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뮤지컬배우 최재림
바로, 여기를, 온전히 즐기기
한국 뮤지컬 성장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을 지켜낸 이 배우
인터뷰를 많이 하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람의 성향이 금방 파악된다. 최재림은 어떤 질문이 나오든 당황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 여유로움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지만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서울 구로구 소재) 로비에서 만난 최재림에게 “질문을 많이 준비했다”고 하자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얘기하자”며 기자의 마음을 도리어 편하게 해줬다.
10월에 개막하는 뮤지컬 ‘마틸다’에서 미스 트런치불 역을 맡은 최재림. 그는 최근 가장 바쁘게 활약하는 뮤지컬배우 중 한 명이다. 2009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이후 급속히 팽창하는 한국 뮤지컬계 중심에 묵묵히 서 있던 배우이기도 하다.
최재림은 작년 ‘시카고’(빌리 플린 역) ‘하데스타운’(헤르메스 역), 올해는 ‘썸씽로튼’(셰익스피어 역), ‘아이다’(라다메스 역)에 이어, 현재는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는 ‘킹키부츠’(롤라 역)에 출연 중이다. 곧 막이 오르는 ‘마틸다’ 준비에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맡았던 배역 중 본인의 성격과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저의 일상이랑 가장 가까운 배역은 ‘시카고’의 빌리 플린인 것 같아요. 사람으로서의 최재림 성격과 비슷한 인물은 가까운 사람들하고 있을 때에는 ‘킹키부츠’의 롤라 같기도 하고요. 어쩔 때에는 ‘아이다’의 라다메스, ‘썸씽로튼’의 셰익스피어,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 같은 부분들도 지니고 있죠. 모든 배역들의 모습을 일상에서 간간이 발견하는 것 같아요.
동료 배우들은 ‘아이다’에서 로맨틱한 면을 새롭게 봤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연기적인 면에서 발전했다고 칭찬해 준 것 같아요. ‘아이다’는 두 번째로 참여한 건데요. 초연 때보다 사랑의 감정이 좀 더 긴밀해지고 민감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인물 묘사가 섬세해졌어요.
2018년 ‘마틸다’ 국내 초연에서 여교장 미스 트런치불 역할로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초연 때 함께 무대에 섰고, 이번에도 함께하게 된 서만석 배우가 “다시 모이니까 각 배우들이 4년 동안 축적된 모습들이 보여서 신선했다”고 했어요. 제가 실질적으로 연기하는 건 같아도 그동안 제 안에서 변화된 모습을 관객이 마주할 것 같습니다. 트런치불은 무대에서 해야 하는 게 많아요. 헤비한 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서 리본 체조, 뜀틀을 해야 하죠. 체력을 기르고 있어요.
트런치불은 늘 예민하지만 가끔 앙증맞은 몸짓이나 말투가 웃음을 증폭시킵니다. 연기를 위해 많은 상상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극 안에서 트런치불이 해야 하는 흐름을 완벽히 이해하고, 그다음은 딱히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무대에서 겪고 있는 순간들을 상대 배우에게 다양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가 제일 고민이죠. 정해진 규칙 안에서 즉흥적으로 즐길 수 있는 부분을 많이 찾는 편입니다.
트런치불은 ‘킹키부츠’ 롤라와 ‘여장’을 한다는 점이 비슷하지만, 사실 롤라는 드랙퀸이고, 트런치불은 체형이 큰 실제 여성입니다. 하지만 두 캐릭터 모두 ‘여성성’을 중요시하고, 그런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트런치불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죠. 자신이 가진 원칙에 대한 신념이 강한 여성이에요. 롤라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고, 찾은 사람이죠. 자존감이 높고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롤라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할지 고민했어요.
데뷔작이기도 한 ‘렌트’의 콜린은 여장남자인 동성애자 엔젤과 사랑을 나누는 인물입니다. 여러 배역을 통해 사회에서 소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체감하셨죠. 뮤지컬을 하면서 실제로 사회를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는지요. 그동안 제가 맡았던 역은 성소수자, 살인자, 배신자, 이성애자 등 다양해요. 여러 역할을 연기한다고 실제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정서를 쉽게 공감하긴 힘들죠. 저는 연기한 거니까요. 완전히 체감했다는 건 주제넘은 말 같아요. 다만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고,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열린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요.
질리지 않는 배우가 되기 위하여
2021년 선보인 ‘최재림 콘서트 Monday Off!’가 성황리에 개최됐는데요. 공연계는 주말에도 공연이 있기에 월요일이 일종의 휴일처럼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활용한 ‘공연 없는 월요일에 공연하는 최재림’이라는 콘셉트가 재밌었습니다.
제가 팬들과 많은 교류가 없다 보니, 팬들에게 어떤 보답을 해야지 좋을까 고민이 들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최재림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같이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기획한 거예요. 대부분이 뮤지컬 넘버였는데, 해왔던 작품, 하고 싶은 작품,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작품의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대학에선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이나 크로스오버 쪽으로 포커스를 맞춘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은 없는지요.
항상 생각은 하고 있어요. 앨범도 내고 싶고요. 클래식 음악을 다시 하려면 그에 따른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죠.
지난 상반기에는 JTBC ‘그린마더스 클럽’을 통해 첫 드라마 도전에 나섰죠. 매체 연기 첫 도전 소감을 알려주세요!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무대 위에서 긴 시간 동안 합을 맞춘 상대배우와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모든 게 변수인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색다르더라고요. 오히려 무대가 더 현실적일 때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 순간에 살아있는 거니까요.
우리나라 뮤지컬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요. 유독 올해는 뮤지컬계가 참 시끄러웠던 해였습니다. 건강한 뮤지컬계가 이뤄지려면 어떠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어떤 물건이 잘 팔리면, 파는 사람 입장에선 더 많이 팔아서 이윤을 남기고 싶겠죠. 이윤을 많이 남기려면 생산가가 낮고 판매가가 높아야 하니까, 생산가를 낮출 효율적인 방법을 간구하거나, 물건의 퀄리티를 낮출 겁니다. 그런데 퀄리티를 낮추면 언젠가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맞춰야 할 것 같아요. 시장이 너무나 커지고 있는데, 시장이 돌아가는 판에서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왔다 갔다 하죠. 예전에는 제작사의 힘이 컸고, 지금은 배우의 힘이 크고, 앞으로는 관객의 힘이 커질 것 같아요. 이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떠한 배우로 채워나가고 싶으신가요.
뮤지컬배우는 연기적인 움직임, 음악적인 테크닉을 많이 보유해야 하는데요. 매체 연기든, 음반 작업이든,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각 분야의 테크닉을 익히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 테크닉들을 계속 쌓아서 어떤 장르에서든 시너지를 일으키는 배우가 되는 게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그리고 질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재림 연기 잘 하지, 그런데 저렇게 연기하는 거 많이 봤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Performance information
뮤지컬 ‘마틸다’(미스 트런치불 역 최재림)
10월 5일~2023년 2월 26일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뮤지컬 ‘킹키부츠’(롤라 역 최재림)
7월 20일~10월 23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