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ARTIST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⑧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
뜨거웠던 20세기 이야기
연주란 자신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이다. 필터도 포토샵도 없는 그곳엔 숨을 구석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연주에서 그의 마음이 보이고 성격이 상상된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공연장,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뜨거운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이매뉴얼 액스(1949~). 그의 음악은 한없이 깊고 따뜻하다. 그리고, 둥글게 열려있다. 마치 그의 마음처럼. 오랜만에 만난 이매뉴얼 액스와 함께 클래식 음악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가 이어나갈 전통에 대한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다. 기쁜 마음에 당신의 사진을 배경에 넣었다. 내가 좀 더 잘 생겼어야 했는데 아쉽다!
긴 수염이 잘 어울린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 길렀는데, 머리카락이 서서히 턱으로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다.(웃음)
작년 카네기홀에서 주최한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할 때도 보았던 방이다. 뉴욕 자택에 있는 음악실인지? 보스턴 근교에 있는 집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줄곧 여기에서 지냈다.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어서 좋다. 이 방에서 온라인 레슨을 진행하면서, 미국의 다른 도시나 한국·일본·중국의 집에 돌아가 있는 줄리아드 음악원 학생들과도 만나고 있다.
당신의 음악적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먼저 이야기 나누고 싶다.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를 많이 옮겨 다녔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꽤 늦은 나이 때였다. 줄리아드 음악원 연습실 복도를 지나다가 친구들이 정말 어려운 곡들을 필사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듣곤, 나도 좀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간 활동하면서 음악계의 변화를 모두 보아왔을 터인데. 지금은 피아니스트들이 매우 어린 나이에도 난곡들을 소화한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의 연주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그 나이에 그 실력을 쌓기까지 어려서부터 얼마나 엄청난 노력을 해 왔을까,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만약 당신이 오늘날의 10대 학생이라면 무엇을 다르게 했을 것 같나? 혼자 연습실에서 엄청나게 연습만 한다고 해서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도, 재능 있는 연주자들도 너무 많고.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재능이 성공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생각들을 실현하고 있다.
당신은 1974년 처음 열린 제1회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지 않았나.이전에는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연주와 리코딩 기회가 확실하게 주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연주자도, 콩쿠르도 너무 많아서 우승한다고 해도 커리어를 시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맞다. 요즘은 수많은 연주자가 존재하고,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 클릭 몇 번이면 그들의 연주를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나의 우상을 직접 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려 티켓을 구하고 그의 연주회를 심도 있게 감상하던 내 젊은 날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티켓을 못 구한 날은 몰래 숨어 들어가서도 공연을 보았고, 덕분에 당시 뉴욕에 온 모든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을 카네기홀에서 다 접했다. 그런데 지금은 유튜브에 다 있다!
전통,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읽은 적이 있다. 왕족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만큼 고귀한 사람이었다. 1887년생이었던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1907)과 함께 작업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아힘이 실존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순간 나의 음악적 시야가 훨씬 더 넓어졌다.
나도 1915년생이었던 줄리어스 베이커에게 배울 때 그와 같이 작업했다는 프로코피예프(1891~1953), 힌데미트(1895~1963), 하이페츠(1910~1987)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사람을 통해 전수되는 전통이기에 더 소중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깨트려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토스카니니는 우리가 전통을 파괴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고, 불레즈도 항상 전통에 대항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전통을 고수하기에만 힘쓰다가 정작 발전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루빈스타인은 쇼팽과 브람스의 연주 스타일에 있어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전통을 구축해 놓았다.
사람과 사람이 시대를 타고 계속 연결된다.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한 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을 먼저 알았다. 그의 음반을 모으던 중 액스-김-마 트리오의 음반을 접하며 당신도, 요요 마도 알게 되었다. 김영욱(1948~)과 나는 전화로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전자기기에 관심이 없는 그에게 있어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아직도 서로 좋은 우정을 간직해서 기쁘다.
실내악 파트너는 어떻게 고르나? 사실 내 실내악 연주자로서의 삶은 요요 마(1955~)와만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48년 전에 만났고 아직도 그와 연주한다! 다시 말하면 아주 오래된 부부와 같은 관계인 건데,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점만 다르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도 자주 연주하고 있다.
48년 동안 함께한 사람들의 리허설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한 가지 감사한 점이 있다면, 우리는 매일이 아니라 가끔 만난다는 것이다. 각자의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작업하는 것이 늘 반갑고 기다려진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수백 가지가 될 만큼 많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사적인 것이다.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무대에 나오고 들어갈 때 요요가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사실 별것 아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요요에 비해 나는 정말 서툴러서, ‘너무 빨리 걷지 말라’ ‘지금 인사해라’ 등을 조언해준다.
당신이 신시내티에서 공연할 때 연주용 구두를 안 가져와서 타악기 주자의 구두를 빌려 신었던 기억도 난다. 신발을 안 가져온 적이 이제까지 몇 번 있었다. 피아노 협주곡에 등장하지 않는 악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나경 씨의 하이힐을 빌려 신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을 테지만!
노장의 둥근 마음
작년 말, 뉴욕의 프리랜서 뮤지션을 돕는 단체에 당신이 앞장서서 크게 기부를 했다. 그 선한 영향력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프리랜서 뮤지션들뿐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을 위해서도 기부했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운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음악인에게 팬데믹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악몽이다. 우리는 조금이나마,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나마 도와야 한다. 이제까지의 내 경험으로 보아, 음악계에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서로 도우며 한주씩 버티어가다 보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한국에서의 첫 연주는 1988년이었다. 임원식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김영욱, 요요 마와 함께 베토벤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지금도 한국인 친구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대단한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해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감사한 마음이기도 하다. 비록 겉으로는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한국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곧 다시 한국에 방문하기를 고대한다.
이매뉴얼 액스(1949~)는 당시 소련이었던 지금의 폴란드에서 나치 수용소 생존자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주했고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컬럼비아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1974년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솔리스트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첼리스트 요요 마와 함께 ‘액스-김-마 트리오’의 멤버로, 아이작 스턴·요요 마·제이미 라레도가 함께하는 콰르텟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일곱 번의 그래미상을 받았고, 솔로와 실내악으로 바쁜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 이매뉴얼 액스가 태동한 루빈스타인 콩쿠르 관련 기사는 22쪽으로
글 최나경
동양인 최초, 여성 최초로 빈 심포니의 플루트 수석을 역임하고, 현재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채널 ‘Jasmine Choi 최나경’에서 연주·인터뷰 영상, 플루트 전공자들을 위한 영상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월간객석 ‘Meet the Artist’ 시리즈를 통해 글과 영상으로 세계 음악인들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