피리’ 2막 무대에서 자라스트로의 수하로 분해 무대에 오르고 이외 다섯 개 작품에 참여한다.

지난 1월 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근황을 전한 김규리(비올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운영하는 카라얀 아카데미의 수혜자다. 1972년 설립된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는 이 프로그램 또한 27세 이하 젊은 연주자에게 입단의 기회를 제공하며, 발탁되면 2년간 베를린 필 단원들로부터 레슨을 받고 베를린 필과의 정식 연주 기회도 갖는다. “매달 한 개 이상의 아카데미 프로젝트에 학생 전원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수석으로 연주할 기회를 주는데, 그만큼 리허설 양이 상당하다.”(객석 1월호) 김규리 역시 이곳에서의 체계적이고 알찬 프로그램을 소화해내며 나날이 스스로를 단련해나가고 있다.

피에르 불레즈 홀의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는 문학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의 교육 정신에 입각해 설립된 프로그램이다. 기본적으로 학사 재학 중인 젊은 연주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독립적으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수여 하는 과정도 운영 중이다. 이 아카데미도 전 세계 청년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두었다. 현재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이 아카데미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독일 연방 정부가 운영비를, 독일 외무부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제공한다.

이처럼 베를린은 국적을 막론하고 젊은 음악가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연주자들은 다시 베를린의 예술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많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역시 이런 베를린의 교육 프로그램 및 연주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한층 더 깊이 있게 하고 있다.(베를린의 청년음악가들이 소개하는 비밀 공간이 궁금하면 여기로)

글 박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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